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위기’ 타령 속에 산정된 최저임금 시급 4천 원

노동사회

‘경제위기’ 타령 속에 산정된 최저임금 시급 4천 원

편집국 0 3,626 2013.05.29 10:05

1988년 최저임금제도가 처음 도입된 후 20년째를 맞은 올해, 최저임금위원회는 지난 6월26일에 2009년 1월1일부터 적용될 최저임금을 시급 4,000원, 월급 83만 6천 원(월 209시간 기준)으로 결정했다. 이는 올해 최저임금 3,770원에 비하여 6.1% 인상된 것으로서, 2001년 12.6%, 2002년 8.3%, 2003년 10.3%, 2004년 13.1%, 2005년 9.2%, 2006년 12.3%, 2007년 8.3%의 인상률에 비하면 상당히 낮은 폭이다.

올해에는 고유가문제와 경기악화를 이유로 사용자측의 압박이 어느 해보다도 거셌다. 사용자측은 최저임금 심의 이전에 양 노총을 방문하고, 최초로 최저임금위원회 앞에서 사용자 집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또한 공익위원들에게 호소를 하고 압력을 넣는 등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 최저임금 동결을 강하게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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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저임금연대는 지난 5월29일 기자회견을 열고 사회양극화 해소를 위해 월 994,840원의 최저임금 보장을 요구했다.  ▶ 매일노동뉴스 정기훈 ]

이에 노동계는 양 노총과 24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최저임금연대 차원에서 고물가시대에 턱없이 부족한 가계생활비와 날로 심화되고 있는 소득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전체 노동자 임금평균의 절반(50%)수준인 시급 4,760원으로의 인상(인상률 26.3%)을 기자회견을 통해 제시한 바 있으며, 공익위원들에 대해 저임금 노동자의 생활보전과 소득 재분배 개선을 위해 최저임금 인상의 불가피성을 호소하고 압박했다.

경영 어려움을 최저임금이 책임져야 하는가

최저임금을 결정하기 위한 노사 간 주장의 타당성은 여러 가지 요소를 고려해도 노동계의 주장이 훨씬 설득력과 논리력에서 앞선다고 볼 수 있다. 최저임금제도의 목적 자체가 저임금 노동자의 최저생활 보장과 소득재분배에 있는데, 이를 위해서는 현재 통계청이 발표하는 33세 이하 미혼 단신근로자 월 평균 생계비 1,375,298원에, 금년도 한국은행 발표 전망치인 경제성장률(4.7%)과 물가상승률(3.3%)을 감안한 1,485,320원을 확보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럼에도 노동계는 생계비 확보가 요원한 현실을 감안하여 우선 유럽연합(EU)의 권고사항인 ‘전체 평균임금의 최소 60% 수준의 목표와 50% 우선 달성’이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기준인 ‘상용직 풀타임 중위임금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훨씬 더 적은 최저임금 달성을 목표치로 제시했다. 그러나 사용자측은 최소한의 경제성장률이나 물가상승률을 반영하기는커녕, 경제가 어렵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동결을 제시하는 억지주장을 펼침으로써 법제정 취지조차 무시하는 비논리적 행태를 보였다.

중소업체의 어려운 현실은 최저임금에 기인한 것도 아니고, 더구나 최저임금을 수 년 동안 동결한다고 해서 해결될 사안이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이다. 오히려 중소업체의 어려움을 가중시킨 것은 원청과의 교섭관계나 원자재 및 유가 상승과 같은 외부적 요인인데, 이를 자체 업체의 노력이나 정부정책수단 등을 통해 해결해 나가려 하지 않고 최저임금 동결만을 되풀이 주장하는 행태를 보인 것이다.

