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오프제도 이후의 한국 산별노조운동

노동사회

타임오프제도 이후의 한국 산별노조운동

편집국 0 5,555 2013.05.30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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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오동진 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
참여: 박정미 금속노조 정책국장, 박준형 공공서비스노조 정책기획실장, 유주선 금융노조 정책국장, 이주호 보건의료노조 전략기획단장 (가나다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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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_06.jpg사회자: 반갑습니다. 다들 바쁘실 텐데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예측은 했었습니다만, 올해 산별노조의 조직활동이나 교섭이 참 어려웠는데요. 그런 상황에서 중간 점검이랄까 함께 고민을 모색해보는 자리가 필요하다고 여겨 이렇게 모셨습니다. 좌담 진행은 우선 2010년 각 산별조직들의 교섭과 조직, 투쟁 상황을 우선 점검하고, 또 가장 핵심 이슈였던 타임오프제도가 시행된 이후에 노동조합과 노사관계에서 어떤 변화가 있는지 논의한 뒤, 다음으로 내년에 시행을 앞두고 있는 기업단위 복수노조 허용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고, 마지막으로 이러한 현재 조건과 이후 예상되는 변화 속에서 산별노조가 어떤 일들을 해야 할지와 관련된 말씀을 나누는 순서로 하겠습니다. 이러한 논의를 통해 노동운동이 새롭게 미래를 열어가는 데 작게나마 도움이 될 수 있었으면 합니다. 금융노조부터 말씀 부탁드립니다.

타임오프제도, 공공부문 제외하고 대부분 현행 유지로 

유주선: 이번 노조법 개정에 대해서는, 여기 계신 분들 모두 같은 생각이실 텐데요, 근본적으로 노동조합 죽이기이고 활동 위축시키기다, 논의 진행 과정에서도 사용자 편을 정부가 확실하게 들어준 것이다, 하는 판단을 하고 있습니다. 어쨌든 법이 개정이 되고 세부 시행령까지 확정된 상태인데요. 금융노조는 이러한 확정 과정에 대응하기 위해 태스크포스팀을 구성했습니다. 공공기관 대책팀과 복수노조 및 전임자 관련 노조법 개정 대책팀으로 나눠서 활동을 했고, 전국에 사업장이 산재해 있는, 그러니까 사업장이 많게는 한 기업당 1천 2백 여 개에서 보통 수백 수십 개가 되는, 금융부분의 특성을 반영한 계획을 제출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금융노조는 2008년부터 산별 노사합의로 임금협상은 매년 하되 단체협약을 2년마다 체결하고 있는데요. 유효기간은 연말까지고요. 그 때문에 다행히 이번 전임자 관련 노조법 개정에 대해서도 연말까지는 시간을 벌어놓은 상태입니다. 현재는 올해 정식 출범한 사용자단체와 공동단체협상이 진행되고 있고, 10월 초 정도에 타결될 것으로 봅니다. 어쨌든 우리 입장은 타임오프 한도를 정한 것 외에 기타 노동조합 활동에 대해서는 이번 법 개정에서 다룬 것이 없다는 겁니다. 부당노동행위 범위를 다소 넓혔지만 이 부분에 대해서는 노사정 각 주체들의 해석이 워낙 차이가 있기 때문에 논쟁 중인 상황이고요. 

special_04.jpg그래서 이번 공동단협에서도 노조 활동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올 요구사항을 갖고 싸우는 것이 아니라, ‘근로시간 면제 한도’라는 새로운 조건에서 기존 노조 활동이 손상되지 않도록 문구 조정 정도로 합의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어떻게든 현행 유지로 가자는 거죠. 실제 현장에서도 올해 공동 임단협은 타임오프제도에 따른 변화보다는 3년 동안 동결 내지는 축소됐던 임금 부분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도 하고요.

향후에 가장 우려되는 점은 앞으로도 정부가 이렇게 일방적으로 사용자 편에 서지 않을까 하는 것인데요. 그렇지만 이렇게 노조법이 개정된다고 하더라도, 또 외부에서 노동계를 압박을 한다고 하더라도, 양 노총이 잘 공조를 한다면 향후 몇 년 안에 노조법의 재개정 내지는 불합리한 부분에 대한 수정이 이뤄지지 않을까 하는 희망 섞인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박정미: 금속노조의 산별 중앙교섭은 완성차 대공장들은 참여하지 않고 있지만, 자동차 부품회사들 중심으로 101개 지회 약 2만여 조합원을 포괄하고 있는데요. 원래 금속노조는 “중앙교섭 타결 없이 지부?지회교섭 타결 없다”는 교섭방침을 갖고 있습니다. 중앙교섭의 산별 의제에 힘을 싣자는 거죠. 그런데 올해는 지부·지회에서 전임자 임금 개악을 기회로 단체협약을 개악하려는 정부·자본에 맞서 노동기본권 사수투쟁을 진행했죠. 그 결과 단체협약과 임금을 이미 합의한 사업장이 현재 116개나 되거든요. 노동 기본권 관련 합의는 대부분 ‘현행 유지’로 결정됐고요. 

