엇나간 시도와 잘못된 접근

노동사회

엇나간 시도와 잘못된 접근

편집국 0 3,748 2013.05.29 10:20

현대자동차(현대차)와 기아자동차(기아차)의 노사교섭이 일단락되었다. 임금과 단체협약이 모두 다루어졌지만 이번 현대·기아차 임금단체협상에서 단연 관심을 끈 것은 ‘주간 연속 2교대제’(현재의 주야 맞교대 근무에서 심야근무를 없애고 주간 2교대로 근무형태를 바꾸고자 하는 시도)였다. 그런데 현대차와 기아차 노사 교섭에서 주간 연속 2교대제는 2009년 9월로 유보되었다. 2009년 1월에 시행하기로 했던 기존의 노사합의가 이번 임단협 교섭에서 다시 9개월 유보된 것이다.

현대차 노사교섭에서는 ‘8시간 + 8시간’ 근무형태로의 변경문제를 2013년까지 재논의하기로 했는데, 그 시기를 구체적으로 못 박지는 않았다. 기아차 노사교섭에서는 2009년 9월1일에 전 공장 전면 시행을 명시하였지만, 근무형태와 월급제 등에 대해서는 어떤 합의도 도출하지 않았다. 실제 필요한 세부 내용들은 대부분 새로운 교섭 단위를 구성하거나 논의를 유보하는 방식으로 처리하였다.

형식적 합의에 머문 주간 연속 2교대제 교섭 결과 

다음 [표]에서 보다시피 이번 현대·기아차 합의에는 주간 연속 2교대제의 주요 쟁점에 대한 구체적인 선택이 담겨져 있지 않다. 현대차가 조금 더 세부적이긴 하지만 근무형태와 임금보전 방식에 대해서 합의한 것일 뿐, 실제 주간 연속 2교대제를 시행할 수 있는 세부 내용은 대부분 관련 ‘위원회’를 만드는 방식으로 이월하였다. 기아차는 세부 내용에 대해서는 아무런 합의를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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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는 이러한 합의 결과가 나오게 된 배경을 구성적으로 살펴보면서, 주간 연속 2교대제의 취지와 목적이 어떻게 변색되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교섭 결과에 대한 단순한 평가보다는 주간 연속 2교대제의 교섭과 협상이 왜 이와 같은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었는지를 살펴볼 것이다. 이 글이 향후 노동시간과 생산체제에 대한 노동조합의 고민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해서 함께 고민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노사는 왜 하려 할까? 해야 할까?

현대차 노사가 2005년 주간 연속 2교대제를 합의한 이후 기아차에서도 유사한 합의를 하였다. 그리고 쌍용차와 GM대우차에서도 관련한 노사합의가 이루어졌다. 르노삼성차에서는 자체적인 방식으로 주간 연속 2교대제를 도입·시행하고 있다. 이처럼 주간 연속 2교대제는 이미 국내 자동차 완성차 5사의 대안적 근무형태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형국이다. 언제 어떤 방식이냐의 문제만 남아 있는데, 이런 점에서 현대차와 기아차의 주간 연속 2교대제 교섭은 많은 주목을 받았다. 

그렇다면 왜 완성차 노사들은 주간 연속 2교대제를 실시하려고 할까? 일부에서는 이번 교섭 결과를 보고 “주간 연속 2교대제는 물 건너 간 것 아니냐”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지금 현실은 자본도 노조도 대안적 근무형태를 찾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다. 무엇보다 해외생산체제의 확장과 구축 속에서, 국내 생산체제의 대안을 모색해야 하는 시점이다. 해외공장이 늘어나고 해외 생산규모가 확대되면 될수록 국내 수출 물량이 줄어들 개연성이 높기 때문이다. 현대·기아차 그룹으로서는 미국, 중국, 인도, 터키에 이어 동유럽과 러시아, 브라질 등에도 진출할 계획을 갖고 있기 때문에, 글로벌 생산체제 속에서 국내 공장들의 입지를 재정비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다. 

