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석: 이병훈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
김준영 한국노총 금속노련 사무처장
황우찬 민주노총 금속노조 사무처장
사회: 이주환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
이주환: 반갑습니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이주환 연구위원입니다. 아시다시피 2016년 말과 2017년 초에 걸쳐 진행된 촛불시민혁명은 우리 사회의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 속에서 노동운동은 변화의 주역이기도 했고, 또 한편으로 변화의 대상으로서 지목을 받기도 했습니다. 노동운동은 달라진 환경 속에서 능동적으로 대응할 것을 요구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촛불시민혁명 이후 노동운동의 전망과 과제를 주제로, 애정을 갖고 노동운동을 지켜보는 연구자들과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노동조합 간부들이 대화를 나누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대통령 탄핵이라는 커다란 변화를 만들어낸 촛불시민혁명의 정치사회적 성격에 대한 의견부터 시작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나라다운 나라’, ‘적폐 청산’이라는 화두
김준영: 간단하게 말하면, 1987년 6월 항쟁 이후 성장해 온, 혹은 역사의 수레바퀴를 퇴보시킨 ‘이명박근혜 정부’ 9년 동안 억눌려왔던 민중들의 정치적 의식과 요구가 분출한 계기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황우찬: 저는 두 가지를 지적하고 싶습니다. 첫 번째로 촛불집회 기간 동안 시민들은 ‘이게 나라냐’라는 화두를 던졌습니다. 법과 상식과 법이 통하는 나라가 되면 좋겠다는 요구를 강하게 던진 것이죠. 둘째, 대중의 자발적 참여가 두드러졌던 투쟁이었습니다. 그 결과, 어쨌든 1987년 항쟁은 미완으로 귀결됐다면, 이번 촛불시민혁명은 대중의 자발적 참여를 통해 승리를 만들어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건호: 한 마디로 기존 한국의 시스템에 대한 아래로부터의 불신이 분출한 거대한 사건이었다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멀리로는 1987년부터 볼 수 있겠지만, 좀 더 분명하게는 1997년 IMF 경제위기 이후 한국에 자리 잡은 시스템, 이른바 ‘헬 조선’이라는 이름을 만들어낸 양극화 추세를 거스르기 위한 동력을 만들어낸, 일종의 무혈혁명(無血革命)으로 평가합니다. 촛불시민혁명의 결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가 ‘나라다운 나라’라는 전망과 지향점을 제시한 점에 주목합니다.
이병훈: 앞에 분들과 말씀에 동의하면서 의견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당시 시민들이 느꼈던 절박함, ‘이게 나라냐’라는 의문과 좌절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한 절박함이 부패권력이 상징인 박근혜-최순실을 끌어내리고 새로운 정권을 탄생시킨 물줄기를 만들어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주목해야 할 부분은 촛불시민혁명 과정에서 ‘일상의 적폐들’, 이를테면 다양한 사회적 차별과 격차가 화두가 됐다는 점입니다. 촛불시민혁명은 새로운 정권에게, 그리고 우리들에게 ‘뿌리 깊은 일상의 적폐들을 어떻게 해결해나갈 것인가’라는 과제를 던져주었다고 생각합니다.
“변화가 가능하다, 우리 손으로 가능하다”
이주환: 여러분들이 지적해주신 것처럼, 촛불시민혁명은 대통령 탄핵과 정권 교체라는 가시적인 변화를 만들어냈지만, 그럼에도 촛불시민혁명 과정에서 지목된 뿌리 깊은 적폐들 중 상당수는 여전히 해소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촛불시민혁명 이전과 이후를 비교했을 때 변화한 것과 변하지 않은 것, 그리고 우리가 변화를 시켜야 할 것을 꼽는다면 무엇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김준영: 구체적인 사회적 변화는 사실 탄핵 이후 정권 교체가 완료된 후에야 시작되는 것이겠죠. 다만 지적하고 싶은 것은 촛불시민혁명 이전과 이후 시민들과 운동진영의 ‘자신감’ 차이입니다. ‘이명박근혜 정부’ 기간 동안 우리가 계속 밀리면서, 조금 덜 밀리기 위해서 싸우면서 버텨왔던 것과 비교하면, 촛불시민혁명을 거치면서, 그리고 그 이후에는 적폐 청산을 요구하는 세력들이 완전히 자신감을 회복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러한 자신감이 사회적 변화에 대한 요구를 강력하게 뒷받침하고 있기 때문에, 실제적인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있습니다. 구조적인 변화의 시간이 왔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황우찬: 동일한 의견입니다. 지난 시기 우리의 운동은 일정하게 포기와 단념을 품고 진행된 측면이 있습니다. 그런데 대중들이 포기와 무관심으로 일관하다가 촛불시민혁명을 계기로 스스로 나서기 시작했거든요. 다시 사회적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또 촛불시민혁명의 성공으로 인해 실제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기 됐습니다. 또 한편으로, 주목하고 싶은 것은 촛불집회 이전에는 주로 ‘경제적인 관점’으로만 사회를 보던 데서, 최근에는 ‘사람 중심’으로 사회를 보는 시선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입니다. 중요한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오건호: 두 분 의견에 동의합니다. 자신감을 달리 표현하면 기대감라고 할 수 있겠죠. 촛불시민혁명 이후에 ‘정부에 대한 기대’가 커졌다는 점에 주목합니다. 이는 우리사회가 긍정적으로 변화할 수 있다는 신뢰 기반이 만들어졌다는 신호거든요. 