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 노동 규제 완화에 대한 대응방향

노동사회

이명박 정부 노동 규제 완화에 대한 대응방향

편집국 0 3,368 2013.05.29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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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지난 5월14일 참여연대 노동사회위원회 주최로 개최된 <노동부문 '규제완화', 경제살리기 해법인가?> 토론회에서 필자가 발표한 글을 수정 보완한 것입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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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문제 제기

새 정부는 출범과 함께 ‘국가경쟁력 제고’와 ‘경제 살리기’를 국정운영의 기본방향으로 정하고, 이를 위해 전면적인 ‘규제개혁’을 표방했다. 이에 노동부는 “정부의 새로운 규제개혁 방향에 부응하고 노동규제개혁의 체감도 및 순응도를 제고”하기 위하여 노동규제개혁 추진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보고하고(2008년 3월13일), 세부적인 노동규제개혁 세부추진계획을 발표했다(5월19일). 노동부는 수요자 관점에서 노동관련 규제를 과감하게 개선하기 위하여, 모든 규제를 전면 검토하고 규제개혁을 체계적으로 추진하고, 이를 위해 노동규제개혁 태스크포스(T/F)를 구성, 체계적으로 과제 발굴 및 개선을 추진하겠다는 계획을 밝히고 있다. 경제단체 또한 노동 분야를 포함하여 사회경제 전반에 걸친 규제개혁 요구안을 정부에 건의했고, 지식경제부는 이를 종합하여 그 중 ?노동시장 선진화방안?을 노동부에 통보하였다고 한다.

사실 정부는 이미 노동의 유연화 및 경제 활성화를 위하여 지난 20년간 노동 분야에 대한 지속적인 규제완화 또는 규제개혁을 추진해 왔다. 그러나 그 동안의 노동 분야 규제완화가 경제 활성화와 양질의 일자리 창출에 어느 정도 성과가 있었는지는 의문이며, 오히려 실업자 및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빈부격차, 고용불안 등이 더욱 심화한 것은 아닌가라는 비판이 제기돼 왔다. 따라서 노동 분야 규제완화가 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에 기여할 것인지 아니면 오히려 고용보호와 안전보건에 위협이 될 것인지, 노동 분야의 규제 및 규제완화에서 고려하여야 할 사항은 무엇인지, 노동 분야에서 규제를 강화하여야 할 영역은 없는지 등에 대한 실질적인 검토가 필요할 것이다. 

또한 국가경쟁력 제고와 ‘경제 살리기’를 위한 규제완화에 대응하여, 국제노동(인권)기준과 헌법규정 준수 나아가 사회안전망 확충 등, ‘사람 살리기’ 정책은 어떻게 추진되고 있는가에 대해서도 검토가 필요할 것이다.

2. 규제의 개념과 근거

규제는 다양한 정책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행해지고 있는데, 이 목적은 주로 사회적 관점에서의 규제(사회적 규제)와 경제적 관점에서의 규제(경제적 규제)로 대별된다. ‘경제적 규제’란 자유시장경제를 전제로 하여 그 시장원리인 자유경쟁을 방해하는 규제로서, 예를 들면 설비규제, 신규진입제한, 수급제한, 생산량제한, 가격규제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들의 규제는 시장원리를 방해하는 것이므로 원칙적으로 행해서는 안 되고 예외적으로 허용되어야 한다. 

한편으로 ‘사회적 규제’란 시장에 의해서 그 시정을 기대할 수 없는 외부효과를 가진 사업자의 경제활동에 의한 폐해를 시정하기 위하여, 상품?서비스의 질이나 그 제공에 따른 각종 활동에 일정한 기준을 설정한다든지 제한을 가하는 규제로서, 예를 들면 생명?신체의 안전, 공안풍속의 유지, 공중위생, 위험?재해 방지, 환경보전 등을 목적으로 행하는 규제를 말한다. 즉 국민의 안전이나 건강 등 사회적인 기본조건을 시장의 자율에 완전히 맡길 경우 그에 따라 발생하는 여러 가지 사회적 폐해를 시정할 수 없기 때문에, 이러한 기본조건을 확보할 목적으로 하는 규제이다. 따라서 경제적 규제가 완화되는 영역에서 사회적 규제는 오히려 강화되어야 하는 경우가 많다. 