이렇게 지부·지회교섭은 이미 상당부분 타결됐지만 중앙교섭은 진척이 없는 상황입니다. 중앙교섭 관련 사측의 안은 중요 쟁점들에 대해 아직도 대부분 모호하게 제시되고 있고요. 산별 최저임금만 해도 사측이 시급 4,360원 통상임금 100만 원을 제시하고 있는데, 이는 예전 교섭 상황에 비교해서도 상당히 뒤떨어져 있는 수준이죠. 상황이 이러다보니 내부적으로 중앙교섭의 위상에 대한 논란도 있었습니다만, 결과적으로 중앙교섭을 타결하기 위해 9월10일 4시간 파업을 하기로 중앙집행위원회에서 결정을 내렸습니다. 이러한 흐름을 통해 상황을 풀어나가고자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들 아시겠지만, 현재 사측의 태도가 정부의 방침과 반드시 일치한다고 보기가 어려워요. 일부 사용자들은 노동부에게 우리가 알아서 하겠다, 개입하지 말라고 노골적으로 이야기하는 경우도 있고요.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현재는 한국 노사관계가 어떤 시험대에 놓여 있는 상황이기도 해요. 금속노조 소속 사업장 중 17년, 14년 만에 노동기본권 및 단체협약 사수 때문에 파업에 돌입한 지회들이 있거든요. 동시적인 파업은 안 했지만, 개별 사업장 차원에서는, 안정적인 심지어 협력적인 사업장들에서도 조합원을 동원한 파업들이 꽤 있었어요. 직장폐쇄가 이뤄진 사업장도 여러 군데 있고요. 그만큼 노조법 개악이 현장의 바닥을 뒤집어 놓은 거죠. 이에 대해 금속노조 사업장들이 상당부분 선방하고 있는 거고요. 또 일부 사용자들은 현장의 반발과 정부의 압력으로 약간 샌드위치 상황에 놓인 거라 볼 수 있습니다.  

단체협약 해지를 ‘모범 사례’로 꼽는 이명박 정부

special_03.jpg박준형: 어제부터 이상무 공공노조 위원장이 연금, 가스 지부장들과 함께 단식 농성에 돌입했습니다. 또, 지난주에는 연맹 차원에서 철도, 도시철도, 발전, 가스, 연금, 공공연구 등 6개 조직들이 ‘민주노조 사수 공동 대책위원회’를 구성했고요. 가스와 연금, 발전, 도시철도, 공공연구 등은 지금 단체협약 해지 상황이고, 철도는 단협 해지는 아니지만 탄압이 심해서 일상적인 활동도 어려운 상태입니다. 참 어려운 상황이죠. 여러 경로를 통해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판단했을 때 이러한 단협 해지 흐름은 이후 복수노조 허용의 상황까지 염두에 두고 민주노조, 산별노조를 무력화하려는 목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어쨌든 얼마 전 감사원에서 발표한 공공부문 선진화 추진실태 감사보고서를 보면, 가스와 연금을 ‘모범 사례’라고 평가하더라고요. 우리가 보면 단협 해지인데, 저들이 보기엔 ‘부당한 노사관계 관행’을 법과 원칙에 맞춰 엄정하게 변경했다는 거죠. 정부의 관점을 명확하게 드러내는 부분이라 생각하는데요. 때문에 앞으로도 갈등 상황 해결이 쉽지는 않겠다는 생각입니다. 6?2 지방선거 이후 정치 정세의 변화에 의해서 상황이 조금 달라질 수 있을까 기대를 했는데, 딱히 그렇지도 않더라고요. 공공기관 단협 해지를 주도했던 이영호 라인이 퇴출됐음에도 별다른 변화가 없습니다. 상당 기간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원래 상반기 철도 투쟁을 중심으로 공공부문 공동 투쟁을 조직해서, 민주노총 투쟁과 결합해 돌파해보자는 구상이 있었는데요. 사후적으로 봤을 때 철도가 파업에 돌입하지 못했고 다른 공공기관 조직들도 공투를 만들 여건이 안 되면서 투쟁이 만들어지지 못했죠. 이런 부분이 이후 노사관계 전선에 미친 영향이 매우 큽니다. 하반기에는 좀 전에 말씀드린 민주노조 사수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를 중심으로 제대로 투쟁을 해보자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변수가 많아서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사회자: 단협이 해지되고 전임자들이 위축되고 하는 흐름에 대해 조합원들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박준형: 일반적인 경향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고, 사업장마다 다른 것 같은데요. 철도 같은 경우는 개별적인 징계나 전보전출 등을 통해 탄압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아직은 전면적인 투쟁으로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는데, 하반기에도 제대로 대응을 하지 못하면 더 어려운 상황이 올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요. 현재 노조 탄압 분쇄를 위한 농성투쟁 등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발전 같은 경우에도 단협 해지 이후 상황을 반전시킬 만한 전면적인 투쟁을 조직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상황입니다. 가스나 연금은 지금 투쟁에 돌입했는데, 조직력이 조금 나은 것 같습니다. 어려운 조건이기 때문에 오히려 노조를 지켜야 한다는 공감대는 조합원들 사이에 충분하다고 봅니다. 단협 해지, 노조탄압 사업장들을 중심으로, 하반기에는 한 번 붙어보자 하는 분위기는 있는데, 이것이 공동투쟁의 조건과 어떻게 맞물릴지는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수세기 노동운동, 집중투쟁 통한 각개 격파로 길 뚫다 

special_05.jpg이주호: 보건노조도 바뀐 법의 시행이 노사관계나 노동운동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이란 판단 아래 여러 가지 시나리오를 검토하면서 올해 교섭을 준비했습니다. 우리도 MB 정부의 반 노동정책, 노동부의 타임오프 매뉴얼에 편승한 사측의 불성실교섭으로 9월임에도 사상 유례 없이 지부 현장교섭 타결률이 20% 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2004년부터 진행해오던 산별중앙교섭도 중단된 상태이구요. 