또한 사용자측은 최저임금법 제4조에서 규정하고 있는 최저임금의 결정기준조차도 무시하는 ‘동결안’을 내는가 하면, 중소업체의 사용자위원들은 ‘20% 삭감안’까지 내놓는 무모한 주장을 제시하기도 했다. 3년 전부터 시행되고 있는 법 규정상의 최저임금 결정기준에 따른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요구안조차도 무시하는 무모함을 드러낸 것이다. 최저임금법은 최저임금 결정기준을 △근로자의 생계비, △유사 근로자의 임금, △노동생산성 및 소득분배율 등을 고려하여 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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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최저임금 심의는 시작부터 노동계에 불리한 양상으로 진행됐다. 노동계 출신 국회의원들이 6월17일 2009년 최저임금 인상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한국노총 ]

노측에 불리하게 전개될 수밖에 없었던 올해 심의

이번 2008년 최저임금 심의 과정인 5, 6월에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4.9%(5월 현재)로 6년 11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또한 앞으로 연 평균 5.5%까지 육박한다는 전망이 나와 가뜩이나 어려운 저임금 가계에 주름살만 늘어나게 되어 최저임금의 대폭적인 인상이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공익위원들조차도 스태그플레이션이 우려되는 경제상황을 근거로, 작년의 8.3%라는 낮은 인상률에 이어 올해에도 현실에 부합할 만한 최저임금 인상에 부담감을 드러내면서, 최저임금 협상 자체가 노동계에 매우 불리하게 전개되었다.

이러한 불리한 여건 속에서 노동계는 물가 인상에 더해 유사근로자 임금, 소득분배 개선분 등을 반영하여 전년도 수준만큼의 인상률을 확보한다는 전략을 세우고, 사용자측이 제시한 물가인상분보다도 낮은 1~2%대의 수정안에 강하게 반발해 나가는 동시에, 공익위원들을 설득하는 작업을 통해 노동계측에 불리한 분위기를 반전시키려 노력했다.

그러나 노동계 수정안 4,450원(18.0%), 사용자측 수정안 3,880원(2.9%)이 제시된 상황에서 공익위원들은 국가경제의 어려움을 고민하며 사용자측에 기운 의견을 제시할 것이란 분위기가 팽배했다. 그리고 사용자측은 한자리 수 초반대(4~5%)의 최종 인상률 결정을  기대하면서 교섭진행 과정에서 한발자국도 나가지 않으려 버텼고, 노동계는 사용자측의 불성실한 교섭태도를 이유로 정회 후 회의가 속개되자마자 곧바로 전원 퇴장하는 전술을 구사했다. 노동계가 퇴장한 가운데 공익위원들이 4.1~8.9%의 공익안을 제시하자 사용자측은 공익안 최저선인 4.1%를 수정안으로 단독 제시하기도 했다.

이튿날인 6월26일 7차 전원회의가 소집되었으며, 노동계가 일단 공익안 최고선인 8.9%를 수정안으로 제출하면서 공익위원들의 노사 양측 물밑 조율과 의견접근의 시도가 밤샘 이어졌다. 결국 다음날 이른 아침에 공익위원들이 최종 제시한 4,000원(6.1%)으로 최종 타결 짓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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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취지 무시하고 무리한 ‘양보’ 요구하는 사측

최저임금제가 시행된 지 20년째인 올해의 최저임금 심의는 특히 힘들었다. 그리고 그렇게 힘들게 교섭을 한 최저임금 인상결과가 고물가시대에 저임금 노동자의 최저생활을 보호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라는 것 역시 가슴 아픈 현실로 다가온다. 전세 값이 올라 살던 집을 내놓고 변두리 지역으로 내몰려야 하는 현실, 각종 식료품이 급등하여 맘 놓고 반찬 한 가지 마련하기 어려운 현실, 학원비가 올라 자녀 사교육비를 지출하기 무서운 현실 등이 최저임금제도의 목적과 취지를 무색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공익위원들이 경제상황 악화와 같은 요인을 크게 어필함에 따라 노동계의 요구 근거와 주장이 수용되지 못하면서 저임금 노동자의 최저임금 인상 수준을 높게 끌어올리지 못한 부분은 통탄할 일이 아닐 수 없다. 경제상황 악화가 최저임금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6.1%라는 최저임금 결정수준은 마음속으로 납득하기 어려웠다. 사용자측은 경영호전을 위한 근본적인 대처와 해결 노력은 뒷전인 채 최저임금 인상 자제 주장만을 되풀이했고, 이에 따라 심의과정은 내내 공허한 메아리만 듣게 되는 과정의 연속이었다.

