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교육 현장탐방] 노동교육의 백년지대계를 꿈꾸며

노동사회

[노동교육 현장탐방] 노동교육의 백년지대계를 꿈꾸며

편집국 0 3,550 2013.05.29 10:06

“아이쿠, 누가 대체 모범사례로 저흴 추천했을까요? 양으로 말한다면 어떨지 몰라도 교육의 질로 말한다면 전혀 모범사례라고 내놓을 수가 없는데요…….”

몇 분의 교육활동가들로부터 교육활동 모범사례로 추천을 받고, 정승호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교선국장에게 전화했을 때 정 국장은 이렇게 말끝을 흐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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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노총 부산본부의 제7기 노동자학교 졸업식 모습.  ▶ 민주노총 부산본부 ] 

양으로 승부하는 교육?

막상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로 찾아가서 지금까지 진행해 온 교육 사업에 관해 이것저것 설명을 듣고 자료를 보니, 정치사업과 대외협력사업을 같이 하는 교육담당자 혼자 어찌 이 일을 감당할까 싶을 만큼 일단 양이 많긴 많다.

우선 민주노총 부산본부는 거의 매월 정기적으로 열린 강좌를 진행한다. ‘비정규개악법, 노사관계법 대응 어떻게 할 것인가?’ ‘노동자 대투쟁 20주년 기념 강연’ 같은 정세 교육은 물론 ‘노동절을 통해 본 노동자 역사 - 일제하 노동운동사에서 현대 노동운동사까지’ 같은 의식교육, ‘11월 총력투쟁 조직화를 위한 간부교육’과 같은 현안교육, 게다가 ‘디카 120% 활용법’, ‘살아있는 글쓰기, 설득력 있는 글쓰기’ 등의 제목으로 기사 쓰기, 성명서 작성법, 제목 달기, 모범 사례 검토 등 실무 교육도 진행했다. 매 강좌마다 적게는 40여 명에서 많게는 150여 명이 참여했다. 

그리고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는 매월 정기적인 열린 강좌 이외에도 연중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매년 봄에는 각 연맹·단위노조마다의 임단투를 앞두고 ‘임단투 학교’를 연다. 가을에는 ‘노동자학교’를 열고, 또한 매년 ‘노동자를 위한 영상 제작교육’을 진행한다. 매월 여는 열린 강좌뿐만 아니라, 계절마다 정기적인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2007년 임단투 학교에는 177명이 참여했다. 일상적으로 단위노조에서 요청하여 진행하는 파견교육까지 포함하면 일단 진행되는 교육의 횟수도 만만치 않게 많지만, 지역본부에서 주최하는 ‘임단투 학교’에 177명의 노동자가 참여했다면 참여자의 수도 상당한 편이다. 노동자학교도 2007년에만 115명이 참여했다. 노동자를 위한 영상제작교육은 12회에서 16회 정도의 강좌로 노동자들 스스로 영상 제작법을 배우고 익혀 「어느 기관사의 하루」, 「화장실」 등의 수료 작품을 스스로 제작했다. 

노총, 연맹, 지역본부, 단위노조를 가릴 것 없이 어느 단위든 각각의 사업과 현안에 정신없이 치여 돌아가는 현실적인 조건들을 생각할 때 교육을 많이 하는 것, 쉽지 않은 일이다. 그것 자체만으로도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의 정승호 국장은 좀 다른 생각을 가진 것 같다. 

 단위사업장 맞춤형 노동교실을 제안합니다

단위노조에서 요청이 있어 파견교육을 나가보면요, 각 단위사업장마다 근무형태도 다르고 한 회사여도 사업장이 지역적으로 떨어져 있는 경우도 있고, 조합원들의 교육 정도와 현실적 조건도 다르고, 사업장 규모, 사업장 형태도 다 다르잖아요. 그런데다가 단위노조에서 의뢰하는 교육은 대부분 현안 위주로 시급히 필요해서 진행하는 교육이라서, 단기적인 조직화에 도움이 되는 듯 보이지만 장기적으로 조합원들을 튼튼히 묶어내지 못하고요. 그래서 고민고민 하다가 ‘단위사업장 맞춤형 노동교실’을 만들어 봤어요.