이것은 단지 자본만의 고민은 아니다. 국내 공장의 지위와 역할이 곧 국내 생산체제에 영향을 미치고, 이것은 노동자들의 고용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준다. 이에 노동조합은 이런 상황에서 노동자의 고용을 장기적으로 확보하는 동시에, 고령화하고 있는 인력 구성에 걸맞은 작업방식과 그 체제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국면이다. 그러므로 주간 연속 2교대제의 문제의식과 접근은 여전히 유효하다. 노사가 모두 쉽게 버릴 수 있는 카드는 아니다.

‘인간화된 작업체제 도입’ 목표와 ‘노사 샅바 싸움’의 현실

그런데 주간 연속 2교대제에 접근하는 방식과 목표 설정에는 사뭇 차이가 있다. 그 중에서도 주간 연속 2교대제를 ‘노사의 주고받기용 매개’로 이해하는 경향이 많았다. “건강한 일터”(△심야노동 폐지, △노동시간 단축, △삶과 일터의 조화 등)가 노동자들의 이해를 표현한다면, “새로운 생산체제”(△생산성 향상, △효율성 제고, △품질 향상 등)는 자본의 이해에 속하는 것이라는 전제 위에서, 노사가 쌍방의 이해를 실현하기 위해 상대방의 이해를 수용·조정할 수 있는 매개가 바로 주간 연속 2교대제라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에 근거한다면 주간 연속 2교대제는 그 자체가 노사가 서로의 이해를 배려하면서 새로운 노사관계를 만들 수 있는 전기가 될 수도 있다([그림1]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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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문제 설정에 의하면 생산체제의 문제는 자본의 이해에 속하는 문제로 전제된다. 그렇기 때문에 작업장 체제와 작업방식에 대한 ‘인간화’는 애초부터 배제되어 있거나 생산성의 하위 범주로서만 다루질 수밖에 없다. ‘노동의 인간화’를 말하지만 그것은 자본이 의미하는 바의 생산조직 혁신, 편성효율 제고, 생산의 유연화를 전제하거나 그것과 병행되어야 하는 것으로 설정되는 것이다. 

하지만 주간 연속 2교대제를 ‘노동의 인간화’를 전면화하고 유연생산체제를 극복하는 계기로 활용하고자 했던 인식도 있다. 세계화 시대에 맞춰 ‘물량 중심의 생산체제’를 ‘고부가가치 중심의 생산체제’로 전환하면서, 글로벌 시대에 걸맞은 국내 공장들의 위상을 재정립하는 동시에 장기적 고용전망을 확보하려는 견해가 그것이다([그림2] 참조). 이러한 견해에 따르면 장시간 노동과 상대적 고임금의 생산·노사관계로부터 탈피하여, 질적 생산체제를 구축하고 노동의 인간화를 실현하는 것이 주간 연속 2교대제의 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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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경우 생산체제의 영역을 자본의 이해가 우선하는 곳으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생산의 영역에서도 노동의 이해가 관철되어야 하고, 자본의 전략은 새로운 가치체계로 재구성되어야 할 문제로 바라본다. 물량에 집중했던 생산체제를 질을 담보하는 생산체제로 전환하자는 설정은, 구상과 실행이 분리된 포디즘의 한계를 극복하는 동시에, 자동화·기계화로 대표되는 유연생산방식의 중단과 새로운 생산체제로의 전환이라는 내용을 포함한다. 작업방식에서 노동을 배려하는 수준이 아니라, 노동과 자본이 생산방식과 작업방식을 ‘공동결정’하는 새로운 차원을 개척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문제 설정에 따를 경우 사용자는 노동을 생산요소로 인식하는 자세에 탈피하여, 인적 요인을 기업의 자산으로 이해하는 발상의 재구성부터 시작해야 한다. 노동조합을 생산, 투자, 경영의 파트너로 인식하면서, 노동을 관리의 대상에서 ‘운영의 주체’로 수용하는 대전환이 있어야 한다. 이를 통해 노동배제적, 기술혁신적 관점의 생산방식 도입과 작업장 체제에서 탈피하는 것이 주간 연속 2교대제 논의과정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이러한 문제설정은 마찬가지로 노동자(노조)들의 변화도 요구한다. 장시간 노동체제에 기반하여 임금과 고용을 확보하려는 전략을 수정하여, 노동의 질 향상과 인간다운 삶에 대한 가치 실현을 목적으로 하는 가치의 전환이 필요한 것이다. 생산에 대한 직접적인 참여와 개입에 대한 거부감을 극복하면서 노동자 개입과 통제 전략을 수립하는 한편, 노동의 가치를 증진할 수 있는 생산방식과 작업장체제를 형성하는 데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주간 연속 2교대제를 둘러싼 교섭의 현실은 ‘주고받기’로 점철되었다. 이미 교섭의 초기에서부터 노동시간 단축과 생산성 향상, 임금보전과 물량 유지는 노와 사의 이해를 표현하는 개념으로 받아들여졌다. 자동차 산업에 새로운 가치, 새로운 철학을 심으면서 그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생산체제, 작업장체제를 만들고자 하는 문제설정은 갈수록 왜소해졌고, 현실의 접근은 ‘어느 만큼을 주고 어느 만큼을 받을 것인가’의 기 싸움, 샅바 싸움으로 점철됐다.

