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이라는 ‘블랙홀’을 어찌 할 것인가

노동사회

서울이라는 ‘블랙홀’을 어찌 할 것인가

편집국 0 4,167 2013.05.29 10:47
 

book.jpg대한민국 국민의 절반이 수도권에 살고 그 중의 절반은 서울에 산다. 그리 신기한 내용은 아니지만 18세기 말 과거 급제자의 절반 정도가 서울 출신이었고, 산업혁명의 진원지 런던이 50만 인구에 육박했던 때 서울 인구도 비슷한 정도였다고 하니 ‘서울 바라기’ 행태는 조선 시대에도 별반 다르지 않았던 모양이다. 심지어 정약용조차 자녀들에게 “무슨 일이 있어도 사대문 밖으로 이사 가지 말고 버티라. 멀리 서울을 벗어나는 순간 기회는 사라지며 사회적으로 재기하기 어렵다”는 유언을 남겼다고 하니 할 말이 없다.

정약용도 “절대 사대문 밖으로 이사 가지 말고 버티라”

한국인들은 지방에서 태어났더라도 대학 입학이든 입사든 어떤 계기로든지 간에 고향을 떠나 서울로 갈 생각을 한다. 한 지방 출신 친구에게서 “한국인들의 마음의 고향은 서울”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사실 그 말이 별로 틀린 말은 아닌 듯싶다. 그런 의미에서 강준만 교수는 ‘지방주의자’다. 나는 그가 지방에서 태어났는지 아닌지는 잘 모른다. 누구나가 서울을 ‘마음의 고향’으로 삼는 마당에 출신지가 그리 중요할까? 

다만 내가 『지방은 식민지다』를 보고 그를 지방주의자라고 결론내린 이유는, 그가 지방은 서울의 ‘내부식민지’라고 주장하며 그 오래된 불평등의 원인을 ‘중앙권력 줄서기’에서 찾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가 지방이 살아야 한국이 산다고 주장하며, 그러기 위해서 지방이 ‘남 탓’을 하기 전에 ‘제 탓’부터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강준만에 따르면 내부식민지를 떠받치고 있는 가장 큰 기둥은 교육이다. 지방의 인재들은 ‘SKY’로 대표되는 서울의 대학교가 블랙홀처럼 빨아들인다. 지방에 사는 사람들조차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그렇게 서울 안으로 편입된 ‘우리 고향’ 출신의 성공인들이 언젠가는 고향의 발전을 위해 헌신할 것으로 믿는다. 순진하기 이를 데 없는 생각이다.

중앙을 향한 맹목적 사랑, 지방 안으로 돌려보자

중앙의 권력을 향유하고 있는 사람들은 지방에 관심이 없다. 어느 정도 생각이 있는 지식인층조차 “못 살겠다”는 지방의 절규를 모르는 척 해주는 걸로 할 일 다했다고 여긴다. ‘서울의 발전이 곧 나라의 발전’이라는 생각을 적극적으로 주장하지 않는 것만 해도 자기 할 도리는 다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강준만은 말한다. “화를 낼 대상은 지방의 안에도 있으며 궁극적인 실천력은 안에서 나온다는 것을 직시하자”는 것이다. “지역모순마저 계급모순에 종속시켜 계급모순으로 찍어 누르려는 현실” 안에서, 지방이 서울의 내부식민지라는 것을 인정하고 “지역의 우수한 인재를 서울로 보내는 걸 지역발전 전략으로 삼는 ‘내부식민지 근성’만큼은 꼭 청산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노동조합운동에서도 지역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흐름들이 조금씩 만들어지고 있다. 지역을 미시적으로 바라보고 지역 주민들과의 연대/접점을 화두로 삼아도 좋겠지만, 넓은 의미에서의 ‘수도권 대 지방’의 문제를 바라보면 지방에서의 노동조합운동이 실천적으로 고민해야 할 부분들도 실천적으로 보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문제가 ‘백화점’인 만큼 할 일도 태산

사실 『지방은 식민지다』는 너무 많은 것을 말하는 책이다. 서울이 지방을 내부식민지로 삼고 있는 현실이 어떤 비루하고 탐욕적인 메커니즘에 의해 작동하고 있는지, 지방이 변화하기 위해 정치와 언론은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 지방문화는 어떻게 발전해야 하는지, 지역주의가 지방을 오히려 어떻게 망치는지 등등. 다양한 주제들에 관해 학술 논문에서부터 일반 신문기사까지 폭 넓게 훑어가는 강준만 특유의 글쓰기 탓에 이 책은 참 쉽게 읽힌다. 

하지만 그런 만큼 ‘지방 불평등의 원인과 대안’이라는 주제를 머릿속에 단단히 붙들어 매고 읽지 않으면 지방 불평등 문제의 ‘백화점’을 한 바퀴 휙 둘러 본 느낌밖에 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은 유의해야 할 듯하다. 한편으로는 370여 페이지의 책 한 권 안에 ‘너무’ 많은 것을 말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답답한 지방의 현실이 눈에 보여, 읽는 이의 머릿속도 조금 답답해질 수 있다는 것도 함께 유의해야 할 성싶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3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