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착오적 대북정책과 역사의 퇴행

노동사회

시대착오적 대북정책과 역사의 퇴행

편집국 0 3,509 2013.05.29 10:49

이명박 정부 출범 1년 만에 국가가 수십 년 전으로 되돌아가는 역사의 퇴행을 겪고 있다. 국가경제가 파탄 직전에 빠진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인권과 교육, 언론 상황은 6·70년대 독재정권 시절과 별다를 바가 없다. 무능과 억지와 시대착오적인 사고가 이 나라를 위기상황으로 몰고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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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 4월15일 ‘침략적 한미동맹 강화의 계기가 될 한·미정상회담 규탄’ 기자회견. ▶ 통일뉴스 ]

6·70년대로 돌아간 한국

남북관계 역시 파탄난 지 오래다. 민주정부 10년 동안 어렵게 쌓아 놓은 공든 탑이 무너지는 데는 한 달밖에 걸리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 출범 후 처음에는 남한의 새 정부에 대한 비난을 자제하면서 관망해온 북한은 김하중 통일부 장관과 김태영 합참의장의 발언을 문제 삼아 당국 간 회담을 중단한 바 있다. 그 후에도 계속되는 이명박 정부의 대북적대정책에 대한 대응으로 북한은 개성공단 상주인력을 감축하고 통행을 제한하는 이른바 ‘12·1 조치’를 취했다. 이처럼 남북관계는 사실상 단절상태에 있다. 

남북관계와 외교안보가 난맥상을 보이고 있는 근본적인 이유는 이명박 대통령 자신에게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6·70년대식의 시대착오적인 사고방식과 인식으로 남북문제와 외교안보문제에 접근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0년 동안 남북관계와 한반도 주변정세가 엄청나게 변화하고 발전했음에도, 대통령의 사고는 이를 전혀 인식하지 못한 채 여전히 냉전시대에 정체되어 있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은 처음부터 시대착오적이었다. 대선 공약의 일환으로 밝힌 이른바 ‘비핵·개방·3000 구상’은 북한 핵 폐기를 전제로 북한경제를 수출주도형으로 전환시켜, 400억 달러 상당의 국제협력자금을 투입해 북한경제를 매년 15~20%의 성장을 지속시키고, 10년 후에는 북한의 1인당 국민소득을 3,000달러로 만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한반도의 현실과 남북관계의 특수성을 무시한 비현실적이고 시대착오적인 것이다. 북한이 받아들이거나 실현될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을 알면서도 ‘선전’ 차원에서 무수히 제시됐던 과거 7·80년대의 공세적 제안들을 연상시킨다. 

흡수통일 정책으로 복귀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의 특징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선 북핵 해결 후 남북협력 추진 정책이다. 비핵·개방·3000 구상 등에서 밝히고 있는 바와 같이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은 북한 핵문제의 해결을 전제로 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 핵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어야 한다는 것인지, 아니면 북한 핵문제가 어느 정도 진전 되어야 대북지원을 하고 남북관계를 발전시키겠다는 것인지는 불분명하다. 

둘째, 사실상의 흡수통일 정책으로의 복귀이다. 흡수통일을 공식적으로 내세우고 있지는 않지만,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은 남북 간의 평화공존정책이라기보다는 북한체제를 자본주의식 경제로 개편하여 남쪽 경제체제로 흡수통일을 하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실제로 비핵·개방·3000 구상은 북한체제의 개방을 통해 자본주의식 경제체제로 개편하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셋째, 상호주의 원칙의 부활이다. 현 집권세력은 그동안 이전 정부들의 대북정책 중에서 이른바 ‘대북 퍼주기’를 가장 강력히 비난해왔으며, 남북관계에서 상호주의 원칙의 엄격한 적용을 주장해 왔다.

넷째, ‘실용주의’를 강조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대통령 취임사에서, “남북관계는 이제까지보다 더 생산적으로 발전해야 합니다. 이념의 잣대가 아니라 실용의 잣대로 풀어가겠습니다”라고 밝힌 바 있다. 특히 대북정책을 비용 대비 성과의 원칙에서 접근하겠다는 데는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다. 민족의 장래가 걸린 남북문제와 통일문제를 ‘시장바닥 장사꾼’의 논리와 시각으로 접근하겠다는 것과 별반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다섯째, 한미공조에 대한 지나친 강조이다. 이전 김영삼 정부 시절과 마찬가지로 남북문제와 북한 핵문제 해결과 관련해 지나치게 한미공조를 강조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2008년 2월15일 대통령 경축사절단장으로 방한한 미국의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을 접견한 자리에서, “한미관계가 좋은 것이 남북관계에도 도움이 된다”고 밝힌 바 있다. 

