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에서 보수언론의 ‘비정규직법’ 보도 프레임 변화

노동사회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에서 보수언론의 ‘비정규직법’ 보도 프레임 변화

편집국 0 6,319 2013.05.30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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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전국 사회학과 대학원생 학술대회 발표문을 요약 수정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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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론

이른바 비정규직 보호법(이하 ‘비정규직법’)은 2001년부터 노사정위원회 논의 등을 거쳐 2004년 9월 공식으로 발표됐다. 그리고 2006년 2월27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와 같은 해 11월30일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는 1998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 사회에서 급격하게 진행된 노동시장 양극화를 규제하기 위해 제기된 가장 중요한 법제도적 시도로서, 그 구체적 내용과 논의 과정, 현실 적용은 사회적으로 큰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그런데 애초부터 정부와 노동계, 특히 민주노총과의 갈등 상황을 배경으로 불안정성을 내포한 채 국회를 통과한 이 법안은 이후에도 두 차례에 걸쳐 격렬한 갈등 이슈로서 재구성됐다. 먼저 2007년 7월1일 법 시행을 전후로 해서는 계약해지(해고) 위기를 맞은 비정규직들의 저항으로 이랜드·홈에버 등에서 노사분규가 분출하면서 제·개정 당시의 갈등들이 재점화됐다. 다음으로 법 시행 2년째인 2009년 7월1일을 앞두고서는 ‘100만 실직대란’이 우려된다며 정부가 기간제 고용시한을 기존 2년에서 3~4년으로 연장하는 방안을 추진해 새롭게 논란이 일었다. 

비정규직법을 둘러싼 이러한 갈등과 논란 속에는 오늘날 중요 이슈인 노동의 유연성 혹은 불안정성에 대한 각 사회 세력들의 정치적 비전이 집약돼 있다는 점에서 보다 심층적인 검토가 필요할 것으로 판단된다. 특히 2년여의 시차 속에서 이른바 민주개혁세력 헤게모니의 노무현 정부와 보수세력 헤게모니의 이명박 정부를 배경으로 각각 진행된 논란들이 어떤 연속성과 단절점을 갖는지 살펴보는 것은, 최근 이명박 정부 아래 진행된 사회적 변화를 보다 정합적으로 이해하는 데도 일부 기여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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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본 연구는 보수 정치세력의 인식과 보수적 시민들의 여론 형성에 중요한 영향을 끼치는 대표적 언론으로서 『조선일보』의 보도 틀 속에서, 앞서 언급한 두 시기에 비정규직법을 둘러싼 갈등과 논란이 각각 어떻게 구성되었고 장면화되었는가를 레이코프의 프레임 분석(레이코프; 로크리지연구소, 2007)과 레이코프와 존슨의 은유 이론(G. 레이코프; M. 존슨, 2006)을 통해 검토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정치적 헤게모니를 장악한 보수세력들이 비정규직법 문제를 어떻게 자기 의제로서 능동적으로 재구성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레이코프의 프레임 분석과 은유 이론

레이코프는 사회학자 어빙 고프만과 언어학자 찰스 필모어의 고전적 프레임 이론들을 토대로 언어학과 인지과학의 발견을 통합하여 자신의 프레임 이론을 제기한다(레이코프; 로크리지연구소, 2007). 그에 따르면 세계가 어떻게 작용하는가에 대해 우리 깊숙이 자리 잡은 심적 구조로서 프레임은 인지 과정에서 특정 측면을 부각시키고 특정 측면은 은폐해, 우리가 사실을 체계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며 ‘상식’을 구성하도록 해준다. 즉, 구조화된 프레임에 따라 특정 개념과 관련된 게슈탈트를 특정 방식으로 일관되게 자극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프레임의 구성(framing)은 두뇌의 신경 층위에서 이뤄지는 것으로 대부분 무의식적이고 자동적으로 진행되며, 또한 프레임은 지속적인 반복과 활성화를 통해 확장되거나 새롭게 형성될 수 있다.

