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랜드 투쟁 1년의 명암을 날 것 그대로 드러내다

노동사회

이랜드 투쟁 1년의 명암을 날 것 그대로 드러내다

편집국 0 3,576 2013.05.29 10:11
 

jslee_book.jpg작년 이맘 때 쯤, 홈에버 상암점 점거가 끝났다. 6월30일부터 시작됐던 이랜드·뉴코아 노조의 상암점 점거는 당초 1박2일 계획이었다. 하지만 그동안 홈에버로부터 갖은 수모를 당해왔던 조합원들은 자발적인 토론 끝에 ‘무기한’ 점거 농성을 시작했다. 사실 이랜드 투쟁은 2007년 초반부터 시작됐다. 그런데도 별반 관심을 보이지 않던 언론들은 그동안 유례가 없었던 유통업계에서의 ‘점거 농성’이라는 점에서 이들의 싸움에 큰 관심을 보였다. 비정규직법의 허점을 누가 먼저 뚫고 나갈지 눈치만 보고 있던 사용자들의 ‘폭탄 돌리기’ 게임에서 처음 터진 폭탄에 언론들은 열광했다. 그리고 이제 1년이 지났다.

봄날 같이 따사롭던 점거 농성의 추억

이랜드노조 조합원들은 여전히 ‘스머프’ 티셔츠를 입고 투쟁 중이다. 물론 파업 초기의 조합원들 모두가 남아 있는 것은 아니다. 생활고를 견디다 못한 조합원들은 현장으로 복귀하기도 했고, 아예 노조를 탈퇴한 조합원도 있다. 게다가 올해 5월에 이랜드가 홈에버만 떼어 홈플러스에 매각하기로 한 결정은 현재 공정거래위원회의 기업결합 심사만을 남겨놓고 있다. 1년 넘게 싸워왔는데 싸울 대상이 느닷없이 바뀌어 버린 셈이다.

그러나 그들의 싸움은 끈질기다. 매주 1번 총회를 열어 교육과 소통에 힘쓰고, 다른 투쟁 사업장의 연대 투쟁에도 계속 함께 한다. 가장으로 가정을 책임지기 위해 아르바이트로 근근이 생계를 이어나가면서 집회는 빼먹지 않고 나오는 조합원들도 많다. 가장 어려운 재정 부분을 해결하기 위해 간부들은 사비를 털었다. 집회 현장에서 생수를 파는 것은 물론이고 설에는 ‘홈에러 쇼핑’ 동영상을 제작해 떡을 팔기도 했다.

이들이 이렇게 끈을 놓지 못하는 이유는 다른 비정규직 장기투쟁 사업장과 다르지 않다. 그것은 표면상으로 드러나는 요구인 임금인상이나 고용보장과는 다른 문제다. 그것은 그들이 비정규직으로 살아왔던 삶이 인간에 대한 모멸감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면서 살았던 삶이었기 때문이다. 허가 없이는 화장실도 다녀올 수 없고 립스틱 색깔까지 지정해 주는 대로 바르면서 인력부족으로 극심한 노동강도에 시달렸던, 정규직과 같은 일을 하면서도 훨씬 낮은 급여를 받고 정규직은 다 받는 건강검진도 받지 못하는 삶을 살았던 지난날의 기억. 

또 다른 이유는 그런 삶의 고단한 기억의 대척점에 있다. 새벽에 점거 농성을 준비하며 휴게실에 가서 자는 척 하며 부들부들 떨다가, 순식간에 자신들의 일터를 온전히 자신들의 것으로 만들었을 때 느꼈던 스릴감과 신기함. 그렇게 시작한 점거 농성을 “우리가 언제 또 계산대에서 자 보겠어?”라며 무기한으로 연기한 기억. 그 농성 중에 20일을 함께 먹고 자며 해방감을 느꼈던 동지들의 연행을 눈물 삼키고 가슴 치며 바라봤던 아픔. 스스로 율동패를 만들어 무대에 처음 서던 순간의 떨림. 그 과정들은 그들이 누구의 부당한 강압이나 차별을 겪지 않는, 온전한 ‘사람’으로 만들어 준 기억이 됐다. 한 조합원은 점거 농성 당시를 “그 때 생각하면 진짜로 따사로운 봄날 같아요”라고 추억한다.

비정규직 투쟁의 현실을 직시하려는 이들에게

그러나 이 책은 ‘이랜드 투쟁 찬가’는 아니다. 투쟁 1년이 지난 지금 이랜드 노조 조합원들의 현실적인 어려움과 지난 투쟁에서의 아쉬움들까지도 조합원들의 입을 빌려 거침없이 얘기한다. 그건 이 책이 ‘인터뷰’ 형식을 띠고 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조합원들의 연대 단위들에 대한 고마움과 아쉬움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기도 하고, 노조를 탈퇴하지는 않았지만 이제는 집회에 나가지 않고 생계를 위해 일하는 조합원, 계속 집회에 나오면서도 많은 고민을 하고 있는 조합원의 심정도 고스란히 전달한다. 그럼으로써 독자들은 비정규직 투쟁의 상징처럼 되어 버린 이랜드 투쟁의 주체들이 어떤 사람들이었는지, 그들이 왜 싸우게 됐고 어찌해서 이 싸움을 끈질기게 이어가고 있는지를 오히려 더 잘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비정규직 투쟁의 현실을 고민하는 이들, 남성 정규직 중심의 노동조합운동에서 다른 흐름의 필요성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많은 도움이 될 듯 싶다. 1년이 넘도록 노동하는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싸우고 있는, 모든 이랜드 노조 조합원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3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