이에 따라 얼마 전에 전남대병원 등 호남권을 중심으로 1차 산별집중투쟁을 진행했고, 최근에는 보훈병원과 고려대의료원을 중심으로 2차 투쟁을 했고, 8일부터 한양대, 이대, 경희의료원을 중심으로 3차 투쟁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투쟁들이, 매 시기마다 1천 명 이상이 참여하는 등 상당한 집중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렇게 집중된 산별 집중투쟁의 결과, 전체 타결률은 20%에도 못 미치지만 실제적으로 국립대병원, 사립대병원, 중소병원 등 주요 병원들이 임금 5~8% 인상(공공병원 2.5%), 최대 쟁점이었던 전임자 관련 조항은 기존 단협 개악 없이 ‘현행 유지’로 대부분 타결이 되고 있습니다. 그렇게 현행 유지로 타결되면서 보수언론에서 논란이 될 줄 알았는데, 금속 투쟁과 기아차 합의가 우리 직전에 이뤄지면서 비교적 조용히 넘어간 것 같아요. 

그런데 금속과 기아차가 타결되고, 우리 병원들이 대부분 현행 유지로 타결되는 것을 보면서, 이제 이 문제는 한 고비 넘어선 것 아닌가 싶네요. 다른 연맹들 상황을 봐도 일부 대기업과 공공부문을 제외하고 전체적으로 현행 유지 수준으로 합의되고 있는 것 같더라고요. 나쁘게 표현하면 ‘편법’을 동원해서, 좋게 표현 하자면 ‘노사 자율’적으로 현행 유지를 하는 것에 대해서, 정부도 형식적인 법 테두리만 지켜지면 더 이상 강제적으로 막을 수 있는 상황은 아닌 것 같구요. 타임오프제도의 애초 의도가 전임자 숫자를 줄이고 자주적 노조활동을 축소하여 노동조합 활동을 약화 및 무력화하는 것이었다면, 그 정도까지 가는 최악의 상황은 막은 것 아닌가 싶습니다. 보건의료노조의 경우도 타임오프제도에 대해서도 전임자를 대부분 현행 수준을 유지했고, 이를 빌미로 단체협약에 있는 다른 유급노조 활동보장 조항개악 움직임도 막아냈습니다. 

그런데 산별교섭과 관련해서는 작년 산별교섭 중단에 이어 올해도 사측이 교섭 참가를 거부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지난 3~4월 사용자들을 교섭장으로 끌어내는 싸움을 했는데, 예상했던 대로 안 나왔죠. 사실 내심 올해 같은 수세기 조건에서는 산별교섭을 반드시 강력히 추진해야 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어요. 어느 정도 친 노조적인 정부, 강력한 진보정당, 법제도의 정비, 합리적 노사관계와 강력한 노동운동 등의 조건이 맞물려 갈 때 산별교섭이 제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는데, 이런 조건이 갖춰지지 않은 올해 상황에서 무리하게 산별교섭을 복원하기보다는 융통성 있는 전술들을 구사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고 본 거죠.  

그래서 사용자들이 산별교섭에 안 나온 상태에서, 우리 노조는 ‘1대 4만의 투쟁’ 즉 사용자들을 분산시켜서 약한 고리와 중요 사업장들을 각개 격파해서 돌파하는 방식으로 교섭투쟁을 진행했습니다. 또 다른 의미의 ‘산별투쟁’이죠. 이런 전술은 실제로 상당 부분 효과가 있었고, 임금과 타임오프 등 주요 쟁점사항을 돌파하는 데 적절한 전술이었다는 것이 내부평가입니다. 물론 이 모든 것이 현장투쟁력이 어느 정도 복원되면서 가능했죠. 

이건 전임자 밥그릇 문제가 아니라, 단체협약 사수 투쟁

사회자: 지금까지 이야기들을 들어보니 금융노조를 제외하고는 올해 산별교섭은 잘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황인 것 같은데요. 그리고 공공 같은 경우는 매우 어려운 상황이기도 하고요. 그렇지만 어쨌든 조합원들이 노조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고 있고, 공감대 속에서 투쟁을 조직한다면 최악의 상황은 피할 수 있다는 시사점을 제시해준 것 같습니다. 이후 투쟁을 준비하는 데도 명심할 부분인 것 같은데요.

박정미: 이어서 조금 더 말씀드린다면, 금속노조는 교육을 상당히 많이 했어요. 노동기본권 관련 싸움을 준비하면서, 전 조합원들이 한 번 이상씩은 관련 교육을 받았을 겁니다. 간부들이나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노무법인에서 별도로 진행되는 설명회 같은 것들을 찾아다니면서 공부를 했을 정도죠. 처음에는 조합원들이 전임자 문제에 관심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이건 전임자 문제가 아니라 ‘단체협약 사수 투쟁’이다, 여기서 양보하면 노동 기본권 다 뺏긴다, 하는 내용으로 교육한 것이 어느 정도 효과를 발휘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해요.

박준형: 공공부문 같은 경우는 타임오프제도 관련 투쟁이 별로 없었던 것이, 대부분 대규모 사업장들의 단체협약이 내년까지인 경우가 많습니다. 올해 공동투쟁에 나설 동인이 별로 없었던 거죠. 그래서 단협 해지를 맞은 사업장 외에는 타임오프제도 싸움에 나선 곳이 별로 없고, 단협 해지 자체가 워낙 큰 사안이다 보니 타임오프제도 문제가 6~7월 큰 쟁점이 되질 않았습니다.

