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교육감 선거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노동사회

서울시 교육감 선거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편집국 0 3,036 2013.05.29 10:17

서울시 교육감 선거가 끝나자 이명박 대통령은 “새 정부의 교육정책에 대한 국민의 지지를 확인하였다”고 말했다. 공정택 서울시 교육감은 당선되자마자 ‘국제중학교 세우기’에 혈안이 되어 있다. 40년 전에 사라진 중학교 입시가 부활되고, 일 년 학비가 천만 원 수준인 귀족학교가 생겨나려 하고 있는 것이다. 이명박 교육정책의 본질인 ‘교육의 계층화’와 ‘온 나라의 입시 학원화’ 정책이 서울시 교육감 선거를 계기로 재발진의 시동을 걸고 있는 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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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서울시 교육감 선거 막판에 공정택 후보는 "전교조에 휘둘리면 교육이 무너집니다!"와 같은 원색적인 구호를 내걸었다. ▶ 프레시안 ]

다양한 과제 안겨준 서울시 교육감 선거 패배

이번 서울 교육감 선거결과는 전교조를 비롯한 진보 진영에 무엇을 남겼는가? 막가파식 이명박 교육정책에 제동을 걸고, 소모적인 입시경쟁 교육에서 벗어난 새로운 교육모델의 가능성을 제시하고자 했던 목표는 현실화되지 못했다. 오히려 공정택 교육감은 ‘강남 교육감’이라는 세칭에 걸맞게 특권층을 위한 교육정책을 노골적으로 추진하고 있고, 전교조와 교육운동진영은 다시 교육과학부와 서울시 교육청 앞에서 거리 투쟁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이번 선거는 이른바 이명박식의 노골적인 신자유주의 정권에 반대하는 다양한 사회정치세력이 ‘연합군’으로 결집했다는 것만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또한 서울시에서 실시된 지금까지의 선거 중에서 진보진영이 비판적인 정치세력으로서의 위치를 넘어서 선거의 중심에 섰던 최초의 선거라는 점에서도 소중히 평가되어야 할 중요한 자산이다.

한편 이번 선거는 전교조에게 많은 과제들을 안겨주기도 했다. 선거 막판에 공정택 후보 측은 “전교조에 휘둘리면 교육이 무너집니다”라는 구호를 내걸었고, 조갑제 같은 우익인사는 선거결과를 두고 “서울 시민이 이명박보다 전교조를 더 싫어한다는 것이 드러났다”고 비아냥거리고 있다. 이러한 풍조에 합류하듯 『시사 IN』과 『한겨레 21』등에서도 전교조에 대한 비판과 성찰을 요구하는 기사들이 넘쳐났다. 이렇듯 전교조가 운동의 전망을 마련하는 데 있어서도 이번 선거는 많은 교훈과 시사점을 남겨주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그러한 부분을 검토해보도록 하겠다. 

“이명박 교육정책 심판” 구호는 왜 승리하지 못했는가 

이번 선거에서 주경복 선거대책본부(이하 선대본)는 촛불 정국 속에서 형성된 반 이명박 국민적 저항을, 이명박 교육정책의 대리인인 공정택 후보 심판으로 연결시키고자 하였다. 4년 동안 현직 교육감으로 활동해온 공정택 후보뿐 아니라 여타 다른 후보들에 비해서도 턱없이 인지도가 낮은 주경복 후보가 선거 초반부터 공정택 후보와 더불어 양 강 구도를 형성할 수 있었던 것은, 촛불 정국이라는 이러한 정치지형의 산물이었다. 또한 이번 선거가 결과적으로 한나라당 및 보수수구세력과 이명박 정부에 반대하는 포괄적인 사회정치세력의 대결로 전개된 것도, 서울시 교육감 선거가 이명박 정부에 대한 심판의 성격을 지녔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지지율이 20%를 채 넘지 못한 상황에서 실시된 선거에서, 결국 공정택 후보가 승리하고 말았다. 영어 몰입교육과 사교육비 폭등 등 이명박 교육정책에 대한 국민적 반감이 고조되어 있었음에도 “이명박 교육정책 심판”은 승리의 구호가 되지는 못했다. 이러한 선거결과에 대해 다양한 분석과 평가가 선대본 안팎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이인규 후보 선대본에서 초기에 정책위원장을 맡았던 이범 씨는 선거과정에서 주경복 선대본이 “촛불 정국을 하이재킹(운송수단에 대한 불법 납치행위)하고 있다”고 비판했고, 선거 이후에는 정책의 부재를 핵심적인 패배 요인으로 평가했다. 주경복 선대본 차원에서는 기본적인 선거구도의 설정은 타당했지만 이명박 정부 심판의 기조가 선거과정에서 명확하지 않았고, 강남의 계급투표에 비해 주경복 후보를 지지해야 할 핵심세력을 결집하는 전략이 취약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이명박 정부 반대에 동의하는 다양한 사회정치세력을 결집할 수 있는 총체적인 전략이 미비하였다는 점에 강조점을 두는 평가 등이 제출되고 있다(아직 주경복 선거대책본부에서는 공식적인 선거평가 보고서가 제출되지 않은 상태다. 따라서 이 글에서 언급되는 평가는 전적으로 개인의 견해이다). 