한편, 경제활동(기업활동)에 대한 규제(특히 사회적 규제)의 헌법적 근거는 ‘기본권 보장’과 ‘경제질서’의 규정에서 찾을 수 있다. 먼저, 우리 헌법은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제10조 제2문)고 규정하고, 교육권, 근로권, 노동기본권 및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 등 사회적 기본권(생존권적 기본권)을 적극적으로 실현할 수 있도록 법제도를 설정하여야 할 의무를 국가에게 부과하고 있다. 즉 국가는 국민의 생존권적 기본권을 실현하기 위하여 경제활동(기업활동)에 일정한 규제를 가할 수 있다. 

나아가 헌법은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제119조)고 하고 있다. 기업의 경제상 자유를 존중하면서도 경제에 관한 규제를 할 수 있는 근거규정을 두고 있는 것이다. 즉 경제활동에 대한 규제가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발전과 시장경쟁원리의 관철”을 위하여 필요하다는 것이다.

3. 노동 분야의 법적 규제 및 규제완화

노동법은 고용보호, 노동시장, 노사관계, 안전보건 등에 관하여 법령으로 영업의 자유 또는 계약의 자유를 일정하게 제한하거나 기업에게 일정한 의무를 부과하는 법제이다. 따라서 기업의 입장에서는 노동법 자체가 기업활동의 자유를 제한하는 ‘규제’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노동법은 고용관계에서 근로자의 비대칭성(종속성)을 보완하기 위하여 시민법 원리를 수정하여 성립된 법 영역이다. 즉 고용관계에서 기업의 영업 또는 계약의 자유에 대하여 일정한 규제를 가하는 것이 노동법의 존재의의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노동법의 본질은 ‘규제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노동법의 헌법적 근거는 근로권과 근로3권을 비롯한 헌법 제10조 이하의 기본권(인권) 보장 규정에서 찾을 수 있다.

노동 분야의 규제에는 다음과 같은 영역이 있다. 먼저, 자본주의 시장경제하에서 비대칭관계에 있는 고용관계에서 근로자 보호를 위한 규제이다. 주로 근로기준법을 비롯한 고용보호와 노동시장에서의 규제로서, 필연적으로 기업(자본)활동의 자유 제약을 전제로 한다. 여기에는 근로조건의 최저기준 설정, 해고제한, 임금?근로시간?휴식 등에 관한 규제, 취업규칙, 비정규직 보호, 차별금지 등이 포함된다. 다음으로, 산업안전보건법에 의해 규율되고 있는 근로과정에서의 근로자의 생명, 안전과 보건에 관한 규제이다. 마지막으로, 기업활동에 대한 규제라고 할 수 없지만 현실에서 상당하게 존재하는, 근로자의 노동기본권에 대한 규제들이다. 한편 노동기본권은 원래 보편적인 인권으로서 최대한 자유롭게 보장되어야 함에도 노조법 및 특별법에는 그 행사를 제약하는 규정들이 다수 존재한다. 예를 들어 노조가입 범위의 제한, 노동조합의 설립신고 및 운영에 대한 행정관청의 감독, 쟁의행위 제한 법규 등이 이에 해당한다.