한편, 레이코프와 존슨은 이러한 프레임을 구성하는 요소들, 즉 우리가 지각하는 것, 우리가 이 세계 안에서 살아가는 방식, 그리고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는 방식 등을 구조화는 개념들의 체계는 전통적인 합리주의의 가정과는 달리 은유적 방식에 따라 구성된다고 주장한다. 이들에 따르면 은유란 “한 종류의 사물을 다른 종류의 사물의 관점에서 이해하고 경험하는 것”을 뜻하는 것으로, 단지 수사법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고 과정의 근본적인 특성이다. 레이코프와 존슨은 새로운 은유에는 새로운 실재를 창조하는 힘이 있다고 강조한다. 새로운 은유가 우리 행동의 근거가 되는 개념체계로 들어오면, 그 은유는 개념체계 뿐만 아니라 개념체계가 만들어내는 지각과 행동도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이러한 기본적인 논의에 기반하여 레이코프는 정치적 논쟁과 관련된 ‘일반적인 논증 프레임’의 모형을 제시한다. 이는 다양한 논증 사례들을 검토하여 추출된 성공적인 논증의 공통적인 세부 특성들을 기반으로 구성된 것이다. 즉, 레이코프는 특정 이슈에 대한 프레임 구성이 이러한 ‘일반적 논증 프레임’의 구조와 요소를 정합적으로 충족시킬 수 있을 때, 다수 국민들에게 좀 더 강한 설득력을 갖게 된다고 주장한다. 또한 일반적으로 정치적 주장은 그러한 논증 프레임의 요소와 구조를 충족시키는 방향으로 진행해간다고 주장한다. 레이코프가 제시하는 일반적 논증 프레임의 모형은 △도덕적 가치, △근본 원리, △이슈 정의 프레임, △일상적 프레임, △표층 프레임, △추론 등의 요소로 구성돼 있다. 여러 논증 프레임들 중 보수주의자들이 주로 사용하는 ‘죄와 벌’ 프레임을 예로 제시하면 아래와 같다.

이러한 논의에 따라 『조선일보』의 비정규직법 보도에 깔려 있는 은유적 개념체계에 대한 독해를 바탕으로 그 논증 프레임을 재구성하는 작업은, 보수적 의제설정자로서 『조선일보』가 비정규직법을 자기 의제화 하는 과정에서 은밀하게 사용하는 도덕적 가치와 원리, ‘상식’들의 일단을 보다 명료하게 드러내 줄 수 있을 것이다. 

3. 연구방법

1) 분석대상


분석을 위한 기사 자료는 『조선일보』 홈페이지(hwwp://www.chosun.com)를 통해 수집했다. 2010년 7월30일 기준으로 『조선일보』 홈페이지에서 “비정규직법”을 주제어로 검색되는 총 902건의 기사 중 출처가 『연합뉴스』나 『조선닷컴』이 아니라 『조선일보』인 166건의 기사를 1차 분석대상으로 삼았다. 이후 이 기사들을 모두 출력하여 분석자가 하나씩 읽어가면서 단순 스트레이트 기사, 부분적으로 인용된 기사 등 분석에 적합하지 않은 기사들을 제외하고 2차로 분류한 결과, 총 79건의 기사가 남게 되었다. 이중 시기적으로 가장 이른 것은 2005년 3월30일자였으며, 가장 최근 기사는 2010년 7월15일자였다. 79건 중 노무현 정부 시기의 기사는 26건이고, 이명박 정부 시기의 기사는 53건이었다.      

2) 분석방법

먼저 연구자는 최종 분석대상으로 선정된 기사들을 텍스트에 대한 사전 판단 없이 열린 상태로 여러 차례 읽어나가면서, 이를 일관성 있는 이야기로 만들어주는 핵심적인 아이디어들을 모두 찾아내고자 시도하였다. 본 연구의 관심은 개별 기사들의 배치 상태보다는 비정규직법이라는 핵심 이슈에 대한 보수적 의제설정자로서 『조선일보』의 전체 논증 프레임 구성에 집중돼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시도는 각각의 기사들 안에 단절적으로 제시되어 있는 은유적 개념들과 은유적 표현들을 비정규직법과 관련된 중심 은유를 근간으로 새롭게 맥락지어서 은유적 개념 체계를 재구성하고, 이를 바탕으로 전체 논증 프레임을 통합적으로 구축하는 방식으로 구체화되었다. 

이외에도 연구자는 뉴스 스토리의 핵심 주제를 프레임 판별 기준으로 하여 개별 기사들의 코딩을 진행하였다(양정혜, 2010). 이렇게 하여 획득되는 핵심 주제들의 묶음은 논증 프레임을 보다 명료하게 드러내는 데 기반이 되고 비정규직법이라는 이슈의 전체적 의미를 풍부하게 구성하는 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연구자 단독으로 코딩을 진행했으며, 신뢰도 확보를 위해 시차를 두고 3회에 걸쳐 반복코딩을 실시하였다. 한 기사에 주제가 둘 이상일 경우 중복코딩을 했다.

