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의 땅에서 연대의 싹을 틔우다!

노동사회

미지의 땅에서 연대의 싹을 틔우다!

편집국 0 3,724 2013.05.29 10:03

비정규직 대량해고에 맞서 싸우고 있는 이랜드-뉴코아 투쟁이 어언 1년을 바라보고 있다. 필자는 이랜드 자본의 홍콩 증시상장을 막기 위하여 원정투쟁을 떠났던 이들 중의 한 사람으로, 이 글은 기간 중에 겪었던 일들과 느꼈던 일들을 일기형식을 빌어서 쓴 것이다. 보다 세세한 일정은 투쟁단의 일원으로 사비를 털어 우리 투쟁을 취재하기 위해 함께 하였던 오도엽 시인의 홍콩원정투쟁기를 참조해 주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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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랜드·뉴코아노조 홍콩원정투쟁단의 칼 퍼포먼스 모습.  ▶ 참세상 ] 

4월30일 -홍콩으로 떠나다-

기자회견을 하고 출국하는 날이다. 사실 간밤에 거의 한숨도 자지 못했다. 이미 홍콩 원정투쟁단의 일원으로 선정되어 있는 상황에서, 과연 우리가 외국까지 가야 하는 건지, 차라리 그 비용으로 조합원들의 생계비에 한 푼이라도 보태야 하는 건 아닌지, 외자유입까지 막아 정말 회사가 망하기를 바라느냐는 비난이 나오면 그건 또 어떻게 반박할 건지, 참으로 머릿속이 복잡했다.

많이 피곤했지만 선발대로 같이 가는 동지들을 만나고 기자회견이 시작되면서 눈에 핏발이 서는 느낌이다. 투쟁단 리더인 한지원 사회진보연대 동지, 총무인 박동식 서비스연맹 대외협력국장, 우리 투쟁을 취재하기 위해 동행한 오도엽 작가와 사실상 투쟁단의 입 역할을 맡은 필자, 이 네 사람이 선발대다. 적지 않은 기간 동안 동고동락할 이들의 모습을 보며, 아직 우리 투쟁에 함께 하는 이들이 많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인천발 홍콩행 캐세이 퍼시픽 항공에 몸을 싣고 잠시 눈을 붙였다 일어나니 홍콩이다. 3시간 반 만에 도착했다. 공항버스로 1시간을 달려 구룡반도를 중심으로 이동, AMRC(Asian Monitor Resource Centre)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앞으로 우리의 가이드 역할을 할 한국인 NGO 활동가 도리스 리를 만났다. 노동절 연휴는 중국 최대의 연휴기간인데다 5월2일에는 북경올림픽 성화가 홍콩을 지나간다. 당연히 숙소잡기도 쉽지 않았을 터, 현지 숙소 예약과 홍콩노총과의 만남을 주선하고 향후 우리 투쟁에 항상 함께 해줄 고마운 분이다. 함께 내일 일정을 논의하고 숙소에 들었으나 다들 바쁘다. 필자는 내일 노동절 집회에서 말할 연설문을 작성하였다. 오랜만에 영작을 하려니 쉽지 않다.

내일은 홍콩에서 맞는 노동절이다. 감회가 남다르다.

5월1일 -홍콩 노동절 집회에 참가하다-

오전에 우리 투쟁물품을 홍콩노총 사무실에 맡기고 홍콩노총의 조직활동가인 일레인(Ilaine Hui, 중국식 이름은 許少英)과 함께 이랜드 홍콩사무실을 찾아보았다. 헌데 인터넷 홈페이지에 나온 건물 주소를 찾아가 보았더니 웬걸, 이랜드 간판을 단 사무실이 없다. 경비아저씨한테 꼬치꼬치 캐물었으나 이랜드란 이름은 처음 들어본단다. 페이퍼 컴퍼니(물리적 실체 없이 서류형태로만 존재하는 회사)든가 이사를 갔든가 둘 중 하나인가 보다. 좀 허탈하다. 우리가 온대서 사무실을 옮겼을 가능성은 희박한 것 같다. 문득 어제 비행기 안에서 보았던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의 이랜드 상장관련 기사가 떠올랐다. 이랜드 현지법인의 오기학 대표이사의 인터뷰였는데 현지인터뷰가 아닌 런던에서의 전화인터뷰였다. 이 사람들, 상장이 낼 모렌데 오지도 않았겠구나 싶었다. 

