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위기를 저임금 비정규노동자들에게 돌리지 마라

노동사회

경제위기를 저임금 비정규노동자들에게 돌리지 마라

편집국 0 3,101 2013.05.29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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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정규 투쟁사업장 공동투쟁단은 지난 3월25일 공동총회를 개최한 이후 공동활동을 진행했다.  ▷ 매일노동뉴스 ]

현재 우리는 세계 경제위기와 대공황에 직면하고 있다. ‘위기의 대가를 어떤 계급이 지불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놓고 노동과 자본의 대격돌을 앞두고 있는 긴박한 정세다. “1929년 대공황 이후 최대의 위기”라고 전 세계가 비명을 지르고 있는 이 때, 한국사회는 수백만 명의 실업자를 양산했고 또한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심각한 비정규직 문제의 시대적 출발이었던 1998년 IMF 외환위기 사태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도시들의 외진 곳마다 노숙자들의 행렬이 이어지고 어린 자식들과 함께 목숨을 끊는 부모들의 소식이 끊이지 않았던, 그 비참한 세월을 다시 되풀이할 시간이 점점 더 다가오고 있다.

그런데 당시의 수백만 명 실업자들은 기업퇴출과 정리해고에 맞서 저항하며 싸웠던 금융기관과 대기업 노동자들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은 소수였다. 소리 소문도 없이 문을 닫은 수많은 중소사업장들, “내일부터 나오지 말라”는 사장의 짧은 해고통보에 한마디 말도 못한 채 직장을 잃어야 했던 수많은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들과 저임금 비정규노동자들이 절대 다수였으며 이는 현재도 마찬가지다. 

경제위기 제일 먼저 겪는 간접고용 비정규노동자들

이렇게 예상할 수 있는 이유는 사용자들이 파견노동자들을 사용하는 이유에서도 잘 나타난다. 한국노동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사용업체들이 파견노동자를 이용하는 이유는, △인력관리의 원활화(32.7%), △비용의 절감(32.4%), △일시적 업무량 변화에 대응(26.6%), △전문인력의 필요(8.3%) 등의 순이었다. 이를 좀 더 구체적으로 보면, 인력관리의 원활화와 관련해서는 ‘고용조정 용이’(36.8%)가, 비용절감 관련해서는 ‘임금 절감’(57.3%)이 가장 비중이 큰 고려사항으로 나타났다. 

즉, 현재 파견노동을 사용하는 기업의 65%가 비용절감과 고용조정 등 인력관리를 원활히 하려 했던 것이고, 기업 외부로부터 전문인력을 확보할 필요성은 미미하다는 것이다. 이것이 결과적으로 파견?용역 등 간접고용노동자들이 점점 확대되고 있는 이유다. 요컨대 기업이 파견제 등 간접고용을 선호하는 이유는 단순히 저임금 활용에 있는 것이 아니라, 경기변화에 따른 고용조정이 더 쉽고 인력관리가 용이하기 때문이며, 따라서 경제위기 시에 그 악영향을 가장 먼저 받게 되는 것도 이러한 간접고용 비정규직이 되리라는 것이다.   

파견 등 간접고용형태는 사용사업주의 사용자책임을 은폐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우선 사용사업주는 파견사업주와의 계약관계를 해지하거나 파견노동자의 교체를 요구하는 방식으로 해고에 대한 노동법상 책임을 비껴갈 수 있다. 또한 사용사업주는 파견사업체들 간의 경쟁관계를 통해 비용을 절감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저임금의 문제에 따르는 책임을 파견사업주에게 전가할 수 있다. 그리고 파견노동자들의 노동3권 행사를 무력화시키면서도 이에 따르면 법적 시비를 회피할 수 있다.

앞에서도 강조했던 것처럼, 경제위기와 공황의 국면에서 대가를 가장 먼저 치르는 쪽은 중소영세업체 노동자들이다. 이 문제는 ‘간접고용’이라는 매개를 통해 설명될 때에만 공황과 비정규노동운동을 접합시킬 수 있다. 즉, ‘비정규노동운동의 언어’로 공황을 설명하기 위해, ‘간접고용’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제기해야 한다. 실제 중소영세 기업들의 대다수가 재벌 대기업을 정점으로 하여 수직 하청계열화한 ‘한국식 생산구조’의 밑바닥 하청업체들이다. 저임금 간접고용 비정규직들의 뒤에는 수차의 하도급·하청이라는, 아래로 흐르는 거대한 줄기가 있음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행동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국가폭력의 심리적 저지선 뚫고, 시민·네티즌과 함께!