3) 연구문제

본 연구에서는 이상에서 언급한 문제의식과 이론적 배경, 그리고 분석방법에 근거하여 다음과 같은 연구문제를 도출하였다.

① 노무현 정부 시기와 이명박 정부 시기 『조선일보』의 비정규직법 보도는 각각 어떤 논증 프레임을 구성했는가?

② 정치적 헤게모니 전환 거치면서 『조선일보』 비정규직법 보도의 논증 프레임은 어떻게 변화했는가? 그 함의는 무엇인가?  

4. 분석결과

1) 노무현 정부 시기


노무현 정부 시기 비정규직법 관련 26개의 기사들은 아래 [표1]과 같이 ‘비현실적 법안’, ‘민주노총 비판’, ‘정부 비판’, ‘노정 갈등 심화’, ‘무책임한 의회정치’, ‘노사 갈등 심화’, ‘법안 내용 소개’, ‘노동 시장 영향 평가’ 등 8개의 프레임으로 분류되었다. 명명된 프레임들의 비중 차이와 거기에 속한 기사들의 내용에 근거해서 말하면, 이 시기 『조선일보』의 보도는 비정규직법이 기업현실과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지를 지적하며, 그러한 법을 무책임하게 시행하는 정부 및 의회와 오히려 그보다 더 강화된 법안을 요구하면서 갈등을 의도적으로 조장하는 민주노총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취하고, 갈수록 심해지는 노정 및 노사 갈등과 이를 제대로 제어하지 못하는 정부와 여당에 대한 우려 등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구성했던 것으로 보인다. 법안의 세부적인 내용이나 노동시장에 대한 영향의 예측, 구조적 분석 등은 주요 관심 대상이 아니었으며, 또한 직접적인 갈등 상황에 있는 노무현 정부와 노동계를 제외한 다른 관련 주체들, 이를 테면 사용자와 비정규직들은 시야에서 다소 배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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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집중적으로 다뤄진 비정규직법, 민주노총, 노무현 정부 등에 대해 『조선일보』의 보도들은 독특한 은유적 개념 체계를 구성하고 있었다. 먼저, 민주노총의 경우 “전쟁상인”으로 은유됐다. 이러한 은유가 개념 체계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었기에, 조선일보의 입장에서 민주노총은 파업 참여자 수를 속이는 진정성 없는 조직이고, 바람을 잡으면서 싸움판(파업)을 벌였다가 자기 목표만 채우면 슬그머니 발을 빼는 철면피이며, 따라서 안팎에서 신뢰를 받지 못하는 게 당연한 조직인 것이다. 다음으로 정부와 여당은 “의붓아버지”로서 은유됐다. 즉, 이쪽(노동계) 이야기도 아니고 저쪽(사용자) 이야기도 아니라며 양비론 속에 중심을 못 잡고 있고, (사용자 편도 못 될 뿐만 아니라) 말만 앞설 뿐 실은 비정규직들을 대변하는 데 별 관심 없고 무책임하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비정규직법은 “42조 원”으로 은유됐다. 조선일보의 프레임을 통해 볼 때 비정규직법의 가장 큰 문제는 ‘기간제 비정규직 고용자 2년 이상 고용 시 정규직 전환 조항’이다. 이 조항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그 조항이 기업들에게 “전부 정규직 시킬래 아니면 해고 할래”라고 묻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며, 이 질문이 “비현실”적인 이유는 어느 친기업연구소가 전체 정규직화에 드는 것으로 추산한 추가비용 “42조 원”은 기업들이, 특히 중소기업들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금액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비정규직법은 비현실적이다. 42조 원의 추가비용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랜드·홈에버 등에서 벌어진 해고 사태는 어쩔 수 없다. 어쩔 수 없는 사태에 개입해 인위적으로 갈등을 조장하는 민주노총은 “전쟁상인”이며, 그렇게 상업적 목적으로 부풀려진 갈등을 엄격하게 단죄하지 못하고 양비론적 태도를 취하는 노무현 정부와 여당은 “의붓아버지”인 것이다. 