오후 2시, 홍콩노총에서 주최하는 노동절 집회에 참가하였다. 특별히 필자가 먼저 연설할 수 있었다. 어젯밤 작성한 영문원고를 보고 읽었다. 평소에 영어공부 좀 더 했어야 했는데…….

홍콩노총의 조합원은 3~4만 정도, 홍콩엔 제조업 기반이 거의 없는 관계로 3차 산업 종사자가 많아 대규모 단위노조는 찾기 어렵다고 한다. 그리고 당일 집회 최대의 조직은 이주노동자들이었다. 필리핀, 버마, 인도네시아, 네팔 등 주변 개발도상국에서 건너온 이주노동자들은 대부분 여성으로, 서비스업종이나 가정부가 대부분이다. 주최인 홍콩노총의 주된 슬로건은 최저임금제 시행과 근로시간 준수이다. 우리나라나 별 차이가 없다. 오히려 국제무역과 금융도시인 홍콩은 친자본적 분위기가 강해 이런 목소리 내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우리의 목소리를 효과적으로 내기 위한 또 다른 고민이 필요할 듯하다

집회가 끝나고 홍콩 특별행정구정청까지 행진이 있었다. 우리나라 대학로 이화동에서 광화문 네거리까지의 거리에 비해 근 두 배 이상의, 결코 만만치 않은 행진거리였다. 우리 투쟁의 내용을 알리는 중문/영문 현수막을 들고 대오 맨 뒤에서 꼬박 2시간을 걸었다. 덥고 습한 날씨 때문에 많이 피곤했지만 우리를 유심히 쳐다보는 사람들이 적지 않음을 느낄 수 있었다.

홍콩정청은 우리로 따지면 서울시청 같은 곳이다. 마무리집회를 정청 앞마당에서 했다. 휴일이라 문은 닫혀 있었고, 행진 동안 경찰과의 별다른 충돌도 없었다. 우리나라식의 집회를 여기선 상상하기 어렵다. 30인 이하의 집회는 신고도 필요 없다고 한다. 우리 집회를 막기 위해 작년 연말부터 반년이 넘도록 서초경찰서 앞에 24시간 알바를 대기시켜 매일 같이 집회신고를 하고 있는 뉴코아 강남점이 떠오른다. 

마무리집회에서 홍콩 노동자들과 함께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불렀다. 광동어로 부르는 노래가 색다르다. 우리의 이 노래는 2005년 반(反) WTO투쟁과 함께 홍콩에 널리 알려졌다고 한다. 

이제 내일부터는 본격적인 우리 투쟁에 들어간다.

5월2일 -뜻하지 않은 성과를 얻은 첫 기자회견-

오전에 홍콩노총 사무실을 방문하여 그쪽 활동가들과 상견례를 나누었다. 홍콩은 노동조합을 공회(工會)라 한다. 우리로 따지면 사무총장(chief executive)에 해당하는 엘리자베스 탕(鄧燕娥) 총간사와 어제 집회에서 보았던 활동가들과 인사하였다(엘리자베스는 나중에 있었던 필자의 영어인터뷰 때 광동어 통역을 맡아 필자의 짧은 영어실력을 가려준 분이다). 노총 사무실은 한 마디로 탈권위주의 그 자체였다(이런 부분은 우리도 많이 배워야 하지 않을까 한다). 한편 대외적 여건은 좋지 못하다.

홍콩에는 두 개의 노총이 있는데 여기는 HKCTU(Hong Kong Confederation of Trade Unions)이고, HKFTU(Hong Kong Federation of Trade Unions)라는 조직이 따로 있다고 한다. HKFTU는 우리로 따지면 옛날의 한국노총 같은 곳이어서, 중국정부에 충성을 다짐하고 반정부적 목소리를 전혀 내지 않는 조직이라 한다. 조합원 수도 HKCTU에 비해 엄청나게 많고 정부보조금도 넉넉히 받는다. 반면 HKCTU는 본질적 노동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서 친정부적이거나 하지 않고 재정지원도 받지 않는다. 때문에 형편이 빠듯하다. 하지만 그들은 당당히 그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2005년 세계의 활동가들이 모였던 반WTO투쟁 때도 우리 노동자들과 함께 한 동지들이다. 3년 전의 신문 스크랩이 사무실 한 쪽에 아직도 크게 걸려 있다.