문재인 대통령 개인이 갖고 있는 인간적인 측면에서 비롯된 것도 있겠지만, 어쨌든 시민들이 정부가 새로운 대한민국의 앞날을 열어줄 것이라는 미래 지향적인 기대와 신뢰를 갖게 됐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병훈: 앞에서 ‘시민 스스로 세상을 바꾼 것이 자신감을 키웠다’, ‘새로운 정부가 촛불시민혁명으로부터 위임된 과제를 충실히 수행해가고 있는 모습에 기대를 갖고 있다’ 하는 의견들을 말씀해주셨는데요. 저는 그 연장선상에서 ‘새 정부 등장 이후 운동진영에게 정치적 기회구조가 열렸다’는 점에 주목하고 싶습니다. 그동안 변화를 바라는 사회세력과 시민들을 좌절시켜왔던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정치적 조건이 어쨌든 변화했다는 거죠. 문재인 정권도 이러한 측면을 분명히 인식하면서 협력적으로 국정을 이끌어가야 하겠지만, 이전 정부들에서 통제와 탄압의 대상이었던 노동운동도 이제는 다양한 영역에서는 정권의 파트너로서 시민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새로운 기회구조를 능동적으로 활용해서 노동 존중 사회를 만들어가기 위한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현 정부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책을 추진하면서 이전 정부들과 달리, 반드시 비정규직까지 포함해서 노사협의를 거쳐서 시행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노동운동이 이러한 정부의 태도에 주목해야 하고, 열려 있는 정치적 기회를 잘 활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2020년 총선 이전에 보수세력 다시 결집할 것
이주환: 참석자들께서 말씀해주신 것처럼, 촛불시민혁명은 우리 사회의 변화를 바라는 이들의 열망을 증폭시키고 이것이 구체적인 형태를 갖도록 만드는 계기였습니다. 그런 한편으로, 변화를 바라지 않는 이들, 기득권을 지키려는 이들에게는 촛불시민혁명이 다른 의미로 다가갔을 것 같은데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병훈: 앞서 정치적 기회가 열렸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씀을 드리긴 했지만, 사실 여러 영역에서 변화를 바라는 세력과 바라지 않는 세력 간에 각축이 진행되고 있는 게 현실이죠. 최근에는 특히 법정 최저임금 인상과 공공부문 비정규직 전환 등의 노동 이슈들을 중심으로 사회적 갈등이 커지고 있는 상황인 것 같습니다. 과거 기득권을 누렸던 세력들이나 보수언론들은, 정권 초기니까 아직 전면적으로 나서고 있지는 못하지만, 피해의식과 반발의식을 키우면서 공세적인 반격을 준비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부분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오건호: 단정하기 어렵긴 하지만 제 생각에는 최근이 우리나라 현대사에서 보수세력의 힘이 가장 약한 시기인 것 같습니다. 극우적인 시민들이나 정치영역의 적폐들이 자기 존재의 정당성도 제대로 주장하지 못하다보니, 이들이 어떤 정치적 행동을 해도 사회적 반향이 없거든요. 바꿔서 말하면 그 반대쪽의 세력에서는 굉장한 호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치 공간이 무주공산(無主空山) 상황이거든요. 그런데 문재인 정부가 이러한 조건을 이용해서 할 수 있는 만큼의 개혁을 추진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봅니다. 한편으로, 어쨌든 보수세력의 기반이 무너진 건 또 아니거든요. 결국 박근혜를 딛고 일어서는 새로운 보수세력이 조만간에 다시 형성되리라 생각합니다. 지방선거가 됐든, 국회의원 총선거가 됐든, 다가올 정치적 계기를 타고 진보개혁진영에 대항하는 보수세력의 집결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때문에 결집 이전에 더욱 강하게 개혁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황우찬: 재벌과 보수세력이 지금 상황을 좋아할 리는 없잖아요. 화가 나 있겠죠. 특히 재벌들은 문재인 정부에서 추진한 최저임금 인상과 임금체계 개편 등에 대해서 자기들 나름대로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겠죠. 그렇지만 지금 겉으로는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왜 반격을 하지 않는가, 아마도 지금 자기들이 뭐라고 떠들어봐야 사회적으로 수용되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그렇지만 속으로 적절한 반격의 시점을 검토하고 있을 거라고 보고, 저는 그 시점이 국회의원 총선거쯤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2018년 지방자치단체 선거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기는 어렵겠지만, 2020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정치구조까지 개편되어 버리면, 저들로서도 정말 회복하기 어렵기 때문에 그 지점을 노리고 전략적으로 준비하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김준영: 결국에는 새로운 보수세력이 집결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최근 잔존한 보수세력들이 “사회주의 헌법” 프레임까지 동원하면서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펼치는 것을 보면서, 새로운 보수세력이 어떤 형태로 구성될지에 대한 우려가 들었습니다. 제가 광화문을 지나가면서 그들의 집회를 가만히 지켜봤는데, 그들이 제기하는 논리와 주장을 도저히 이해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저 사람들이랑 이 땅에서 함께 살아갈 방법이 무엇이 있을까 하는 고민이 심각하게 들었습니다. 말씀하신 거처럼 촛불시민혁명은 무혈혁명이지 않습니까? 19세기나 20세기의 혁명처럼 과거의 기득권층이나 반대세력을 완전히 척결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에요. 결국 저들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데, 어떻게 공존할 수 있을지 아직 답을 찾지는 못했습니다.
