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의 미래 암울하게 만드는 인터넷 통제 강화

노동사회

민주주의의 미래 암울하게 만드는 인터넷 통제 강화

편집국 0 3,248 2013.05.29 10:12

2002년 미군장갑차에 의한 여중생 사망사건 때에 이어 다시금 서울 광화문이 연일 촛불로 뒤덮였다. 이를 두고 프랑스의 뉴스 전문방송 『프랑스24』는 “한국에 인터넷을 통한 새로운 형식의 민주주의가 등장했다”고 보도했다.

바로 그 보도가 나올 무렵, 이명박 대통령은 서울에서 열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장관회의에서 “인터넷의 힘은 신뢰가 담보되지 않으면 약이 아닌 독이 될 수 있다”고 연설했다. 하나의 역사적 사실을 놓고 극명하게 엇갈리는 서로 다른 평가가 한국 인터넷의 현실과 미래의 난맥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촛불 민주주의 = 광장 민주주의와 웹 2.0

polab_01.jpg2008년 5월1일 노동절 집회 때만 해도 광우병 쇠고기 문제가 이토록 큰 폭발력을 갖고 일반 시민들을 거리로 이끌어낼 거라고 생각했던 노동사회운동 진영은 없었던 듯하다. ‘광우병 쇠고기’나 ‘의료보험 민영화’ 등의 이슈가 몇몇 피켓들에 등장하기는 했어도, 당시 노동절 집회는 집회 방식이나 절박함, 구호, 행진 등에서 과거 노동절 집회 풍경과 별반 다를 바 없었다.

그러나 다음날 저녁, 상황은 많이 달라졌다. 주로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연판장이 돌려져 이루어진 청계광장 촛불 집회에는 민주노총 노동절 집회에 버금가는 수만의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모여들었다. 그들이 들고 나온 피켓이나 외친 구호들도 운동권의 그것과는 사뭇 달랐다. “미친소 너나 먹어”, “조중동은 찌라시” 등 대중 자신이 스스로의 언어로 외치고 있었다. 촛불집회 연단은 항상 나오는 지도급 인사의 지루한 연설 대신 평범한 시민들이 쏟아내는 ‘날 것 그대로의’ 목소리로 넘쳐났다.

지도부 없는 시위는 집단지성으로 채워졌다. ‘명박산성’과 ‘시민토성’, ‘신호등 시위’ 등으로 대표되는 톡톡 튀는 기발한 구호와 퍼포먼스들 속에서 우리는 자발성에 기초한 대중의 창발적인 에너지의 위력을 실감했다. 이를 두고 경희사이버대 민경배 교수는 “촛불시위는 웹 2.0 방식의 오프라인 시위 성격을 띠고 있다”고 해석했다. 즉 일방향-수직적 소통이었던 관계를 쌍방향-수평적 소통으로 대체한 촛불시위는 ‘개방, 공유, 참여’라는 웹 2.0 특성을 반영한다는 것이다. “새로운 형식의 민주주의”의 등장이라며 촛불시위를 주목했던 『프랑스24』의 보도 역시 그간 교과서에서만 볼 수 있었던 직접 민주주의가 또 다른 형태로 인터넷을 통해 구현될 수 있는 가능성에 무게를 둔 해석이라 하겠다.

역사를 되돌리려는 보수 세력의 대반격

이에 반해 한나라당 주성영 의원은 촛불시위를 “좌파가 주도하는 거리의 비이성적 굿판”이자 “천민 민주주의”라고 공격한다. 이명박 대통령이 OECD 장관회의에서 했던 ‘인터넷 독’ 발언이나 국회 개원연설 때 쏟아 부은 ‘정보전염병’ 언급은 보수 세력의 전면적인 인터넷 통제의 신호탄이 되었다. 이 무렵부터 촛불시위의 진원지가 된 인터넷의 부정적인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모든 권력기관의 전방위 공격이 이어졌다. 