노조의 결정적 후퇴였던, 신규 설비투자 요구 철회 

초기 두 문제설정 사이의 간극은 그리 크지 않았다. 어떤 문제설정에 입각하더라도 노동자들의 건강을 해쳤던 심야노동을 폐지함으로써 노동시간을 단축하여 일과 가정을 병행하고 장기적인 고용안정을 확보한다는 차원에서, 주간 연속 2교대제는 노동의 인간화에 한 발 더 가까이 가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본이 심야노동을 폐지하는 대가로 ‘생산성과 효율성의 제고’를 분명하게 제기하면서, 문제설정의 차이는 접근과 모색의 차이로 이어졌다. 

자본은 노동자들의 일할 의욕을 고취하는 과정이 곧 생산성 향상과 효율성의 제고로 이어지기를 바랐다. 자본은 자신이 구축한 토대 위에서 노동의 인간화의 몇몇 항목들이 추가되는 정도에서만 접근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노동자(노조)는 기존의 노사관계 및 생산체제를 근본적으로 뒤흔들 수 있는 ‘혁명적 전환’을 시도하지 못했다. 노동의 인간화와 생산체제의 질적 전환이라는 원대한 목표를 설정하지 못한 노동자(노조)들은, 현실의 역할 속에서 ‘손에 쥘 수 있는 문제’에 보다 천착하는 모습을 보였다.

‘손에 쥘 수 있는 것을 쥐기’ 위한 접근은 노조(정확하게는 금속노조 기업지부)의 후퇴로 이어졌다. 첫째, 가장 결정적인 후퇴는 ‘설비투자 요구’를 사실상 철회하는 데서 나타났다. 주간 연속 2교대제 논의 초기에는 <심야노동의 폐지 - 생산성 향상 - 신규투자>가 하나의 쌍으로 다루어졌다. 노조는 “심야노동 폐지로 인한 물량 부족분을 메우려면 투자를 하라”고 자본에게 요구했다. 하지만 자본은 “공장증설과 같은 신규투자는 불가하다”는 입장을 끝까지 고수했다. 

자본은 생산물량 유지와 생산성 향상이 필요하다는 점을 역설할 뿐이었다. 기아차의 경우 실제 생산물량이 그리 많지 않은 상황이어서 노조로서는 설비투자에 대한 요구를 강력히 펼칠 수 없는 조건이었다. 반면 현대차 노조는 전문위원회 논의 초반에 노동조합이 설비투자와 인력충원을 요구했다. 하지만 요구의 강도는 그리 세지 않았다. 그리고 자본의 버티기가 훨씬 강력했다. 결과적으로 노조는 신규투자 요구를 끝까지 고수하지 못했다.