한편, 경제 활성화를 위한 ‘노동법의 유연화?규제 완화론’은 경제 분야에서와 마찬가지로, 이른바 시카고학파의 신자유주의, 신고전파 경제학 등을 이데올로기적 기초로 하고 있다. 그들은 현행 노동법의 규제가 너무 지나쳐서 근로조건 결정시스템이 경직화돼 있다는 인식하에서 유연화를 주장한다. 또한 노동법의 목적에 ‘근로자 보호’ 이외에 △사용자의 보호, △사회평화의 유지, △경제의 안정적 발전 등도 추가함으로써 근로자 보호의 요소를 상대화하고자 한다. 이러한 견해들은 공통적으로 노동법 분야에서도 시장원리 자체가 중요하므로 시장원리를 지나치게 규제하여 왜곡하는 요소(법률 및 산업별 단체협약)의 기능은 최소화해야 한다는 신자유주의의 사상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4. 노동 분야 규제완화(개혁)의 올바른 방향

1) 규제완화(개혁) 목표의 정당성


규제개혁의 성패는 규제완화 목표의 정당성과 국민적 동의와 지지 확보에 달려 있다. 과거뿐만 아니라 현재에도 정부는 규제개혁의 일차적 목표를 ‘경제 활성화’ 또는 ‘기업활동 애로사항 해소’에 두어 왔고 그것이 규제완화의 동인이었다. 그러나 기업활동의 애로 해소에 초점을 맞춘 규제완화 또는 규제개혁은 본질적인 의미에서의 규제개혁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경쟁 제한적 규제의 개혁을 위해 시작된 본래적 의미에서의 규제완화정책이, 경제침체와 더불어 경제 활성화를 위한 규제완화로 변질되거나 경제불황 타개책으로 모색됨으로써 그 성과가 미미했던 것이다. 

경제 활성화를 위하여 추진되는 규제완화정책은 시장경쟁 촉진을 위한 경쟁 제한적 규제의 완화가 아니라, 불가피하게 환경규제, 산업안전규제, 소비자안전규제 등 사회적 규제와, 민원구비서류 및 보고절차의 간소화 등을 포함한 행정 절차적 규제완화의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다. 이는 불합리한 규제 속에서 극도로 제약되고 위축되어 있는 민간의 자율성과 창의성이 발휘될 수 있는 공간 확대라는, 규제완화가 원칙적으로 표방하는 목표와는 거리가 있는 것이다. 

한편, 광범위한 국민적 동의와 지지가 없이는 규제개혁이 지속되기 어렵고, 성공하기도 어렵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진행되고 있는 규제완화는 광범위하고 강력한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는 무엇보다도 규제개혁의 목표설정이 적절치 못했다는 점에 있다. 규제완화가 기업활동의 활성화를 위해서, 기업의 애로사항을 해소하기 위해서, 그리고 기업의 비용부담을 줄이고 근로생활에서 근로자 보호규정을 철폐하는 방향으로 추진될 때, 당연하게도 국민적 동의와 지지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또한 이러한 규제완화는 근로자들의 고용불안과 생활불안정을 촉발하여 얻고자 하는 효과를 제대로 거두기도 어려울 것이다.

2) 기존의 규제완화 정책의 효과에 대한 분석

노동 분야 규제완화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그 동안 시행된 규제완화의 효과에 대한 평가가 필요하다. 그 동안의 규제완화가 경제 활성화에 어느 정도 기여하였는가, 근로자의 고용안정과 인권보장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등에 대하여 실증적인 분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특히 1994년 안전보건규제 해제, 1997년 정리해고 도입 및 그 이후 근로기준법의 개정 등의 사회경제적 효과를 분석하여 이를 규제개혁 정책에 반영하여야 한다. 또한 이렇듯 규제개혁의 성과를 분석함에 있어서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규제개혁 지수뿐만 아니라, 국제노동기구(ILO) 등 국제인권기구의 인권기준과 노동정책 방향에 대한 평가기준도 동시에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최근 OECD 경제개혁 정책보고서에 대한 평가는 1994년부터 추진해온 ‘노동시장 유연화전략’(취업전략), 즉 노동시장개혁이 고용 증진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을 지적하고 있다. 오히려 스칸디나비아 국가와 같이 사회적 합의에 기반한 노동시장제도가 자유로운 노동시장제도보다 다양한 측면에서 더 큰 성과를 이룩하고 있다는 것이다. 