이 대통령의 ‘인터넷 독’ 발언 이틀 만에 방송통신위원회는 전면적인 실명제 확대 적용 방침을 밝혔다. 하루 이용자수를 기준으로 포털과 UCC 사이트 등의 37개 사이트에 적용되어 왔던 제한적 본인확인제(인터넷 실명제) 적용 대상을 210개 사이트로 늘리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네티즌들이 많이 이용하는 대부분의 사이트가 실명제 그물에 촘촘히 걸릴 수밖에 없고, 일상화된 감시·추적에 주눅 든 네티즌들의 자기검열로 표현의 자유가 위축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특히 실명제가 확대되면 개인뿐만 아니라 인터넷 사업자에 대한 국가기관의 개입과 통제가 강화된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사법기관들도 인터넷 통제에 적극 나섰다. 경찰청은 인터넷 여론을 모니터링 하는 ‘인터넷 정보전담팀’ 신설을 추진하겠단다. 경찰에 사이버 수사대가 있음에도 여론 통제를 위한 특별전담팀을 또 만들겠다는 얘기다. ‘아고라’를 통해 온라인 소통 광장을 제공했던 ‘다음’에 대해서는 국세청이 강도 높은 세무조사의 칼날을 빼들었다. 그러는 사이 검찰은 이른바 ‘광우병 괴담’을 유포한 네티즌을 추적하겠다고 공언하고, 6월에 조·중·동 광고 불매 소비자운동에 대해 수사에 착수하여 광고주에게 고소를 종용하는 한편, 8월에는 결국 네티즌 2명을 구속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발맞춰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역시 다음의 광고 불매운동 게시물을 삭제하라는 시정요구 조치를 내렸다. 검찰이 촛불시위 인터넷 생중계의 인프라를 제공한 아프리카(나우콤) 문용식 대표를 구속 수사한 것도 이즈음에 벌어진 일이다. 방송 장악과 함께 인터넷 장악을 시도하고 있다는 혐의도 곳곳에서 포착된다. 6월 말에 청와대 국민소통비서관에 다음의 부사장 출신인 김철균 오픈IPTV 사장을 임명하고, 다음의 석종훈 사장을 국가경쟁력위원회 민간위원에 선임한 것은 인터넷 장악을 위한 ‘당근과 채찍’의 양면전술로 보인다.

PC통신 시절부터 인터넷 시대까지, 옷만 갈아입은 통신 검열

인터넷은 마땅한 자기 표현 매체를 가지기 어려운 일반 대중들에게 ‘표현의 수단’을 제공했다. 이와 동시에 정치권력의 인터넷 표현에 대한 규제 역시 늘 함께 이어져왔다. 정부의 검열은 1990년대 ‘PC통신’에서부터 문제가 되었다. 이미 언론이나 출판 등으로 세상에 빛을 본 정보들을 단지 ‘퍼 올렸다’는 이유로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되거나, 총선과 관련한 토론을 했다는 이유로 선거법 위반으로 구속되는 사례도 발생했다. 1995년 전기통신사업법에 ‘불온통신의 단속’과 ‘정보통신윤리위원회’ 조항이 신설되면서 이용자들의 게시물이 삭제되고 ID가 박탈되는 일이 잦아졌다. 이에 1세대 정보통신 활동가들을 중심으로 1996년 ‘정보통신 검열철폐를 위한 시민연대’가 구성돼 검열반대 운동을 전개하고, 매년 『정보통신검열백서』를 발간하면서 검열에 맞선 싸움을 계속 이어왔다.

2002년 6월 헌법재판소가 전기통신사업법 ‘불온통신 조항’(제53조)에 대해 위헌결정을 내리면서 인터넷 표현의 자유 쟁취투쟁은 큰 전기를 맞았다. ‘불온’이라는 애매한 기준으로 행정기관이 인터넷의 내용을 규제하는 것은 정부의 검열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정보통신부와 정보통신윤리위원회는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을 제출하면서 ‘불온’을 ‘불법’으로 바꿨을 뿐 규제 권한을 계속 유지해왔고, 이에 따라 위헌 논쟁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바로 그 문제의 정보통신윤리위원회는 이명박 정부 아래서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 옷을 갈아입은 채, 이번 촛불 정국 때 조·중·동 광고 불매운동 게시물에 대해 삭제를 요구하면서 건재를 과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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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월 14~15일 열린 인터넷언론네트워크의 '표현의자유와 대안담론, 대안인터넷언론의 과제' 워크숍 모습.  ▶ 참세상 ] 

실명 아니면 게시판에 글도 쓰지 말아라?