노조 집행부가 설비투자 요구를 계속 제기하지 못한 배경에는 현장 노동자들과 현장조직들의 관심사가 ‘설비투자’보다는 ‘임금보전’에 모아진 탓도 적지 않다. 일부 현장조직들은 ‘3무(無)’를 제기했다. 이는 △임금 저하, △노동강도 강화, △연장근로 이 세 가지가 없어야 한다는 의미다. 일반적인 원칙이라고 볼 수 있지만, 이 중에서도 특히 ‘임금보전’이 부각되면서 주간 연속 2교대제에 대한 노동자 힘의 결집은 왜곡되어 버렸다.

고용안정 기반인 ‘물량’ 변동 두려움이 발목 잡아

사실 현장 노동자들이 임금보전을 주요한 문제로 보기는 했지만 주간 연속 2교대제의 핵심 전제로 보았다고 하기는 어렵다. 현대차와 기아차 현장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임금보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은 매우 크지만 임금의 크게 감소하지만 않는다면 근무형태 변경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의견이 다수였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임금보전을 둘러싼 쟁점 형성은 현장 노동자들이 제기한 절박한 문제였다기보다는, 현장조직들의 그릇된 논의 설정과 몇 년간 되풀이돼온 경제적 보상에 익숙해진 현장관행과 활동방식 탓으로 볼 수 있다.

물론 임금보전이 주간 연속 2교대제 논의에 발목을 잡은 데에는 근본적으로 자본이 설정한 구도가 크게 작용했다. 자본은 “노동시간이 줄어드는 만큼 임금도 줄어들어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이것은 일석이조의 효과를 낳았다. 무엇보다 ‘생산물량의 보전’과 ‘임금의 보전’을 하나로 연결시켰다. 현장조직과 노조 집행부들은 이 구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미 오래전부터 ‘물량 = 고용’이라는 인식이 크게 작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현장의 노동자들도 자기 공장, 자기 라인의 물량에는 매우 민감하게 반응했다. 

‘임금 감소’는 일정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던 노동자들도 ‘물량 감소’로 이어지는 것은 받아들이지 못했다. 물량 감소는 곧 고용의 불안이자 생존의 불안으로 이어진다는 인식이 팽배한 상태였다. 이에 따라 노동조합의 설비투자 요구는 뒷전으로 밀렸고, 노동시간 단축과 생산성 향상만을 하나의 쌍으로 묶는 효과도 낳았다.

현장조직들과 노조 집행부는 자본이 제기한 물량 유지라는 현실의 벽을 넘지 못했다. 2000년 이후 고용안정을 위해 공장별 물량을 확보하는 데 치중했던 노조 활동과 현장 투쟁의 결과물은, 주간 연속 2교대제 논의와 교섭에서도 그대로 반영되어 나타났다. 자본 역시 생산의 새로운 질적 체제의 구축이라는 고민보다 ‘물량 중심 대응 체제’를 여전히 유지하려는 자세를 보였다.

단기적 현실화 가능성으로 협소화된 노조측 인식 

설비투자에 대한 논의가 사라지고 물량 유지를 전제로 한 임금보전 문제로 논의구도가 형성되면서, 생산량과 근무형태는 그야말로 ‘현실 가능성’에 대한 접근으로 전환되었다. 현재의 설비 능력으로 운용 가능한 생산능력(CAPA)과 실제 생산량의 차이가 점검되었고, 그 차이를 메울 수 있는 다양한 방법들이 제시되었다. 자본은 △편성효율 제고, △UPH(시간당 생산량) 상승, △HPV(1대당 투입시간) 축소, △전환배치 등을 주요하게, 그리고 노골적으로 요구하였다. 이러한 요구들 중에는 1990년대 이후 완성차 노동조합이 투쟁과 단결로 구축한 현장의 조직력, 장악력을 훼손하거나 잠식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는 것들이 적지 않았다. 