여섯째, 이전 정권과의 차별화정책이다. 부시의 ABC(Anything But Clinton) 정책을 연상시킨다. 수구적 성향의 이명박 정부는 이전 정부의 대북정책과 차별화를 기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빠져 있는 듯하다. 이명박 정부는 이전 정부에서 합의한 6·15 공동선언이나 10·4 공동선언의 준수, 또 그동안 남북 간에 합의 추진 중인 사업 등을 계승하겠다는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남북관계 파탄과 외교적 고립 초래 

이명박 정부의 이 같은 시대착오적인 대북정책은 결국 남북관계를 파탄에 빠뜨리고 남북관계의 단절을 초래했다. 북한은 남한 정부와의 대화를 기피하는 대신 미국과의 양자협상에 진력하는 이른바 통미봉남(通美封南)정책을 취하고 있다. 북한은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에 근본적인 변화가 없다면, 당국 간 대화를 하지 않겠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에서 남북대화 단절의 공백 기간은 매우 길 것이다.

더 큰 문제는 북한 핵문제 협상과 한반도문제 해결 과정에서 한국이 주도권을 상실했다는 점이다. 이미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한 협상 틀에서 한국은 소외된 채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하고 있다. 이전 정권이 6자 회담과 북한 핵문제 협상과정에서 협상안을 제시하고 나름대로 조정자 내지는 중재자 역할을 해온 것에 비하면 이는 매우 우려되는 점이다. 

이처럼 이명박 정부가 북한 핵문제 협상과 한반도문제 해결과정에서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하고 주도권을 상실해가는 것은 다음의 이유에서다. 우선 남북문제에 대해 친미반북의 강경 보수 입장을 취해온 이명박 정부에 대한 북한의 불신과 의구심이, 협상 틀에서 한국의 입지를 축소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게다가 이명박 정부의 한미공조에 대한 강조 역시 협상 틀에서 한국정부를 고립시키는 요인이다. 지금처럼 지나치게 한미공조만을 강조해 협상주체로서의 역할과 입지를 상실하게 된다면, 북한은 굳이 남한을 협상과 대화의 파트너로 인정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전향적인 대북정책을 내놓고 협상주체로서의 입지를 확보하지 못한다면, 북한은 남한 정부와의 대화를 기피하고 미국과의 양자협상에 진력할 것이다. 

현재 남북관계의 현실은 매우 심각하다. 남북적십자사를 이어온 판문점 경유 직통전화의 단절은 남북관계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1971년 개통된 이후 남북관계가 무력충돌을 비롯해 온갖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단절되지 않았던 판문점 남북 직통전화까지 처음으로 끊긴 상태다. 그 상징성은 매우 크다. 남북관계가 ‘잃어버린 10년’을 지나 이제는 7·4 공동성명 이전 시기로까지 후퇴한 느낌이다.

그럼에도 이명박 대통령과 정부 여당의 현실인식은 너무나 안이하고 무책임하다. “기다리는 것도 전략”이라는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은 대통령으로서 직무유기에 가깝다. 그렇게 한가한 상황도 아니려니와 마냥 기다린다고 뾰족한 무슨 수가 날 것 같지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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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박 정부는 한미동맹을 맹신하고 있지만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정책은 전향적인 방향이 될 가능성이 크다. 2008년 11월13일 한미연합군사령부 창설 30주년 기념식. ▶ 통일뉴스 ]

오바마는 이명박과 철학과 생각이 전혀 다른 사람

더구나 미국 대선에서 버락 오바마 민주당 후보가 당선됨에 따라 미국의 외교정책과 대북정책에 큰 변화가 예상된다. 미국의 차기 대통령 오마바는 결코 이명박 대통령과 “철학과 생각이 같은” 사람이 아니다. 이명박 정부는 부시 행정부의 정책과 별다른 차이가 없을 것이라며 희망사항에 불과한 아전인수식 전망을 펼치지만, 오바마 행정부의 한반도정책과 대북정책은 부시 행정부와는 상당히 다른 내용을 지니게 될 것이 분명하다. 

“북한문제 등에 대해 양국이 긴밀히 협의해 나가기로 했다”는 오바마 당선자의 전화통화 내용을 순진하게 굳게 믿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납치자문제 해결을 조건으로 내세웠던 일본의 요구를 뿌리치고 부시는 북한을 테러지원국에서 해제해주었다. 미국의 입장에서 한미관계는 그 비중과 중요성 면에서 미일관계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 미국 외교정책의 변화와 이에 따른 대북정책의 변화는 이명박 정부에게 큰 시련을 안겨줄 것이다. 또 대북문제를 둘러싸고 한미 간에 적지 않은 마찰을 불러올 것이 분명하다. 이명박 정부로서는 외교적으로 ‘고난의 행군시기’가 될 듯하다. 

오바마 행정부는 클린턴 행정부와 마찬가지로 미국 민주당이 추구해온 다자주의와 실용주의의 외교정책으로 다시 복귀할 것으로 보인다. 즉, 오로지 미국의 힘에만 의존해온 부시 행정부의 일방주의에서 탈피해, 국제사회의 합의와 협력을 보다 존중하는 방향으로 미국의 외교정책이 재조정될 것이다. 또한 군사력 사용을 통한 해결보다는 협상과 타협을 통한 해결에 더 많은 비중이 두어질 것이다.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정책은 상당부분 클린턴 행정부의 대북정책을 계승하고 발전시키는 형태가 될 것이다.