사회자: 타임오프제도 관련해서 올해 교섭에서 벌어진 치열한 공방전에 대해서 말씀들을 해주셨는데요. 이제 이러한 공방전의 결과가 노사관계나 노동조합에 어떤 결과를 미치리라 예상하고 있고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지, 좀 더 구체적인 이야기를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주요 사업장들이 하반기 투쟁을 준비하고 있는 공공부터 이야기를 들어보죠.

하반기 공공부문 투쟁의 관건이 될 철도노조 지키기

박준형: 공공노조 산하 사업장들을 대상으로 대략적으로 계산을 해보니까, 타임오프제도 때문에 전임자가 축소되는 건 조합원 1천 5백 명 이상, 실제적으로는 2천 명 이상인 사업장들이더라고요. 그 이하는 영향이 거의 없습니다. 결국 대규모 사업장들의 문제라는 건데, 굳이 타임오프제도가 아니더라도 지금 정부는 공공기관 선진화 계획이다, 감사다, 뭐다 해서 그 사업장들을 시범케이스로 탄압하고 있거든요. 여러 경로를 통해 파악되기로는 하반기에 정부가 집중적으로 탄압하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는 데가 대표적으로 철도입니다. 

정권의 의도와 달리 철도는 아직 충분히 무력화되지 않았다고 판단을 하는 거죠. 이미 대량징계와 해고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하반기에 철도노조를 지켜내지 못하면, 나머지 공공부문 사업장들의 투쟁도 향후에 힘을 발휘하기 힘들다는 생각을 합니다. 하반기 공대위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투쟁이 자기 사업장의 민주노조를 지켜내는 것뿐만 아니라, 철도노조를 어떻게 지켜낼 수 있는가 하는 부분이 공공부문 노사관계 변화에서는 관건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회자: 공공은 외부적으로는 정부의 직접적인 탄압, 내부적으로는 지속적인 산별노조의 리더십 이완 등 굉장히 어려운 조건에서 하반기 투쟁을 준비해야 할 것 같은데요. 다음으로 금융노조의 전망을 듣죠.

유주선: 아직 공동단체협상에서 타임오프제도가 타결되진 않았지만, 앞서도 말씀드렸듯이 긍정적으로 풀릴 거라 예상하고 있고 그렇게 만들어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어쨌든 타임오프제도 시행이라는 조건이 노사관계를 악화시킬 가능성은 실제로 상당히 많이 나타났다고 봅니다. 법 시행 직전인 6월 말쯤 대부분의 지부에서 기존에 노조에게 제공해왔던 편의, 이를 테면 차량, 소모품, 간부 합숙소 등의 지원과 관련해서 ‘부당노동행위로 걸릴 소지가 있다’면서 일방적으로 제공 못하겠다는 공지를 보낸 일이 있었습니다. 다행히 유효기간 해석 다툼 등을 통해 문제를 해결했습니다만, 이렇듯 사용자들이 법 개정을 이용해서 건전한 노사관계를 만드는 요소들을 파괴할 수 있는 여지가 넓어진 거죠. 

그런데 한편으로, 최근에는 고용노동부를 비롯한 정부의 입장이, 지금까지의 지나친 개입이 안 좋은 결과를 초래했다는 것을 어느 정도 인정하는 방향으로 바뀐 것으로 보이는데요. 확실하게 문제가 되지 않는 한 부당노동행위로 해석하지 않는 융통성을 보이고 있다는 거죠. 사용자들도 그런 분위기를 느끼고 있는 것 같고요. 그렇지만 정부 태도 변화에 따라서 언제든지 타임오프제도 관련 갈등은 다시 불거질 수 있겠죠. 또한 내년이 되면 복수노조 관련해서 새롭게 갈등이 빚어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금융노조로서는 올해 단체교섭을 정말 잘 마무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각 사업장들의 여러 가지 특수성을 고려한 타임오프제도가 만들어졌다면 그나마 갈등이 적었겠지만, 지금의 일방적이고 급조된 제도는 이미 신뢰를 잃었고 근본적으로 재논의가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이러한 사안가지고 우리가 고민을 해야 한다는 사실 자체가 시간 낭비고 불필요한 것이고, 노사관계 발전에 악영향을 준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노사관계에도 침투해 있는 ‘영포라인’

special_02.jpg박정미: 6월에 대한상공회의소에서 노무 관리자들 대상으로 타임오프제도 관련 토론회가 있었는데요. 거기서 사측 변호사가, 전투적 노조는 건드리고 그렇지 않은 노조는 가만 두라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어요. 그 말은 이번 법 개악이 사측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그 법 개악이 노리는 구체적인 대상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정리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한편으로, 지금 금속노조에 가해지고 있는 탄압에는 그러한 일반적인 경향에다가 이른바 ‘영포라인’의 특수성까지 연결돼 있습니다. 

경주에 ‘다스’라고 자동차 의자를 만드는 회사가 있어요. 최근 자동차 경기가 매우 좋은데, 이 회사가 파업을 하게 되면 원청사인 현대자동차가 멈춰야 되는 구조입니다. 그런데 이 회사 회장이 이명박 대통령의 큰 형(이상은)이고, 최근에는 그 아들 이시형도 해외영업팀으로 들어갔거든요. 그런데 이 회사의 노조가 작년에 금속노조에 가입을 했어요. 그러다 보니 지역 노동청이 이 회사 단체협약에 대해서 전임자 문제뿐만 아니라 조합원 범위 같은, 법 개악 전혀 상관없는 부분들에 대해서도 광범위하게 시정명령을 내렸어요. 어떻게 보면 국지적인 일이지만, 금속노조의 노동기본권 투쟁이 이명박 정부와 맞장을 떠야 하는 것이라는 점을 상징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어쨌든 지금 금속노조에서는 이런 법 개악을 악용해서 직장폐쇄까지 간 사업장들도 7개나 있는 상황인데요. 또 어느 정도 정리되고 있는 전임자 관련 합의사항을 뒤집으려는 분위기는 언제든 발생할 수 있고요. 그래서 9월10일 파업을 통해서 확실하게 쐐기를 박으려고 하는 거죠.     