더 강력한 개혁인가, 균형 있는 사회통합인가
이병훈: 오건호 운영위원장님이 지금 보수세력의 힘이 약해져 있고 좀 더 강하게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고 지적해주셨는데, 저는 그래도 우리 사회 기득권 구조에 자리 잡은 보수세력의 근본을 가볍게 볼 수 없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겨우 2년 전인 2016년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서는 진보개혁진영의 전망이 다들 참 암울하다고 여기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당시 총선을 계기로 세력 구도의 예상치 못한 반전이 시작됐습니다. 마찬가지로 지금 보수세력이 위축돼 있고 진부개혁진영이 자신감을 되찾은 상황이긴 하지만, 과연 촛불시민혁명이 주장한 내용을 제도화할 수 있는 안정적인 조건인지, 아니면 일시적인 정치적 국면으로 불확실성이 커지고 세력 조정이 다시 시작될지는 조심스럽게 판단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부분을 고려하면서 문재인 정부의 과제와 전망에 대해서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준영: 자본가들이 눈치가 참 빠르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최근 어느 원청기업과 하청기업을 포괄하는 노조가 만들어져 금속노련에 가입했습니다. 이 노조를 받아놓고서 제가 불안해서 잠을 잘 못 잤습니다. 노동자들의 요구가 정당했고, 원하청 관계를 보니 불법파견이 확실해서 노조 인정 투쟁에서 이길 자신이 있긴 했는데, 과거 경험을 보면 하청기업 노동자들이 노조를 만들면 원청에서 하청기업과 계약을 끊어버리는 경우가 자주 있었거든요. 그렇게 되면 3백여 명의 고용을 담보로 투쟁을 끌어가야 하는데 단기간에 끝내기 쉽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겨우 보름 만에 사용자가 노조를 인정하고 하청기업 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했어요. 이 노조 위원장이 단체협상 한 번 못해본 상황에서 청와대에 가서 격려를 받고, 또 고용노동부에서도 이 노조를 모범 사례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을 보면서 일부일수도 있지만, 사용자들이 참 시류를 읽고 대처를 잘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주환: 촛불시민혁명의 결과로 문재인 정권이 집권한 지 7개월 정도 지났습니다. 그동안 정부의 행보에 대해서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오건호: 문재인 정부가 정치체제 개혁의 측면에서는 전반적으로 잘 준비돼 있고, ‘적폐 청산’이라는 이름 아래 의욕적으로 실천하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회정책의 측면에서는 잘하고 있는 것도 있고 잘 못하는 부분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노동정책은 최저임금 인상이나 비정규직 정규직화, 공공부문 개혁 등을 추진하는 모습을 봤을 때, 노동을 억압하는 것으로 일관했던 기존 정권의 정책 흐름을 반전시켜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합니다. 그런데 복지정책 같은 경우는 ‘절반이 차 있는 물 컵’이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어떻게 보면 잘하고 있고, 어떻게 보면 아쉽고 그렇다는 거죠. 건강보험, 기초연금, 아동수당 같은 데서는 개혁이 진행되고 있지만, 명분이나 세력관계나 매우 좋은 조건임에도 정권이 좀 더 적극적으로 추진할 수 있을 텐데 그러지 못한 부분들이 눈에 들어와 아쉽습니다. 짧은 시간에 말씀드리기는 어렵지만, 일단 주거정책 같은 경우는 매우 실망스러운 부분이 있습니다. 전월세 상한제라든가, 계약갱신제 등 공약의 핵심 내용을 제기하지 않고 있다고 봅니다. 기초생활보장 대상자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의 추진 상황 역시 애초 공약 수준에 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돌봄정책 같은 경우 ‘사회서비스공단’이라는 이름으로 공약이 브랜드화 됐는데, 아직 구체적인 내용을 내놓고 있지 않습니다. 또한 세금정책 같은 경우는, 과도하게 얘기하면, 박근혜 정부와 큰 차이가 없다고 봅니다. ‘핀셋증세’ 이 정도는 사실 효과가 거의 없거든요. 사회정책 추진에 있어 집권 초반기의 좋은 조건을 잘 활용하지 못하는 부분이 아쉽습니다.
