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들의 투쟁, 수정이들이 응원합니다!

노동사회

어머니들의 투쟁, 수정이들이 응원합니다!

편집국 0 3,849 2013.05.29 10:23

지난 9월9일, 『경향신문』 29면에 하단을 통째로 턴 광고가 하나 실렸다. “참담한 심정을 억누르며, 성신의 졸업생은 분노한다”라는 제목의 이 광고는 성신여대 졸업생 99명이 자발적으로 돈을 모아 게재했다. 졸업생들은 “최저임금을 겨우 넘기는 임금으로 살아가면서도 학교 곳곳을 깨끗이 하는 어머니 같은 여성노동자의 현실을 더욱 더 악랄하게 기만하고, 밖으로만 여성 리더십을 운운하는 성신의 모습은 이제 바뀌어야 합니다”라고 지적하고, “이 사회를 빛낼 여성 인재와 여성 리더십이란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과 예의에서 비롯됩니다. 여성 인재와 여성 리더십의 상을 새로 쓰기 위해서 졸업생들도 이 싸움에 기꺼이 동참할 것입니다”라고 밝혔다. 

jieso_01.jpg이번에 업체 변경되면 몇 명 확실히 자른대”

성신여대의 졸업생들이 이렇게 ‘뿔’이 난 것은 성신여대에서 일하던 청소 노동자들이 해고 위기에 몰렸기 때문이었다. 성신여대는 보통 2~3년을 주기로 8월 즈음에 청소용역업체를 바꿔왔는데, 업체가 바뀌어도 청소를 하는 노동자들의 고용은 계속 승계가 되어왔다. 그래서 현재 성신여대에서 청소 일을 하는 노동자들의 근속년수는 짧게는 2년, 길게는 20년이 넘는다. 그렇게 오래 일하면서도 임금 올려달라는 말 한 번 안했던 이들이 2007년에 노조를 만들었다. 원인은 고용불안 때문이었다. 

유승현 성신여대 총학생회장은 “‘이번엔 업체 변경하면 몇 명 확실히 자른다더라’는 소문이 돌았고, 그래서 어머니들이 먼저 학생회실에 찾아오셔서 상담을 하셨다”고 말했다. 총학생회에서는 노조를 만들어 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권유를 했고, 성신여대 노동자들은 총학생회의 소개로 고려대, 동덕여대, 연세대 등에서 노조활동을 하고 있는 ‘동지’들을 만날 수 있었다. 같은 일을 하면서도 노조 활동을 통해 고용보장, 최저임금 보장, 휴게공간 확보, 출퇴근 시간 조정 등의 성과를 얻어낸 것을 보면서 “우리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성신여대 노동자들도 공공서비스노조 서울경인지역공공서비스지부 산하에 성신여대분회를 만들기에 이른다. 2007년 9월 초의 일이다.

그렇게 노조를 결성하고 첫 단체협약을 만들기까지 4개월이 넘게 걸렸다. 고용도 문제였지만 근로계약서상 출근시간을 턱없이 늦게 잡아놓고 쓰기도 힘든 휴게시간을 실제보다 많이 집어넣는 등 용역업체의 편법이 빚어낸 월 ‘평균 63만원’의 저임금도 문제가 됐다. 결국 노동위원회의 조정까지 가는 갈등 끝에 올해 2월에 단체협약을 체결하고 임금도 약간 상승했지만, 그 과정에서 지친 몇 명의 노동자들은 자진퇴직 형식으로 학교를 떠났다.

어라, 나 지금 일하고 있는데… 잘린 거야?

그리고 올해 8월 업체 변경을 앞두고 학교 측의 회유와 협박이 시작됐다. 학교 직원들은 “노조활동을 계속하면 고용이 승계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들을 흘리고 다녔고, 성신여대분회와 총학생회는 학교 총무팀을 찾아가 항의하는 등 반발하고 나섰다. 그러나 학교 측의 공식적인 답변은 “용역 업체가 알아서 할 일이지 학교가 개입할 일은 아니다”는 것이었다. 불안한 예감은 현실이 됐다. 8월26일자 『벼룩시장』에 성신여대 환경미화원을 뽑는다는 광고가 실린 것이다. 