노조 필요성, 전임자 역할 중요성 구체적으로 알리자

이주호: 지금 이 시점에서 법 개악에 맞서 민주노조를 지키기 위해서는 투쟁을 해야 하는데, 보다 근본적으로 고민할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즉, 무엇 때문에 민주노조와 전임자를 지켜야하는지 여기에 우리가 답해야 합니다. 한국 사회에서 노동조합과 전임자의 역할이 무엇인지, 즉, 사회 양극화 해소, 분배문제 해결이나 사회와 직장 민주주의 신장에 그동안 노동조합이 해왔던 순기능에 대한 명확한 인식을 국민과 조합원에게 알려나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거죠. 그런 맥락에서 보건의료노조는 이번 계기를 통해서 한국 사회와 우리 산업, 직장에서 노동조합의 필요성이나 전임자가 하는 일의 중요성에 대해서 보다 폭넓게 알려나가자는 기조로 대응을 준비했고, 실제로 많은 노력을 기울여 어느 정도 성과를 냈어요. 

한편, 이렇게 ‘전임자의 역할과 실상을 적극적으로 알려나가자’는 기조였기 때문에 보건의료노조는 타임오프제도 대응을 준비하면서 민주노총 안에서도 근로시간면제심의위원회 등에 대한 참여와 쟁점화를 적극적으로 주장하는 편이었는데요. 더 나아가 전임자의 역할과 활동에 대한 자체 현장조사를 대대적으로 실시했고 그 결과를 언론에 적극적으로 알렸죠. 조사결과를 보니까 진짜로 전임자들이 일을 많이 하고 고생하더라고요. 이러한 과정에서 노동부가 제시한 타임오프제도 매뉴얼의 문제점도 분명하게 드러났습니다. 근본적으로는 당연히 악법 철폐투쟁에 나서야 되지만, 하반기에는 이렇게 축적된 자료들을 바탕으로 쟁점이 되고 있는 지역과 3교대제 근무, 산별 전임자 인정 문제 등이 해결될 수 있도록 우선 힘을 집중 할 예정입니다. 

유주선: 아쉬운 부분이, 민주노총 산하에 막강한 언론노조가 있잖아요. 그런데 단편적으로는 다뤄져도 타임오프제도가 어떤 제도인지, 어떤 악영향이 있을 수는 있는지 등과 관련된 심층적인 보도나 텔레비전 토론회가 전혀 없는 것 같거든요. 민주노총에서도 이 문제에 대한 대응팀이 있었을 텐데 왜 그런 요청이 없었는지 아쉽습니다. 이런 부분을 보면 어쨌든 노동조합과 노동자들에게 친화적인 사회적 인프라를 체계적으로 갖춰나가기 위한 노력이 정말 필요한 것 같습니다.

사회자: 말이 나온 김에, 이 문제에 대한 민주노총의 대응이 어떠했다고 보십니까?

박준형: 민주노총 차원의 대책팀을 운영하긴 했는데, 7월 이후에는 운영이 안 됐어요. 이 문제는 개별 산별단위로 치고 나간 측면이 있다, 혹은 민주노총 차원의 대응이 부족했다는 평가가 많은 것으로 압니다.

이주호: 전임자 문제는 정말 노동운동의 기본이자 밥그릇 문제잖아요. 이 기회에 노동운동과 전임자의 필요성에 관련된 대대적인 캠페인을 하는 방식으로 민주노총 차원의 종합적인 대응이 필요했는데, 결과적으로 그런 부분이 부족했던 측면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미 2월에 금속노조가 특별단체협상 한다고 나가고, 우리도 예전 같았으면 정말 무리였음에도 4월 파업을 결의하는 등 각 산별들이 치고 나갔지만, 실제로는 여러 요인으로 인해 민주노총 차원의 전체 투쟁으로 모아지지는 못했던 것 같아요. 서로 평가가 필요한 부분인 것 같습니다.

박정미: 민주노총이 투쟁을 조직하지 못한 지는 이미 꽤 됐죠. 그런데 이번에는 각 사안사안보다 즉각적으로 대응해야 하는 ‘공중전’도 잘 못한 것 같거든요. 그리고 또 한 가지는 근로시간면제심의위원회에 참여하는 문제 관련해서, 전술적으로 옳지 못했다는 부분이 결과적으로 드러났다고 봐요. 대한상의토론회에서 근심위 사측 위원조차도 근심위의 실태조사가 완전히 엉터리라고 스스로 실토했거든요. 민주노총이 근심위 참여에 집착한 것에 대해 반드시 평가가 이뤄져야 할 것입니다.

사회자: 지금 노동운동이 큰 변화의 물결 속에 있는데요. 내년이면 기업단위 복수노조도 허용됩니다. 이제 이런 부분을 지금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지 이야기를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금속부터 이야기를 들어보죠.

박정미: 지난번에 민주노총의 복수노조 대응 회의에 가보니까 산별단위에서는 대부분 대응들이 이미 진행되고 있더라고요. 금속에서는 자기 사업장에 대해서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들, 즉 지회장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하고 있어요. 그 결과가 나오면 이게 어떤 변화를 가져올 것인지, 그러므로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지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을 거라 봅니다. 또 타임오프제도 대응 때에도 교육의 힘이 매우 중요했었는데요. 이번 그런 경험을 바탕으로 대대적인 교육이 될 것으로 봐요.  물론 복수노조 허용을 반대하는 무노조 사업장에서도 준비를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회사 측 준비가 만만치 않은 것 같아요.

