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서 일하는 노동자에게 의자를!

노동사회

서서 일하는 노동자에게 의자를!

편집국 0 3,959 2013.05.29 10:22

2006년 서비스 여성노동자의 건강권 보호를 위한 의제 개발에 들어간 지 2년 만에, 그리고 올해 7월22일 “서서 일하는 노동자에게 의자를” 국민캠페인단이 출범한 지 두 달 만에 마산의 대우백화점과 사천휴게소에 의자가 놓였다. 의자가 놓인 것을 알리는 『오마이뉴스』 기사가 포털 사이트 다음에 올라오자 하루만에 500여 명이 댓글을 달았다. 대부분의 네티즌은 이 작은 변화를 진심으로 환영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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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서 일하는 노동자에게 의자를" 캠페인 기사에 달린 댓글들 ]

이미 노동부에서는 사업주들의 의무를 적극 알려나가겠다고 밝혔다. 지난 9월26일에는 백화점협의회와 체인스토어협회 등 유통서비스 분야의 사업주 단체와 간담회를 갖기도 했다. 전국에서 20여 개 지역이 스스로 캠페인단을 조직하여 활동하고 있다. 여성단체들이 적극적으로 결합하고 있으며, 그 중심에 민주노총 지역본부가 있다. 민주노총에서는 조합원 가족들과 함께 하기 위한 방안도 고민 중이다. 네티즌뿐 아니라 시민들의 반응도 뜨겁다. 『위기탈출 넘버원』이나 뉴스에서 캠페인 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며, 서슴없이 서명에 동참해 준다.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 캠페인 스티커를 붙이는 시민도 꽤 많다. 곳곳에서 캠페인을 벌이다 보니 국민캠페인단에서 만든 선전물이 이미 동나서 새로 제작에 들어갔다. 사업이 잘 되니 신이 난다. 기획회의에서 만나는 서비스연맹 동지들의 얼굴은 항상 밝다. 많은 관심과 격려를 보내주시는 동지들과 네티즌, 그리고 시민여러분께 고마울 뿐이다. 캠페인은 11월까지 하기로 계획되어 있다. 우리는 10월 중에 서울에서 의자가 놓일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을 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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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22일 '서서 일하는 서비스여성노동자에게 의자를' 국민캠페인단 출범식 모습. ▶ 서비스연맹 ]

2년 전, 그들은 왜 의자를 놓겠다고 나섰을까

2년 전 노동환경건강연구소에서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위원회 취약노동분과에 이 사업을 제안했다. 노동안전보건위원회는 적극적으로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정말 고맙게도, 서비스연맹이 이 사업을 함께 하겠다고 나섰다. 

하지만 반대가 없지는 않았다. 그 때 가장 많이 들었던 반대 주장이 있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이렇다. 하루에 7명씩 사망하는 나라에서 의자 놓는 일을 하자니 제 정신이냐는 얘기였다. 우리나라가 세계 12위의 경제대국이라지만, 산업재해로 인한 사망은 비슷한 경제수준의 나라들에 비추어 너무 높은 것이 사실이다. 그런 상황에서 의자 놓는 운동을 하자니 터무니없게 느껴졌을 법도 하다. 하지만 우리는 생각이 달랐다. 바로 그 때문에라도 의자 놓는 운동 같은 것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국민들은 물론 노동자들도 산재사망이라는 얘기를 하면 혀를 쯧쯧 차며 우리나라의 안전보건 실태를 비판하지만, 자신과 직접 관련 있는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 것이 보편적이다. 그 이유는 ‘노동자 건강권’에 대한 우리 사회의 책임의식이 아직 형성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산업재해는 노사 간의 문제다. 하지만 사회가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보호조건을 약하게 만드는 한 산업재해는 예방할 수 없다. 비정규직은 정규직보다 많이 죽는다. 여성은 허드렛일이나 해야 한다고 보는 이상 여성의 몸과 정신은 고통을 당할 수밖에 없다. 청소용역 여성노동자들을 보라. 노동을 한다는 것은 자신의 몸을 고생시키는 것이며, 자존심을 버려야 노동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상 노동자 건강권이란 존재할 수 없다. 영세사업장과 이주노동자들도 그러하다. 산업재해는 개별 사업장의 문제만이 아니라 사회의 문제이고, 사회적 견제기능이 존재해야 노동자건강권은 보장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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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캠페인단의 일반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캠페인과 서명운동은 큰 호응을 얻었다. ▶ 서비스연맹 ]