원하청 불공정 문제, 세제 개편, 정부가 더 적극적이어야
황우찬: 문재인 정부가 노무현 정부의 실패를 반면교사 삼아서 조심스럽고 정교하게 나아가려고 노력하는 모습은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촛불시민혁명에서 외쳐졌던 한국사회 문제의 핵심은 결국 재벌과 시장구조거든요.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경제민주화를 이뤄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경제민주화로 가기 위한 유력한 방법 내지는 통로는 집단적 노사관계를 활성화하는 것인데, 이런 부분에서 문재인 정부가 보수세력을 의식해서 너무 주춤거리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김준영: 애초 제가 기대가 크지 않아서 그랬는지, 지금 문재인 정부의 모습에 점수를 높게 주고 있습니다.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다른 후보들과의 정책적 간극을 보면서, 문재인 후보가 집권해도 뚫고 가기 쉽지 않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럼에도 지금 노동뿐만 아니라 전반적으로 정책 공약을 과감하고 능동적으로 실천해 가고 있거든요. 이 부분을 긍정적으로 평가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개인적 캐릭터와 촛불시민혁명의 힘이 상호작용하여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국민들이 적폐 청산이 정말 이뤄질 수 있겠다는 기대를 갖게 만들었고, 5·18이라든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 역사적 아픔을 다루는 데서 성숙한 태도를 보여주고 국민을 감동시키고 있습니다. 법과 원칙이 실현되는 사회에 대한 기대를 만들었습니다. 노동 문제에 있어서는, 예상보다도 빠르게 박근혜정부의 ‘2대 행정지침’(‘일반해고 도입 지침’,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완화 지침’)을 폐기했고, 방송사의 부당노동행위를 바로잡고 노사관계를 정상화시켰으며, 파리바게트의 불법파견 문제를 과감하게 원칙대로 처리했다는 점 등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또한 최저임금 인상, 비정규직 정규직화, 노동시간 단축 등 중요한 공약들을 이행하고 있는 모습도 긍정적으로 평가합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원·하청 불공정 거래 문제’와 관련된 조치들이 미흡하다는 점입니다. 적절한 시기를 보고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원하청 불공정 거래, 결국 5대 재벌의 문제를 건드리지 않고서는 우리 사회의 양극화를 극복하기가 어려울 텐데, 이 부분에 대해 적극적으로 나서는 모습을 보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병훈: 문재인 정부는 촛불시민혁명으로 열린 정치적 기회의 틈새를 타고서 만들어졌습니다. 그럼으로 인해서 이 정부가 가질 수밖에 없는 취약성에 대해서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컨대 과거처럼 폭력혁명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권력이라면, 총과 칼을 동원해서 혁명의 요구를 절대적으로 관철해가겠지만, 문재인 정부는 평화적이고 비폭력혁명의 뒷받침을 받으며 절차적 민주주의에 따라 탄생했습니다. 또한 대통령 선거에서 압도적으로 득표했다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이런 조건에서 문재인 정부가 진보개혁진영의 모든 요구를 수용할 수는 없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촛불시민들의 정치적 스펙트럼도 매우 다양하다는 점을 봐야 합니다. 촛불시민혁명은 다양한 의견을 가진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한 것이었고, 구체적인 모습으로 집단화, 세력화하지 않았습니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개혁을 바라보는 촛불시민들의 인식도 다양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럼에도 문재인 대통령이 지금 현재 70%대의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이전 이명박근혜 시절과 비교해, 5·18이나 위안부 문제를 대하는 공감어린 태도 등 ‘통치스타일’의 변화에 대해서 대다수의 시민들이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음을 드러낸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한편으로, 저는 문재인 정부가 재정적인 측면에 대해서 구체적인 계획을 내놓지 않고 있는 것에 대해서 우려를 하고 있습니다. 지금과 같이 여러 가지 방면에서 사회개혁을 추진하려면 재정이 추가로 필요할 수밖에 없는데, 어떤 복안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현재는 이에 대해서 명확한 계획을 제시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런 부분 역시 문재인 정부의 행보에 제약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노동정책 측면에서 현 정부를 평가하면, 큰 방향을 전환한 것에 대해서 확실하게 긍정적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준비가 잘 안 된 채 구체적인 정책들을 추진하다 보니, 일부에서 파열음과 갈등이 나고 있고, 이게 그때그때 해소되기보다는 누적되고 있다는 거죠. 대표적인 사례가 대통령이 직접 인천공항을 방문해서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선언한 것입니다. 대통령의 선언은 이를 환영하는 세력에게는 시원하게 느껴졌겠지만, 해당 기관은 구체적인 해결 방안이나 절차에 대한 고민이 전혀 없는 상태였거든요. 상황이 더 꼬이게 만들고 문제 해결을 더 복잡하게 만든 측면이 있습니다.
개혁 추진 강화하려면 노조 조직률을 높여야
이주환: 말씀들을 종합하자면, 문재인 대통령의 통치스타일과 절차와 원칙을 엄격히 고수하는 태도 등에 대해서는 대체적으로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한 하지만, 정책 각론에 들어가면 준비된 부분도 있고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다는 정도로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준비되지 않은 모습’과 ‘절차와 원칙대로 하는 모습’은 사실 동전의 양면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어떻게들 생각하십니까?
이병훈: 정부가 절차와 원칙을 고수하면서 성과를 만들어내고 있는 측면은 분명히 있죠. 예컨대 파리바게트 불법파견 문제나 방송사 노사관계 문제를 정부가 정치적인 고려 속에서 처리했다면, 지금처럼 근본적으로 해결되기보다는 절충적인 방안을 찾았겠죠. 또한 최저임금 같은 경우에도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 원으로 인상이라는 공약에 따라 2017년 17.4%로 많이 인상됐잖습니까. 저도 꽤 놀랐는데요. 이에 대해서 한 쪽에서는 환호를 하고 있지만, 숨죽이고 있는 기득권이나 보수세력들은 아마도 반발감을 키우고 있을 거란 말이에요. 정권 초기라 가시화되고 있지 않지만 사실 보이지 않는 사회적 긴장이 커질 수도 있는 거고, 이런 부분들이 누적되면 어떤 계기로 표출될 수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절차와 원칙에 따라 추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권 차원에서는 공약 달성 이후를 준비하고 관리하는 부분도 중요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황우찬: 문재인 정부가 생각보다 개혁 드라이브를 강하게 진행하고 있고, 이런 부분이 보수세력과 보이지 않는 긴장을 누적하고 있다는 진단에 동의합니다. 그런데 저는 지금 우리나라 노동조합 조직률이 10%인데, 이것이 20%, 30%가 되면 정부의 개혁에 대한 철저한 방어선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정부가 ‘노조 할 권리’ 보장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봅니다. 실제 문재인 정권 등장 이후에 노조 가입이나 신규 노조 건설이 크게 늘어나고 있어요. 노조 할 권리를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집단적 노사관계를 통해서 경제민주주의를 다룰 수 있도록 할 때, 한 단계 한 단계 안정적으로 사회를 바꿔나갈 수 있습니다. 촛불시민혁명으로 나선 시민들이 직장과 일터에서도 계속 움직일 수 있도록 정권 초기부터 기본적인 제도적 기반을 마련해야 하는데, 문재인 정부가 이런 부분에 적극적이지 못한 점을 아쉽게 생각합니다.