복수노조 시대, 비정규직 포괄하는 것으로 열어야

유주선: 금융노조는 노조법 태스크포스팀이 이미 꾸려져 있기 때문에 이를 바탕으로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올해 공동단체협상을 마무리하면 복수노조 대응을 본격화할 겁니다. 금융노조는 대규모 사업장들이 많고, 또 제1 금융권의 대부분이 금융노조에 가입된 상태이기 때문에 특별히 금융노조에 반기를 드는 새로운 세력이 법 개정을 계기로 노조를 조직하거나 그러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다시 말해 노조 분열의 우려는 거의 없는데요. 다만 비정규직이라든가 후선역으로 배치돼 처우가 악화된 상급직들이 노조를 만들 가능성은 있습니다. 

복수노조 허용의 기회 요인은 노조 조직의 확대, 소외계층의 노동조합 참여 가능성 제고, 나아가 노동조합들 간 선의의 경쟁 강화 등일 테고, 위험 요인은 사측의 개입 가능성, 노조 간 갈등의 촉진 등일 텐데요. 만약 복수노조가 현장을 찢어놓는 계기가 된다면 제도가 도입되지 않는 게 차라리 나은 것일 겁니다. 그런 면에서 복수노조에 정말 잘 대응해야 할 필요가 있을 텐데요. 그래서 금융노조는 비정규직 같은 경우 조합원으로 포괄하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무기계약직이나 정규직 전환자를 포함해서 근래 3, 4년 동안 약 1만 5천 명이 조합원으로 가입을 했어요. 별도의 노조를 만들 것이 아니라 현재의 노조가 비정규직이나 관리자까지 다 포괄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봅니다.

현장 경쟁력 강화해 ‘실력 있는 산별노조’로 간다 

이주호: 제가 볼 때 전임자 임금 문제는 최대로 해봤자 노조를 약화시키는 수준이지만, 복수노조 문제는 잘못 대응하면 노조가 완전히 무력화될 수 있는 사안이라고 봅니다. 그 무게감이 정말 다르고 몇 배 더 준비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기업단위 복수노조 허용의 기회 요인이라면 당연히 조직 확대의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이죠. 다만 우리 내부적으로는, 병원의 경우 기존 상급 조직들끼리 평소 연대도 하고 뻔히 잘 아는 사이인데 서로 조직을 빼가는 방식으로 사업은 하지 말자, 그 대신 보건의료산업의 광범위한 미조직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조직 확대 사업을 중심으로 기회를 활용하자, 는 내용으로 방향을 잡아가고 있고요. 한편으로 복수노조가 허용될 경우 사측이 개입하여 노조를 만들거나 특정 직종 노조가 만들어질 가능성이 있는데요. 그런 부분은 있는 그대로의 가능성을 보면서 조심스럽게 대응해야 할 것 같습니다.

복수노조 관련 우리의 캐치프레이즈는 ‘실력 있는 산별노조’예요. 복수노조 시대라는 게 조직 간 경쟁이 높아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정말 ‘실력’으로 돌파해야 한다는 거죠. 그래서 산별노조발전전략위원회에서 종합적인 산별운동 발전 전망 고민과 함께 별도로 ‘복수노조 연구팀’을 만들어서 정책자문위원과 전문가, 현장간부들과 연구 작업을 하고 있어요.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미국과 일본 등의 구체적인 사례조사도 직접 방문을 포함하여 지금 진행되고 있습니다. 한편으로, 병원은 포괄 직종들이 매우 다양하기 때문에 각 직종들의 요구사항들을 정확하게 아는 게 중요한데요. 이 부분에 대한 조사 작업도 한국노동사회연구소하고 함께 하고 있습니다. 또 병원의 핵심 의제인 ‘현장 인력 부족’과 관련된 연구 작업도 대대적으로 진행하고 있고, 그 결과를 모아 9월30일 국회에서 국제세미나를 개최합니다. 이러 것들을 바탕으로 복수노조가 분열이 아닌 보건의료산업 노동자를 하나로 모을 수 있는 큰 투쟁의 계기가 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습니다. 

박준형: 대부분 조직들이 비슷한 것 같은데요. 공공노조도 사업장 실태조사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공공에는 복수노조가 이미 존재하는 사업장들이 제법 있어요. 건강보험공단이 대표적인 사례고 철도도 한국노총 산하에 조직이 있어서 사실상 복수노조 상태이고요. 그 외에도 기관 통합으로 복수노조가 된 사례들이 있습니다. 이런 조건에서 전수 조사를 실시하고, 문제가 발생할 여지가 있는 사업장들에 대해서는 심층조사를 한다는 게 기본 방침입니다. 또 총연맹 차원에서 법률 대응을 준비하고 있는데, 거기서 공공기관의 대응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색을 하고, 일본 등의 해외조사도 실시할 예정입니다. 