인터넷 실명제 논란 역시 2003년 3월부터 이어진 지난한 논란이다. 당시 정보통신부는 실명제 도입 계획을 청와대에 보고하였다가 시민사회단체와 네티즌들의 큰 반발에 직면하며 법제화를 철회했다. 그러나 2004년 4월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국회 정치개혁특위에서 인터넷 언론에 실명제를 강제하는 내용을 선거법에 포함시켰고 그 논란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정치적 표현의 자유의 핵심은 비판의 자유 보장이고, 이는 익명으로 표현할 자유가 보장되었을 때 비로소 완전해진다. 특히 성소수자나 이주노동자 등 사회적 소수자에게 익명 표현의 자유는 더욱 중요한 기본권이다. 그렇기에 실명 확인을 하지 않으면 게시판에 글을 쓸 수 있는 권리 자체를 박탈하는 실명제를 국가가 획일적으로 강제한다는 점에서, 인터넷 선거실명제는 표현의 자유의 본질적 침해요 명백한 사전검열이다. 그럼에도 매번 선거 때마다 대부분의 언론들은 침묵하는 가운데 몇몇 진보적인 인터넷 언론들만의 외로운 투쟁이 이어지고 있다. 이처럼 ‘강요당한 침묵’ 속에 너무도 조용하게 치러진 2007년 대선의 후유증이 선거가 끝나면서 한꺼번에 쏟아진 결과가 바로 촛불 정국이라 하겠다.

명예훼손의 이름으로 표현의 자유를 금하노라

한편, 정부의 개인에 대한 직접적인 인터넷 통제 못지않게 큰 문제가 또 있다. 바로 인터넷 사업자를 통한 인터넷 여론 통제이다. 작년 7월부터 개정·시행된 정보통신망법에 의하면, 인터넷 사업자는 자신의 권리를 침해받았다고 신고접수한 게시물에 대해 최장 30일간 게시물을 임시적으로 차단하는 조치(임시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정하고 있다.

이로 인해 이랜드 노조에서 올린 게시물들이 하루아침에 주요 포털사이트에서 사라지는 등 노사대립적인 게시물이나 소비자 고발성 게시물 등이 ‘명예훼손’이라는 이름 아래 무차별적으로 삭제되고 있다. 따라서 현 임시조치 제도에서는 이용자의 표현의 자유를 보호할 수 있는 제도적 대책이 강구되어야 마땅한데, 정부는 오히려 처벌조항까지 두어 사업자에게 임시조치를 의무화하려고 하고 있다. 이는 정부의 직접 통제 못지않게 심각한 표현의 자유 제약으로 이어질 것이 분명하다.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제한은 명확한 법률적 기준하에 최소한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 대한민국 헌법과 국제인권규범의 정신이다. 자유로운 의사표현과 소통이 민주주의를 더욱 발전시키는 핵심 원동력이라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더욱 억압되고 통제되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 한국 인터넷의 미래는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암울한 미래로 직결될 수밖에 없다.

a정보 민주주의, 기술이 아니라 사회적 투쟁이 만든다

소수 엘리트가 아닌 다수 대중이 주도한 촛불시위의 성격을 놓고 벌이는 최근의 논쟁에서 우리는 계급적 관점의 차이를 확인하게 된다. 온라인 소통이 오프라인의 직접행동으로까지 이어지는 광범한 정치참여를 보며 ‘새로운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발견하는가 하면, 반대편에서는 소수의 선동에 휩쓸리는 ‘끔찍한 포퓰리즘적 행태’라며 엘리트에 의한 통제를 역설하기도 한다. 즉, 인터넷을 민주주의의 심화·발전으로 적극 해석하고 옹호·강화하느냐, 아니면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으로 해석하여 억압·통제하느냐 하는 차이는 결국 어떤 사회를 지향하느냐와 맞닿아 있다.

흔히들 쌍방향·실시간 소통이 가능하고, 다양한 멀티미디어들을 통합할 수 있는 등의 장점을 들며 인터넷이라는 미디어의 새로운 가능성에 환호한다. 그러나 우리는 가능성과 현실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인터넷이라는 독특한 기술이 제공하는 ‘가능성’이 ‘현실’ 속에서 구현되기 위해서는 또 다른 조건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커뮤니케이션 기술이 가진 민주적 가능성이 사회적 투쟁 없이 그대로 실현될 것이라는 생각은 지극히 순진한 기술결정론적인 사고다. 국가와 자본에 의해 도입된 커뮤니케이션 기술은 노동자·민중의 투쟁 없이 그 민주적 가능성을 현실의 무기로 선물해주지 않는다. 그 점은 인터넷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런 점에서 노동사회운동이 정보통신 검열이나 인터넷 실명제에 맞선 투쟁, 정보 불평등을 해소하고 공적인 정보 접근권을 확대하기 위한 투쟁, 정보기술을 이용한 노동자 감시에 맞선 투쟁, 그리고 정보의 독점·상품화에 맞서 정보공유를 확보하기 위한 투쟁에 앞장서는 것은 결국 사회 지향과 맞닿아 있는 ‘민주주의’를 더욱 심화·발전하는 길이 될 것이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3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