정작 당사자들은 버젓이 일하고 있는데, 자신의 해고 사실을 『벼룩시장』 광고를 보고서야 알게 된 황당한 상황이 연출된 셈이다. 구인 인원은 성신여대에서 용역을 통해 고용하고 있는 청소 노동자(60명)와 경비 노동자(5명) 수와 정확히 일치하는 65명이었고, 광고를 낸 것은 새 용역업체로 선정된 ‘엘림비엠에스’(엘림)라는 업체였다. 장성기 공공서비스노조 서울경인지역공공서비스지부장은 “학교 측이 정확히 말을 해주지 않았지만 아무런 논의 없이 8월25일 이전에 이미 용역업체 변경 작업을 마무리 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유승현 총학생회장은 “7월부터 학교와 면담을 통해 고용보장을 요구하려고 했지만 학교는 공식적으로 만나기를 거부했다. 하지만 ‘이건 우리가 매년 그렇게 해왔던 것 아니냐.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며 구두로는 약속을 했던 부분이었다”고 말했다. 그 말을 그대로 믿었던 건 아니지만 어떤 논의나 통보조차 없이 ‘『벼룩시장』 구인광고’라는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해고를 할 줄은 몰랐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성신여대는 한 언론에 “노조결성이 용역업체 변경 이유”라는 입장을 밝혀 물의를 일으켰다.

이튿날인 8월27일 성신여대분회는 곧바로 고용승계를 요구하며 학교 행정관의 총무팀 점거에 들어갔다. 처음부터 완전한 점거를 계획한 것은 아니었지만 총무팀을 찾아가 항의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점거가 이뤄졌다. 점거는 9월10일까지 보름간 이어졌다. 초반에만 해도 싸움이 승리할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나종례 성신여대분회장은 “우리도 처음 싸우는 건데 두렵지 않았겠나. 학생들이 아니었으면 정말 이기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jieso_02.jpg
[ 이번 성신여대분회의 투쟁에서는 성신여대 학생들의 연대가 가장 큰 힘이 됐다. 투쟁 당시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내건 현수막과 지지 메모들. ▶ 매거진 On20 ] 

‘어머니’들의 투쟁을 지지합니다!

언론에 수차례 보도됐던 것처럼, 이번 성신여대분회의 투쟁에서 학생들의 역할은 매우 컸다. 졸업생들만 광고를 낸 것이 아니었다. 시작은 성신여대 재학생들의 투쟁 지지 움직임부터였다. 성신여대분회와 총학생회가 9월1일부터 3일 동안 실시한 서명운동에서, 성신여대 총 재적인원 9,000여 명의 3분의 2가 넘는 6,500여 명이 서명에 참여했다. 건물의 벽과 기둥에 성신여대분회의 투쟁을 지지하는 내용의 포스트잇을 붙이는 행동도 순식간에 확산됐고, 자발적으로 투쟁지지 퍼포먼스를 벌이거나 점거농성이 진행 중이던 행정관에 음식을 싸들고 와 놓고 가는 학생들도 있었다.

타 대학 청소 노동자들과 학생들의 연대도 큰 힘이 됐다. 성신여대분회 설립 당시부터 연대를 아끼지 않았던 고려대, 동덕여대, 연세대 등의 청소 노동자들은 성신여대에서 집회가 있을 때마다 때로는 퇴근시간까지 당기면서 빠지지 않고 참여했다. 나종례 분회장은 “정말 많이 왔다. 청주에서 올라온 학생들, 다른 학교에서 온 분들, 다 합치면 (집회 때마다) 몇 백 명은 족히 넘었다. 그러니까 학교도 지레 겁을 먹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성신여대분회의 총무팀 점거에도 꿈쩍하지 않으며 교섭 테이블에도 나오지 않았던 학교는 학생들의 폭발적인 호응과 노동자들의 연대에 태도가 달라졌다. 개강 초에 외국에 나가 있던 심화진 성신여대 총장이 돌아온 9월4일에 총무팀이 면담을 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학교가 나서자 용역업체인 엘림도 태도를 바꿔 교섭에 나서기 시작했고, 9월10일에 성신여대와 엘림, 그리고 성신여대분회가 속해 있는 공공노조는 고용승계를 보장하는 합의서에 서명했다.