근본적으로는, 좀 전에 보건의료노조에서 ‘실력 있는 산별노조’라고 표현을 하셨는데, 저도 이번 기회에 산별노조의 ‘현장 경쟁력’ 강화를 위한 재편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번 계기를 타고 넘어서 대정부 교섭력과 투쟁력을 강화해, 노동조합의 경쟁력을 키울 필요가 있다는 거죠. 다른 조직들은 타임오프제도가 큰 영향을 주지 않았다고 하셨는데, 공공부문에서는 그것도 매우 큰 영향을 주고 있거든요. 그렇게 타임오프제도와 복수노조가 결합한 어려운 상황에서, 또 정부가 이를 민주노조 탄압에 전략적으로 이용하고 있는 상황에서, 기업별 노조가 아니라 산별노조가 현장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이냐에 대한 구체적인 답을 찾기 위한 고민과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런 고민에서 핵심은 산별노조의 리더십을 복원하는 것인 것 같아요. 지금 공공운수연맹에는 공공노조가 있고, 운수노조가 있고, 연맹이 있고, 또 다수의 미전환 사업장이 있고 해서, 투쟁을 조직하더라도 리더십 통일이 안 되고 느슨한 협의를 통해서 방침이 결정돼요. 이런 조건 때문에 투쟁력이나 교섭력, 현장에서의 경쟁력이 만들어지기 어려운 거죠. 10월 대의원대회에서 ‘통합 공공운수노조’ 건설 관련된 결정을 하게 되는데, 복수노조 시대 민주노조 사수를 위한 산별노조 강화를 어떻게 할 것이냐 하는 방향으로 그 결정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도록 하고자 합니다. 

사회자: 이제 마지막으로 이러한 어려운 조건에서 산별노조들이 할 수 있는 것들, 구체적인 조직의 과제나 그렇지 않더라도 활동가로서의 고민을 한 번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주호 단장님부터 말씀 부탁드립니다.

노조 관리하는 사람이 아니라 세상을 바꾸는 사람

이주호: 이제 노동운동이 예전처럼 죽음과 구속을 각오하고 하는 식이 아니라 상당히 대중화됐잖아요. 상당히 폭이 넓어졌는데요. 그런데 그러다보니까 자칫하면 활동가나 전임자들이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이 아니라 ‘노조를 유지 관리하는 사람들’이 되어 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물론 현행 노조를 유지 관리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고 어려운 일이지만, 초심대로 자신이 사람과 세상을 바꾸는 일을 하고 있는지 스스로 성찰하고 자문하는 게 매우 중요한 시대인 것 같습니다. “사람이 책을 만들고 책이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는데, 사람이 노조를 만들고 노조가 사람을 만들고 있는지 끊임없이 되물어야 한다는 거죠.

그리고 노동조합 평가서를 보면 십 몇 년 동안 매년 70% 정도는 같은 내용이 되풀이되고 있어요. 목표를 세워 놓고 못 지키고 있는 거죠. 목표를 달성하려면 정말 구체적인 부분에 강해야 하잖아요. “악마는 세부사항 속에 있다”는 격언이 있는데, 추상적이고 거창한 목표를 세우는 것만큼이나 문제점과 원인, 대안을 구체적으로 찾고 조금씩 진전시켜나가려는 노력들이 정말 필요한 것 같아요. 거대한 진보보다 작은 진보가 필요합니다.

2012년에 매우 중요한 선거가 있잖아요. 그 때까지 노동운동이 도대체 뭘 해야 하냐, 저는 우선 ‘제 2의 산별노조운동’을 펼쳐나가는 게 필요하다고 봅니다. 제가 임의로 표현하는 것이긴 한데, 어쨌든 기존에 유럽의 경험을 다소 맹목적으로 따라서 산별노조를 건설하고 활동을 했던 것이 ‘제1의 산별노조운동’이었다면, 이제는 지금까지의 경험에 대한 성찰을 바탕으로 한국의 조건에서 노동 3권을 가장 현실적으로 잘 실현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제2의 산별노조 노동운동’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거죠. 이를 위해 조직 형식적 논의보다는 의제, 교섭, 투쟁 등 컨텐츠를 중심으로 논의가 진행되고 산별투쟁을 조직해야합니다. 특히 공공부문은 별도의 집중적인 고민이 필요합니다.

다음으로, 연대 연합을 잘 해나가야 한다고 봅니다. 2012년 진보적인 정권교체를 위해 노동운동이 정치권에서의 진보대통합에 적극 나서고, 재정문제에도 관심을 기울여 세액공제사업을 포함 대대적인 모금운동을 통해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해야합니다. 노조의 기본 힘은 사람과 재정 아닙니까? 대규모 공중전을 통해 정권교체를 이룬 호주노총 사례가 유의미합니다. 마지막으로, ‘의제의 단일화’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2012년에 보수세력과 한 판 붙으려면 사람, 재정, 정치세력뿐만 아니라 ‘의제’가 통합이 되어야 합니다. 각 세력들이 자기 의제들을 내놓고, 대대적인 의제 콘테스트를 통해 후보 단일화를 하듯이 투표를 해서라도 국민들을 움직이고 감동을 줄 수 있는 단일의제를 합의해야 합니다. 정치공학적 단일화로는 국민을 움직일 수 없고 승리할 수 없습니다. 노동자와 국민들에게 새로운 미래의 비전을 제시할 의제를 개발하고 합의해야 합니다. 아마도 의료, 교육, 일자리를 포함 복지의제가 유력하겠죠. 

‘불법’도 필요하면 감수하는 도전 정신의 회복

박정미: 노동기본권 사수 투쟁을 하면서 일부 간부들이 강하게 느끼는 것 중에 하나가 뭐냐면, 우리가 어느새 ‘합법주의’에 완전히 길들어져있구나, 하는 점이에요. 예전에는 집회를 하면 도로 점거를 하는 게 다반사였는데, 요즘에는 법률 자문 없이는 움직이기가 어색한 상황이 되어 있는 거죠. 악법을 어겨서 깨뜨린다는 게 노동운동의 정신인데, 그런 과감한 도전 정신을 되찾는 게 정말 중요한 과제인 것 같습니다. 