김준영: 말씀하신 것에 동감합니다. 정부가 노조 할 권리 보장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내용이 준비돼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노조 조직률을 높이겠다고 공약을 했는데 어떻게 하느냐는 질문이 나왔는데, 조직률을 올리는 정책을 쓰겠다, 노조는 보다 대중적으로 활동해 달라, 사용자는 부당노동행위 하지 마라, 라고 대통령이 이야기하셨어요. 이 말을 들으면서 ‘조직률을 올리는 정책이 과연 뭐지’ 하고 생각을 했거든요. 그리고 그 이후에 구체적으로 발표된 게 없어요.
이병훈: 중요한 지적입니다만 저는 한편으로 정부의 움직임이 있긴 하다고 봅니다. 어쨌든 정부가 노동정책을 추진하면 노동조합이 파트너라는 점을 명확하게 표현하고 있고, 과거 정권들이 전략적으로 억눌렀던 산별노조의 활동이 이 정부 들어서는 상대적으로 활발하게 살아나고 있는 것 등이 그 사례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한편으로, 지금 국회의 세력구도가 노동 친화적인 법 개정을 이뤄내기에는 꽉 막혀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합니다. 결국 노동조합이 다양한 이슈를 사회적으로 활발하게 제기해야 하고, 이러한 흐름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노동조합 스스로 내부 혁신을 이뤄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비정규직의 현장이 꿈틀댄다, 조직노동은 준비돼 있나
이주환: 자연스럽게 촛불시민혁명 이후 달라진 환경이 노동운동에게는 어떠한 조건으로 작용하고 있는지, 그 속에서 노동운동은 어떤 전망을 가져야할지 등의 주제로 이야기가 넘어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먼저 들어보고 싶습니다.
김준영: 1960년 4·19혁명이나 1987년 민주항쟁 이후에 조직률이 급속도로 올랐던 것만큼은 아니지만, 촛불시민혁명 이후인 요즘에도 노조 조직률이 올라가는 게 가시적으로 보여요. 밑으로부터 올라오는 요구들, 꿈틀거리는 움직임들이 보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1987년 노동자대투쟁 과정에서 기존 노조들이 발 빠르게 변화하지 못하면서 내부 갈등이 심화됐던 것들을 경험했음에도, 지금도 기존의 노조가 변화에 대한 요구에 둔감하게 반응하고 있다는 점을 스스로 반성하면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물론 제도개혁의 뒷받침도 필요하겠지만, 노조 조직률 올리는 것은 결국 노동운동을 이미 하고 있는 우리의 몫이고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황우찬: 박근혜 정권 말기에도 억눌리고 눌리다 못 참아서 터져 나오는 경우가 점차 늘어나고 있었는데, 최근에는 정말 노조 설립이 전국적으로 막 늘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무노조 기업으로 유명한 포스코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최근 노조에 가입했거든요. 이러한 흐름을 뒷받침하고 있는 것은 정부가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선언한 것에 대한 기대, 그리고 촛불을 거치면서 만들어진 시민사회와 운동진영의 자신감 등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조금 아쉬운 부분은 정부가 굳이 법을 건드리지 않더라도, 정부가 노조 할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서 할 수 있는 게 있는데 적극적이 않다는 점입니다. 예컨대 부당노동행위라는 게 결국 법을 지키지 않는 거잖아요. 그렇다면 정부가 명예근로감독관을 행정적으로 활용한다든지 해서, 사용자에게 법을 지켜라 하는 메시지를 강력하게 보낼 수도 있잖아요. 노동현장의 기대는 높아져 있고, 기대를 가진 노동자들이 물꼬를 트고 뛰쳐나오고는 있는데, 이를 정부가 능동적으로 뒷받침하고 있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김준영: 기존 노조가 반성할 지점도 거기에 있는 것 같습니다. 이를테면 대기업이 주도하는 원하청 불공정 거래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고 또 실제 데이터도 갖고 있는 정규직 노조가 지금 뚫고 나서지 못하고 있거든요. 그런데 오히려 억눌려 왔던 비정규직노동자들이나 하청기업노조들은, 대통령이 하는 이야기도 있고 하니까, 이번 기회에 뭐든 해결해야 한다고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어요. 이때 정규직노조가 나서면 원하청 불공정 거래 문제를 사회적으로 이슈화시키고 원청 대기업을 실질적으로 압박을 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렇지 못하는 부분에 대한 아쉬움이 있죠. 기업별노조라는 구조적 조건 때문에 정규직노조의 간부들 탓만 하기는 어렵긴 합니다. 어쨌든 산별연맹도 반성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노조에 대한 시민들의 양가적 태도를 돌아봐야