자본의 이러한 요구들은 당연히 노동조합 집행부와 현장 대의원들의 반발을 샀다. 현장조직들은 자본의 이러한 공세가 “노동강도 강화”를 내포하고 있다며 강력하게 반발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반발은 ‘임금보전을 위한 생산물량 유지’를 이미 전제로 받아들이고 있는 상태에서는 앞뒤가 맞지 않는 것이었다. 생산물량의 유지가 노동강도 강화로 이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설비투자를 통한 공장증설이나 라인의 재편성이 필요한 일이었고, 이것은 임금 문제와 별도로 다루어져야 했다. 그런데 노조, 현장조직들은 생산물량과 임금을 논리적으로도 실천적으로도 분리해내지 못했다. 오히려 일부 현장조직들은 생산물량과 임금을 연결하고 임금보전을 위해 생산물량 확보가 관건인 것처럼 선전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러한 구도 속에서 주간 연속 2교대제가 설정했던 두 가지 문제의식은 근본에서부터 흔들렸다. 즉, △심야노동 폐지를 통한 건강권 확보와 실질 노동시간 단축과, △노동의 인간화를 실현할 수 있는 생산체제의 재편과 재구성 등의 문제의식 말이다. 

‘현 체제 유지’의 양손을 들어 준 완성차 노사 

설비투자가 전면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에서 생산물량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기존 공장의 설비 가동을 최대화하는 수밖에 없다. 이제 남은 것은 노동조합이 그 수준을 얼마나 받아 들이나일 뿐이었다. 노동강도의 대폭적인 강화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노동조합으로서는, ‘근무형태’에서 후퇴하는 수밖에 다른 대안이 없었다. 임금은 생산물량의 유지와 근무형태의 변경 속에서 적절한 방식으로 보전하는 방안을 찾으면 되는 일이었다. 이번 교섭을 통해 현대차에서는 그것이 △8시간 + 8시간 (+ 1시간) 근무형태 변경, △근무형태 변경으로 인해 줄어드는 4시간의 노동시간 중 3시간은 임금보전, △나머지 1시간은 2조 잔업으로의 반영 등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결과 속에 생산체제의 재편과 혁신에 대한 논의들이 완전히 실종되었다는 점은 매우 뼈아프다. 자본은 생산성 향상과 효율성 제고를 염두에 두었고, 노동조합은 노동의 인간화를 염두에 두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기는 했지만, 노사 모두 기본적으로 양적 생산체제에서 질적 생산체제로의 전환을 지향했다는 점에서, 한국 자동차 생산방식의 대전환을 모색하는 주요한 계기가 바로 주간 연속 2교대제 논의였다. 그런데 이 내용들이 협상 결과에서는 모두 유실된 것이다. 

애초 논의에서 생산성 향상에 대한 노동의 입장은 기술적·기계적 의미나 양적 지표의 개선만이 아니라, 노동의 질을 개선하는 의미까지 포함하고 있었다. 즉, UPH를 올리고 HPV를 낮추는, 그것의 결과 혹은 전제로서 편성효율을 개선하는 그런 기술적 의미의 생산성으로만 한정된 의미가 아니라, 노동자의 ‘숙련’에 기초한 작업방식, 그것을 뒷받침하는 기술체제의 전환까지도 내다보았던 측면이 있다. 그것은 비/반숙련 노동자를 이용하여 구상과 실행을 분리하는 노동체제를 구축한 포디즘적 생산방식과의 절연을 시도하는 것이기도 하였다. 그런데 ‘물량유지-임금보전’이 주요한 축으로 등장하면서 정작 생산체제 문제는 전혀 다루어지지 않았다. 노사 모두 ‘현 체제의 유지’에 손을 들어준 것이다. 

