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운동이 다시 희망이 되기를 꿈꾸며

노동사회

노동운동이 다시 희망이 되기를 꿈꾸며

편집국 0 2,895 2013.05.29 10:19
 

shworker_01.jpg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신자유주의 금융자본주의체제가 파산을 예고하고 있다. 그동안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노동의 비정규·저임금화, 노동권 무력화의 과정이었다. 민주노총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미국식 신자유주의 노동유연화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폭력적인 노동착취와의 지난한 투쟁을 진행해왔다. 그러나 무차별적으로 쏟아지는 자본의 맹공격을 방어하기에는 역부족이었음을 시인하지 않을 수 없다. 

워낙에 급진적으로 진행된 신자유주의 프로그램은 대대적인 구조조정과 함께, 노동의 비정규직화, 임시직화를 유도했다. 또한 정리해고법, 기간제법, 파견법, 노사관계선진화법 등의 이름으로 노동자를 배제한 속에서 노동법 개악이 이루어져왔다. 그 결과 비정규직이 전체 노동자의 절반이 넘는 기형적 구조가 형성되었으며, 저임금·고용불안이 구조화되면서 내수경제를 위축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

그럼에도 ‘시장’만을 전가의 보도처럼 여기는 자본과 시장독재정부는 노조활동 자체를 말살하기 위해 복수노조 시 교섭창구단일화와 노조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를 추진하고 있고, 비정규노동자의 활용기간을 연장하고 얼마 안 되는 법정최저임금을 깎으려고 혈안이고, 국민의 기본적 삶과 직결된 사회공공부문까지 사유화하기 위해 안달이다.

타성과 관료성 뒤집을 ‘혁신’이 필요해

민주노총은 이러한 신자유주의화 과정 속에서 노동운동의 이념적 좌표를 명확하게 정립하지 못했다. 또한, 비정규직 철폐투쟁을 전개하면서도 국민의 광범위한 지지를 끌어내지 못했다. 그런 가운데 역대 시장정부들은 민주노총을 ‘대기업정규직노조’, ‘귀족노조’로 매도하면서 노·노 갈등을 야기하는 데 이용해왔다. 그로 인해 국민들 속에 “민주노총은 이기주의적 집단”이라는 부정적 인식과 오해가 확산되었다. 이러한 국민인식에는 민주노총이 자초한 책임도 분명히 있다는 점에서, 이후 반신자유주의 투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강도 높은 ‘혁신’이 요구되고 있다.

민주노총위원장에 당선되면서 내부혁신을 위해 현장대장정을 진행했지만, 여전히 혁신에 대한 요구는 더욱 높아지고 있다. 그럼 무엇을 혁신할 것인가?

첫째, 나를 포함한 간부들과 활동가들의 타성과 관료성을 뒤집어야 한다. 지난해 현장대장정을 하면서 대면한 현장은 어디에서나 자본의 탄압에 맞서 ‘전쟁’ 중이었다. 그동안 20여 년의 노동운동으로 현장을 알 만큼 안다고 자부해온 내가 얼마나 교만했는가를 뼈아프게 반성하는 계기였다. 현장대장정을 하지 않았더라면 인천공항공사의 전체 직원 5,047명 중 비정규직이 4,391명으로 87%나 된다는 사실을 몰랐을 것이다. 또 민주노총 조합원이 된 여성용역노동자의 민주노총 사랑이 얼마나 뜨거운지도 몰랐을 것이며, 중앙에서 내려가는 지침 때문에 지역간부들이 자기사업을 할 수 없어 힘들어 하는 줄을 속속들이 몰랐을 것이다. 