오늘이 성화가 홍콩시내를 통과하는 날이므로 시내 경비가 삼엄하니 옥외일정보다는 언론과의 인터뷰를 주선하겠다는 홍콩노총 간부들의 말에 따라 오후에 입국 기자회견을 가졌다.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 『동방일보』, 『애플데일리』, 『홍콩 이코노믹 타임즈』 등 4개 신문사 기자들이 홍콩노총 사무실에 모였다. 오전에 취재요청을 하니 오후에 재깍 모이는 것도 신기하거니와, 모인 기자들이 모두 유력 일간지 기자들이다. 질문은 아무래도 필자에게 집중될 수밖에 없었고, 단어가 딸리면 한자를 써 가며 인터뷰에 응했다. 질문의 요지는 크게 세 가지 정도였다. 첫째로 파업의 원인과 경과, 둘째로 원정투쟁 전술과 상장저지 여부, 그리고 왜 너희 나라 기업의 외자유치를 반대하는가 등이었다. 

기자들 모두가 경제부 소속이라 보는 관점이 우리나라 경제신문 기자들과 유사할 수 있다. 결국 노사문제의 해결이 외자유치보다 선결되어야 한다는 취지와 함께 소비자를 기만하고 노동자를 탄압하는 경영행태가 변해야만 투자자들의 투자를 받을 수 있다는 말로 인터뷰를 마쳤다. 의외로 기자들의 반응은 호의적인 편이었다. 아직 이랜드 매장이 홍콩에는 진출하지 않은 상황이고, 따라서 보다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편이란 얘기도 나왔다. 뜻밖의 성과였다.

5월3일 -후발대의 입국과 NGO 활동가들의 지지-

오전에 노총 사무실에서 내일부터의 투쟁물품을 준비하고 일정을 조율했다. 오후엔 향후 투쟁장소에 대한 사전답사를 진행하였고 한편으론 후발대가 입국했다. 한영희 뉴코아 대의원, 이남신 이랜드 수석부위원장, 김애수 대의원, 서강봉 민주노총 서울본부 부본부장, 권미정 전 경기본부 부본부장, 이선아 민주노동당 중랑구위원회 부위원장, 이성욱 기독교대책위 목사님까지 모두 7명. 

저녁 시간에는 후발대와 함께 국제노조네트워크(UNI) 사무실에서 노총 활동가들 그리고 홍콩에 본부를 둔 다양한 NGO 활동가들과 만남의 시간을 가졌다. 홍콩은 아시아를 주 무대로 활동하는 NGO가 정말 많다. 특히 다국적기업의 활동을 모니터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활동이 두드러진다고 한다. 비록 대부분의 후원자들은 아직까지 유럽 쪽이지만 활동은 독립적이다. 중국으로 반환된 이후 수는 다소 줄었으나 아직도 많은 NGO활동가들이 활약하고 있다. 이랜드는 아직 홍콩까진 확장하지 않고 있으나 매장은 저 멀리 신강 위구르 자치구까지 진출해 있는 상태다. 우리 투쟁 관련 동영상을 보며 그들도 우리와 함께 이곳에서의 투쟁에 힘을 보태겠다고 한다.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오늘 신문에는 이랜드의 공모 첫날 시장의 싸늘한 반응에 대한 기사가 실렸다.

5월 4일 -두 번째 기자회견과 선전전-

오늘은 일요일이다. 홍콩섬 국제금융센터(International Finance Centre, IFC) 앞, 빅토리아 하버의 페리선 선착장 앞에서 기자회견과 행진, 선전전이 진행되었다. 20여 명의 기자들이 모였다. 오늘도 인터뷰는 필자에게 집중된다. “당신네 회사의 파산을 바라는가?” 가장 아프면서도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우리는 회사의 파산을 윈치 않는다. 하지만 노사문제의 해결이 증시상장보다 먼저다.”

“회사의 재정문제를 외국증시 상장으로 모면해보려는 것은 일시적 방편에 불과하다.”