3) 노동 분야 규제 및 규제완화의 특수성 고려

(1) ‘규제법’으로서의 노동법과 규제완화 한계


노동법의 규제완화 문제를 다루기 위해서는 노동법의 기본성격을 다시 확인해야 한다. 규제완화를 강조하는 쪽에서는 시장주의와 시장원리를 기본명제로 하여 자유롭고 효율적인 경쟁을 확보하는 것이 사회의 기본원리라고 하며, 현행 노동법 체계에 대하여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한다. 그러나 근대 이후 법률의 세계에서 노동법이 생성된 이유는 ‘고삐 풀린 자본주의’(unlashed capitalism) 사회에서 발생한 노동문제를 ‘규제’하기 위한 것으로 설명된다. 이러한 노동법의 존재의의는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따라서 규제는 ‘악(惡)’이고 그 완화가 ‘선(善)’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규제의 체계인 노동법의 존재근거 자체를 부정하는 꼴이 된다. 따라서 노동정책상 규제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재구성할 필요는 있지만 규제 자체를 철폐해서는 안 된다. 이것이 노동법의 기본원리이며 이론적 인식의 출발점이다.

나아가 노동법은 헌법의 원리와 이념을 구체화하는 법이다. 헌법 제15조에 영업(기업)의 자유가 포함되어 있다고 해석하더라도, 그 내용은 기본권 제한의 일반원칙(헌법 제37조 제2항)에 의하여 제한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헌법 제23조는 재산권의 내용과 한계는 법률로 정하도록 하고, 재산권의 행사는 공공복리에 적합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영업의 자유 또는 재산권 보장의 제한 원리 중 하나가 ‘국민(근로자)의 사회적 기본권(생존권)의 실현’에 있음은 물론이다. 따라서 영업의 자유 또는 재산권 보장은 근로자의 생존권과의 관계에서 공공복리를 위하여 제한(규제)될 수 있는 권리이다. 아울러 균형 있는 국민경제 발전과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해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고 명시한 헌법 제119조 제2항 역시 노동법의 규제 근거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헌법과 노동법이 예정하고 있는 사회상은 극단적인 규제완화론자들이 주장하는 사회상을 수용할 수 없다. 헌법의 현대적 인권규정은 역사적으로 ‘고삐 풀린 자본주의’의 결과인 1920년대 말의 대공황시대를 교훈삼아 만들어졌으며, 그 본질을 바꿔야 할 이유는 여전히 제기되지 않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노동 분야 규제완화의 구체적인 모습은 각국의 노사관계의 전통, 근로조건의 수준, 법문화 등의 차이에 의해 상당한 편차를 보이고 있다할 것이다. 

한편, 경제의 세계화와 산업구조의 변화 등으로 노동법의 유연화와 규제완화의 필요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아직도 근로자와 사용자 사이에는 힘의 비대칭성이 존재한다. 따라서 근로관계 보호와 공정한 노사관계 질서를 확보하기 위한 노동법의 생성 및 존재의의가 유효함은 부인할 수 없다. 문제는 변화가 불가피하게 요구되는 상황에서 어느 정도의 유연화 및 규제완화가 노동법의 존재의의에 부합할 것인가에 있다. 

노동법의 규제는 대부분 ‘사회적 규제’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 규제는 ‘더 좋은 규제’(better regulation)로서 합리화의 대상은 되더라도 그 자체를 폐지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물론 기업의 입장에서는 노동법상의 규제가 기업활동에 부담이 되기 때문에 이를 완화하거나 폐지할 것을 요구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규제완화가 근로자의 인권(노동권, 생존권 및 건강권 등)을 침해하거나 부당하게 제약하는 결과를 가져올 때에는 이러한 규제완화정책은 그 정당성을 가지지 못한다. 결국 기업활동의 활성화를 위한 규제완화는 근로자의 인권(노동권, 생존권, 건강권 등)과의 충돌에 대하여 어떻게 대처하는가에 따라 그 정당성이 인정될 것이다.