오건호: 노조 가입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은 참 좋은 소식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여론조사 결과를 봐도 그런 부분이 나타나고 있어요. 한국사회 시민들은 노조에 대한 양가적 태도를 보이거든요. 둘로 갈라서, 이른바 정규직노조나 양대 노총에 대해서는 매우 비판적인데, 일반 명사로서 노조, 그리고 노조 할 권리에 대해서는 굉장히 우호적인 태도를 보입니다. 그런데 촛불시민혁명을 거치면서 후자의 의미, 즉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힘이 약한 노동자들을 보호할 수 있는 장치로서 노조에 대한 긍정적 인식이 매우 강화됐어요. 그렇지만 촛불시민혁명 과정에서 양대 노총이 매우 헌신적으로 기여했음에도, 아직까지 정규직노조나 양대 노총에 대한 시민들의 인식은 별로 개선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병훈: 현재 상황에 대해서 노조가 스스로를 냉정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촛불시민혁명에 의한 것이든 정권의 태도에 의한 것이든, 어쨌든 정치적 기회구조는 눈앞에 주어진 것일 뿐이고, 그것을 붙잡아서 현실화하는 것은 결국 노조운동의 몫이거든요. 그런데 조직률을 크게 높일 수 있는 이런 기회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대중들의 요구에 밀착해서 활동하지 못하고 괴리되어 왔던 그간의 노조운동의 모습이 이런 기회를 활용하지 못하게 하는 제약조건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노동조합운동의 모습을 냉정하게 돌아보고, 정치적 기회를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 근본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 한편으로 지도부들이 전략적인 선택을 해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상대적으로 좋은 노동조건을 누리는 조합원들에게 노조의 전략적 기조로서 하후상박(下厚上薄)을 수용하도록 설득하고, 보다 많은 사회적 약자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들을 제시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정권이 잘못해서 노정갈등이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개혁을 추진하는 정부의 발목을 잡는 노조 때문에 노정갈등이 발생한다는 인식이 사회 곳곳으로 퍼져나갈 수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스스로를 혁신하고 당당하게 정권에게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스스로를 혁신하고 당당하게 노동개혁 요구하라
이주환: 자연스럽게 노동운동에 대한 시민들의 평가에 대한 주제로 이야기가 옮겨가고 있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촛불시민혁명 과정에서 시민들은 노조에 대해 양가적인 평가를 드러냈는데요. 이에 대해서 노동운동 당사자들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김준영: 한국노동연구원에서 나오는 노동인식조사를 보면, 1987년 노동자대투쟁 직후 시기에는 노동조합이 불평등 개선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의견에 대한 동의가 70%가 넘었어요. 파업이 그렇게 많았던 시절인데도 경제성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의견도 매우 높았고요. 그 이후 동의 비율이 계속 떨어져왔거든요. 박근혜 정부 시기에는 노조가 불평등 개선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의견이 거의 제로, 바닥으로까지 떨어졌었는데, 촛불시민혁명 직후 조사에서 60%가 넘었어요. 경제성장에 대한 의견도 급격히 올랐고요. 그런데 그 사이 기존 노조가 사실 뭐 한 게 없거든요. 국민들이 노조운동에게 그러한 역할을 절박하게 요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병훈 교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우리 스스로 반성하고 개선해 나가야 할 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상박하후’ 관련해서는 기업단위에서는 모범 사례들을 생각보다 많이 찾아볼 수 있어요. 그런데 그 경계를 넘어서는 확산이 잘 안 되고 있습니다. 상박하후의 기조는 기업단위노조 지도부에게 요구해야 할 일이 아니라, 노동자 전체에게 제도적으로 적용시켜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세금제도 개편, 고용보험 개편 등의 개혁이 필요하겠죠. 결국 총연맹 차원에서 접근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황우찬: 저는 국민들이 노동운동에 대해 비판하고 있는 지점이 타당하다고 인정합니다. 비정규직이나 사회 양극화 문제에 대해서, 구호를 외치는 것이 아니라, 과연 구체적으로 뭘 개선해 왔냐고 묻는다면 답변하기가 참 어려운 게 현실입니다.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겪으면서 금속노조 내부에서도 조합원들 간의 노동조건 격차가 매우 크게 벌어졌습니다. 우리가 극복해야 할 과제입니다. 그런데 이미 상대적으로 좋은 노동조건을 누리는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에게 하후상박 수용하고 양보하라고 요구하려면, 그에 대한 설득력 있는 근거를 제시해야 하는데 이게 참 어렵습니다. 이를테면 대기업노조 조합원들 보기에는 자기 기업의 이윤이 엄청나게 많은 상황인데 임금인상 자제하라고 하면 말이 안 되는 이야기거든요. 우린 신경 쓰지 말고 밑에 있는 노동자들의 임금을 올리면 되지 않냐고 하는데, 또 모든 노동자의 임금을 크게 올리는 건 사용자들이 수용할 수 없는 요구일 겁니다. 사용자의 지불능력이라는 것도 한계가 있는 거니까요. 이 부분이 우리 지도부가 안고 해결해야 할 숙제입니다. 현재로서는 산업 차원의 정책과 임금체계에 대한 대안을 노조 입장에서 책임성 있게 만들고, 집단적 노사관계를 활성화하면서 제도적으로 개입하는 방향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하후상박 왜 안 하냐고 하는 지적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런 고민을 안고 있는 노조 지도부가 어떤 계획을 가져야 할지를 제안해시면 더욱 필요할 것 같습니다.
