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문화] 인권영화제, 더 깊이 뿌리 내리러 거리로 나서다

노동사회

[노동문화] 인권영화제, 더 깊이 뿌리 내리러 거리로 나서다

편집국 0 3,169 2013.05.29 10:07

 

cine_01.jpg광우병 괴담으로 모두가 괴롭다. 일파만파 퍼진 집회의 열기를 잠재우기 위해서 정부에서는 ‘괴담’이라느니, ‘배후세력’이니 황당한 말만 내뱉어 불길을 더욱 거세게 지피는 데 한 몫 하고 있다. 게다가 포털 사이트들에 압력을 넣어 네티즌들의 자유로운 의견 표명까지 막으려 한다는 의심을 사고 있는 마당이니, 이쯤 되면 ‘비열하다’는 말 외엔 할 말이 없어진다. 정당한 표현의 자유를 국가권력이라는 이름으로 아무렇지 않은 듯이 깔아뭉개려는 그들을 보고 있노라면, 권리를 제대로 보장받기 위해서 가야할 길은 아직도 가시밭길이라는 생각이 든다.

기득권층은 언제나 손쉽게, 그리고 당연한 듯이 권력을 이용하여 그들의 이데올로기와 논리를 설파할 수 있다. 그들에게 표현의 자유란 애초부터 ‘요구해야 할 무엇’일 필요가 없다. 하지만 소수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그 작은 통로 자체를 구하는 것이 결코 만만치 않은 일이다. 게다가 이 작은 통로는 언제나 제한적인 범위 안에서만 가능한 것이 현실이다. 이와 결코 무관하지 않은 이유로, 올해 제12회를 맞는 인권영화제는 ‘거리’로 나서게 되었다. 멀티플렉스는 24시간 내내 휘황찬란한 불빛을 자랑하고 상업영화의 간판은 굳건히 걸려 있지만, 인권영화제는 영화를 상영할 수 있는 단 일주일조차도 확보하지 못해서 길바닥으로 나앉았다. 현행 「영화와 비디오 진흥에 관한 법률」(영비법)이 가지고 있는 모순 때문이다.

인권영화제가 길거리로 나선 이유

현재 영비법에 의하면,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모든 영화는 상영등급 분류를 받아야 한다(제29조 1항). 그러나 동시에 ‘누구든지’ 상영등급을 분류 받지 아니하고 영화상영을 하여서는 아니 된다(제29조 3항)라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이를 위반하면 벌칙을 가하도록 정하고 있다(제94조). 위의 29조 1항대로라면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 인권영화제는 상영등급 분류를 받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29조 3항에 의해 상영등급을 받아야만 한다. 심지어 제94조에 의해 이를 위반하면 벌칙이 부과된다. 

이렇게 법 조항이 상충하고 있는 현실에서, 아무리 비영리를 목적으로 하더라도 벌금이나 영업정지를 감수하고 상영을 할 수 있는 공간을 찾기는 어려웠다. 등급분류를 받지 않고 영화를 상영할 경우 상영업자는 ‘영업정지’나 ‘벌금’ 등의 무거운 뒷감당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법조항의 강제적인 항목들은, 1990년대 초반에 인권영화제가 싸워 왔던 사전검열제의 잔재라고 볼 수 있다.

물론 대가를 받지 않고 상영하는 단편·소형 영화나 영화진흥위원회의 추천을 받은 영화제에서 상영하는 영화, 문화관광부 장관이 등급 분류가 필요하지 않다고 인정하는 영화는 영비법에서 예외조항으로 인정해 주고 있다. 하지만 이것 역시 그럴싸하게 포장된 검열의 하나일 뿐이다. 인권영화제는 ‘추천’이라는 방식으로 ‘허락’을 받는 것조차도 거부한다. 예외조항에 속하기 위해서는 공권력과의 타협을 필요로 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심의를 심의하러 인권영화제로 오세요”

현행 등급 분류 자체에 대한 비판도 예전부터 있었다. 한국의 영화등급분류위원회(영등위)의 ‘전체/12세/15세/18세 관람가’라는 등급은 생물학적인 연령만을 기준으로 하는 획일적인 분류라는 것이다. 등급 분류의 목적은 문화적 생산물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여 문화향유권을 보호하고, 사회 공공성을 지키는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등급의 초기 취지에 가까워지려면, 관객들이 영화를 보기 전에 충분한 정보를 접할 수 있도록 다양한 사전정보를 제공하는 방식을 추구해야 할 것이다. 그럼으로써 문화 창작자와 수용자가 자유롭게 개입하고 창조할 수 있는 여지가 넓어질 것이다. 