(2) 노동 분야의 규제완화와 규제강화

노동법상 규제의 방법이나 수준이 기업활동에 심대한 지장을 초래할 정도로 불합리한 경우에는 합리화 대상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노동법의 규제완화의 대상과 수준을 논의할 때, 기업활동의 활성화를 위하여 완화해야 할 규제 외에도 오히려 강화해야 할 규제 역시 존재한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주지하다시피 노동법은 본질적으로 근로생활에서 근로자의 고용보호법제이며 인권보장규범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근로자의 인권보장, 고용보호 및 안전보건에 관한 규제는 오히려 강화되어야 할 규제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내용의 노동법상 규제까지 개혁내지 폐지의 대상이 된다면, 노동법의 규제완화는 노동법의 존재의의 자체를 부정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먼저, 사업장 내 근로활동 과정에서 기업권력에 의한 근로자의 인권침해에 대한 규제는 더욱 강화하여야 한다. 오늘날 많은 기업에서 근로자 감시가 행해지고, 근로자의 안전과 보건이 위협받고 있으며, 의견표명 또는 조합활동이 제약받고 있다. 따라서 사업장에서 사용자의 지배하에서 공정한 근로조건을 보장하기 위한 개별 근로자의 기본적 권리가 명확히 규정돼야 한다. 현행 근로기준법의 노동헌장 규정들은 반봉건적 노동관행을 부인하는 것에 그칠 정도로 빈약하다. 국제사회나 선진국에서 국제인권규약의 사회권 조항이나 새롭게 출현하는 근로자의 권리들을 종합적인 ‘근로자보호법’내지 ‘근로자 권리헌장법’으로 입법하고 있는 추세와는 대조적이다. 

따라서 노동 규제개혁은 △직장에서 개인의 존엄과 가치, △의견표명의 자유, △근로자 감시의 금지, △근로자의 신체적으로 침해받지 않을 권리 보호(노동환경의 보호), △근로학생 학습권 등 새로운 근로자의 권리, △기업 내 조합활동과 근로자대표 등에 관한 사항들등을 포함하고 명확히 규정해야 할 것이다.

(3) 규제(완화)정책의 형평성

노동 분야 규제개혁을 추진함에 있어서 규제 또는 규제완화(개혁)의 형평성을 유지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 노사 당사자 중 사용자들이 요구하는 ‘기업활동의 규제완화’만이 아니라 근로자와 노동조합이 요구하는 ‘노동기본권 보장에 대한 규제완화’(제한규정 개정)가 같이 병행되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지난 10여 년 동안의 논의를 살펴보면 고용보호법제와 노동시장에서의 규제완화가 진행되는 동안, 노동기본권 보장을 위한 집단적 노동관계법에서는 오히려 규제가 강화되었다. 노동기본권에 대한 과도한 제한으로 문제가 됐던 것들은 △공무원?교원?특수형태근로종사자 등의 단결권 제한, △노동쟁의의 개념 축소, △필수유지업무 도입, △쟁의 찬반투표 성립요건 엄격화, △대체근로 확대, △쟁의행위 제한 규정 등이었다. 

그런데 최근 정부와 경제단체의 규제완화 계획은 “노사관계 법치의 확립”을 위하여 △노조 전임자 급여 지급 금지규정, △복수노조 교섭창구 단일화 강제, △노조운영의 민주성?투명성 제고를 위한 파업찬반투표 요건 강화 등 노동기본권 보장에 대한 규제를 강화할 것을 제시하고 있다. 이는 규제개혁 정책의 형평성에 강하게 의문을 표하게 만드는 내용들이다.

