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항 속에 일단락된 2009년 최저임금교섭

노동사회

난항 속에 일단락된 2009년 최저임금교섭

편집국 0 3,187 2013.05.29 11:24

지난 6월30일 2010년 최저임금 수준을 결정하는 최저임금위원회 논의가 종결되었다. 글을 쓰는 지금까지도 매년 제출되는 최임위 대정부 건의문과 관련된 노사 간 이견이 남아있는지라 아직 올해의 최임투쟁이 종결되었다고 보긴 어렵다. 하지만 적어도 2010년 적용될 최저임금은 전년대비 2.75% 인상된 시급 4,110원으로 결정되었다. 주40시간 적용 사업장의 경우 월급여로 환산하면 858,990원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노동계가 당초 제시한 시급 5,150원, 월환산 1,076,350원에 비하면 상당히 낮은 액수에 불과하며, 따라서 결정된 금액만 놓고 보면 노동계 입장에서 볼 때 만족스럽지 못한 수치임은 자명하다. 그러나 올해 최저임금교섭에서 단연 최고의 화두는 경제위기였다. 싫든 좋든 적어도 경제위기 시 최저임금의 위상과 제도적 의의를 재고할 수 있었던 시기이기도 했다. 

세계는 내수 증진을 위한 최저임금 인상이 ‘대세’

전 세계적 경제위기 속에 내수 증진이 중요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는 상황에서 최저임금이 가지는 의미는 남다를 수밖에 없다. 해외의 사례로 눈을 돌리더라도 오바마 미 대통령은 당선 직후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발표한 ‘20개 주요 경제 이슈’ 중 하나로 “2011년까지 최저임금 시간당 9.5달러로 인상”(2008년 현재 6.55달러) 방침을 밝혔다. 미국은 10년 동안 제자리였던 최저임금이 2007년부터 점차 인상되기 시작했고, 신정부의 집권과 함께 ‘최저임금 대폭인상’이 주요 경제공약으로 자리잡았다. 

이에 앞서 유럽연합 의회는 저임금 확산이라는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최저임금 수준을 평균임금(정액임금 평균이 아님)의 60% 수준으로 할 것과, 이를 위해 평균임금의 50% 수준을 단기적으로 시급히 도입할 것을 권고한 바 있다. 에스토니아 정부가 평균임금 대비 최저임금의 구체적인 적정수준을 법적으로 명문화하기로 한 것도 이의 일환이다. 

대처정권 시절 최저임금제도를 폐기했던 영국도 1999년 최저임금제도를 부활시켜 200만 명이 넘는 대상 노동자가 풀타임 성인노동자 임금총액 기준 45.1%의 최저임금을 적용받고 있다. 단체협약 효력확장에 따라 별도의 최저임금제도를 도입하지 않아 왔던 독일 역시 작년 7월 기민-기사-사민당의 합의에 따라 제도를 도입하기에 이르렀다. 그 결과 다양한 형태의 비정규직과 소규모 사업장 노동자, 소매상 등 360만 명이 최저임금을 적용받게 되었다.

내수경제 회복 방법으로 ‘삽질’밖에 생각 못하는 정부

결국 한국을 제외한 대다수 국가에서 경제위기 대응의 주요한 축은 자국노동자의 임금과 생계에 대한 보호를 통해 유효구매력을 증진시켜, 불안정한 국제 경제체제에 대한 내수경제의 자생력을 복원하는 데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한국 정부는 독특하게도 정반대방향을 고수하고 있다. 

한편으로 내수경제 복원의 필요성은 인정하는 듯 보이나, 이를 위한 방안은 일부 건설자본 배불리기에 지나지 않는 토목공사 활성화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이른바 고통분담을 위한 사회적 대타협에서 시작된 논의는 대졸초임 삭감으로 이어졌는데, 이는 공공/민간을 아우르는 전체노동자의 임금삭감으로 현실화되고 있다. 정부와 자본에게 경제위기의 핵심은 소득격차도, 저임금 노동자 확산도, 내수경제 위축도 아닌 기업의 채산성 악화였다. 