그렇기에 인권영화제가 거리로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는 구체적으로는 영비법에 내재한 모순 때문이지만, 포괄적으로는 표현의 자유를 진일보시키기 위한 적극적인 저항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엄청난 일’을 저지르기 위한 시도는 인권영화제 혼자만으로는 부족하다. 이미 수년간 심의정책의 개선을 위해 싸워 온 문화운동가, 영화인, 문화민주주의 안에서 자유를 찾는 일반 시민들의 힘이 모아져야 하기 때문에, ‘표현의 자유 확대를 위한 영비법 개정 공동행동’(공동행동)이 꾸려졌다. 올해 인권영화제의 거리상영을 계기로 수면 위에 떠오른 심의의 문제를 더욱더 적극적으로 개진하고 공론화시키기 위해서는, 많은 이들의 참여가 절실하다. 

이러한 공동행동과 더불어 심의 문제에 대한 논의를 촉발시키기 위해, ‘표현의 자유를 위한 19조 위원회’(19조 위원회)를 발족했다. 19조 위원회는 인권의 관점으로 현재의 경직된 등급분류를 대체할 수 있는 대안적인 기준을 마련하기 위해 각계 전문가와 시민들이 직접 참여, 인권영화제의 상영작들을 보고 토론하는 과정으로 진행된다. 

지난 5월22일 첫 모임을 가진 19조 위원회에서는 심의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부터 우리나라의 구체적인 상황과 해외의 사례까지 다양한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왔다. 앞으로 시사회를 열어 위원회가 기준들을 마련하고, 그 기준들은 인권영화제 기간에 한 번 더 관객들의 평가를 받게 된다. 그들의 기준이 아닌 우리들의 손길로 ‘심의를 심의’하고, 딴지를 걸어 보는 것이다. 첫술에 배부를 순 없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의 제도가 가지고 있는 모순의 가시들을 다듬고 법의 외연을 확장하는 시도는 분명히 의미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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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0년부터 지금까지 회사측을 상대로 힘겨운 투쟁을 벌이고 있는 대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천막』의 한 장면. ▶ 인권운동사랑방 ]

누구나 문턱 없이 문화를 접할 수 있도록

법은 가장 기본적인 제도의 뿌리이지만, 우리는 이것의 한계 또한 수없이 목격해 왔다. 영비법이 개정된다고 하더라도 이것 하나만으로는 표현의 자유를 위한 토대가 충분히 마련되었다고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거대 자본에 의한 문화적인 독점이 만연하다. 또 문화적인 권리는 정치, 사회적인 권리가 담보되어야만 가능하다는 인식 또한 일반적이다.

그러나 이처럼 누구나 문화적인 권리를 동등하게 누릴 수 없는 현실에서, 인권영화제가 추구하는 방향은 ‘누구나, 문턱 없이’ 영화를 매개로 문화를 접하는 것이다. 공동행동과 공동심의, 심의에 대한 문제제기는 그러한 방향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창작을 하는 자와 등급을 매기는 자라는 이분법에 갇히지 말고, 창작을 하는 자와 수용하는 사람들의 다원적인 형태를 지향하는 것. 그리하여 소수의 목소리가 묻히지 않은 채 자유롭게 표현되고 받아들여지며, 쌍방향적인 소통을 할 수 있게 되는 것. 이것은 인권영화제가 장기적으로 추구하는 목표이기도 하다.

어찌 보면 이번 거리 상영은 인권영화제가 더 멀리 도약하고, 크게 기지개를 켤 수 있는 기회일지도 모른다. 13년간 소중하게 일궈온 인권영화제가 앞으로도 계속되기 위해서, 인권영화제를 지지하는 손길 하나하나가 너무나도 목마른 시점이다. 땅바닥에 굳건히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 말이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3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