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묘년, 노동운동이 모색하고 준비할 것들

노동사회

신묘년, 노동운동이 모색하고 준비할 것들

편집국 0 3,174 2013.05.30 08:58

타임오프제 및 복수노조법 날치기 통과와 함께 2010년 신년벽두를 맞이했던 한국 노동운동은, 악전고투에 지쳐 있는 상황에서 더 험하고 깊은 수렁이 예정된 2011년을 기다리고 있다.

악전고투 2010년…  더 험한 2011년

ha_01.jpg2010 년은 MB정권이 노동조합에게 타임오프제를 통해 신상필벌의 원칙을 강제함으로써 노골적으로 통제의지를 드러낸 해였다. 정부의 정책과 기업을 위해 협조하는 노동조합에게는 상을 주고, 반대하는 노동조합에게는 가차 없는 탄압과 정리해고라는 벌을 주며 ‘협력적 노사관계’로 길들이기를 했다. 현대중공업 노동조합 위원장에게는 <2010 노사상생협력 유공자 정부포상> 시상식에서 개인부문 금탑산업훈장을 주었다. 타임오프제를 제일 먼저 수용하겠다고 선언한 대가일 것이다. 반면 민주노총 소속의 전교조와 공무원노조 등 공공부문 노동조합들에 대한 탄압과 무력화 기도는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었다.

민간기업의 대형노조가 가입하고 있는 금속노조에서는 타임오프제가 노동기본권의 후퇴와 노조 무력화로 악용되었다. 민주노조운동을 아래로부터 해체시키려는 정권과 자본의 의도는 명확했다. 경기에서 쌍용차, 충남의 발레오공조, 광주전남의 금호타이어, 경주의 발레오만도, 부산의 한진중공업, 대구 상신브레이크 등에서 이를 빌미로 노조 탄압이 잇달았고, 김준일 금속노조 구미지부장은 KEC지회 민주노조 사수를 위해 분신으로 저항해야 했다. 그 사이 금속산별노조의 중앙교섭은 약화되었고, 금속노조 규약을 위반하며 중앙교섭에 불참하는 기업지부가 목소리를 높이며, 현장에는 자본에 투항한 노사협조주의 세력이 득세하고, 산별노조 무용론과 탈퇴론이 등장하며 퇴보와 퇴행을 거듭하고 있다.

또 정치적 외풍에 대한 바람막이 역할을 기대하며 만들었던 민주노동당이 진보신당과 분열하며 민주노총의 노동자 정치세력화까지 파산선고를 받은 상황이니, 2011년을 맞이하는 민주노조운동의 총체적 위기는 지속되고 있다.

구조 변화 ‘쓰나미’ 오는데 ‘파도타기’ 준비하고 있어

2010 년의 핵심에 타임오프제도 있었다면, 2011년 한국사회 노동운동에는 ‘복수노조’라는 미증유의 쓰나미가 몰려오고 있다. 국가가 재벌을 위해 존재하는 한국의 천민자본주의에서 복수노조를 두고 ‘위기와 기회’라고 여기는 편안한 생각이 더 문제이다. 쓰나미가 밀려오는데 이 위기를 파도타기로 넘어보자는 ‘무데뽀 기회론’은 우리 노동운동이 얼마나 관념적인지 여실히 드러내는 대목이다. 그래서인지 노동조합의 자주성과 노조설립 자유주의, 자율교섭의 원칙에 따라 1997년 전임자 임금 미지급과 기업단위 복수노조 허용을 합의해 준 것도 민주노총이었다.

이젠 찬반논쟁도 필요 없고 책임질 일만 남아 있다. 이 추운 겨울 허허벌판에서 노동자들은 무장해제하고 웃통을 벗어젖힌 채 완전무장한 자본과 싸워야 할 일만 남았다. 어떻게 든 이 겨울이 지나가도록 끈질기게 살아남아, 땅이 녹아 진흙을 뭉치고 돌멩이라도 집어 던질 수 있는 봄까지 체력을 보존하며 방어적인 전투를 벌여야 하는 게 현재 노동운동의 처지이다.