역동적인 정세 속 시간에 쫓긴 선거준비

800만이 넘는 유권자가 참여하는, 정치선거인 동시에 교육선거인 서울시 교육감 선거는 그 자체로서 갖추어야 할 준비가 필요하다. 그 규모만 해도 25개 선거구의 2,300개가 넘는 투표장에, 투개표 관람인의 규모가 7천 명에 육박하기 때문이다. 또한 서울시 교육감 선거 결과는, 공정택 후보의 당선 이후 사교육 관련 주가가 상승하고 새로운 사교육 시장이 확장되고 있는 것에서도 드러나듯이, 교육과 관련한 이해집단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런데 공정택 교육감이 74세의 고령인데다, 그가 교육감으로 재직할 당시 특정지역 중심의 인사전횡이 이루어지면서 교육관료 중에서도 적지 않은 반발 세력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주경복 선대본은 이러한 요소들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과 설득력 있는 대안을 마련하고 있었는가? 

또한 주경복 선대본은 공식적으로 6월26일 개소식 및 발대식을 개최하고 나서야 출범했다. 5월 중순에 서울교육시민추진본부에서 주경복 후보 추천 및 각급 조직단위에서 후보 추인 절차를 밟은 뒤에도, 후보는 6월 초까지 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고 예비후보 등록 후에야 본격적으로 선거운동에 뛰어들었다. 학생을 동원해 선거공보 사진을 찍고 자화자찬 만화책을 보급하는 등 사실상 4년 내내 선거 운동을 해온 공정택 후보 외에도, 여타 후보들이 적어도 6개월 이상의 선거 준비를 해왔던 것에 비교하면 매우 짧은 기간이었다. 

이렇듯 선대본은 급변하는 촛불정국의 역동성과 선거의 규모에 따른 성격을 감당하기에는 취약한 구조를 지니고 있었다. “이명박 정부에 반대하는 사회정치세력을 규합하는 선거를 치른다”고 천명했지만, 그러한 성격에 맞는 선거체제와 정책 등에 대한 조율은 선거과정에서야 비로소 골격을 갖추었던 것이다. 공약 면에서도 “외국어고등학교 폐지”가 “외국어고등학교 정상화”로 재정리되는 과정에서 혼선이 빚어졌고, 교원평가제도 반대와 전교조 지지 후보에 대한 논란은 이미 예정된 쟁점이었음에도 사전에 명확하고 일관된 입장을 정리하지 못함에 따라 방어적인 대응에만 머무르고 말았다. 선거 진행과정에서 외연이 확대되면서 선대위의 구성이 다양해지고, 또 각 단위에서 다양한 요구가 제안되면서 정책의 일관성을 견지하기 어려운 요인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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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선거에서는 위기를 느낀 보수층이 막판에 결집한 것도 중요한 변수로 작용했다. 지난 7월16일 공정택 후보를 반전교조 단일후보로 지지하는 보수 시민사회단체들의 기자회견.  ▶ 프레시안 ]