다가오는 경제위기에 대한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는 올해 상반기 공동투쟁단을 조직해 누적된 장기투쟁사업장들의 문제해결에 나섰다. 먼저 2008년 3월 초 ‘이랜드?뉴코아?코스콤 투쟁승리를 위한 연석회의’에서 기초적인 논의가 시작돼, 3차례 투쟁 계획 마련을 위한 기획회의가 진행됐다. 이후 몇 차례 비정규?투쟁사업장 공동투쟁 추진을 위한 토론회 및 기획회의를 진행하고, 상황실회의, 전술기획단회의를 통해 매일 투쟁 일정을 점검하였다. 그리고 400명 이상 투쟁사업장 조합원 동지들이 참여한 가운데 2번의 ‘공동총회’를 개최했다.

공투단은 상반기에는 주로 이랜드?뉴코아 투쟁에 집중했다. 3월28일 홈에버 상암점에서 공투단은 과감하게 매장 진입을 시도했고, 실제 어느 정도는 물리적 저지선을 뚫어내는 데 성공했다. 그런데 이날 공투단이 돌파한 것은 ‘물리적 저지선’만이 아니었다. 그동안 매장 안으로 들어가 구호를 외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고만 생각했던 조합원들의 ‘심리적 공포’를 돌파한 것이다. 또한 4월19일 파업 300일 문화제에서도 경찰의 1차, 2차 저지선을 뚫고 힘 있는 진입투쟁을 전개하며 이랜드 자본의 간담을 서늘케 하기도 했다.

4월4일 재능교육 본사 앞에서는, 그동안 집회와 천막농성을 봉쇄할 목적으로 사측이 설치한 철제펜스와 가시철조망 구조물 위로 재능지부 조합원들이 올라타 고공농성을 전개하면서, 자본과 경찰을 깜짝 놀라게 했다. 이명박 정권은 이날 처음으로 ‘체포전담반’까지 파견하며 미친개처럼 합법집회장을 유린했고 공투단 21명을 연행했다.

4월11일에는 강남의 하겐다즈 본사 앞 집회를 끝내고 7층 본사 로비에까지 진출하기도 했다. 그리하여 똥배짱을 부리며 교섭해태와 부당노동행위를 일삼는 하겐다즈 사측에게 분명한 경고 메시지를 전달했다. 그 결과 경고 메시지가 전달된 지 3시간여 만에, 200일 이상 사측의 노조불인정으로 교착상태에 있던 교섭이 잠정합의에 이르게 되었다.

이밖에도 공투단은 테트라펙·기륭전자·코오롱·신공항관광·한국합섬·노철연대 투쟁현장을 누비며 4월과 5월을 뜨겁게 달궈왔다. 또한 사업장뿐 아니라 도심의 거리에서, 전경련·한나라당 등 ‘노동자 탄압 총괄본부’ 앞에서 힘찬 투쟁을 전개해 왔다. 그리고 6월 이후 촛불 정국을 거치면서 일반 시민들과 비정규노동자들의 만남이 이루어졌고, 지금도 비정규 투쟁사업장에서 힘 있는 연대를 조직하며, 시민?네티즌들과 함께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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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 전국비정규노동자대회 모습  ▷ 노동사회 ]

사용자에겐 꿈의 사업장, 노동자에겐 절망의 일터

그러나 이러한 공투단 등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처절한 투쟁을 계속하고 있다. 기륭전자분회, 코스콤비정규지부, 대우자동차 비정규직지회, 동희오토 비정규직, 지역 일반노조의 수많은 투쟁사업장 등 이미 수십 개월째 농성투쟁을 이어가고 있는 사업장들이 수두룩하다. 이들 투쟁사업장의 현실은 오늘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처지를 너무나 잘 보여주고 있다. 