공론장에서 노조의 구체적인 정책 대안이 안 보여
오건호: 노동조합이 촛불시민혁명 과정에서, 그리고 이전부터 매우 헌신적으로 기여해왔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고, 이런 부분이 정당하게 인정받지 못하는 부분도 있다고 봐요. 그런데 묻고 싶은 게, 촛불 이후에 노조운동이 과연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냐는 거죠. 물론 문재인 정부가 모든 관심을 끌어들이는 블랙홀로서 작용을 하고 있긴 하지만, 지난 7개월 간 노조운동이 사회적으로 어떤 역할을 해 왔는지 전혀 안 보인다는 겁니다. 그리고 2017년 하반기에 민주노총 쪽에서는 총연맹과 주요 산별조직에서 위원장 선거를 치렀잖아요. 선거만큼 중요한 정치적 계기가 없는데, 각 선거운동본부들이 제기하는 것을 보면 추상적이고 당위적인 주장들만 있고, 구체적인 프로그램이나 대안적 정책이 없어요. 고용보험료 얼마 올리고 적용 대상 확대하자, 노동시간 단축하기 위해서 이렇게 하자, 그런 구체적인 내용이 없어요. 정말 아쉽습니다. 앞에서 사무처장님들이 말씀해주신 양극화의 문제들도 최근에 만들어진 게 아니라 매우 오래 전부터 되풀이해서 제기되어 온 것들이잖아요. 그런데 왜 구체적인 노조의 대안을 아직도 말하지 못하고 있는지 답답한 생각이 듭니다.
이병훈: 노동 문제를 사업장 단위가 아니라 보다 광범위한 범위에서 제도적으로 풀어가기 위해서는 노조가 사회적인 논의 구조를 능동적으로 활용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노조 스스로가 변화해야 합니다. 대중추수주의 혹은 내부 정치적 고려를 과감하게 떨쳐내고 장기적인 전략 방향에 대해서 대안을 모색하는 토론이 이뤄졌으면 좋겠습니다. 정부에서는 ‘소득 주도 성장 정책’을 제시하면서 노정 파트너십에 대한 고려를 보이지 않고 있는데, 이러한 태도를 바꿔내고 사회적 변화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기 위해서는, 노조가 문제제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책임 있는 모습으로 변화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주환: 노동운동과 정부의 관계라는 쟁점으로 이야기가 집중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새로운 정치사회적 환경 속에서 노동운동이 문재인 정부와 어떻게 관계 설정을 하고, 또한 그런 관계 속에서 협력하며 혹은 충돌하더라도 풀어가야 할 과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김준영: 한국노총은 소득 주도 성장 정책에 대해서 몇 년 전부터 지지를 선언해왔습니다. 현 정부가 소득 주도 성장 정책을 이야기하면서 노조를 빼놓고 이야기하고 있다고 하셨는데 저도 비슷한 느낌을 받습니다. 그런데 미국의 경험을 보더라도 소득 양극화와 노조 조직률은 거시적으로 반비례하는 관계거든요. 노조를 빼놓고 양극화 해소를 이야기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결국 우리가 소득 주도 성장 또는 양극화 해소와 노조 조직 확대를 연결하는 정책들을 끊임없이 고민하고 제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특히 ‘원하청 불공정 거래 문제’와 ‘세제 개편 문제’를 건드리지 않고는 답이 나오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노정교섭을 통해 함께 풀어갈 수 있는 구체적인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황우찬: 노동운동이 그동안 협소한 경제적 요구를 내세우는 것 말고, 열려 있는 사회 공론장에서 공공적인 요구의 정당성과 타당성을 적극적으로 설득해왔는가를 돌아보면 그렇지 않다고 말씀드릴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반성해야 할 지점이고, 앞으로는 이러한 활동을 적극적으로 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문재인 정부와도 사회 공론장에서의 논의를 통해 보다 진지하게 소통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민주노총과 금속노조 입장에서는 소위 사회적 대화 기구인 노사정위원회는 ‘기울어진 운동장’이고, 또한 역사적으로 피해의식을 가질 만한 경험을 했잖습니까? 여기에 참여해서 뭘 하는 것에 대해서 조합원 대중을 설득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오히려 구체적인 제약이 없고 널리 공개 돼 있는 사회 공론장을 통해서, 노동시간의 문제, 일자리의 문제 등에 대해서 대화를 하면서 노사정이 신뢰를 형성해나갈 수 있고, 또한 나아가 장기적으로 새로운 대화 틀에 대해서도 모색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한편으로, 공공기관이 정부가 정책을 통해서 통제를 할 수 있지만, 민간 재벌들은 정부가 관리할 수가 없잖습니까? 결국 민간 재벌들을 규제할 수 있는 것은 산업 차원의 집단적인 노사관계라고 생각합니다. 산별교섭으로 크게 묶어서 경제민주화 요구를 논의하고 임금체계 개편을 이뤄낼 때, 문재인 정부가 말하는 소득 주도 성장도 가능해지리라 생각합니다.
노동이 과감하게 의제 제기하고 전략적으로 주도해야
이병훈: 두 분 말씀에 동의해야 합니다. 오랜 기간에 누적된 노사정관계의 불신을 해소하려면 정부의 몫이 큰 것 같습니다. 그러한 역할을 현 정부가 잘할 수 있을지 걱정되는 부분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어쨌든 이 과정에서 노조가 수동적이거나 방어적인 태도를 갖고 대하는 것이 아니라, 이 정부와 작은 것이더라도 뭘 만들어낼지를 보다 적극적이고 전략적으로 고민하고 실천해갔으면 좋겠습니다. 노동운동이 스스로를 혁신하고 당당하게 정부에게 요구를 하면서 책임 있게 변화의 계기가 만들어갔으면 좋습니다.