그 동안 우리 정부는 ILO 등 국제사회로부터 노동기본권 보장과 관련하여 국제노동기준에 미달하는 법 규정을 시정하라는 권고를 수차례 받은 바 있다. 노동계에서도 노동기본권의 자유로운 보장을 주장하고, 노사관계정책의 형평성 문제를 계속 지적하여 왔다. 따라서 정부가 이번에 기업활동의 활성화를 위한 규제개혁을 추진하려 한다면, ILO 핵심협약을 비준하는 등 그 동안 과도하게 제약되었던 노동기본권 보장의 규제개혁 역시 추진해야 할 것이다.

(4) 규제완화 추진절차: 사회적 공론을 통한 규제개혁 추진

노동 분야 규제완화의 목표와 대상의 선정 및 추진과 관련하여, 노사 당사자와 시민사회가 공론의 장에서 심도 있게 논의하는 것이 중요하다. 노동법의 규제완화는 노동을 둘러싼 사회상황의 변화를 대전제로 하여 노동법의 기본원칙에 대한 일정한 수정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에서 진행되는 규제완화는 산업구조의 변화와 서비스 경제화 등 노동경제적인 상황의 변화와, 근로자보호, 근로조건의 노사 대등결정, 근로자의 단결권과 집단적 노사자치의 존중과 확대 등과 같은 종래의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노동법의 법이념?법원칙과의 신중한 조정절차를 거치지 않고 진행되고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 규제개혁이나 규제완화 등 추상적인 이념을 노동법의 구체적인 기본원칙보다 상위에 두면서 규제완화 정책을 바로 입법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는 정책 목적을 앞세워 종래의 노동법 원리를 수정하려는 것으로, 민주적인 입법절차라고 할 수 없다.

그 동안 활동에 대한 많은 비판과 한계가 존재하기는 하지만, 사회적 대화기구인 노사정위원회에서 노동 분야 규제완화를 진지하게 논의함으로써 규제개혁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민주적 절차의 하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노사정 및 시민사회가 참여하는 민주적인 절차에 따라 규제완화가 논의될 때만이, 규제완화로 인하여 불가피하게 초래될 사회적 취약계층에 대한 사회안전망도 확충될 수 있을 것이다.

선진국에서는 노동법의 유연화정책을 추진하는 경우에 단순한 ‘규제완화’가 아니라, 예를 들어 비정규직 고용과 임금제도를 집단적 노사관계의 통제에 맡기는 것을 전제로 하는 식으로, ‘규제재편’이 행해지고 있다. 우리의 경우에도 법적 규제의 폐지만을 규제개혁으로 볼 것이 아니라, 노동조합 또는 민주적으로 선출된 근로자대표를 통한 규제의 재편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4) 노사당사자의 인식전환과 책임성 제고

노동계와 시민사회는 경제 활성화를 위한 정부의 노동규제 개혁추진을 비판적으로 본다. 물론 규제개혁을 통하여 경제가 활성화되고, 양질의 일자리가 창출되어 실업이 해소되고,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고용안정이 이루어지며 근로조건이 향상된다면, 이를 거부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노동법의 고용보호 규정이 경직되어 있다고 평가되는 현재에도 부당해고, 임금체불, 안전보건법규 위반, 노조활동 침해 등 사용자의 노동법 위반행위가 빈발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진행되는 규제완화가 고용보호법제를 형해화하고 사용자들에 의한 법위반행위를 더욱 증가시킬 것이라는 예상은 단순히 노동계의 기우만은 아닐 것이다. 

따라서 노동 분야의 규제완화 이전에 사용자의 노동법에 대한 ‘준법의식의 제고’가 더욱 절실하다. 사용자의 법 준수에 대한 노동계의 신뢰가 형성되는 경우에만이 노동계의 협조 속에서 규제완화가 원활하게 추진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가 ‘법과 원칙의 준수’를 노동계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사용자에 대해서도 동등하게 적용하여야 한다.

