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예수살기

노동사회

희망의 예수살기

편집국 0 3,755 2013.05.29 11:41

급하게 대전을 다녀왔다. ‘예수살기 전국대회’에서 정세 전망과 2010년 지방선거에 대한 강연을 하고 왔다. 전국에서 목사님 30여분이 모여 있었다. 모두가 예수를 닮은 얼굴들이었다.

예수를 살리기? 예수로 살기!

shlee_01.jpg나는 작년 여름밤을 뜨겁게 달구었던 촛불 때 예수살기 목사님들을 처음 만났다. 시청 앞 우리 천막 곁에 촛불교회라 써 붙이고 목사님 몇 분이 작은 천막을 지키고 있었다. 그 분들이 예수살기 소속 목사들이었다. 붉은 카펫이 깔린 화려하고 경건하기만한 교회를 버리고, 소리치는 민중 속에서 그들이 켜든 촛불과 함께 하면서, 스스로 작은 촛불이 되어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온 목사들이었다.

난 처음에 ‘예수살기’를 ‘예수 살리기’로 잘못 알았다. 꼼꼼히 보고 읽지 않고 내 선입견으로 그렇게 단정해버린 것이었다. 예수가 죽은 시대, 모든 희망이 사라진 시대, 그러한 절망의 시대에 예수를 살려냄으로써 희망과 대안을 만들어 보자는 것으로 이해해버린 것이다.

어떻든 편안함과 잘못된 권위를 버리고, 썩은 사회를 되살려 보고자 애쓰는 신앙인들이 있다는 게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생각하며 흐뭇해 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그들에게 예수는 죽지 않았다. 여전히 희망으로 대안으로 살아 있었다. 그래서 그 희망을 부둥켜안고, 희망의 그늘 절망과 당당히 맞서며 거룩한 싸움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예수 살리기’가 아니라, 예수를 따라 사는, 예수와 함께 사는, 희망을 실천하는 행동과 삶을 추구하는 ‘예수살기’를 하고 있었다.

그들은 매주 하루씩 우리 사회의 가장 그늘진 곳, 가장 억눌리고 힘든 곳을 찾아, 예수와 함께 위로하고 힘을 주는 힘든 일을 즐겁게 하고 있었다. 용산 참사 현장에서도 매주 목요일 예배를 드리며 유족을 위로하고 올바른 해결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번데기로 딱딱하게 굳지 않기 위하여

그 목사들이 비정규직 노동자를, 쫓겨난 정리해고 당한 노동자를, 삶터를 빼앗긴 철거민들을 찾지 않아도 아무도 비난하지 않는다. 눈 감고, 귀 막고, 입 닫아버려도 누구도 뭐라고 하지 않는다. 오히려 왜 그런 쓸데없는 짓을 하느냐고, 무슨 저의가 있느냐고, 뒤에서 비아냥거리고 있다. 

그러나 그 목사들은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 예수를 닮는 정도가 아니라, 예수를 따라 예수처럼 살려고 하는데 어쩌겠는가? 예수가 십자가를 지고 고통당한 것처럼, 그렇게 자기 십자가를 지고 묵묵히 역사의 골고다언덕을 올라갈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이 아름다운 목사들을 보며 자신을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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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겨울 나는 벌레였다 
비굴했다  
작은 굴이나 틈 혹은 
고치 속에 숨어서 
목숨이나 부지하며 살았다
비바람을 탓하고 눈을 원망했다 
추위가 두려웠다
봄이 온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참고 견디기 싫었다
허리를 낮추고 머리를 숙이고 
눈 감고 귀 막고 입 다물었다
번데기로 굳어 외면하며 
감히 나서지 못하고 
눈치나 보며 살았다
꿈꾸지 않으니 희망이 없고 
저항하고 싸우지 않으니 
강해질 수가 없다
모든 성과는 투쟁의 결과
봄이 와도 새로운 날개조차 가질 수 없었다
그대로 살아갈밖에
그리고 여름, 굳어버린 몸에서
하얀 버섯 하나 솟았다
푸른 각성이 포자가 되었다
내가 죽고 썩어야 버섯 하나 자란다

졸시 <동충하초>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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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강해지기 위해서라도 끊임없이 성찰하고 실천해야겠다. 희망을 억지로 만들려고 애쓰지 말고, 희망과 함께 희망을 살아야겠다. 그것만이 내가 번데기로 딱딱하게 굳지 않는 유일한 길이다. 

예수와 함께 예수를 사는 목사들이 있기에 예수는 이 땅에서 희망의 역사를 창조하고 있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4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