밑그림 드러나는 공공부문 노조 연대 움직임

노동사회

밑그림 드러나는 공공부문 노조 연대 움직임

편집국 0 3,647 2013.05.29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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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된 후 정치, 경제, 복지, 여성 등 많은 분야에서 새 정부의 정책을 가늠해 보기 위한 토론회들이 열렸다. 하지만 유독 노동 분야에서는 구체적인 전망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활동에서도,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한 뒤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른 다음에도, 새 정부는 구체적인 노동정책을 내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노동계 인사들이 동의한 ‘발등의 불’이 있었으니, 바로 공공부문 구조조정이었다. 모든 사안의 초점을 “기업 프렌들리”로 옮겨 버리는 이명박 정부가 언제든지 “노동 언프렌들리”를 주창하고 나설 것은 뻔했다. 다만 노사라는 민간의 이해 당사자들이 확실히 존재하는 민간기업보다는 정부가 사용자 역할을 해야 하는 공공부문에서 먼저 주도적으로 노동계에 대한 공세의 포문을 열게 될 것이라는 예상이었다.

예상되는 선제공격, ‘연대’를 준비한다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한 지 이제 갓 한 달이 지난 지금, 그 예상들이 그리 틀리지 않았음은 곳곳에서 감지할 수 있다. 알짜배기 기업인 대우조선해양은 공공부문 중에서도 구조조정 대상 1순위로 예상됐는데, 대우조선해양의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은 지난 3월26일 자신의 지분 31.26%와 자산관리공사 지분 19.1%를 묶어 함께 매각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포스코, 현대중공업, 두산, STX 등 많은 기업들이 군침을 흘리고 있다. 대우조선해양을 매각하겠다는 산업은행 역시 민영화 대상이다. 전광우 금융위원장은 3월20일 “올해 말까지 지주사 체제를 갖춰서 민영화 작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감사원까지 나서서 구조조정의 ‘명분쌓기’에 힘을 보태고 있다. 감사원은 31개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한 예비감사 결과를 발표하고 공공기관들의 방만한 운영 실태를 질타했다. 감사원이 감사의 모든 절차가 끝나기도 전에 예비감사 결과를 발표한 것은 지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이런 공세 분위기 속에서 노동계는 공공부문 연대투쟁을 준비하기 위한 움직임이 한창이다. 민주노총은 산하 7개 연맹을 묶어 ‘공공부문 시장화·사유화 저지, 사회공공성 강화 공동투쟁본부’(공투본)를 구성했고, 한국노총도 산하 10개 연맹이 참여하는 ‘공공부문 개혁 및 구조조정 대책위원회’(공대위, 가칭)를 꾸렸다. 공무원노조들과 개별 공기업 차원에서의 연대체 구성도 조금씩 탄력을 받고 있다. 공무원노조들의 연대 투쟁은 4월1일에 있을 ‘공무원연금법 개정 대응을 위한 관련단체 긴급 간담회’를 통해 밑그림이 그려질 예정이고, 14개 공기업들의 연대체인 ‘공공기관노동조합협의회’도 활동을 시작했다. 이런 흐름들의 결과는 향후 5년간 이명박 정부의 노동정책에도 일정한 영향을 미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명박식 노동정책의 ‘실용성’이 일반 국민들과 노동자들에게 과연 수용될 수 있는지, 그 첫 시험대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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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노총은 4월 2일 기자회견을 열고 '사회공공성 강화와 공공부문 구조개악 저지 대책위원회'를 출범시켰다.  ▶ 한국노총 ]

양대 노총, ‘사회공공성’을 화두로

민주노총은 지난 3월11일 기자회견을 열고 공투본 출범을 선포했다. 공공운수연맹·대학노조·보건의료노조·사무금융연맹·전교조·전국공무원노조·언론노조 등 7개 산별노조와 연맹이 참여했다. 공공부문 구조조정이 낳을 사회공공성 약화 문제에 집중하겠다는 의지다. 공투본은 출범 기자회견에서 △의료, 교육, 사회서비스 시장화 저지, △공공부문 사유화와 구조조정 중단, △공공부문의 민주적 운영과 일자리 확충, △기초연금 15% 쟁취와 공무원사학연금의 올바른 개혁, △언론·금융공공성 확보, △한반도 대운하 사업 중단 등 6가지 요구안을 밝혔다. 