한편, 우리나라 내부노동시장과 외부노동시장 사이의 양극화, 또는 노사관계의 안정과 관련하여 ‘노동조합의 책임’을 묻는 경우가 있다. 사회경제구조가 변화하고 있음에도 종래의 노사관계 또는 노동운동 방식을 고집함으로써 노동조합이 국민과 다수의 근로자들로부터 유리되어 있다는 비판이 그것이다. 그 비판에 대한 평가는 논외로 하더라도, 그 동안 사회경제구조와 노사관계 및 근로자의식의 변화에 대응하여, 노동조합 또는 노동운동이 노동시장의 양극화 해소 및 근로자대중의 연대를 위하여 얼마나 적극적으로 대처하였는가에 대해서는 자성이 필요할 것이다. 

특히 비조직 노동자와 사회적 취약계층에 대한 연대, 노동조합 활동의 책임성과 공공성 확보에 어느 정도 노력하였는지 돌아보는 것이 중요하다. 노동계는 내부노동자의 보호뿐만 아니라 외부노동자내지 주변노동자들의 고용문제에도 더욱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구체적으로 기업중심적인 노동조합의 조직형태·교섭구조를 기업초월적인 조직형태?교섭구조로 전환하고, 전체 노동자들에게 공통적인 의제 개발과 실천을 위하여 적극 노력하여야 할 것이다.

5. 맺는 말

이미 1997년의 전면개정에 의하여 우리 노동법에는 규제완화 및 유연화 추세가 어느 정도 반영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이명박 정부는 현재의 노동법이 노동시장과의 관계에서 시장상황의 변화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경영계의 요구에 따라 추가적이고 전면적인 노동 분야의 규제완화를 추진하고 있다. 

오늘날과 같은 고도 산업화·정보화 사회에 있어서는 국민경제의 역동성 제고와, 세계경제질서와 법 규범의 조화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한편으로 노동법이 시장경제체제의 경쟁력 강화와 긴장관계에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기업활동의 활성화 요청과 근로자 보호의 요청이 노동법 내에서 양립할 수 없다고 판단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노동법도 변화하는 실재적 관계를 반영하여 변화하여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노동법의 규제완화도 어느 정도 필요할 수 있다. 하지만 ‘근로자 보호’라는 노동법의 기본관념은 아직도 유효하다. 따라서 노동법의 규제완화가 노동법의 일차적 목적인 근로자 보호원칙을 부인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시장기능의 활성화에 의해 유연적인 일자리가 끊임없이 제공되지 않는 상황에서의 노동법 규제완화는 사회적 불평등을 조장할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선진국의 경험에 의하면 노동시장 유연성 제고를 통한 일자리 창출은 결국 근로자 간 소득 및 근로조건의 격차를 초래한다. 우리의 경우에도 노동법의 규제완화의 결과로서 양질의 일자리 창출보다는, 열악한 근로조건의 비정규직 근로자의 증가가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유연적 일자리의 끊임없는 제공조차 어려운 요즘 같은 상황에서는 노동법의 규제완화는 더욱 신중하게 행하여지지 않으면 안 된다. 

노동 분야의 규제완화 정책이 정부가 목적한 대로 경제 활성화와 경제 살리기에 기여하고 동시에 고용안정과 일자리 창출의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기존의 규제완화 정책효과에 대한 실증적인 분석을 통하여 노동법의 존재의의가 부정되지 않도록 대상과 수준을 결정해야 한다. 또한, 규제완화를 추진함에 있어서 노사정과 시민사회의 민주적 절차를 존중해야 한다. 그리고 경제 활성화를 위하여 기존의 노동법상 규제를 완화하는 것에만 정책의 초점을 맞추지 말고, 현대적인 개별근로자의 권리, 국제인권기준, 고용보호와 안전보건 등에 관하여 규제를 더욱 강화하는 것을 바탕으로, 노동기본권 등에 관한 규제를 완화하여야 한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3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