그런데 이 시기 『조선일보』는 비정규직 노동자와 관련된 보도에 있어 『한겨레』 등 다른 언론들에 비해 매우 소극적이었다(김인영 외, 2008). 즉, 적극적으로 프레임을 구성하여 ‘비정규직법’ 자체를 자기 의제로서 포섭하기보다는, ‘노무현 정부’와 ‘민주노총’ 등 갈등 당사자에 대해서 기존에 형성돼 있는 프레임을 활용한 측면이 더 큰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 ‘비정규직법의 비현실성’과 ‘법질서를 위협하는 갈등(세력)’ 중 후자에 상대적으로 초점이 더 많이 가 있단 건데, 이는 ‘비정규직법의 비현실성’을 감내해야 하는 당사자로서 기업과 비정규직을 주된 대상으로 하는 기사가 전무하고, 본 연구의 자료에 한정했을 때 비정규직법에 대한 은유적 개념 체계가 민주노총에 대한 은유적 개념 체계에 비해 상당히 협소하다는 점에 근거한 판단이다. 이상을 감안하여 논증 프레임을 구성하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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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명박 정부 시기

이명박 정부 시기 비정규직법 관련 53개의 기사들은 아래 [표3]과 같이 ‘비생산적 의회정치’, ‘해고 대란 우려’, ‘약자들의 고통’, ‘정규직 과보호 비판’, ‘노동시장 영향 평가’, ‘법 개정/유예 촉구’, ‘추미애/민주당 비판’, ‘노정 갈등 심화’, ‘비현실적 법안’, ‘제3의 대책 촉구’, ‘정부 비판’, ‘노사 갈등 심화’, ‘구조적 분석’ 등 13개 프레임으로 분류되었다. 명명된 프레임들의 비중 차이와 각 프레임에 속한 기사들에 근거해서 이 시기 『조선일보』의 중심 이야기를 구성한다면, ‘기간제 고용시한 2년 조항’이 처음으로 적용되는 법 시행 2주년을 맞이하여 파국적인 ‘해고대란’이 예상되는데, 이러한 재난으로 인한 고통은 기득권을 ‘과보호’ 받는 정규직이 아니라 중소기업과 비정규직 등 약자들에게 쏟아질 것이며, 따라서 ‘응급대책’으로서 고용시한을 연장하는 법안의 개정 또는 유예가 촉구되지만, 비생산적이고 무능한 의회정치 그 중에서도 특히 추미애 환노위 위원장의 ‘경직된 원칙론’이 장애가 되었다, 라는 내용인 것으로 파악된다. 한편, 이 시기의 보도는 노무현 정부 시기와 달리 비정규직 당사자들에 대한 ‘감정이입’을 기반으로 하는 기사들이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고, 정부에 대한 비판과 갈등조장 세력으로서 민주노총에 대한 비판은 정규직 과보호 비판 속에 흡수되어 잘 나타나지 않는 특성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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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기 보도들에서 나타나는 핵심적인 은유적 개념들로는 <비정규직법은 해고 대란>과 <비정규직 문제는 정규직 과보호 문제>, 그리고 <정치는 생산(생산적 정치)> 등을 제기할 수 있다. 먼저, <비정규직법은 해고 대란>을 검토해보자. 해고 ‘대란’은 결국 (자연)‘재난’이다. 일반적으로 한국인의 개념 체계에서 재난이란 단어가 가장 먼저 활성화시키는 경험적 기억은 7~8월 여름 폭우로 인한 것들이다. 그리하여 『조선일보』의 보도 프레임 안에서도 해고 대란이란 태풍이거나, 장마이고, 쓰나미이다. 또한 자연재난은 예측하고 대비할 순 있어도 근본적으로 막을 수는 없는 것이다. 재난이 임박했을 때 할 수 있는 것은 자리를 피하거나 응급대책을 세우는 것뿐이다. 이런 맥락에서 비정규직법이라는 재난은 기간제 고용시한 4년으로 연장이라는 “응급대책”으로 대비하거나 유예를 통해 “회피”해야 하는 것이다. 정규직 전환 인센티브 지급이나 차별시정제도 강화 같은 ‘일상적 대책’은 “한가한 소리”일 뿐이다. 한편, 『조선일보』의 프레임 구성 안에서 “재난”이라는 은유적 개념의 정합성은 매우 강력해서, “해고 대란”이 사실이 아니었음을 알아채거나 스스로 인정한 후에도 그 생명력은 유지된다. 다시 살펴보니 태풍이 아닌 “장마”(중장기 고용불황)였다거나, 어쨌든 “지식인 사회 일각 시간강사들”에겐 “쓰나미”가 닥쳤다는 식이다.