소수노조에게는 교섭권이 거의 박탈된 상황에서 노동자들이 선뜻 복수노조를 설립하지는 않을 것이다. 문제는 자본에 의한 ‘제2노조’ 설립이다. 소수노조라도 1사1조직이라는 원칙은 무너지고 분열을 경험하며, 현장권력의 가장 중요한 3요소인 유일교섭단체 지위, 유니온 숍 규정, 조합비 체크오프 시스템이 무너지게 된다. 조직과 재정이 흔들리고 노사관계의 지위가 흔들리며, 자본이 지원하는 조합원 빼가기 경쟁에서 과반수 미달노조가 되는 순간, 고용과 성과분배, 고충처리 등 현장권력을 유지하는 수단이었던 노사협의권을 빼앗기게 된다. 조합원을 보호하지 못하는 무기력한 노동조합을 언제까지 믿고 따를 자는 없을 것이고, 노예상태가 되어 각자가 알아서 살아남을 궁리를 하는 비참한 상황으로 빠져들 것이다.

‘평화’와 ‘고용’을 화두로, 제대로 헤쳐 모여!

민 주노조운동이 절망에 빠진 노동자들에게 새로운 희망과 전망을 제시해야 한다. 파격적이고 대담한 변화가 필요하다. 올해 한국노총 선거에서 한나라당과 정책연대를 파기하는 후보가 당선된다면 민주노총은 이와 손을 잡고 분열적 조직경쟁을 방지하는 신사협정을 통해 제3노총에 반대하는 공동행동을 조직해야 한다. 이 연대의 기운을 모아 양대 노총이 주도하는 가칭 ‘노동법 재개정 범국민운동본부’를 만들어 범국민적 캠페인을 전개해야 한다. 복수노조 경쟁을 전제로 하는 ‘복수노조 교섭창구 단일화 철폐’가 아니라 ‘산별노조 교섭 법제화 투쟁’을 전면에 걸고, 사회 양극화의 주범으로 확인되고 있는 비정규직과 불법파견 철폐 투쟁으로 힘을 모은다면, 2012년 권력 교체기에 노동운동이 주도하는 세력 교체의 계기가 만들어질 수도 있다.

우선 진보정당 분열의 시대를 중단하고 대통합의 시대를 준비하는 2011년, 진보정당의 원내 교섭단체 구성과 권력교체 기반을 마련하는 2012년을 만들어야 한다. 진보정당 대통합은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양당 통합이 아니라 반드시 ‘재창당’의 길이어야 한다. 정파연합당인 ‘도로 민주노동당’은 누구도 바라지 않는 방향이다. 양당을 인위적으로 통합하는 방향이 아니라면 반대하는 사람들은 빠지고 제3지대에 헤쳐모여가 불기피할 것이다. 새로운 진보정당은 노동중심성과 계급성을 확고히 하는 노동자당이어야 하며, 다양한 진보의 가치에서 노동의 가치를 최고의 가치로 확립하는 당이어야만 한다. 그럴 때 신자유주의와 천민자본주의를 극복하겠다는 정체성 회복과 다수자 중심의 민주주의를 하겠다는 의지가 대외적으로 확인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 민주노총은 올해 1월에 개최하는 정기대의원대회에서 민주노동당 배타적 지지방침을 대통합당 출범 시까지 유보할 것을 결의하여, 대통합을 압박하는 동시에 공정한 조정자 역할을 해야 한다. 그리고 진보정당 대통합추진위 및 준비위원회 사업을 직접 펼치고 진두지휘해야 한다. 민주노총은 현장의 노동대중이 주체로 서고 참여하는 노동 중심 진보대통합당에 10만 명 이상의 노동자 당원을 조직하여, 명실상부한 노동자당으로 창조하고 ‘제2의 노동자 정치세력화 운동’을 전개할 과제가 부여받고 있다.