지금, 바로 이 자리에서 시작해야 할 건강권 운동

불행하게도 한국사회는 1997년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신자유주의가 확산되었다. 비정규직이 증가하고 사회의 양극화는 더욱 심해져 갔다. 일자리는 갈수록 노동자들에게 위험을 강요했다. 스스로의 건강을 지킬 수 없는 노동자 집단이 증가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힘든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건설하지 못하거나, 조직을 건설하였어도 힘이 없고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이들은 여력이 없어서 건강권 운동은 사치일 뿐이라고 스스로 입버릇처럼 얘기했다. 결코 그들 자신이 운동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2006년에 우리는 세 가지 목적을 가지고 의자 놓는 운동을 제기했다. 첫째는 제조업 대규모 사업장 노동자의 건강권이 아닌 비제조업 비주류 노동자의 건강권을 얘기하자는 것이 목적이었다. 둘째는 우리 사회가 공감할 수 있는 건강권 문제를 발굴하고, 노동자 건강권에 대한 사회적 지지와 연대를 일구는 것이 목적이었다. 셋째는 노동자 건강권은 여력이 있을 때 챙기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중요한 과제임을 노동운동 내부에 보여주는 것이 목적이었다. 

힘이 먼저가 아니라 과정이 힘을 만든다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위원회와 서비스연맹은 서비스여성의 건강권 문제를 먼저 다루기로 했다. 의자 놓는 사업은 이때부터 결정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서비스 여성 노동자에게 의자를”이라는 슬로건으로 사업을 하기로 확정되기까지는 1년 넘는 시간이 걸렸다. 앞서 말했던 세 가지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준비기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초기 몇 달간은 외국 노동조합의 건강권 운동 사례를 수집하고 분석했다. 의자 놓는 운동은 영국에서 왕성하게 진행되었고, 미국에서는 화장실을 자유롭게 가는 운동이 전개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밖에도 폭력을 근절하기 위한 캠페인 등 다양한 운동사례를 살펴볼 수 있었다. 가장 참고가 된 사례는 영국서비스노조인 USDAW였다. 이 노동조합은 백화점이나 마트뿐만 아니라 정육점이나 슈퍼마켓 등 길거리의 흔한 각종 상점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조직하여 그 규모가 34만 명에 이르는 대규모 산별노조이다.

USDAW는 상점의 쾌적한 온도, 근골격계질환, 의자와 화장실, 그리고 식수 등 일상적이고 다양한 안전보건 활동을 전개하고 있었으며, 이를 통하여 노동조합이 조직화에 성공하였다고 평가하고 있었다. 노동조합에 힘이 있을 때 건강권을 지킬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건강권을 지키는 과정이 조합원들에게 조합의 필요성을 입증하고 조직을 강화하는 과정이었다는 것이다. 추후 이 사례는 서비스연맹의 대의원들에게 의자 놓는 사업의 필요성을 분명하게 이해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상상만으로도 즐거웠던 ‘내 일터에 의자 놓기’

그 다음에는 우리나라의 백화점과 마트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직접 만나고 다녔다. 노동자들이 어떤 문제들을 겪고 있으며, 그들이 정말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문제는 무엇인지 확인하는 것이 필요했다. 백화점 1층에서 일하는 화장품 판매직 여성노동자들과 할인마트의 계산원 노동자들을 많이 만났다. 이들은 너무나 많은 문제를 제기했다. 서서 일하는 것은 오히려 순위에서 한참 뒤처지는 문제였다. 고객과 회사로부터 받는 정신적 스트레스와 그로 인한 우울증이 가장 심각한 문제였다. 휴식을 제대로 취하지 못하고 휴가를 제대로 못가는 것도 우선순위가 높은 문제였다. 근골격계 통증도 너무 고통스럽다고 했다. 