다음으로, <비정규직 문제는 정규직 과보호 문제>이다. 이 은유를 풀어서 제시하면, <비정규직 ‘과소보호’는 정규직 ‘과잉보호’>이다. 다시 말해, 비정규직이 보호받지 못하는 이유는 정규직들이 ‘과잉’ 보호받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는 곧 노동시장 양극화의 근본 원인은 ‘기득권’을 놓지 않는 정규직노조 때문이라는 주장으로 전개되며, ‘본질’적으로 정규직 중심인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아무리 비정규직과의 연대에 헌신하고 성과를 내더라도 결국 ‘명분’일 뿐이라는 확신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논리 전개는 통합적이고 구조적인 측면에서 성찰한다면 구멍투성이에 터무니없는 것이지만, 직접적이고 개별적인 인과관계를 통해 사고하는 경향이 있는 보수주의자들에게는(레이코프; 로크리지연구소, 2007; p.99) 매우 반가운 이야기일 수 있다. 그런데 한편, 과보호는 곧 구속이다. 구속에서는 자유로워져야 한다. 그렇다면 정규직은 ‘과보호’에서 어떻게 ‘자유’롭게 될 수 있을까? 『조선일보』의 프레임 안에서는 사용자들의 “해고의 자유”를 완전하게 수용하면 된다. 다소 비약해서 표현한다면, 해고의 자유를 수용함으로써 노조와 노동법의 속박에서 풀려나와 정형화되지 않은 노동(비전형노동/불안정노동)의 자연상태로 귀의하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정치는 생산>이라는 은유다. 이를 정확하게 표현하면 <의회정치는 생산적 노동>이다. 그 의미를 이명박 대통령의 언급에서 유추하자면, “생산적 정치”란 이해관계자의 “기득권”을 포기시키고 실체적인 실적을 쌓는 것이다. 이와 관련된 은유적 표현들의 활성화는 “한나라주식회사 CEO”가 대통령으로 집권한 후 사회적으로 가장 두드러지게 변한 부분 중 하나다. 비정규직법과 관련된 보도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를 테면 노무현 정부 시절에는 “진정성 없음” 또는 “무책임” 등의 단어로 표현되었을 이해당사자를 대변하지 못하는 정치는 “노는 것(외유/쇼)”이라 표현되고, 그렇게 놀고 있는 의원들은 “해고”해야 하며, 따라서 국회의원과 의회정치는 양적인 “실적”으로 평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비생산적 정치(즉, “무능한 정치”)는 설사 그것이 의원 본인의 판단에는 약자를 대변하는 선택이었더라도 “힘없는 사람들 밥줄을 끊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지속적인 소통과 끊임없는 타협을 기본으로 해야 할 의회정치를 이렇듯 산업사회적인 생산 노동관으로 대치할 때, 이해관계자들과 소통의 장을 마련하는 것은 무능한 자들이나 하는 “청부”이고 “직무유기”로 이해되는 것이다.  

이상의 논의를 종합하여 이명박 정부 시기 『조선일보』 비정규직법 관련 논증 프레임을 구성하면 다음 [표4]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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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결론: 논증 프레임의 변화 양상 및 함의

이상에서 『조선일보』의 비정규직 보도 관련 논증 프레임을 이른바 민주개혁세력 헤게모니의 노무현 정부 시기와 보수세력 헤게모니의 이명박 정부 시기로 나눠 살펴보았다. 이에 대한 비교 검토는 다음과 같은 결론 및 함의를 제공한다.

첫째, 비정규직법과 관련하여 『조선일보』의 입장은 사실 전자의 시기와 후자의 시기 한결 같았다. 즉 ‘기간제 고용시한 2년 조항’은 어떤 식으로 적용되더라도 기업에 추가비용을 발생시키는 ‘규제’일 뿐이고 폐지되어야 한다. “전부 정규직 시킬래 아니면 해고 할래”라는 문제는 기만적인 ‘의사 쟁점’이다. 2년 이상 고용한 기간제를 정규직화하는 것도, 2년 동안 숙련된 비정규직을 계약해지하는 것도 대부분 기업의 입장에서는 인적자원비용의 문제일 뿐이고, 『조선일보』 또한 마찬가지 입장에서 이를 명확히 인지하고 있었던 걸로 판단된다. 