2011년을 맞이하는 노동운동에게 시대가 요구하는 정신은 ‘평화’와 ‘고용’이다. 남북이 분단된 나라에서 전쟁은 국민의 모든 권리를 박탈하기에, 평화야말로 진보정치운동과 함께 최우선 과제일 수밖에 없다. 고용은 노동자들에게 최대의 복지이다. MB정권의 사탕발림과 눈가리기 식 일자리 창출의 허구성을 폭로하며 정치투쟁을 강화해야 한다. 한편, 진보정치의 화두로 등장하는 ‘노동존중 사회’가 빠진 복지는 천민자본주의와 소비노예의 삶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 보편적 복지를 주장하는 자들이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잘사는 세상이 되는 ‘노동존중 사회’를 전면에 내세우기를 꺼려할 이유가 없다.

만인의 적, 중간착취를 철폐하자

그리고 2010년 사회적 쟁점으로 제기된 현대자동차 불법파견 투쟁을 전 사회적 정치투쟁으로 발전시켜 비정규직 문제를 노동운동의 가장 시급한 해결과제로 삼는 것을 옳다. 그러나 사내하청 중심의 비정규직 정규직화 투쟁은 비정규직보다 못한 수백만 명의 중소영세기업노동자들을 소외시키는 노동운동이 되어 사회적 고립을 자초할 수 있다. 비정규직 투쟁을 더욱 열심히 하되, 재벌 중심 다단계하도급 구조에서 중간착취에 신음하는 수백만 명의 중소영세기업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위한 ‘중간착취 규제법 제정 투쟁’을 핵심과제로 삼아야 한다. 비정규직과 용역, 2차, 3차 중소영세기업에 일하는 수백만 명에게 중간착취 임금이 제대로 지급된다면 20~30% 임금인상이 가능해진다.

초 단위로 계산하는 휴대전화 요금처럼 퇴직금 지급 계산방식을 일 단위로 개선하는 운동을 범국민적으로 펼쳐야 한다. 만약 이것이 실현될 겨우 미지급되고 있는 퇴직금 수조 원이 노동자에게 돌아가고, 1년 미만의 근로계약을 반복하여 비정규직과 용역을 사용할 유혹이 줄어들 것이다. 또한, 5인 미만 소기업 노동자들에게도 근로기준법을 적용시켜 법의 사각지대에서 고통받는 노동자들을 법 테두리 안에서 보호하는 투쟁은 최저임금 인상투쟁 만큼 중요한 과제다. “근로기준법을 지키라”며 산화해간 전태일 열사의 희생이 30인 이상 기업에만  적용되던 근로기준법을 16인 이상 기업 적용으로 개정시키면서 수백만 명의 노동자들에게 효력을 확장시킨 역사를 되새겨야 한다.

노동시간 나누기 통한 연대, 인간답게 어려움을 견뎌내는 길

오 늘날 한국 사회에는 기업은 성장하는데 고용은 감소하는 시대, 이른바 ‘고용 없는 성장’의 시대가 도래했다. 「2008년 OECD 고용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노동시간은 2,261시간으로 세계 최장시간이다. 그럼에도 청년노동자들은 사교육비를 투자하여 스펙을 아무리 쌓아도 일자리를 찾지 못해 실업자이거나 저임금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는 신세이다.

1,600만 노동자들에게 노동시간 상한제를 도입하여 연 평균 노동시간을 2,000시간으로 단축하면 200만 개 이상의 신규 일자리 창출이 가능하다. 노동 현장의 고령화에 따라 아버지는 실업자인 자식을 먹여 살리기 위해 장시간 노동을 하며 과로사로 죽어가고, 지식은 실업을 비관하며 자살하는 사회는 더 이상 노동자가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사회가 아니다.

2011년 새해는, 한국의 노동운동이 과거 잃어버린 10년에서 탈출하여 비정규직과 중소영세기업 노동자, 여성, 청년, 자영업자 등 각계각층과 함께 투쟁하는 정치적, 변혁적 노동운동으로 중심을 세우며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전환하는 원년이 되기를 바란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5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