현장과 괴리된 간부는 창조적인 실천투쟁을 조직해낼 수 없다. 따라서 간부들부터 초심으로 돌아가야 하고, 새로 시작해야 한다. 끊임없이 현장과 소통하고 조합원들로부터 배우면서 노동운동의 ‘조직자’가 되어야 한다. 말로만 노동운동의 위기라 할 것이 아니라, 현장 깊숙이 들어가서 문제가 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현장에서 배워야 한다. 현장대장정 이후 몇몇 지역본부는 현장방문을 일상화하고 있다고 들었다. 바람직하다. 모든 지역본부와 산별이 현장을 중심으로 사업하면서 간부 중심의 회의구조를 바꾸고 관료주의를 걷어내야 한다. 중앙의 투쟁계획이 공문으로 내려가는 것에 그칠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치열한 토론을 통해 현장투쟁과 결합시켜 보다 풍부한 실천투쟁들을 만들어내야 한다.
 
‘여론용’ 넘어서는 사회의제 투쟁을 해야 한다

둘째, 노동조합의 ‘조합주의’와 ‘경제주의’를 극복하고 사회적 위상과 역할을 높여야 한다. 촛불시민들이 민주노총에게 바라는 것 중에 가장 많은 의견이 노동조합이 임금인상, 노동복지 등 근로조건에 대한 관심뿐만 아니라 사회적 문제에 관심을 갖고 투쟁해 달라는 것이었다. 또한 사회적 의제들을 노조의 임금·단체협상을 위한 ‘여론용’으로 활용하지 말아달라는 것이었다. 우리나라처럼 노조 조직률이 저조하고 단체협약 효력이 확장 적용 되지 않는 조건에서, 국민들은 노조의 임단협투쟁을 ‘기득권’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산별 임단협투쟁이 마무리되고 나면 사회·정치적 투쟁의 동력이 급격히 저하되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관례는 조합원들의 정치의식을 저하시키는 원인이 되고 있으며, 이제 조합원들은 노조 집행부에게 임금 및 근로조건 향상 이외 사회적 영역에 대한 투쟁은 더 이상 기대하지 않게 되었다. 우리는 촛불시민들의 광장이었던 『아고라』에 올라온 어느 글이 제기한, “민주노총은 국민의 건강권을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자신들의 임단협을 위한 여론용이었다”는 절박한 비판을 솔직하게 검토해야 한다. 

그만큼 민주노총에 대한 신뢰가 없다는 것이고, 그러한 불신이 커진 것은 우리 스스로 조합주의에 매몰되면서 ‘국민과 함께’를 구호에 그치게 만들고 말았기 때문이다. 이제는 노조가 사회전체의 변혁적 관점에서 조직하고 복무하지 않으면 노동운동의 미래 또한 불투명해질 수밖에 없다. 

노동자로서 자긍심을 높일 수 있는 일상활동을 하자

셋째, 일상활동과 일상투쟁을 혁명적으로 강화해야 한다. 위에서 언급한 혁신과제와 맥을 같이하는 것으로, 관료주의와 조합주의를 극복하기 위해서 일상투쟁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은 민주노총 혁신을 얘기할 때 누구도 이견이 없는 과제다. 그러나 노조의 일상활동은 지지부진을 면치 못하고 구태의연한 투쟁으로 일관하고 있다. 지난 촛불에서 우리는 네티즌들의 소박하면서도 재기발랄하고 자유로운 투쟁방식이 대중의 폭발적인 참여를 끌어내는 것을 목격하였다. 운동권들이 꿈에 그리던 투쟁이 현실화 되었을 때, 이구동성으로 “이게 혁명!”이라고 외쳤다. 

그동안 네티즌들은 사이버공간에서 끊임없는 소통과 토론으로, 사회문제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작은 실천들을 해오면서 상당한 내공을 갖게 되었던 것이다. 우리는 올해 하반기 일상실천 과제로 ‘광우병쇠고기 불매’와 ‘조·중·동 절독’, ‘비정규 장기투쟁사업장 방문 및 지원’을 설정하였다. 그동안 축적된 현장의 투쟁경험을 반영하여 창조적이고 다양한 일상투쟁을 조직한다면 이러한 과제들을 실천함에 있어 상당한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타성에 젖어 형식적으로 진행한다면 또 하나의 짐이 되고 말 것이다. 