단위사업장 맞춤형 노동교실은 노동교실의 일정과 강의 내용, 강사진 등을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산별)연맹 지역(지부)본부, △단위사업장 3자 간의 협의를 통해 결정한다. 그리고 각 단위사업장이 정하는 장소에 강사가 찾아가서 교육을 진행하게 된다. 코스도 다양하다. 1~2개월 집중코스, 월 1회로 1년 코스 등 사업장의 상황과 조건에 맞게 교육 기간과 교육 형태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조합원이 흩어져 있는 사업장의 경우 각각의 장소에서 교육을 실시하고, 노동교실 추진이 어려운 단위사업장의 경우 ‘(확대)간부 회의시간’ 등을 활용해 노동자 의식교육을 진행할 수도 있다. 1년에 4~6차례 정도 각 1시간씩 회의시간 전에 교육을 배치하는 방법이다. 

구체적으로 보면 ‘대학노조 동명대1지부 노동교실’은 월 1회씩 1년 동안 교육을 진행했다. 매월 마지막 금요일은 교육이 있는 날로 정해 꾸준히 진행한 것이다. 3교대 사업장인 ‘노보텔앰버서더노조 제3기 노동자학교’는 1~2개월 집중코스로 진행되었다. 3기 노동자학교의 경우 참가자가 44명이었는데 노보텔노조 전체 조합원의 75%가량이 1, 2, 3기 노동자학교를 이수했고, 올 하반기에는 전 조합원이 노동자학교를 이수하게 된다. ‘부산지역일반노조 2008년 상반기 신규조합원 노동교실’의 경우 조합원이 단일한 사업장에서 근무하지 않고 흩어져 있기 때문에 조합원이 있는 각각의 장소에서 1~2개월 동안 집중적으로 진행하기로 했다. 동일한 1강좌마다 네 군데의 장소에서 각각 교육을 실시하고 마지막 6, 7강만 한 장소에서 전체교육을 진행하는 식이다. 애광원에서 43명, 부산대청소용역 32명, 성신환경 24명, (주)대덕 46명, (주)유창환경 23명, 삼정기업 3명, 동래 동명 13명, 태평고속 12명, 설우고속 1명 등이 참여하고 있다. 

교육 기간이나 형태, 장소뿐만 아니라 교육 내용도 단위노조의 필요에 따라 맞춤형이다. 기본적으로 철학, 역사, 경제, 조직, 법률 등의 의식 교육을 기본으로 하고 필요에 따라 ‘임단협의 의의와 대응’ 등의 실무교육도 진행하는데, ‘비정규직·정규직 공동투쟁 모범사례’를 소개하는 것도 사업장에 따라 꼭 필요한 교육 내용이 되기도 한다. 문화영상교실 강좌로 ‘영화를 통해 보는 노동자 의식 교육’도 여러 차례 진행됐다. 1박2일 수련회를 진행하고 솔밭산 열사묘역을 참배하는 등의 프로그램도 필요에 따라 배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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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단투 학교에서의 실무교육 모습. ▶ 민주노총 부산본부 ] 

교육 담당자의 욕심과 아쉬움

하고 싶은 교육은 너무나 많죠. 제가 연극 활동을 하던 출신이라 그런지는 몰라도 매스컴, 대중영화, CF, 드라마 등 일상적으로 노동자들이 접하는 매체를 같이 보고 그 속에서 자본주의의 모순을 발견하는 비평 교육도 진행해 보고 싶고, 학습 소모임을 꾸려 1회적이고 현안에 국한된 교육이 아니라 일상적인 교육활동도 하고 싶고, 다양한 교육방법론을 동원해서 참여식 교육도 진행하고 싶고…….