그런데 산업안전보건법에 의자에 앉아 쉴 권리가 있다는 것을 노동자들이 알게 된 순간, 그들은 너무도 놀라워하면서 의자를 놓게 된다면 큰 변화가 올 것이라는 얘기를 들려주었다. 자신들의 일터에 의자가 놓일 수 있고 앉을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상상하는 것은 매우 즐거운 일이었다. 외국의 운동경험을 볼 때에도 의자를 놓는 것은 노동자에 대한 존중을 뜻하며, 노동자에 대한 폭력을 예방하는 데 기여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서비스 노동자들을 실제로 만나면서 우리나라에서도 먼저 의자를 놓도록 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감정노동의 문제로 나아갈 수 있겠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이때부터 민주노총과 서비스연맹은 전문가들로 자문단을 구성했고, 우리나라에서 서비스 노동자들이 서서 일하는 것의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조사했다. 그것이 2008년 초의 일이다. 조사결과는 6월에 정리되었고, 7월에 국민캠페인단을 발족하기에 이르렀다. 

연대와 조직화를 위해 건강권을 주장하라

이명박을 반대하는 촛불의 힘은 우리 캠페인단에게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우리 사회의 가치가 무엇인지 보여주었고, 우리의 캠페인이 갈 길을 보여주었다. 국민캠페인단은 민주노총과 서비스연맹이 ‘반노조 정서’를 극복하기 위해 옷을 갈아입은 것이 아니었다. 의자 놓는 사업이 애초부터 국민캠페인으로 기획된 것은 고객운동이 필수적이었다는 점도 있지만, 노동자의 건강권에 대한 우리 사회의 시각을 돌아보고 우리 사회의 책임을 일깨우고자 한 것도 있었다. 촛불은 우리에게 희망을 보여주었다. 민주노총 지역본부마다 바쁜 와중에도 적극적으로 지역 캠페인단을 조직하고 있는 것도 촛불의 경험이 크게 작용하였을 것으로 본다. 

우리는 지금 캠페인을 통해 민주노총과 서비스연맹의 이름을 자랑스럽게 얘기한다. 백화점과 할인마트의 노동자들을 만날 때에는 연락처를 받아서 노동조합 가입을 권유한다. 그들은 민주노총과 서비스연맹의 이름을 친근하게 느끼고 있다. 물론 이들이 노동조합에 가입하는 수는 얼마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러한 사업이 유통서비스 분야의 노동자들을 조직하는 우리의 활동모델이 될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있다. 현장에서 노동조합이 왜 필요한지 보여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도구로서의 건강권 운동에 눈을 뜨고 있는 것이다.

캠페인은 11월까지 진행할 것이며, 민주노총과 서비스연맹, 그리고 캠페인에 참여한 시민사회단체, 캠페인을 기획하고 연구를 진행한 자문단이 함께 모여 워크숍을 가질 계획이다. 애초 목적한 유통서비스 여성노동자의 감정노동을 얘기하기 위한 2단계 사업을 시작해야 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서서 일하는 여성을 매개로 이루어진 연대를 소중하게 여기고 여성노동자 건강권 보호를 위한 발전적 형태를 고민할 것이다. 그리고 민주노총과 서비스연맹은 이러한 건강권 사업과 조직강화사업의 연결고리를 찾아내고 보다 활성화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할 것이다.

누구나 한 번쯤은 생각했을 ‘당연함’을 현실로!

국민캠페인단을 구성하기 위해 시민사회단체와 처음 만나는 날, 누구나 한 번쯤은 이런 사업을 해봐야겠다고 구상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서서 일하는 노동자에게 의자를 제공하는 것은 그만큼 흔한 문제 중의 하나였을 뿐이다. 따라서 그것이 이렇게 국민캠페인으로 성과를 거두게 되었다는 것도 놀랍지 않다. 그저 당연한 것이 당연하게 되었을 뿐이라는 느낌이다. 

다만, 우리는 이 사업을 통해 노동조합을 더욱 강하게 만들고자 하는 목표를 실현할 수 있는 방법을 깨달았다. 노동자의 건강권을 우리 사회와 나누려는 기획이 실현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급하지 않은 호흡으로 주변의 동의를 구하면서 차곡차곡 쌓아올린 사업의 방식을 소중하게 여기게 되었다. 이제 우리는 또다시 이런 사업을 기획하고 추진하려고 한다. 우리 주변에 그럴 만한 문제들은 널려있지 않은가? 

  • 제작년도 :
  • 통권 : 제13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