이제 일상활동 강화를 위해 노동조합 활동의 내용과 과정에 대한 재구성이 필요한 때이다. 임단투 중심의 교육과 조직화를 넘어 조합원들의 정치활동을 강화하고, 시민사회와의 연대활동을 대외협력실만의 실무가 아닌 노조의 핵심사업으로 받아 안아야 한다. 광우병쇠고기 불매를 지역주민과 함께 전개하고 있는 울산본부의 일상활동을 모범삼아, 생활력 있는 실천투쟁들을 창조하면서 조합원들의 자긍심과 정치의식을 높여가야 한다. 일상투쟁은 각기 현장의 처지와 조건을 고려하여 조합원들과 함께 토론해서 결정해야 한다. 

반신자유주의 투쟁에 명실상부하게 나서자

넷째, 노동운동이 ‘반신자유주의 투쟁’에서 명실상부한 주체가 되어야 한다. 신자유주의는 경제시스템이고 현대자본주의의 이데올로기다. 그러나 노동운동은 1997년 신자유주의가 전면화했음에도, 반신자유주의 운동이 누구를 주요 대상으로 해야 하는지, 어떤 구조개혁을 목적으로 해야 하는지에 대한 통일적 전망을 세우지 못했다. 그렇지만 망설일 시간이 없다. 신자유주의가 자체 모순으로 붕괴해가고 있는 지금은 신자유주의 핵심문제로 직진해 들어가야 할 때다. 

이를 위해서는 노동자들이 신자유주의의 운영원리와 핵심 작동기제에 대해 명확하게 인식하는 것이 무엇보다 선행되어야 할 터다. 그동안 우리 노동자들은 노동배제적 주주자본주의를 전체 노동자가 함께 어떻게 깨뜨릴 것인가를 고민하기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각기 살아남기 위해 따로따로 움직여왔다. 그러다보니 개별 노동자 차원에서는 투쟁이 치열했으나 궁극적인 승리와는 거리가 있었다. 따라서 경제의 금융화와 주주자본주의화를 특징으로 하는 신자유주의에 대항할 수 있는 정치의식을 공유해야 하고, 또 비판에만 머무를 것이 아니라 그간의 투쟁경험을 총화하고 일상투쟁을 강화하여 신자유주의를 넘어설 대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한다. 

다시 말해, 지금까지 대안 경제시스템에 대한 모색이 노동운동 내부에서 활발하게 토론되고 실천되지 못한 점에 대해 반성하면서, 노동자가 자신의 삶의 처지와 조건에서 살아있는 대안들을 발전시켜 나가야 할 때인 것이다.

다시 노동운동이 희망이 되기 위하여!

결국 간부들과 활동가들은 조합원들과 시민들 사이를, 노동조합운동은 한국사회를 더욱 더 부지런히 누벼야 한다는 것이다. 좀 더 새로워진 사회적 대안과 헌신성으로 무장하고 부지런히 움직여, 현재 동맥경화 직전의 노동운동과 시장독재 지배하의 한국사회에 혈류와 숨통을 틔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쉬운 일이 아니다. 짧은 시간에 가능한 일도 아니다. 그러나 촛불시위의 파고가 한 차례 휩쓸어 놓은 지금 이 자리를 노동조합운동이 지키고 있지 못한다면, 노동운동이 시민들에게 다시 외면받는 것은 둘째 치고 한국사회는 더욱 더 숨 막히는 전일적인 시장독재의 길로 들어서게 될 것이다. 

요즘 활동가들과 조합원들을 만나면 대부분 지친 기색들을 숨기지 못한다. 웃음에도 피로가 묻어난다. 그렇게 힘들어 하는 이들에게 다시 힘내자고 하는 게 과연 옳은 일인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우리들이 손 마주잡고 다시 힘차게 내딛는 그 한 걸음이 희망이다. 다시 노동운동이 희망이 되기 위하여, 희망으로 충만한 사회를 만들기 위하여, 힘 내주시길 부탁드린다. 저도 그 길에 민주노총 위원장으로서, 아니 한 사람의 노동자로서 언제까지나 함께 할 것을 약속드린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3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