이제 부당노동행위하면 ‘용역업체’가 잘린다

합의서는 공공노조와 엘림, 공공노조와 성신여대가 각각 작성한 두 개의 합의서로 이뤄져 있다. 먼저 공공노조와 엘림은 성신여대 청소 노동자들의 고용뿐만 아니라 단체협약까지도 승계하기로 했다. 또한 1인당 20만 원의 추석 위로금을 지급하기로 했고, 용역업체 변경 과정에서 있었던 사건들에 대해 엘림이 조합원들에게 사과하는 것까지 명시했다. 

특히 이번 합의에서 주목할 것은 ‘원청’인 성신여대와 공공노조가 합의서에 서명했다는 것이다. 이 합의에 따르면 앞으로 용역업체가 부당노동행위를 한다면 성신여대는 용역계약을 해지해야 한다. 이를 ‘원청의 사용자성 인정’으로까지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용역업체의 ‘생살여탈권’을 쥐고 있는 성신여대가 용역업체의 부당노동행위에 대해 제재를 내리도록 강제함으로써, ‘원청으로서 최소한의 사회적 책임’을 이행하도록 한 의미 있는 사례가 된 것이라는 평가가 많다.

겪어봐서 안다, 일방통행의 서러움

이렇게 성신여대분회의 투쟁이 의미 있는 결과를 남기게 된 데에는 몇 가지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컸던 것은 역시 학교의 구성원인 학생들의 역할이었다. 장성기 지부장은 “학생회에서 노조 만들 때 고생을 많이 했다”고 회상했다. 총학생회의 소개로 성신여대 노동자들을 만나긴 했지만, 실제 노조 가입원서를 돌리고 가입을 권유하는 작업들에 총학생회가 주도적으로 참여했다는 것이다. 나종례 분회장도 “우리가 처음에 노조가 뭔지 아는 게 있었겠나. 학생들이 알려주고 도와줘서 도움이 많이 됐다”고 말했다. 총학생회가 처음에 고용불안을 상담을 하러 온 노동자들에게 노조설립을 권유하며 타 학교 노조를 소개한 것까지 생각하면, 노조의 조직화활동에 학교의 구성원인 학생들이 매우 큰 역할을 담당했다고 할 수 있다.

일반 학생들의 폭발적인 호응 역시 이미 한 차례 ‘전력’이 있다. 성신여대 총학생회는 2007년 임단협 투쟁 때에도 지지 서명운동을 벌였다. 유승현 총학생회장은 “올해만큼은 아니었지만 작년에도 상당한 호응이 있었다. 학내 선전전과 피케팅을 주로 하면서 서명운동을 진행했는데 2,000여 명의 학우들이 동참했다”며 “그 때의 경험이 이번에도 도움이 많이 됐다”고 말했다. 학생들이 청소 노동자들의 저임금과 열악한 근무환경에 대해 잘 알고 있던 마당에 ‘『벼룩시장』 구인광고 해고’까지 당하는 것을 보면서 너무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는 설명이다. 장성기 지부장도 “사실 우리가 할 수 있는 방법은 많지 않았다. 물리적인 건 힘들고 여론전밖에는……. 그런데 해고 방식이 너무 저질이었다”고 말했다. 비정상적이고 황당한 방식의 해고가 오히려 학생들의 반발을 불러일으킨 셈이다.

외부환경과 요인도 이번 투쟁에서는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유승현 총학생회장은 “투쟁 기간이 딱 수시 모집 기간이었다. 학교로서도 대외적인 이미지에 많은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성신여대 안에서는 학과 통폐합 때문에 학생들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6월 말쯤에도 학과 통폐합 문제로 총장실을 점거한 적이 있었다. 학교가 올해 삼성경제연구소에 컨설팅을 맡겨서 구조조정에 들어갔는데 총 52개 중 43개 학과를 대상으로 작게는 인원감축에서 크게는 통폐합까지 진행했다. 구조조정의 가장 큰 기준이 된 것은 ‘취업률’이었다”는 것이다. 