공투본은 우선 당장 닥쳐 있는 총선정국이 끝난 후 세부 일정과 구체적인 계획을 확정하고 사업을 진행해, 5월 하순에 ‘사회공공성 포럼’을 통해 노동운동진영을 포함한 진보진영 전체의 관심과 역량을 ‘사회공공성’에 집중시키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3월26일에는 공투본 확대간부 수련회를 진행했다. 김성란 민주노총 기획국장은 “각 산별의 위원장들과 핵심 간부들이 참여해 내부 상황과 요구 수위 등에 대해 많은 이야기들을 나눴다. 하지만 워낙 참여 단위들이 다양해 (이번 수련회는) 앞으로의 사업별 세부 일정과 수위를 잡는 첫 토론회 정도였다고 보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민주노총은 산하 노조뿐만 아니라 시민사회단체와의 연대투쟁도 추진 중이다. 3월18일에는 시민사회단체들을 초청해 간담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는 교육, 문화, 여성 등 각 분야의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이 참석해 앞으로 예상되는 공공부문의 전방위적 공세에 대한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참석한 활동가들은 공투본의 제안 중 각 단체가 관심이 있거나 결합이 가능한 의제들에 대해 소속 단체의 입장을 정리한 뒤 총선 직후에 다시 논의하기로 결정했다.

한국노총 공대위의 정식 발족은 4월2일 이후가 될 것으로 보인다. 공공연맹이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공대위에는 공공연맹·전력노조·체신노조·연합노련·철도산업노조·금융노조·정보통신연맹·의료산업연맹·사립대학연맹·교육기관공무원연맹이 참여할 예정이다. 장대익 한국노총 부위원장이 공대위원장을 맡고 최삼태 한국노총 교육문화실장이 대책팀장을 맡게 된다. 공대위 실무를 맡고 있는 최임식 한국노총 정책국장은 “4월2일 첫 회의에서 구체적인 체계와 계획 등을 논의할 예정이다. 정책연대의 첫 갈림길이 공공부문 구조조정에서 생길 수 있는 상황인데, 정부가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구조조정에 대해서는 좌시하지 않겠다는 것이 한국노총의 일관된 입장”이라고 말했다. 

한국노총 공대위는 아직 정식으로 출범하지 않아 구체적인 요구사항 등은 확정되지 않았지만, ‘사회공공성’이라는 화두만큼은 민주노총과 다르지 않았다. 최임식 국장은 “가장 큰 요구는 사회공공성이다. 지금 정부는 ‘묻지마 민영화’를 하자는 거다. 처음부터 사회공공성을 중심으로 진행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최근 이명박 정부가 자주 거론하고 있는 싱가포르의 ‘테마섹’ 방식(정부가 소유하는 공기업 지주회사가 공기업들의 경영을 맡는 방식)에 대해서 “테마섹 방식은 수익성만을 추구하는 모델이다. GDP 대비 공기업의 비중이 70%인 싱가포르와 5.6%인 우리나라는 상황이 전혀 다르다”고 우려했다.

산별과 단위노조, 활발한 물밑 움직임

양 노총의 총연맹 차원에서의 대응과는 별도로, 산별연맹 수준에서나 개별 공기업들의 연대 움직임도 가시화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공무원노조들의 움직임이다. 조직 문제로 껄끄러움이 완전히 가시지 않아 3월 초까지만 해도 공무원노조들 간에는 물밑 교류도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실무자들 사이에서는 “같이 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당연히 고민할 수 있다”는 분위기가 있었다. 실마리는 ‘공무원연금’ 문제였다. 공무원연금 개악 문제는 전국공무원노동조합(전공노)과 전교조가 주축이 되어 진행해 온 ‘공무원·사학연금 개악 저지 및 올바른 공적연금 개혁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공무원사학연금공대위)와 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공노총)이 주축이었던 ‘공무원연금개악저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공무원연금대책위)의 두 축으로 나뉘어 있었다. 이 두 위원회가 4월1일 긴급 간담회를 열고 공무원연금 개악 대응방안을 함께 논의하게 된 것이다. 공노총과 ‘공무원노조통합준비위원회(통준위)’를 함께 하고 있는 민주공무원노동조합(민공노)의 박정윤 정책부장은 “통준위에는 이미 5월3일로 집중투쟁을 제안했다. 전공노와도 얘기가 되면 방향을 잡아나갈 것”이라고 말했고 전공노 나일하 정책실장은 “4월1일 회의에서 의견을 조율해봐야겠지만 민공노와의 공동투쟁이 필요하다는 대전제에는 동의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한편, 14개 공기업노조들로 구성된 ‘정부투자기관노동조합협의회’는 3월24일 회의를 열고 명칭을 ‘공공기관노동조합협의회’로 바꾸고 향후 진행될 공기업 구조조정에 공동 행보를 취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3월26일에는 “감사원의 최근 공공기관 감사가 구조조정과 민영화를 위한 목적이라면 공사노조들은 공동행보룰 취할 수밖에 없다”는 요지의 성명서를 냈다. 공공기관노동조합협의회는 전력노조, 도로공사노조, 주택공사노조, 토지공사노조, 농촌공사노조 등 한국노총 산하 10개 공기업과 철도공사노조, 조폐공사노조, 인천국제공사노조, 관광공사노조 등 민주노총 산하 4개 공기업으로 구성되어 있다. 현재 협회장은 문명훈 도로공사노조 위원장이 맡고 있다.

