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페인이 아닌 실질적인 해결을 원한다

노동사회

캠페인이 아닌 실질적인 해결을 원한다

편집국 0 3,657 2013.05.29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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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 26일 2008 전국비정규직대회에서 마로니에공원 뒤편에 전시된 경제위기 비판 선전물을 시민들이 유심히 살펴보고 있다.  ▷ 『노동사회』 ]

“문제는 대기업노조의 관료화 아닌가요? 콕 집어서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 밥그릇 지키기로밖에 안 보여요. 정부가 비정규직 문제 밀어붙이는데, 민주노총은 별 힘도 못 쓰는 것 같아요. 명운을 걸고 막아야죠. 이명박 싫다면서요? 80만 민주노조라면서 그것도 못 막나요?”

‘2008 전국비정규노동자대회’에 참가했던 한 시민의 말이다. 2003년 10월26일, 근로복지공단 비정규직노조의 광주본부장이었던 이용석 열사가 “비정규직 철폐”를 외치며 분신했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난 지금, 상황은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비정규직 문제는 전국적이고 전 국민적인 사회문제로 확대됐다. 

기륭전자, 이랜드, KTX, 코스콤 등 비정규직의 차별철폐와 고용안정을 위해 곳곳에서 벌어지는 싸움은 끝날 줄 모르고, 정부는 비정규직 사용 기간을 늘리고 파견 대상 업무를 확대하는 등의 비정규직법 개악을 준비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제는 비정규직 노동자들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도 노동운동의 역할을 촉구하고 있다. 전국비정규노동자대회 현장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일반 시민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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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정규노동자대회 참석자들이 "비정규직 철폐하라"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 『노동사회』]

경제위기 ‘고통분담’ 요구는 비정규직에게 책임 전가하는 것

10월26일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에서 오후 1시부터 열린 올해 전국비정규노동자대회는 비정규노동열사 합동추모제로 그 막을 열었다. 곧이어 김호정 전국사무연대노조 위원장의 사회로 진행된 본 대회는 김금철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운영위원장의 발언으로 시작됐다. 김금철 운영위원장은 “15분 만에 통과된 비정규직법이 2007년 7월 시행된 이후, 우리 노동자들에게 남은 건 부당해고와 생계파탄뿐이다. 경제를 살리겠다는 정부로 바뀌었어도 그들은 1%의 가진 자들을 위한 정책만을 내놓고 있다”며, “물가 폭등, 주가 폭락, 중소기업 도산, 금리 10% 육박 등 경제위기의 징후는 뚜렷해지고 있고, 통계청 경제활동인구 부가조사 결과 비정규직의 근속년수는 2년도 채 안 된다”며 정부를 비판했다. 또한 △기간제 사용사유 엄격제한, △특수고용 노동자 노동권 보장, △원청 사용자 책임 인정, △이주노동자 노동허가제 요구, △비정규직 장투사업장 문제 조속 해결, △경제위기 책임전가 반대 및 최저임금 현실화, △구조조정 중단 및 고용안정 보장, △국가보안법 폐지 및 공안탄압 중단 등 ‘2008 전국정규노동자대회 8대 요구’를 발표했다. 

이어진 ‘이용석 노동자상’ 시상식에서는 임성규 이용석열사기념사업회 회장(공공운수연맹 위원장)의 시상으로 <비정규직철폐연대가>를 만들고 부른 민중가수 김성만 씨가 제5회 이용석 노동자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허영구 민주노총 부위원장, 홍희덕 민주노동당 의원,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의 연대발언이 이어졌다. 허영구 부위원장은 “현 경제위기 국면의 가장 큰 문제는 정부가 무너지는 자본주의를 살리기 위해 노동자에게 고통분담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라며, “그 가장 큰 피해자는 비정규직이다. 비정규직 조직화와 차별철폐를 넘어서 인간이 해방되는 새로운 이정표를 만들자”고 말했다. 홍희덕 의원도 “미국 것이라면 다 좋다던 신자유주의 한국의 경제가 금융위기로 인해 무너지고 있다. 누구의 책임인가? 지난, 그리고 지금의 정부와 국회 정책 입안자들의 책임 아닌가?”라며, “그러나 거리로 내쫓기고 삶을 박탈당하는 것은 노동자, 그 중에서도 자본과 정권이 만들어 낸 비정규직이다”라고 비판했다. 그는 또 “자본과 정권의 갈라치기에 대응해서 단결해야 한다. 원내외에서 민주노동당이 그 길에 함께 하겠다”고 밝혔다. 

목숨보다 돈이 더 소중한 ‘인신매매단’과 ‘인간 사냥꾼’

노회찬 대표는 “지난 5년간 한국의 백만장자 증가율은 세계 10위권을 벗어난 적이 없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잃었다. ‘잃어버린 10년’이라고 하는데, 지난 10년간 잃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대한민국 90%의 국민의 생존권이 위협받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지금 정부는 기간제 노동자 고용기간을 3년으로 연장하는 것을 추진하고 있고 대한상공회의소는 한 발 더 나가서 3년 후 무기계약직 전환 대상 중 50세 이상은 제외하자는 안까지 내놓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솔직해져야 한다. 비정규직이 대한민국 헌법상의 국민인지 이명박의 적인지 밝혀라”고 정부와 재계를 비판했다. 또한 “법안을 처음 만든 민주당도 책임이 있다. 결자해지 차원에서 스스로 나서야 한다. 나서지 않는다면 개혁의 동반자로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며 민주당의 책임 있는 자세를 촉구했다.