미국의 대북정책 크게 바뀔 것

대북정책과 관련해서는 예상 이상으로 대담한 접근을 시도할 가능성이 있다. 대북문제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문제나 이란문제 등 다른 현안들에 비해 미국 내 이해집단 간의 갈등이 적고 문제해결이 상대적으로 쉽다는 점에서, 오히려 북한과의 협상을 서두를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바마가 후보 시절부터 공헌해온 대로 북한과 양자 간 직접협상을 통해 북한 핵문제의 조기해결을 모색할 가능성이 배제할 수 없다. 북미협상은 취사선택을 허용치 않는 일괄 교섭(package deal)을 통한 포괄적 접근방식을 취할 것으로 보인다. 구체적으로 북한의 핵무기 포기와, 북미수교를 통한 북한의 안전보장을 맞바꾸는 빅딜을 시도할 것이다. 

한편 오마바 행정부에서는 북미협상을 촉진시키고 북미관계 정상화에 유리하게 작용할 여러 가지 긍정적인 요소들이 존재한다. 우선 오바마 행정부에는 한반도문제와 북한문제에 대해 상당한 이해력을 지니고 있는 인물들이 외교안보라인과 자문그룹에 대거 포진하고 있다. 한반도문제와 북한문제에 사실상 무지했고 따라서 비현실적인 ‘북한붕괴론’과 같은 대북강경정책에 매달렸던 부시 행정부의 외교안보 핵심들과는 달리, 오바마 행정부의 외교안보라인들은 보다 현실적인 접근과 타협을 시도할 것이다. 

또한 오바마 행정부에서는 대북정책과 관련해 강·온파 간의 대립이 줄어들어, 보다 실용적이고 일관성 있는 정책을 추진할 수 있게 되었다. 부시 행정부에서처럼 강경파들이 대북협상파들을 견제하고 북미협상을 방해하고 발목 잡는 일은 줄어들 것이다. 게다가 국무장관을 맡은 힐러리 클린턴은 차기 대권을 노리는 입장이므로 뚜렷한 외교적 성과가 필요한데, 다른 외교적 현안들보다 북한 핵문제가 상대적으로 해결이 용이하므로 북한 핵문제의 조기 해결을 서두를 가능성이 있다.

오바마가 미국 외교정책의 중요한 목표 중의 하나인 대량파괴무기(WMD) 확산 방지를 위해 국제조약과 같은 국제적 규제체제의 강화를 추진할 가능성이 높은 점도 긍정적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오바마 정부는 핵무기확산방지(NPT) 체제의 강화나 전면핵실험금지조약(CTBT)과 생물무기금지협약(BWC) 추가의정서 비준 등을 통해 대량파괴무기 확산 방지를 위한 국제적 규제체제의 강화를 시도할 것이고, 이를 위해서는 북한과의 협상을 조속히 마무리하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미국 새 행정부의 대중국정책 변화 가능성도 북미협상과 북미관계 정상화에 대한 촉진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미일동맹 강화를 주축으로 해서 중국에 대한 포위 견제전략에 중점을 두었던 부시 행정부와는 달리, 오바마 행정부는 대중국관계를 개선하고 보다 다변화된 동북아정책을 추진할 가능성이 있다. 

민주당이 연방 상하 양원을 모두 장악하고 있는 것도 긍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과거 클린턴 행정부에서는 북미제네바 합의문이나 북미공동코뮤니케 등 북미 간의 합의문들이 공화당이 장악하고 있는 의회의 비협조와 방해로 인해 이행에 지장을 받아온 것이 사실이다. 

미국의 ‘Two Koreas 정책’에 대비해야

그런데 오바마 행정부의 집권과 이 같은 미국의 한반도 및 대북정책의 변화 가능성은 우리에게 새로운 과제를 던져준다. 오바마 행정부의 한반도정책은 북한붕괴론에 사로잡혔던 부시행정부의 비정상적이고 몽상적인 정책에서 벗어나서, 미국의 전통적인 한반도정책인 ‘Two Koreas 정책’으로 복귀했음을 의미한다. 미국의 이러한 전통적인 한반도 현상유지정책은 한반도에 일시적인 평화를 가져다 줄 수는 있으나, 잘못하면 분단의 고착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경계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북미관계 정상화 못지않게, 아니 이보다 더 큰 동력의 남북관계 발전이 병행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이명박 정부가 지금처럼 남북관계의 단절을 초래시키고 북한 핵문제 해결과정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정에서 소외되고 고립된 채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이는 단순히 정권의 실정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역사에 대한 반역이고 민족에 대한 범죄가 될 것이다. 지금이라도 대통령이 생각을 바꿔야 한다. 그리고 사람을 바꾸고 정책을 바꾸어야 한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3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