그나마 최저임금제 시행 첫해인 1988년 ‘일급’ 3,700원(1그룹), 3,900원(2그룹)에서 시작했던 최저임금이 20년째가 된 2008년에는 ‘시급’ 3,996원(6.0%)과 4,000원(6.1%)이라는 4원 차이를 두고 노사공익 간에 밤샘협상으로 진행되었고, 그 결과 시급 4,000원대로 진입했다는 데에 하나의 의미를 둔다.

이번에 결정된 최저임금 시급 4,000원(월 836,000원)은 2009년도에 적용받게 되는데, 이는 2008년 기준 노동자 임금평균액 1,963,120원의 42.6%에 해당하는 금액으로 노동계가 최소한으로 요구하고 있는 평균임금의 절반 수준에 훨씬 못 미친다. 통계청에서 발표한 33세미만 미혼 단신노동자 생계비 1,375,298원에 비해서도 60.8%에 불과한 미미한 수준이다.

이러한 낮은 최저임금 수준에도 사용자측은 제도개선이라는 미명하에 상여금과 식대, 기숙사비 등 복리후생비도 최저임금 산정 시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최저임금이 인상되면 그 인상분을 기본급 인상에 반영하여야 함에도, 이를 회피하고 각종 수당과 상여금 명목으로 임금구조를 왜곡시키려 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용자측의 주장은 주객이 전도된 것이요, 허황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최저임금법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노사정의 과제

최저임금제도가 그 본래 목적과 취지에 맞도록 저임금노동자의 최저생활 보전과 전체 노동자의 소득분배 개선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많은 과제가 놓여있다고 할 수 있다. 첫째, 경기호전이나 경기후퇴가 최저임금 결정과정에 주요 변수로 작동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경기상황이 좋으면 최저임금을 대폭 인상하고 경기악화가 되면 낮게 인상된다는 것은 최저임금제도의 본래 취지에 반하는 것이다. 즉, 법으로 정해진 최저임금 결정기준에 따라 저임금 노동자의 생활안정과 소득재분배에 기여하는 방향에서 결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중소업체의 경쟁력이나 부가가치 향상은 최저임금이 아니라 경제정책이나 제도적 측면에서 접근하고 해결해 나가야 한다. 이런 부분에서 정부의 적극적인 노력과 지원이 요구되며, 노사가 함께 노력할 부분을 해나가야 하는 것이다. 즉, 최저임금 결정이 경기상황에 따라 영향을 받아서는 안 되며, 최저임금 동결이 중소업체 경영 어려움의 해결책은 아니라는 것이다.

둘째, 공익위원들의 공정하고 객관적인 자세가 요구된다. 최저임금 수준이 경기변동에 의하여 좌우되지 않고 강행법규로서 제정된 최저임금법 목적에 부합하게 결정되도록 하고, 법에 규정된 결정 기준에 의거하여 제대로 심의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소업체의 산업정책이나 정책제도의 개선은 경제 관료나 관련 전문학자, 노사단체가 별도의 영역에서 개선해 나가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셋째, 노동계도 최저임금제도의 올바른 정착을 위하여 국민과의 소통을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본다. 최저임금제도가 무엇이며 어느 정도의 수준으로 가야 하는지에 대해서 광범위하게 국민 인식의 저변을 확대시켜야 한다. 또한 저임금 노동자뿐 아니라 전체 노동자의 기본적 생활 영위를 위한 주거, 의료, 교육의 사회공공성 확대를 도모해 나가야 할 것이다. ‘저임금의 덫’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최저임금을 포함하여 모든 정책적 수단을 강구하기 위한 의무는 우리 사회 노사정공익 모두에 해당된다 할 것이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3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