반 이명박 교육정책 ‘연합군’ 형성의 빛과 그늘

다음으로 조직전략을 살펴보자. 선대본은 민주노총 서울본부 등 기층 대중조직을 기반으로 하는 조직선거를 중심으로, 촛불 정국에서 조성된 시민들의 참여를 유도하는 것을 조직전략의 중심으로 설정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조직전략에 비추어 볼 때 민주노총 서울본부에 직접 가입한 지역조직과 총연맹 산하 사업장에 대한 선거운동이 제대로 이루어졌다고 말하기는 어려웠다. 진보진영과 개혁진영을 망라하는 정치조직이 참여하는 선거의 외양은 갖추어졌지만, 그 입장의 조율이 7월 중순에야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중앙과 지역에서 유기적으로 결합하여 시너지 효과를 내기에는 너무 시기가 늦은 결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른바 ‘연합군’이 각각의 입장과 활동 공간의 차이에도 한솥밥을 먹으면서 함께 선거운동을 하였다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정치선거이면서 교육선거인 이번 선거과정에서 ‘정치’와 ‘교육’, 그리고 ‘선거’의 문제에 대한 상호이해와 소통이 이루어졌고, 각 단위들이 입장의 차이를 조절하는 훈련을 거치게 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노원구의 경우 노원도봉 교육공동체와 민주노총 북부지구협의회, 노원 나눔의 집과 마들 주민회 등의 세력들이 함께한 이번 선거의 경험은, 이후 지역운동의 새로운 전망을 여는 데 튼실한 토양 역할을 할 것이다. 

2010년에는 이명박 정부의 중간 평가인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와 교육감, 교육위원 선거가 실시된다. 이 과정에서 다양한 사회정치세력들이 또 다시 이합집산을 이룰 것이다. 그 과정에서 이번 선거에서 공유한 경험들은, 누구와 함께 무엇을 할 것인가를 판단하게 하는 시금석이 될 것이다.

전교조, 촛불 먼저 밝힌 아이들에게 빚 갚는 길 가야

선거과정에서 교총과 이명박 정부의 친위대를 자처하는 뉴라이트 교사연합 등이 보수 후보 단일화를 시도하고, 한국노총의 공정택 후보 지지 표명이 이루어졌다. 선거 초반부터 주경복 후보와의 양강 구도가 형성되고, 선거 중후반에는 주경복 후보가 공정택 후보를 추월하였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타나면서, 보수진영이 초긴장하여 세력의 결집을 도모한 것이다. 

선거 막판, 공정택 후보는 초기에 내걸었던 “사교육비 확 줄이겠다”는 기만적인 구호 대신 “전교조에 휘둘리면 교육이 무너집니다”라는 구호를 서울 전역에 깔았다. 또한 조중동 등의 보수언론들은 주경복 후보의 통일전쟁 인터뷰 기사, 민주노동당 전당 대회 참여 발언 등을 빌미로 ‘친북좌파 후보’로 모는 색깔공세와 함께, ‘주경복 = 전교조’라는 도식을 전면에 내걸었다. 

조중동과 공정택 후보 측의 이러한 공세는 결과적으로 ‘성공하였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한편, 이와 함께 ‘전교조 대 반 전교조’ 구도가 선거 전략이 되는 현실을 내세워, 전교조에 대한 재평가와 자기혁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작지 않다. 주경복 후보는 전교조 일꾼 연수에 참가해서, 이번 선거의 의미를 되새기고 새로운 도약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고언을 하기도 하였다. 

실제로 전교조가 “40만 교원과 국민의 교육권을 수호 한다”는 명분에 걸맞은 활동을 제대로 하지 못한 점, 교원정책과 관련한 정부와의 대립에서 국민들의 정서와 요구를 수렴하지 못한 채 자신의 주장만을 내세우는 집단으로 내비춰진 측면 역시 존재한다. 하지만 전교조 출범 과정에서 전교조 교사를 선별하는 기준은 ‘촌지를 받지 않는 교사’, ‘아이들에게 친절한 교사’ 등이었다. 지금도 전교조 교사의 기준은 학교 현장에서 가장 아이들 편에서, 불합리하고 부패한 교육 현실과 가장 비타협적으로 살아가는 교사들이다. 중학교에 입학시험이 부활하고, 전국 단위 일제고사가 부활하는 것에 찬성해야 하는가 아니면 반대하고 싸워야 하는가에 대한 판단을 분명히 한다면, 그 선봉에 서서 싸우는 전교조에 대한 비판과 함께 앞서 싸우는 자의 어려움에 대한 배려가 동시에 있었으면 하는 것이다. 

촛불시위와 서울시 교육감 선거는 전교조에게 있어서도 스스로를 성찰하고 새로운 운동의 전망을 찾기 위한 너무도 소중한 자양분이다. ‘연합군’의 경험이 만들어낸 새로운 운동의 전망처럼, 전교조 역시 이 과정에서 보다 튼실하고, 보다 국민과 함께하는 전교조로 거듭날 것이다. 그것이 촛불을 처음 밝힌 우리 아이들에게 서울시 교육감 선거의 승리를 만들어주지 못한 빚을 갚는 일이기 때문이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3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