이후 비정규직 투쟁사업장 당사자들의 발언들이 이어졌다. 지난 10월21일 농성장을 침탈당한 김소연 금속노조 기륭전자분회장은 “자본과 정권이 한 몸인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노골적인 적은 없었다. 일하고 싶다는 소박한 요구도 들어주지를 않는다. 목숨보다 돈이 더 소중한 사람들이다”라며, “저들은 전면전 태세로 나오고 있지만 우리는 아직 아닌 것 같다. 네티즌들과 촛불도 나서고 있다.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제2, 제3의 기륭투쟁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파견노동자들이 힘겹게 싸우고 있는 강남성모병원의 박정화 조합원은 “나는 나 자신을 스스로 관리할 수 있는 성인인데, 원하지도 않고 필요도 없는 관리를 파견회사가 해주겠다고 한다. ‘인신매매단’이다. 매달 월급에서 60만원씩 떼어갔다. 도대체 누구를 위해 이런 돼먹지 못한 파견법을 만들었는지 묻고 싶다”며 분개했다. 정영섭 이주노조 사무차장은 “이명박 정부 들어서고 나서 인간사냥이 점점 심화되고 있다. 조합원들이 ‘살아도 사는 게 아니다’, ‘이명박이 내 목을 쥐고 있다’는 말들을 한다”며, “이주노동자의 권리 보장 수준이 그 사회의 최저인권 수준이라는 말들을 한다. 비정규직 중의 비정규직, 이주노동자들의 권리를 위한 싸움에 함께 나서자”고 말했다. 

중학생도 “나도 비정규직 될 수 있다는 걱정에 참여”

본 대회는 이경옥 이랜드일반노조 부위원장과 유승현 성신여대 총학생회장의 선언문 낭독으로 마무리됐다. 이후 1,000여 명의 참가자들은 종로 보신각까지 행진을 벌였다. 행진에서는 건설노조·이랜드일반노조·코스콤비정규지부·여성연맹 등 다양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철폐하라”, “공안탄압 중단하라” 등의 구호를 외쳤고, 진보정당들·학생행진·전국청소년모임·이명박 탄핵연대·애국촛불전국연대 등의 단체들과 일반 시민들의 참여도 눈에 띄었다. 일부는 경제위기의 고통분담을 요구하는 정부에 항의해 ‘노동자들은 이미 깡통찰 정도로 여유가 없다’는 의미로 깡통에 끈을 매달아 끌고 다니며 행진을 했다. 

4살 난 딸과 함께 행진을 하던 진보신당의 김은선(35) 씨는 비정규직의 가장 큰 문제가 뭐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비정규직 자체가 문제죠. 다른 사람과 똑같이 일했는데 일한 만큼 대우를 받지 못하잖아요”라고 대답했다. 또 “정부가 언 발에 오줌누기식 정책은 이제 그만했으면 좋겠어요. 돈 있는 사람들, 자본가 편만 들지 말고 비정규직 문제 자체를 없애야죠. 분배에 방점을 두는 정책들을 썼으면 좋겠어요”라는 의견을 밝혔다. 촛불시위 때부터 전면에 나서 최근에는 집회 현장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는 중·고등학생들도 비정규노동자대회에서 만날 수 있었다. 전국청소년모임에서 참여한 한 중학생은 “내가 비정규직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집회에 나왔다고 했다. “돈은 돈대로 못 받고 언제 잘릴지도 모르는 일들”을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80만 민주노조라면서 비정규직 문제, 못 막나요?”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주류 노동조합운동에 대한 비판도 매서웠다. 촛불시위 초반부터 계속 참여해 왔다는 애국촛불전국연대의 민충식(24) 씨는 “문제는 대기업노조의 관료화 아닌가요? 콕 집어서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 밥그릇 지키기로밖에 안 보여요”라고 말했다. 그는 또 “기륭도 가보고 요즘은 강남성모병원 주로 가는데, 여기저기 가 봤지만 민주노총 많이 못 봤어요”라며 “정부가 비정규직 문제를 밀어붙이는데 민주노총이 별 힘을 못 쓰는 것 같아요. 명운을 걸고 막아야죠. 이명박 싫다면서요? 80만 민주노조라면서 그것도 못 막나요?”라고 되물었다.

