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조 운동의 새로운 전망을 찾아서

노동사회

민주노조 운동의 새로운 전망을 찾아서

편집국 0 3,333 2013.05.29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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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 봉(峰)자에 일어날 기(起) 봉기(蜂起)라
참 좋은 말이다
두드릴 타(打)자에 넘어질 도(倒) 타도(打倒)라 
참 좋은 말이다
그러니까 벌떼처럼 들고 일어나 마구 두들겨 패서
마침내 쓰러뜨린다는 뜻이렷다
시황제가, 시저가 이렇게 쓰러졌것다
바티스타가 소모사가 팔레비가
이 아무개 박 아무개도 이렇게 쓰러졋것다
세상 어느 놈도 민중의 자유를 누르고는
제 명대로 살지 못하렷다.

 - 김남주 시인의 「한자풀이」 전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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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dj_01.jpg지난 20여 년간 목숨 바쳐 쌓아온 민주적 권리와 제도가 불과 1년 6개월 만에 산산조각이 났다. 촛불로, 단식으로, 오체투지로 저항해 보지만 꿈쩍도 않는 정권에 분노를 넘어 절망마저 느낀다. 어떻게 쟁취해 온 민주주의였던가. 

80년 광주 민중들의 혁명정신을 이어받은 노동운동가들은 공장에서, 지역에서, 죽음과 구속을 무릅쓰고 활동하였다. 현장에서 근로기준법만 말해도 빨갱이로 몰렸고, 불온서적을 가지고 있었다는 이유만으로도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되어야 했다. 70년대 선배들은 박정희 유신독재 속에서도 비밀리에 모든 조합원에게 교육을 시키고 투쟁을 조직하였다고 한다. 똥물을 뒤집어쓰고 삼청교육대에 끌려가면서도 포기하지 않은 것이 ‘민주노조’다. 예전 우리 사업장(경동산업)도 노동조합을 만들기 위하여 2명의 동지가 시너를 뒤집어쓰고 분신·자살했는데도 민주노조를 세우는 데 5년을 더 싸워야 했다.

피와 땀으로 이룬 민주노조, 지금은 왜 어려운가

노동운동가들은 주야 12시간씩 맞교대로 일하고도 사회변혁을 위한 학습과 토론으로 밤을 새우고, 경찰의 눈을 피해 지역과 공단에 유인물을 뿌리고, 관리자 몰래 노동조합 결성을 위한 소모임을 조직하였다. 혁명적 열정과 새로운 사회에 대한 전망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노동자들의 의식이 바뀌고, 수많은 노동자조직에 의해 투쟁역량이 쌓이면서 마침내 전노협과 민주노총이 만들어졌다. 민주노조는 노동자들의 피와 땀의 역사다. 

혹독한 탄압을 뚫고 민주노조를 만들던 80년대의 활동과 비교해 보면, 현재의 어려움은 노동운동이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 문제이다. 노동조합을 만들기도, 학습을 하기도, 파업과 집회를 하기도 쉬워졌다. 기업별노조가 산별노조로 발전하고, 예전에는 감히 꿈도 못 꿨던 진보정당과 노동자 국회의원도 만들어냈다. 그런데 여전히 어렵다고 한다. 왜 그럴까? 문제의 핵심은 노동운동의 발전을 책임지고 있는 노동운동가, 간부들에게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까?

새로운 활동전략과 포용력 있는 단결로

첫째, 학습소모임과 현장토론으로 노동운동의 전망을 찾자. 세상은 변하였는데 노동운동가들은 정체되어 있다. 새로운 사회에 대한 전망도, 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꾸기 위한 치열한 노력도 없다. 정치조직과 현장조직은 집행부 장악보다는 노동운동의 질적 향상을 위한 학습활동과 현장실천에 힘을 쏟아야 한다. 경험 있는 간부의 재교육과 젊은 간부들의 조직적인 현장활동으로 희망을 찾아내야 한다. 우리 연구소도 작년부터 강의식 교육보다는 학습소모임과 토론식 교육에 집중하고 있다. 

둘째, 새로운 활동방식으로 조합원의 참여를 높이자. 조직도, 집회도, 투쟁전술도 전혀 새로운 것이 없다. 조직방침도 없이 현실을 외면한 채 형식에만 매달려 허둥대고 있고, 가장 잘 싸우는 노동자들이 투쟁 현장에 안 보인다. 집회와 행진 프로그램이 똑같고, 총파업만 외치는데 지겹지 않은가? 조합원들이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투쟁전술을 찾아야 한다. 촛불집회를 보면서 반성한다는 소리는 많았는데 노동자들은 여전히 시대에 뒤떨어져 있다.

셋째, 차이를 인정하고 서로를 존중하며 투쟁하자. 분열은 죽음이고 단결은 생명이라고 했지 않는가. 대공장, 사무직, 정규직 노동자들에게 투쟁을 않는다고 비난하기에 앞서, 각 조직이 잘할 수 있는 실천사업을 배치하고 서로 격려하며 함께 가자. 대산별이라는 조직형식에 목졸려 버린 조직방침도 내용을 채우면서 풀어가야 한다. 집행부 선거에만 바쁜 정치조직, 현장조직은 사회변혁의 내용을 갖고 조합원 속에서 서로 경쟁하며 발전해야 한다. 분파와 패권으로 물들은 낡은 조직과 지도부를 물리치고 현장에서 헌신하는 참신한 간부들로 민주노조를 더욱 단단하게 하자.

넷째, 내년 지자체선거에서 선거연합으로 여소야대 국면을 만들어내자. 우리 사회에는 보수집단이 도저히 꺾을 수 없는 어머어마한 민주·개혁세력이 존재한다. 촛불로 들고 일어선 중고등학생들, 천재적 기발함과 재치로 무장한 네티즌들, 천여 개가 넘는 시민·지역단체들이 그들이다. 투쟁에는 때가 있는 법. 내년 지자체 선거는 국면을 전환할 수 있는 좋은 계기이다. 그런데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민주당 후보가 지역마다 모두 출마한다면? 노동자들은 살기 위해서라도 지금부터 진보대연합과 선거연합을 준비해야 한다. 후보단일화에 동의하는 후보에게만 표를 몰아주고 세액공제도 지원하고, 반대하는 후보는 현장에 발을 못 붙이게 해야 한다.

한 단계 높은 이상을 함께 찾아갈 때

새로운 사회건설은 노동운동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 노동운동가들은 지금보다 한 단계 높은 활동으로 새 시대를 개척해야 하는 역사적 책임이 있음을 명심하자. 그 책임을 마음 한 가운데에 단단히 쥐고 노동운동의 새 전망을 함께 찾아 나갈 때, 독재정권마저 우직하게 헤쳐 나왔던 민주노조 운동의 미래가 보일 것이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4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