불법파견 노동을 하고 있는 대다수의 사내하청 노동자, ‘보호’ 명목의 법 시행으로 도리어 현장에서 쫓겨나는 기간제 및 파견 노동자, 노동자로 인정조차 받지 못하면서도 꼼짝없이 자본의 요구에 옭매여 살아가는 특수고용노동자, 먹고 살기 위해 나라를 옮겨왔지만 회사마저 옮길 자유도 없이 3년 시한의 노예계약 묶여 있는 45만에 이르는 이주노동자들, 교원 신분조차 얻지 못한 채 형편없는 근로조건으로 이 대학 저 대학을 떠돌며 학생들을 가르치는 많은 비전임 대학교수들…… 이 모든 이들이 지금 이 땅을 살아가고 있는 비정규노동자들이다.  

이에 덧붙여, 최근 강남성모병원이 파견법을 악용하여 2~5년 일한 파견노동자 28명을 9월30일자로 길거리로 내쫓은 일이 있었다. 그것으로는 모자랐는지 용역깡패·구사대를 동원하여 천막농성·로비농성을 7차례 폭력적으로 짓밟았고, “병원에 일절 발을 들여놓지 말라”는 취지의 ‘점유 및 사용방해금지 가처분’도 제기했다. 천막도 철거하고, 병원에서 집회나 촛불문화제도 하지 말고, 현수막·피켓은 물론 일체의 선전전도 하지 말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찍 소리’도 내지 말고 조용히 나가라는 말이다.  

또한 지난 3월 노동조합에 가입하고 분회 현판식을 했다는 이유로 공장 폐쇄와 함께 일방적으로 해고된 태형산업(주)의 레미콘 노동자들의 투쟁에 대한 탄압도 마찬가지로 악질적이다. 투쟁이 벌써 7개월째 접어들지만 어느 누구도 문제해결을 위해 나서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 가운데 사측 편들기에만 분주하고 “모두 구속시키겠다”는 협박만을 되풀이하며 연행과 구속에 혈안이 된 검찰은, 노동자들 3명을 구속하고 20여명에게 무더기 소환장을 날리는 등 탄압에만 열을 올리고 있는 실정이다.

민주노총이 현재(2008년 10월) 파악하고 있는 투쟁사업장은 63곳 정도다. 파악되지 않은 곳들까지 포함하면 이보다 훨씬 많은 수의 투쟁사업장이 존재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들 대부분은 정리해고 사업장이거나 비정규 투쟁사업장이다. 비정규직 사업장은 한마디로 사용자에겐 꿈의 사업장이요, 노동자에겐 절망의 일터이다. 자본가들이 비정규직들에게 저임금을 주면서도 맘대로 쓰다 버릴 수 있는, 이익과 절망의 교환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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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국비정규노조연대회의는 2008 전국 비정규노동자대회에서 8대 대정부 요구사항을 발표했다. 이경옥 이랜드일반노조 부위원장과 유승현 성신여대 총학생회장이 선언문을 낭독하고 있다.   

전국비정규노동자대회, 반격을 준비하다

‘비지니스 프렌들리’, 즉 자본가 정권이라는 색깔을 분명히 하고 있는 이명박 정부는 노동자들을 쥐어짜기 위한 정책들을 연속적으로 발표하고 있다. 이런 자본과 정권의 유착은 경제위기 한복판에 있는 저임금 비정규노동자들의 삶을 더욱 벼랑 끝으로 내모는 결과를 낳고 있다. 2008년 10월26일 개최된 전국비정규노동자대회는 하반기 비정규노동자 투쟁에 기폭제 역할을 하기 위해 기획된 것이었다. 한국사회 모든 비정규노동자들과 함께 노동기본권 쟁취투쟁을 진행해, ‘기업하기 좋은 나라’가 아니라 ‘노동하기 좋은 나라’로 기조를 바꾸어 내기 위한 출발점이었다.

이를 기점으로 지역과 현장에서 민주노조운동을 복원하는 데 비정규노조들이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향후 비정규노동운동의 진로 속에서 비정규노조들의 자기역할에 대한 논의를 구체적으로 진전시키면서 공감대를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과정을 비정규노조들은 대중적으로 비정규투쟁의 흐름을 만들어내고, (비정규)투쟁사업장 조합원들뿐만 아니라 정규직노조 및 비정규노조 조합원과 시민?네티즌까지 참여하는 연대와 단결의 장을 만들어 나갈 것이다.

[자료] 주요 투쟁사업장 현황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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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작년도 :
  • 통권 : 제13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