민 씨의 지적이 뼈아프게 들렸던 것은 이 날 대회에서 실제로 정규직 노동조합들은 찾아보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정규직 노동조합이 있긴 했지만 영세 투쟁사업장의 노조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이텍알씨디노조의 이 아무개(40) 조합원은 “우리는 정규직들이예요. 비정규직 문제들이 많아 우리 같은 (영세사업장) 정규직들의 힘든 싸움은 관심을 못 받는 것 같아요”라면서도, “비정규직도 같은 노동잔데, 같은 일 하면서 왜 다른 돈 받아야 합니까?”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또 “정규직도 이렇게 힘들다는 걸 알리려고 나왔어요”라며 “같이 해야죠. 비정규직뿐만 아니라 소수 정규직 사업장도, 대기업 노동자들이 같이 해줘야 해요. 대기업에서 한 번 붙어주면 확 달라지거든”이라며 대규모 사업장 노조들의 연대를 촉구했다. 

비정규직 당사자인 이대우 GM대우자동차 비정규직지회장도 “총연맹이나 산별에서 무게중심을 못 잡는 것 같아요. 안타깝죠. 오늘만 해도 다른 일정 제치고라도 왔어야죠”라며 아쉬운 심정을 드러냈다. 그는 또 정부의 비정규직법 개악 움직임에 대해 “먹을 밥도 별로 없는데 이제 숟가락 뺏고 손으로 집어 먹으라는 거죠. 그런데 현장에서는 분노도 분노지만, 단결이나 모이는 것에 한계가 오고 있어요. 사실 지금까지는 2년이라도 (고용을) 보장받는 면이 있었던 거죠. 그런데 이제 3년으로 늘린다느니, 무기한으로 한다느니 하니까 현장은 오히려 경직되는 면이 있습니다. 지금 현장은 솔직히 그래요”라며 현장의 어려움을 전했다. 총연맹과 산별연맹/노조가 비정규직 투쟁사업장 문제의 해결에 직접적으로 결합하는 것이 절실하다는 것이다.

반한나라당 전선 여론화보다 실질적인 해결을

비정규노동자대회 전날 출범한 ‘민생민주주의 국민회의’(국민회의)의 비정규직 문제에 있어서의 역할과 관련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컸다. 국민회의에는 민주노총과 참여연대, 한국진보연대 등 40여 단체들이 참여하고 있다. 민 씨는 “처음부터 기대도 안 해요. 비정규직 문제는 곁다리로 끼워넣겠다는 거 아닌가요? 포퓰리즘이죠. 기업이 하는 거랑 똑같아요. 사회적 공헌 어쩌고 하면서 슬쩍 곁다리로 끼워넣는 거요”라며 불신을 드러냈다. 이 아무개 하이텍알씨디노조 조합원도 “도움이 되는 게 있기는 있겠죠. 어느 정도 하느냐가 중요하겠지만……”이라며 말을 흐렸다. 비정규직 당사자의 시각은 조금 더 비판적이었다. 이대우 지회장은 “공감대를 확산하겠다는 건데, 취지는 좋지만 시민사회가 할 일이 있고 총연맹이 해야 할 역할이 따로 있다고 생각해요”라며 “산적한 투쟁보다 여론화에 집중하는 건 아닌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투쟁사업장 하나라도 확실히 해결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또 민주당과 창조한국당 등의 국민회의 참여 가능성과 관련해서도 “솔직히 반한나라당 전선이 좋은 건지 잘 모르겠어요. 경제위기, 비정규직법, 모두 민주당이 원인 제공을 한 건데, 이제 와서 같이 한다는 건……”이라며 비판적인 입장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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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박의 경제점수, 100점 만점에 0점"  ▷ 『노동사회』 ]

“구호는 일반화됐지만 구호로만 머문다”

비정규직 문제와 관련한 정부와 재계의 공세는 앞으로 더 거세질 전망이다. 노동부는 비정규직법 개정 문제를 복수노조, 전임자 임금지급 문제, 최저임금법 개정 등과 함께 ‘패키지’로 처리할 의중을 계속해서 내비치고 있고, 재계도 정규직 전환대상 비정규직의 범위 축소와 비정규직 사용기간 연장을 정부에 노골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말 그대로 ‘전면전’이다. 그러나 김소연 분회장의 말대로, 노동운동은 아직 전면전의 태세가 아닌 듯하다. 정규직의 비정규직 끌어안기 노력이라는 점에서 주목됐던 금속노조의 1사1조직 원칙은 금속노조 최대 사업장인 현대자동차지부에서 다시 한 번 거부당했다. 이를 직접적으로 지적한 것은 아니지만 “비정규직 구호는 일반화됐지만 항상 구호로만 머문다”는 비판(이대우 지회장)이 적절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이대우 지회장은 국민회의에 바라는 점을 묻자 “비정규직법이 하반기에 개악이 예정되어 있는데 (국민회의가) 공감대를 만들어 가는 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총연맹은 비정규노동자대회에서 제기된 것들을 전국노동자대회까지 이어가고, 비정규 장투사업장 문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했으면 한다. 캠페인성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대답했다. 이번 전국노동자대회에는 조계사를 벗어난 이석행 위원장이 참여해 대회사를 할 예정이다. 민주노총 산하 조직들의 참여를 독려하고 있는 중이라는 소식도 들린다. ‘시대의 고통’ 비정규직 문제의 해결을 위한 노동조합운동의 진정성은, 전국노동자대회와 이후 비정규직법 개악 저지 투쟁의 흐름에서 확인될 수 있을 것이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3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