그러나 이번에도 역시 정승호 국장은 말끝을 흐렸다. 교육담당자의 의욕과 의지만으로는 될 턱이 없는 일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동안 이미 진행되었던 교육들은 심화과정을 추진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작년의 경우는 ‘노동자학교 심화 과정’을 추진하다가 결국 교육담당자 스스로 손들고 포기했어요. 도무지 시간을 낼 수가 없었던 거죠. 그래도 올 가을에는 ‘노동자 학교’와 ‘노동자 학교 심화 과정’이 동시에 진행될 겁니다.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는 교육국이 독립되어 있지 않다. 그것도 작년까지는 담당자 한 명이 교육과 선전을 담당했으나 올해부터는 그나마 교육담당자와 선전담당자를 분리했다. 그럼에도 상근 인력이 부족해 교육담당자가 정치와 대외협력을 동시에 담당하고 있다. 교육선전국의 1년 예산이 2백만 원 남짓인데, 그나마 그것도 현안이 떨어지면 정신없이 움직여야 하는 선전국이 대부분의 예산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현실 속에 정 국장의 교육에 대한 의지와 의욕은 참으로 ‘야무진 꿈’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은 비단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만의 문제가 아니다. 총연맹을 비롯하여 산별노조, 지역본부 할 것 없이 교육담당자는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거나 독립적으로 교육활동에만 전념할 수 있는 여건을 갖기 어렵고, 교육 예산도 충분히 확보되지 않는다.  

노동교육, 양적 성과보다 교육의 질을 높이는 발상의 전환을!

교육을 부흥회로 생각하지 말아야 해요. 투쟁 시기나 현안이 있을 때마다 총연맹에선 ‘1단사 1교육 지침’이 내려오지만, 그렇게 단기적인 현안교육도 필요하지만 문제가 있다고 봐요. 비정규직 법안 통과되면 다 죽는다고 교육 -또는 협박- 했지만 우리, 안 죽었잖아요.  FTA 통과되면 다 죽는다고 교육했지만 역시나 우리, 아직 안 죽었잖아요. 현안이 있을 때마다 부흥회에 동원되듯이 교육 받은 노동자들은 그때는 잠깐 조직되는 듯이 보이지만, 사실상 상황이 달라지면 금방 또 언제 그랬냐 싶어지게 되죠. 우린 교육 잡아 놓고 몇 명 안 모이면 그냥 교육을 접거나 교육이 망했다고 생각하잖아요. 하지만 부흥회 식으로 몇 명이 교육에 참여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단 1명이 오더라도 충실히 진행되고 또 지속되는 일상적인 의식 교육이 필요한 거죠.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의 교육활동을 모범사례로 소개하는 것을 못내 자신 없어 하며 말끝을 흐리던 정 국장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고 있었다. 총연맹 차원부터 교육에 관한 발상을 전환하고 충분한 의지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는 역설이다. 교육을 조직화의 도구로만 보는 경향을 극복하고, 보다 장기적인 전망으로 예산과 인력을 배치하여 교육 담당자들이 교육에만 전념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하는 것, 그리고 교육 활동의 양적인 성과에 치중하지 말고 질적인 성장을 끊임없이 모색할 수 있도록 성과주의를 극복하는 것, 소규모 학습 소모임 등을 조직하고 운영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일상적인 의식교육의 중요성을 공유하는 것……. 교육 활동을 양으로만 승부할 수 없는 한 교육활동가의 절절한 목소리였다. 

노동자는 스스로 노동자라는 자기 존재의식이 확고히 설 때만이 자본에 맞서 싸울 수 있고, 자본의 세상을 바꿀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올바른 노동자 의식의 확립은 강고한 조직력으로 귀결된다. 흔히들 교육을 일컬어 ‘백년지대계’라고 하는데, 나를 바꾸고 우리 노조를 바꾸고 사회를 바꾸고, 세상을 통째로 바꿔야 할 노동교육이야말로 ‘백년지대계’를 생각할 때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3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