작금의 상황이 심각한 경제위기라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었고 이제 경제 회생은 사회적인 제1과제로 부상했다. 경제위기가 대통령을 만들었고 그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 폭락도 경제위기가 만들어낸 셈이다. 그런데 정부는 경제위기의 부담이 고스란히 노동자에게 전가되고 있다는 점,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의미에서 노동자의 적절한 생계보장이 경제 회생의 징표라는 점, 너도 나도 얘기하는 내수복원은 국민의 유효구매력 증진으로부터 나온다는 점에 대해서는 애써 침묵하고 있다. 이번 최저임금 교섭이 난항을 겪으리라는 사전 예측도 이 같은 배경에서 제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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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동탄압 분쇄, 민중생존권-민주주의쟁취 공동행동'이 6월18일 최저임금 현실화 쟁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레디앙 ]

최저임금 가파른 인상? 아직도 먼 ‘소득분배 개선’

올해의 최저임금 교섭과 관련하여 먼저 지적할 것은 사측의 최저임금 삭감 요구에 대한 초기 대응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사실 올해 최저임금 교섭이 경제위기를 이유로 상당한 어려움을 겪을 것은 사전에 예상되었다. 사후 평가에 불과하긴 하지만, 결정된 최저임금인상률 2.75%는 IMF 외환위기 시절의 2.5%와 대동소이하며, 이를 역으로 따져보면 올해 최저임금 결정 당시 외환위기 때 경험이 공익위원측의 사실상 기준점이 되었다는 것도 충분히 추론할 수 있다. 

어쨌든 지난 5월29일 제2차 임금수준전문위원회에서 사용자위원측은 최저임금제도 사상 최초로 최저임금 삭감안을 사용자 단일안으로 제출하였다. 당시 사용자측은 현재 적용되는 최저임금 시급 4,000원에서 5.8% 삭감된 3,770원을 제시했는데, 이는 별다른 근거를 가진 것이 아니었다. 단순히 경제위기로 기업경영이 어려우니, 최저임금을 한해 전인 2008년 수준으로 되돌리자는 것이었다. 

사용자측은 최저임금이 전체 노동자 임금인상률에 비해 과도하게 높이 인상되어 산업경쟁력에 장애요소가 되고 있다고 주장하며, 특히 민주노총이 최임위에 참가하기 시작한 2000년 이후 매년 지나치게 가파르게 상승했다고 강변해 왔다. 그러나 1988년 최저임금제도가 처음 시행된 이후 20년간 최저임금은 6.91배 인상된 반면, 같은 기간 일반 노동자의 정액급여는 6.77배, 임금총액은 6.27배 인상돼 별반 차이가 없다. 또한 지난 20년간 국내총생산은 6.57배, 국민총소득은 6.63배 늘어나 최저임금을 포함한 일반노동자의 임금인상폭과 대동소이한 상황이다. 이렇게 일반 노동자의 임금, 국내총생산 증가 수준과 최저임금 인상 수준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은 소득분배구조 개선이라는 최저임금제도의 본래의 취지를 달성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삭감하고 말겠다는 사용자측의 강력한 ‘고집’

특히 올해 최저임금 정세와 관련하여 경제위기에 따른 최저임금의 인상이 불가하다는 입장의 논거로는 중소영세사업장이 임금비용으로 경영상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점, 최저임금은 그 명목상의 임금 이외에 각종 부가수당으로 인해 실제 임금지급액은 이를 상회한다는 점, 경제위기에 따라 전체 임금수준이 정체 혹은 하락할 것이라는 전망 등이 있었다. 이미 종결되긴 했으나 그 논거를 하나씩 살펴보자면, 중소영세사업장의 경영상 어려움이 저임금노동자의 생계위기와 동떨어진 것인가에 대한 논의는 분명 필요하다. 민주노총은 중소영세사업장의 채산성 악화가 만약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것이라면, 이를 위한 정부지원을 실행할 것을 주장한 바 있다. 이것이야말로 상식적인 의미에서 고통분담이 될 것이다. 

다음으로 경제위기에 따라 전체 임금수준이 정체 혹은 하락할 것이라는 전망이 최저임금 인상 불가론으로 연결되는 것은 한국의 임금구성체계와 최저임금이 통상급여에 따라 정해진다는 점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즉 전년도에 비해 임금수준이 정체되고 일부 사업장에서 삭감되는 것은 사실이나, 이는 거의 대부분 상여금 하락에서 기인한 것이다. 각종 자료에서 밝혀지듯 최저임금의 산정기준이 되는 통상급여나 정액급여는 예년의 증가율을 유지할 것이며, 이는 상식적인 수준에서 확인 가능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최저임금 인상 불가론을 얘기하는 것은 저임금노동자들의 임금체계가 최소한의 통상급여와 상대적으로 작은 비율의 기타 수당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을 외면하고자 하는 의도라고밖에 설명될 수 없다. 