“무리한 확장경영과 그에 따른 부작용에 대한 경영진의 책임은 묻지 않으면서 힘없는 노동자들을 희생양으로 삼으려는 데 반대한다.”

우리말로 써 놓으면 별로 어렵지 않으나 영어로 전달하는 건 참 어렵다. 미묘한 뉘앙스의 차이가 분명 있을 터인데 제대로 전달했는지 걱정이 앞선다. 엘리자베스 총간사가 광동어로 열심히 보충설명을 한다. 인터뷰가 끝나자 맥이 탁 풀린다. 주저앉아 연신 담배만 피워댔다.
선전전에 대한 반응 역시 나쁘지 않다. 선전물을 안 받으려 하는 이들도 있었으나 많은 이들이 먼저 선전물을 달라고 한다. 이랜드는 곧 홍콩과 마카오까지 매장을 확장할 것이고, 의류가 주력인 특성상 일반 시민들도 곧 이랜드를 알게 될 것이다. 선전전을 펼치면서도 누워 침 뱉는 격이 되는 건 아닌지 마음 한구석이 찜찜하다.

스타페리 선착장 앞에서의 집회는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오늘 AMRC의 활동가인 한국인 장대업 씨를 만났다. 그는 2005년 반WTO투쟁 때 홍콩경찰에 연행되었던 우리 노동자들의 석방에 보증을 서 주기도 한 인물이다. 이미 홍콩에서 활동한 지 7년이 된 고참 NGO활동가이다. 한국을 넘어 아시아를 무대로 활동하는 그에게 경의를 표한다.

5월 5일 -상장 주간사와 담당 공무원을 만나다-

오늘은 홍콩상장 주간사 회사인 스위스연방은행(UBS)과 골드만삭스, 시티뱅크를 순회하며 집회와 삼보일배, 항의서신 전달을 진행하였다. 여성동지들은 준비한 큰 칼을 목에 찼다. 뜻밖에 UBS와 골드만삭스는 담당자가 나와 서한을 받았으나 시티뱅크 측은 서한 수령을 거부했다. 투쟁단은 인원도 많지 않거니와 평화적인 투쟁을 기조로 삼고 있던 터라 항의서한을 시티뱅크 현관 앞에서 찢는 것으로 항의의 뜻을 전달했다.

한편 IFC타워에 위치한 홍콩증권거래소에도 서한을 전달했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금융감독원쯤 되는 SFC(Securities & Financial Committee)에서는 우리가 건물 앞에서 항의집회를 한다고 하니 Vice Manager(우리나라로 치면 차장급)가 우리 전원을 사무실로 들어오게 하여 우리 주장을 청취하였다. 당장 해 줄 수 있는 것은 없으나 우리의 의견을 듣겠다고 했다. 홍콩이나 우리나라나 공무원들의 태도는 큰 차이는 없으나, 적어도 이쪽에선 나름대로 진정성이 느껴진다. 홍콩이 예전의 국제금융 중심으로서의 위상은 많이 떨어졌다고는 하나, 금융당국을 맡고 있는 관료들은 적어도 우리 공무원들보다는 나아 보이는 건 필자의 자격지심 때문일까?

어제 회의에서 내일 하루 단식 노숙 농성을 하기로 결정한 바 있었다. 그 동안 같이 투쟁했던 많은 활동가 동지들과 홍콩에서의 마지막 저녁식사를 같이 했다. 기간 동안 필자는 음식에 별 문제가 없었지만 나이 드신 동지들은 불편한 점이 없지 않았던 듯싶다. 자리는 UNI 사무실로 옮겨 뒤풀이가 이어지고, 투쟁의 승리를 위해 건배하며 마무리되었다.

5월 6일 -단식투쟁으로 마무리한 마지막 날-

홍콩 상공회의소에 등재된 주소로 이랜드 차이나 홀딩스와 이랜드 상하이의 홍콩사무실을 찾았다. 헌데 두 곳 모두 텅 비어 있다. 또 페이퍼 컴퍼니인가? 이랜드 직원들은 도대체 어디로 숨었단 말인가!

많이 열이 올랐다. 투자를 위한 페이퍼 컴퍼니는 흔히 볼 수 있는 것이긴 하나 막상 실체를 보니 허탈하고 화만 난다.