끝나지 않은, ‘노동의 인간화’로서 주간 연속 2교대제 논의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지부장 윤해모)는 올해 임금 및 단체협약의 두 번째 잠정합의안 수용 여부를 묻는 조합원 찬반투표를 25일 실시한 결과, 전체 조합원 4만 5,089명 가운데 4만 2,694명(투표율 94.69%)이 투표해, 찬성 2만 3,266명(54.49%), 반대 1만 8,620명으로 가결됐다고 밝혔다. 이날 최종 합의안은 조합원 투표에서 부결됐던 1차 잠정 합의안보다 ‘격려금 100만 원’만 늘어난 것이다. 현대차와 마찬가지로 1차 잠정합의안 가결에 실패했던 기아자동차 노사는 26일 ‘격려금 60만 원’을 추가 지급하는 조건으로 2차 잠정 합의안을 이끌어냈고, 30일 조합원 투표를 실시하여 70%가 넘는 높은 찬성률로 가결되었다.

이로써 주간 연속 2교대제 실시는 2009년 9월로 유보되었다. ‘설비투자에 대한 자본의 약속’을 분명히 이끌어내지 못하고, ‘생산체제의 인간화’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한 채, ‘잔업을 허용하는 타협’에 머무른 것이다. 이는 부족하고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것이 끝나거나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희망의 싹은 아스팔트 위에서도 피어나고, 아무리 작은 희망의 불씨라도 살려내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가장 덩치가 큰 현대차지부가 ‘8 + 8 + 1’을 받아들이는 바람에 향후 다른 완성차 기업지부들의 교섭에서 이를 뒤집기 쉽지 않을 테지만, 현대차를 제외한다면 여전히 근무형태 문제는 해소되지 않은 쟁점이다. 또한 △월급제(임금제도) 개편, △M/H 개선, △(부품)협력업체 노동시간 단축 및 교대제 변경 등의 문제에 대해 보다 세부적인 논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므로 노동의 인간화를 실현하고자 하는 노동조합의 노력은 계속되어야 한다.

무기력했던 금속노조,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중요한 것은 노동조합의 전략이다. 변화의 폭을 어디까지 상정할 것이냐에 대한 전략적 논의가 있어야 한다. 노동시간과 교대제를 변경하고 심야노동을 폐지하려는 노력을 ‘노동시간과 임금’의 범주 안에서만 다룰 것인가, 아니면 ‘생산체제와 작업방식’까지 아우르면서 진행할 것인가부터 분명해야 한다. 필자는 후자의 구도로 다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구도 속에서 임금은 중요한 문제이긴 하지만 핵심적인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현재의 노동강도를 ‘적정 노동강도의 기준’으로 삼는 것도 적절하지 않다. 생산체제와 작업방식을 다루면 노동이 불리해진다는 예단은 완전히 틀렸다. 자본의 방식과는 다른 노동의 방식의 이야기를 할 때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부품협력업체까지 포괄하여 접근하려는 의지를 확고히 한다면, 이제부터는 ‘주간 연속 2교대제’라는 범주를 버려야 한다. 부품협력업체들의 교대제 형태는 매우 다양하고 또 일률적으로 심야노동을 폐지하기가 매우 어렵다. 주야맞교대 사업장에서나 검토할 수 있는 주간 연속 2교대제라는 설정으로는 전체 부품사까지 포괄하는 대응을 만들어내기 어렵다. ‘노동시간 단축과 생산체제의 인간화’로 문제 설정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금속노조의 역할이다. 완성차의 주간 연속 2교대제 협의에 금속노조는 거의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했다. 만약 이러한 상황이 향후에도 그대로 이어진다면, 금속노조는 올해와 같은 교섭 양상을 계속 반복하며 어려운 상황을 맞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내년에는 기업지부를 지역지부로 전환해야 하고, 금속노조는 지금부터 그것을 예비해야 한다. 따라서 앞으로 진행될 현대·기아차의 이후 협의나 각종 위원회 설치는 현대차와 기아차 지부의 자체적인 논의로만 결정되어서는 안 된다. 기업지부의 결정사항을 이런저런 이유로 합리화해주는 그런 금속노조가 아니길 바란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3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