이밖에도 방향이 정확히 들어맞는 것은 아니지만, 양병민 금융노조 위원장이 3월27일 코스콤 문제 해결을 요구하며 청와대 앞에서 단식 투쟁중인 정용건 사무금융연맹 위원장을 지지방문한 데 이어, 다음 날에는 성명을 내 코스콤 비정규직의 정규직 고용을 촉구하고 연대투쟁 의지를 표명하기도 했다.

많지 않은 시간, 다양한 요구

공공부문 구조조정 계획에 맞서 노동계에 다양한 연대의 흐름들이 만들어지고 있지만 걸림돌들도 여전히 남아 있다. 민주노총 공투본은 산별연맹들의 다양한 요구와 수위를 조절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처럼 보인다. 이명박 정부의 ‘1차 타깃’인 공기업뿐만 아니라 공무원, 교사, 운수노동자, 언론노동자 등 다양한 성격의 연맹들이 공투본에 참여하고 있다는 점은 든든한 힘이 될 수도 있지만, 실질적이고 효과적인 연대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오히려 동력이 분산되어 버리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회공공성’ 안에 포함되는 영역이 매우 넓기 때문에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또한 5월까지 진보세력의 역량을 ‘사회공공성 강화’라는 의제로 모아내기에는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는 점도 부담이 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공투본의 시민사회단체 연대투쟁 노력은 시민사회단체의 ‘피로감’을 걷어내는 것이 급선무다. 시민사회단체들이 ‘공동투쟁본부’나 ‘국민연대’ 등의 상시 연대체 형식에 대해 느끼는 부담감이 작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역량을 집중할 수 있는 큰 규모의 시민사회단체를 연대체 안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 김성란 국장이 “공동사업을 만들면서 그 과정에서 구체적인 요구와 투쟁 수위, 형식 등을 정해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냉혹한 현실에서 온도차이 줄이기

한국노총 공대위의 경우에는 산별연맹들과 총연맹 사이에 미묘한 온도차이가 느껴진다. 3월6일 이영희 신임 노동부장관이 장석춘 한국노총 위원장을 만난 자리에서 “공공부문 구조조정은 역사의 흐름이며 이를 거스르면 생존할 수 없다”고 말한 것에 대해 공공연맹이 ‘퇴진’을 요구하는 성명을 내면서, “공공부문 문제 때문에 정책연대가 깨질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였다. 

물론 장석춘 위원장이 “정부가 일방적으로 공공부문 민영화 및 구조조정을 강행할 경우 강력히 투쟁해 나갈 것”이라고 취임사에서 밝히긴 했지만 최근까지 한국노총의 중심 화두는 ‘정책연대’였다. 공대위의 구성에도 총연맹보다는 공공연맹의 역할이 컸다. 배정근 공공연맹 위원장이 3월17일 나머지 9개 연맹 위원장들에게 연락해 연대체 구성에 동의를 얻고 대표자 모임을 3월 말쯤 가지기로 했었는데 그 모임이 27일에 이뤄졌던 것이다.

다만 정책연대의 흐름에 조금씩 상처가 남에 따라 역설적으로 ‘온도차’가 조금씩 줄어들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한국노총은 한나라당과 정부에 노동현안에 대한 정책협의 통로 개설을 요구했지만 아직까지 확답이 오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소식을 전한 한국노총 관계자의 “아직도 연락이 없다”는 말에는 정책협약에 대해 성실함을 보이지 않는 정부와 한나라당에 대한 불만이 묻어났다. 최임식 국장은 “테마섹 방식은 정부가 형식적 책임만 지주회사에게 맡기고 민영화하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한국노총의 경우 앞으로 투쟁 진행과정에서 정책연대와 현실의 냉혹함 사이에서 산별연맹들과의 온도차이를 극복하는 방안을 찾을 수 있느냐가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연대로 풀어나가야 할 엉킨 실타래

현재로서는 많은 연대 움직임들이 양 노총 간의 연대투쟁까지 나갈 수 있는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은 듯하다. 양쪽 모두에서 “‘사안별’ 공동투쟁·공동전선 형성, 산별이나 단위노조 차원에서의 연대투쟁은 가능하겠지만……”이라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이런 ‘유연함’이 오히려 활발한 연대 모색 움직임을 낳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아쉬움을 낳는 대목일 수밖에 없다. 

4·9총선 결과에 따라 속도가 달라질 수는 있겠지만 이명박 정부가 공공부문 구조조정을 밀어붙일 것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어 보인다. 그리고 그런 전망 아래 노동조합운동의 다양한 연대 움직임이 이뤄지고 있다. 단순하게 도식화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노조를 하나의 주체로도, 협상 파트너로도 인정하지 않으려는 이명박 정부의 태도가 낳은 역설적인 결과다. 이명박 정부의 ‘실용적 노사관’은 과연 먹힐 수 있을까? 이번 공공부문 투쟁에서, 노동조합운동의 연대 노력이 어떻게 진행되고 어떤 결과를 낳을지가 그 실마리를 제공할 것이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3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