IFC타워로 옮겨 하루 단식 노숙농성에 들어갔다. 영어가 되는 동지들과 홍콩노총 동지들이 번갈아가며 마이크를 잡았고 칼과 쇠사슬 퍼포먼스를 맡은 동지들은 자리를 지키고 다른 동지들은 선전전을 진행하였다. 지나가던 한국인 관광객들과도 얘기를 나누었고, 한 서양인은 이랜드를 안다면서 꼭 승리하라는 격려를 보내주기도 했다.

그 동안 덥고 습했던 날씨가 오늘따라 바람이 세게 불고 쌀쌀하다. 밤이 되자 그동안의 피로로 일찍들 눈을 감는다. 홍콩 동지들은 하루짜리 단식 노숙, 짧은 거리의 삼보일배에도 “그 정도면 충분하다. 얼마나 더 해야 되는가”라고 묻는다. 이 정도의 투쟁에 국내에서의 반응은 대수롭지 않겠지만 그들은 오래 하는 것보다 진정성을 더 중시하는 느낌이다.

인도, 인도네시아, 호주 등에서 홍콩으로 모인 많은 활동가들과 얘길 나누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주류가 가는 길을 따라가는 건 어렵지 않다. 하지만 잘못된 것을 지적하고 그 해결방법과 대안을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이들은 그 길을 가고 있다.

피곤했지만 마지막 밤이라 잠이 잘 들지 않는다.

5월 7일 -같은 꿈을 가진 사람들은 언젠가는 만난다-

새벽에 호텔에 가서 씻고 침을 챙겨 나왔다. 하루치 숙박비를 날렸지만 전체 예산은 꽤 남았다고 한다. 홍콩은 식비가 싸다. 하루 세 끼를 사먹는 사람도 많다. 중국인은 ‘의식주’가 아니라 ‘식의주’라 했던가. 하여간 어디든 식당 천지다. 우리도 예산에서 식비를 많이 남겼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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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콩에서의 마지막 출국 기자회견에도 기자들이 많이 몰렸다.  ▶ 참세상 ]

11시, 출국 기자회견이다. 기자들은 우리 가는 데 항상 따라다녔다. 출국 기자회견에도 십여 명의 기자가 왔다. 

마지막 질문은 우리의 투쟁이 상장을 철회할 수 있을 것인가였다. 그리고 그에 대한 답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제한되어 있다. 하지만 우린 막을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였다. “How can you know about that(어떻게 그렇게 확신하는가)?” 답은 하지 않고 슬쩍 웃으며 마무리했다.

그동안 같이 고생했던 홍콩의 동지들과도 작별이다. 홍콩노총의 활동가 왕유로이(Wong Yu Loy, 王宇來)는 그가 입고 있던 홍콩 트럭기사노조의 점퍼를 벗어 필자에게 건네주었다.

홍콩노총 쳉친파(Cheng Chin Fat, 鄭淸發) 주석, 張麗霞 부주석, 엘리자베스 탕 총간사, 일레인, 왕유로이, 譚駿賢, 蘇德成 등 홍콩노총 동지들과 UNI의 Michael Siu, 그리고 Doris, 장대업, Diana, Sanjiz 등  NGO활동가들에게 다시 한 번 감사한다. 말로만 하던 국제연대, 이참에 정말 제대로 배워 간다. 활동하는 곳은 달라도 같은 꿈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언제고 만나게 되어 있다. 이번 원정투쟁의 승리여부도 중요하겠지만 필자는 그들과의 만남에서 작은 희망을 보았다.

이메일 주소들을 교환하고 다시 만날 것을 다짐하며 공항으로 간다.
그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정말 힘든 일정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몇 시간 후 다시 인천공항, 내일부터 일상으로 되돌아간다.
승리로 마무리 된 홍콩원정투쟁
결국 이랜드는 홍콩에서의 공모에 목표액의 1%만을 모으는 데 그쳤다.
그리고 얼마 후 그들은 2년 전 인수했던 한국까르푸를 홈플러스에 되판다.
유통업을 통하여 재벌권에 들려던 박성수 회장의 목표는 이랜드 뉴코아 노동자들에 의해 그렇게 좌절됐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 다시 새로운 싸움을 준비하고 있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3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