한편, 올해 완성차대기업들이 모두 무파업으로 타결됐는데, 이런 흐름이 전체 노동운동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우려가 있어요. 그렇지만 또 한편으론 2003년 이후의 비정규 동지들의 불법파견에 대한 지속적인 투쟁 결과가 영향을 미쳐서올해 7월 22일 대법원에서 불법파견 정규직화 판정이 내려졌는데요. 이것은 금속노조의 조직화 사업에 매우 낙관적인 기회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불법파견 판정 이후 지금까지 사내하청 동지들이 금속노조에 2천여 명이 가입을 했거든요. 쌍용차투쟁 이후 상황을 반전시키고 조직의 활력을 만들어내고 있는 거죠. 물론 이러한 흐름에 대해서 사용자들의 탄압이 매우 심하지만, 금속노조가 이를 막아내는 우산이 된다면 앞으로도 계속 가입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조금 과장해서, 금속노조 조합원의 평균 연령까지 내리는, 조직이 좀 더 젊어지는 효과까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러한 흐름을 타고 내년에는 노동 기본권을 기치로 산별적 투쟁을 제대로 만들어내야 하겠죠.

근본적인 내부 개혁과 이념적 전망의 복구

유주선: 사실 법으로 노조 활동을 제한하는 것은 갈 때까지 가는 거고 매우 안타까운 상황인 거죠. 그렇지만 앞으로도 정부가 그런 경향을 바꾸지는 않을 것 같은데요. 이런 부분에 대한 근본적인 대응을 고민해야 할 텐데, 그러기 위해서라도 우리 내부가 변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를 테면 노조 간부를 등 떠밀려서 하는 경우는 이제 없어야 하는 거죠. 정말 역량 있는 분들이 노조 활동을 하기 위해 모이도록, 간부의 처우나 운영의 풍토를 개혁해야 할 테고요. 또 지금 수십 년째 변화하지 않는 불합리한 규정, 내부 시스템과 의사결정 구조를 바꿔내야 합니다. 위원장을 비롯한 몇몇 사람에게 독점적인 권력이 집중되는 구조를 바꾸고, 조합 운영이 투명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하자는 거죠. 그러한 내부 개혁을 바탕으로 노동조합의 운동성을 회복하기 위한 세부적인 대안들이 제시될 필요가 있을 겁니다.

이런 것들이 단기에 이뤄질 수는 없겠죠. 우선은 올해 공공부문에서 그랬던 것처럼 노동조합들이 소속 노총 가리지 말고 적극적으로 연대를 할 필요가 있고, 또 상급단체의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들을 지속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연대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세밀하고 구체적인 답을 제시할 수 있는 내부 개혁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박준형: 처음부터 공공부문은 탄압이 심하다는 말씀을 드렸었는데요. 우선 이 정부 기간 동안 잘 버텨야 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물론 잘 버티는 것뿐만 아니라 정권 후반기로 가는 상황에서 레임덕을 심화시키는 투쟁을 벌여야 할 텐데요. 이를 위해서라도 지금 리더십을 구축하고 산별적 대응을 강화하기 위한 재편이 이뤄져야 한다고 봅니다. 지금 공공부문 노조운동은 정권의 탄압에 몰려서, ‘산별을 무너뜨리고 기업별 담합을 강화할 거냐 아니면 산별적으로 함께 대응할 것이냐’를 결정해야 하는 분기점에 놓여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때문에 올해 하반기 투쟁과 조직적 결정을 제대로 준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봅니다. 

한편, 복수노조라는 조건에서 민주노총 내부 정파적 분열이 우려되기도 하는데요. 이와 관련해서는 조직적 단결이 우선시되어야 한다는 점을 공론화하는 게 필요하겠죠. 또 이후 공공부문 같은 경우 고임금 사업장의 배타적 이익을 우선시하는 방향으로 갈 우려가 있는데, 이런 부분을 제어하고 노동자계급 전체의 단결을 우선하기 위한 모색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마지막으로, 최근 노동조합 활동가 재생산 과정이 무너지다 보니까 기본적으로 활동가들의 이념적 전망이 굉장히 약화되어 있는 것 같아요. 경제학자들이나 언론들조차 자본주의가 위기라고 하는데, 정작 노동조합 활동가들 사이에서는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이념적 대안이 매우 취약해진 상황입니다. 이러한 이념의 공백 상태에서는 2012년을 대비할 때 할 수 있는 것들이 ‘어느 정당이랑 결합할 것이냐’ 하는 전술적이고 공학적인 부분들로 제약될 수밖에 없을 텐데요. 활동가들의 이념을 강화하기 위한 사업이 보다 적극적으로 진행될 필요가 있고, 또 그런 바탕에서 경제위기 상황에서 노동운동의 장기적인 방향을 모색해야 할 것 같습니다. 

사회자: 모든 분들이 연대 연합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노동운동이 세상을 주체적으로 바꿔나가기 위한 전망의 필요성을 강조해주셨는데요. 이명박 정부에게 이렇게 당했는데 바꿔내지 못한다면 정말 노조의 사회적 역할이 지금과는 달라질 수도 있을 거란 생각합니다. 오늘의 대화와 모색들을 좀 더 구체화하고 서로 공유하기 위한 노력들을 지속적으로 펼쳐나갈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정말 바쁘실 텐데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긴 시간 동안 수고하셨습니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5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