피터지게 공부해서 ‘취업’하라더니, 뒤에서는 ‘해고’하고 있었구나

학과 통폐합과 같은 중요한 일을 마음대로 결정하고 추진한 학교 측의 ‘일방통행’의 모습을 학생들이 이번 투쟁에 투사했을 것이라는 분석도 가능하다. 유승현 총학생회장은 “학생들과 아무런 논의 없이 일방적으로 ‘이제 니네 과 없어진다’고 통보했는데, 이번 해고도 마찬가지로 신문광고로 나오지 말라고 한 것 아닌가. 의사소통 구조에 대한 불만이 가장 기본적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부분은 학교 당국의 자가당착이다. 성신여대는 집중육성분야로 건강복지 전문가, 전문기자·아나운서, 정치커뮤니케이션 전문가, 여성 소자본 창업가 등의 전문인력 양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렇게 여성리더와 여성인재 육성을 내세우며 취업률을 기준으로 학과 통폐합을 단행했던 학교가, 노조를 만들었다는 이유로 같은 여성들인 청소 노동자들을 해고한 것이 학생들에게는 심한 모순으로 느껴졌다는 점은 졸업생들의 『경향신문』 광고에서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유승현 총학생회장은 “여성이 총장인 여대에서 여성인재를 키운다면서 여성 노동자를 해고하고 탄압하는 것에 대해 학생들이 느끼는 점이 많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당사자들이 한 목소리로 얘기하는 것은 사회적인 분위기의 형성이다. 장성기 지부장은 “촛불집회를 거치면서 비정규직이 많이 사회적 이슈화가 됐다. 사람들이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분위기가 된 것이 여론을 형성하는 데에 많은 도움이 됐다”고 분석했다. 나종례 분회장도 “예전 같으면 우리도 아무 것도 모르는 채로 그냥 그렇게 살았을 것”이라며 “같은 청소 일하는 사람들만이 아니라 다른 노조, 지방 대학의 학생들까지 와서 함께 하는 걸 보고 많이 바뀌었다는 걸 느꼈다”고 말했다. 유승현 총학생회장은 “일이 많았던 한 해다. ‘광우병 동맹휴업’이 성사돼서 책을 놓고 거리로 나서기도 했고 학과 통폐합 문제도 있었고, 그런 경험들을 통해 집단으로 내는 목소리가 얼마나 중요한지 학생들도 많이 깨닫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노동자도 사람이라는 ‘당당함’에 박수를

지금 성신여대 ‘어머니’들은 한창 임단협 투쟁 중이다. 신생 노조이다보니 많은 부분을 공공노조에 의존하고 있고, 점거농성 기간 동안 밀린 일과 쌓였던 피로에 몸은 고단하지만 휴게실에서 만난 청소 노동자들의 표정은 밝았다. 나종례 분회장은 투쟁 이전과 이후에 가장 크게 달라진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뭉치면 산다는 것”이라고 답했다. 건물별로 배치되어 있어 서로 잘 몰랐던 동료들과 친해지기도 하고 학교 직원들의 눈치를 보던 것도 한결 나아졌다.

“이번에 우리 성신여대가 정말 으쌰으쌰 한 번 제대로 한 거여”라며 지부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휴게실을 나서는 그의 뒷모습은, 그들이 이번 투쟁을 통해서 얻은 가장 큰 선물은 노동자로서 사람다운 대접을 받게 됐다는 ‘당당함’이라는 것을 말해 주는 듯했다. ‘이기는 경험’을 찾아보기 힘든 최근 비정규직 투쟁에서, ‘어머니’들과 ‘수정이(성신여대 학생들이 자신들을 부르는 애칭)’들의 아름다운 연대로 씨앗을 뿌려 싹을 틔운 성신여대분회가 단단하고 건강한 나무로 자라나길 진심으로 소망한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3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