그러나 그러한 입장을 정치적으로 정당화하는 프레임 구성은 시기별로 상반됐는데, 전자의 시기에는 비정규직법 제?개정과 이를 둘러싼 노사정 갈등을 주도하는 ‘상층’ 주체들, 즉 노무현 정부와 민주노총에 대해서 이념적 ‘비판’에 집중했다면, 후자의 시기에는 해고 위험에 처한 비정규직, 정리해고를 집행해야 하는 정규직, 비용 감당이 어려운 중소기업 등 이른바 ‘약자들’의 구체적인 목소리에 바탕하여 ‘아래’로부터 법 개정 또는 유예를 정당화하는 논증 프레임을 구성하기 위해서 작업을 진행했다.

둘째, 이렇게 상반된 태도에 비추어 볼 때, 노무현 정부 시기 『조선일보』는 ‘비정규직법’을 자신의 이슈로 판단하지 않았던 것 같다. 당시 비정규직법은 이른바 민주개혁세력인 노무현 정부와 진보세력인 민주노총·민주노동당의 사이에 놓여 있는 이슈로서, 적극적으로 개입하기보다는 방어적으로 활용해야 하는 것으로 여겨졌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등장한 이후 보수세력의 정치적 헤게모니 아래 새롭게 추진되는 비정규직법 개정 국면에서는 이를 보수세력의 의제로 포섭하기 위해 다양한 방식으로 프레임 그물망을 조직하고, 보다 복합적인 은유적 개념 체계들을 구성했다. 이러한 열정적 노력이 근거하고 있는 은밀한 도덕적 가치와 원리들은 본문의 논증 프레임 분석을 통해 확연하게 드러났다. [표2]와 [표4]의 비교를 통해 알 수 있듯 노무현 시기 『조선일보』의 비정규직법 보도가 전제하고 있는 도덕적 원칙과 원리가 ‘기업의 영리 추구권에 대한 방어’였던 데 비해,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는 ‘시장질서의 사회정치적 확장’으로 보다 공세적으로 전환했다. 그러나 이러한 공세적 프레임 구성이 당장 성공적이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조선일보 내부의 독자 권익위원회만 해도 “대안 제시가 없다”, “정치권 비판에 치우쳤다.”, “정규직까지 유연성 확대하자는 주장 공감 어렵다.”는 등 부정적 의견이 다수를 이뤘다.  

셋째, 그렇다면 법안 개정도 물 건너 간 마당에 이는 실패한 기획으로 봐야 할까?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보수적 의제설정자로서 『조선일보』의 입장에서는 당장의 법 개정안 통과보다는 “좌파 정부” 10년간 찌든 때를 천천히 벗겨내기 위한 ‘전략적 의안’을 심는 것이 더 중요했을 수도 있다. 내가 보기에 『조선일보』의 비정규직법 개정 논증 프레임은 훌륭한 ‘도미노 의안’이다. 즉, 보다 광범한 노동시장 유연성 강화 및 규제 철폐를 위한 초석이다. 『조선일보』는 자신감을 회복하여 과감하게 약자들에 대한 감정 이입을 진행했는데, 그렇지만 진보세력들이 감정 이입을 활용하는 경우에서처럼 감정 이입 후 만들어지는 공동의 책임감을 바탕으로 함께 실천해갈 사회적 대안을 제시하는 작업은 진행하지 않았다. 단지 “비생산적인 의회정치”(민주주의)와 “과보호 받는 정규직”(사회안전망)에 대한 아래로부터의 분노를 조직했다. 이렇게 누적된 분노들은 이후 보수세력들의 공격적 프레임 구성에 있어 중요한 자산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참고 문헌>
죠지 레이코프·로크리지연구소, 나익주 옮김(2007), 『프레임 전쟁』, 서울, 창비.
G. 레이코프·M. 존슨, 노양진·나익주 옮김(2006), 『삶으로서의 은유』(수정판), 서울, 박이정.
김인영·박관영·이인희(2008), “사회적 약자로서 ‘비정규직’ 보도에 나타난 쟁점주기와 발전단계 및 프레임 특성 분석: 조선일보, 한겨레, 오마이뉴스를 중심으로”, 『커뮤니케이션학 연구』, 제16권 제1호, pp. 49~78, 한국커뮤니케이션학회.
양정혜(2010), “위험사회의 의미 구성하기: 국내 언론의 신종플루 프레이밍 방식 분석”, 『정치커뮤니케이션 연구』, 통권 17호, pp. 169~212, 한국정치커뮤니케이션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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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작년도 :
  • 통권 : 제15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