하지만 사측의 요구안을 유지하는 데 필요했던 것은 논리가 아니었고, 최저임금 삭감이 불가피하다는 그들의 ‘고집’은 최저임금 교섭을 사실상 지배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노동계의 다양한 대책은 효율적일 수 없었다. 고집스런 사측의 삭감안은 당초 최종교섭으로 예정되었던 7차 전원회의를 지나, 최임위의 노동부에 대한 차기년도 최저임금 최종제출일자인 6월29일 밤 11:50분까지 지속되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동결안이었다. 

결과적으로 사용자측의 삭감안에 대한 초기대응의 부족이 문제였다. 강력한 교섭전술의 배치를 통해 삭감요구안을 보다 이른 시기에 철회시켜 최저임금 인상의 당위성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를 충분히 피력할 수 있어야 했다. 어쨌든 사측의 최임삭감안에 대한 항의와 반발은 경제위기의 고통을 노동자에게 전가하려는 정부와 자본의 의도를 고발하는 데는 효율적이었을지 모르나, 적어도 교섭과 관련해서는 6월 한 달 동안 불필요한 교섭력을 소진하는 원인이 되었다. 

위원들 대거 교체, 국민임투 한계 등에 대응해야

문제는 사측의 삭감 및 동결요구가 내년에도 반복될 공산이 크다는 점이다. 사측은 올해 최저임금 삭감의 근거로 2000년 이후 최저임금 인상률이 일반적인 생산성 증가율과 물가인상률을 넘어섰다는 점, 기업경영상 애로로 인해 중소기업의 대량해고가 불가피하다는 점 등을 지속적으로 강조해왔다. 경제위기의 진행 국면에 따라 달라지겠으나 경제성장률 등의 거시통계가 호전되더라도 고용대란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효과는 여전히 유효하다는 점에서, 이 같은 논리는 앞으로 계속 제시될 가능성이 크다. 

한편 올해 최저임금 교섭에서 특징적인 것은 노·사·공익위원들이 대거 새롭게 구성되었다는 점이다. 위원장을 비롯하여 공익위원이 새롭게 교체되었으나, 불행하게도 다수가 보수적 색채를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일례로 해프닝으로 끝나긴 하였으나, 매년 계속되어왔던 최임위 회의의 참관 및 사례 증언에 대해 「공공기관 정보공개법」 등을 거론하며 불가 입장을 밝혔던 것도 이러한 분위기를 반영하는 것이었다. 특히 공익위원 선임에 있어서도, 노사 간 추천 관행이 사실상 무시되고 친사용자적인 인물들로 구성되었는데, 적어도 3년의 법적 임기 동안은 이러한 구성하에서 교섭을 꾸려나가야 하는 상황이다. 최저임금 수준 논의에서 사실상 최종 결정권을 가진 공익위원에 대한 새롭고 다각적인 교섭력을 확보하기 위한 전술이 마련될 필요가 있다.

한편 민주노총은 올해 최저임금 교섭의 상을 전체 노동자의 임금교섭을 대리하는 것으로 잡고, 최저임금투쟁을 국민임투로 격상시켜 사업을 전개하고자 했다. 그러나 “국민임투로서의 최저임금투쟁”이라는 기치를 내걸었음에도 조직 내 최임투쟁의 전면화, 치밀한 사전 기획에 의한 시민사회단체와의 연대사업 진행에 있어 한계를 보였다. 물론 노동계 교섭단은 최저임금연대와의 공동사업을 통해 여론화 작업 및 교섭력 배가를 위한 몇몇 사업을 진행했다. 그러나 비정규직법을 포함한 MB악법 대응과정에서 최임투쟁을 특화시키고 전면적 사회공론화를 실행하는 데 일정한 한계를 드러냈다.

최임투쟁을 조직화의 계기로 만들자

어쨌든 2010년 적용될 최저임금 수준은 결정되었다. 마지막으로 지적할 것은 현재 노동운동이 최저임금투쟁을 진행함에 있어 최저임금 당사자와의 연계고리를 확보하고 이를 매개로 한 조직화사업을 중점적으로 실행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평가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나 최저임금 수준의 증가에 따라 최저임금 혜택을 받는 노동자들의 숫자가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라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민주노총 조합원을 기준으로 볼 때 최저임금노동자의 비중은 소수에 불과하다. 이로 인해 당장 최임투쟁을 진행하면서 최저임금 당사자와의 연계고리 확보를 통해 사회여론화를 시키고 이를 교섭력 증대로 이어가는 데 한계를 보인 바 있다. 차제에 최저임금 당사자를 조직적으로 적극 발견해내고 최저임금 현실화를 위한 다양한 사업에 배치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최임투쟁이 곧 조직화의 주요 계기가 될 수 있는 사업을 기획하는 관행의 정착이 필요하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4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