오건호: 말씀하신 대로 문재인 정부의 관계 설정과 노동운동의 혁신은 연결돼 있는 것 같습니다. 문재인 정부와의 관계 설정이라는 것은 결국 노사정위원회의 문제에 어떤 태도를 가느냐 하는 것일 텐데, 저는 특히 어떤 의제를 누가 설정하고 주도하는가 하는 점이 중요하리라 생각합니다. 여태까지는 의제들을 정부가 설정해 놓은 다음에 노조가 들어와서 의견 좀 내라 이런 식이었잖아요. 이런 구도에서 노조가 아무 전략적 고민 없이 노사정위원회에 들어가면, 어떤 의제를 논의하고 어떤 결과를 내오든, 결국 정부가 주도해서 만들어낸 성과로서 정치적으로 인정될 거란 말입니다. 노동운동 내부에서도 좋게 평가할 수 없을 테고요. 그런데 노동운동이 자기 의제를 전략적으로 설정해서 들어가 논의를 주도하면, 정치적 평가에서도 노동이 주도권을 갖게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노조가 노동자들도 고용보험료 좀 더 낼 테니 정부와 사용자도 더 갹출해서 실업급여 수급기간을 18개월로 확 늘려라, 이런 식으로 의제를 던지는 거죠. 지금 문재인 정부가 증세에 대해 소극적이잖아요. 노조가 이런 식으로 상대방의 취약점을 전략적으로 건드리면서 치고 나가면, 정부가 당황하게 되고 주도권을 노조가 쥘 수도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노조 상층 지도부는 논란을 피하고 자기 검열을 너무 강하게 하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혁신은 결국 뜨거운 논란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세금 문제든 노동시간 단축이든, 과감하게 내부에서 논란을 야기할 있는 의제들을 던지고, 내부 논의를 거쳐 사회적 의제로 만들어갈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그 의제가 사회적 의제가 되면 내부 논란도 줄어들 수밖에 없고, 노동에 대한 정치적 평가 노동운동의 정치적 위상도 높아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김준영: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러나 과거 노사정위원회 논의 과정에서 생긴 트라우마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선도적인 문제제기가 긍정적인 상황과 주도권을 창출한다는 것을 노조 지도부가 모르는 것은 아니거든요. 박근혜 정부 때 소위 2대 지침과 관련해서 협의를 하는 과정에서, 한국노총이 말씀하신 것과 비슷하게 우리가 주도할 수 있는 의제들을 굉장히 많이 가져갔거든요. 근데 논의 과정에서 우리 의제들은 계속 뒤로 밀리더라고요. 그런 경험을 했는데 현 정부가 노사정위원회 자리 만들었다고 우리 의제들이 수용되거나 우리가 주도권을 가질 수 있으리라는 확신을 갖기가 어려운 거죠. 결국 노동조합이 노사정협의에 신뢰를 가질 수 있도록 정부가 구체적인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다는 거죠. 그럴 때 폭넓은 의제들을 논의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세대교체와 세력교체가 시작됐다, 어디로 갈 것인가
이주환: 어쨌든 우리는 지금 1987년 이후 30년 만에 거대한 대중의 분출을 겪었습니다. 이 거대한 흐름의 등에 탄 노동운동에게 어떤 전망이 펼쳐져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또한 그러한 전망을 실현시키기 위해 필요한 혁신 과제는 무엇일까요?
김준영: 저는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을 직접 경험한 세대와 그렇지 않은 세대 간에 꽤 큰 차이를 느낍니다. 그런데 지금 노동운동 상층부는 87년을 경험한 분들이 대다수예요. 생각보다 세대교체가 굉장히 안 이루어져 왔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고요. 이제는 물리적으로 세대교체를 피할 수가 없고, 이에 대해서 준비가 필요하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고요. 또 한편으로, 참여정부 때 예상외로 정부와 노동계의 갈등이 초기부터 불거지면서, 정부의 개혁 추진이 힘을 잃고 노동운동도 약화되고, 보수세력의 준동을 촉발시켰던 경험을 상기해야 한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문재인 정부를 잘 활용하기 위해서, 노동운동이 전략적으로 행동할 필요가 있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위기감을 갖고 노정관계의 수위를 조절할 필요가 있습니다. 노동조합 입장에서는 어쨌든 조합원 증가와 조직 확대뿐만 아니라 정치사회적 영향력을 강화할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이러한 기회를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황우찬: 87년 대투쟁이 우리 사회의 방향을 결정한 것처럼, 촛불시민혁명 역시도 우리 사회의 흐름을 바꿔놨다고 생각합니다. 사회 곳곳에서 자발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대중들과 노동운동이 결합할 필요가 있습니다. 저희들은 보수정권이 한 번만 더 집권했으면 정말 고사됐을 거라는 위기감을 피부로 느껴왔기 때문에, 문재인 정권과 정말로 잘해 보고 싶습니다. 정부와 여당 측에서도 진보진영과 노동운동과 함께 사회 기반을 바꾸어 나가기 위해서 협력적인 태도를 보였으면 좋겠습니다. 한편, 사실 노동운동 내부에도 적폐가 쌓여 있습니다. 어쨌든 이제 조직 확대를 위한 좋은 기회가 열렸는데, 여기에 적극적으로 임하면서 체질을 변화시켜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오건호: 기대를 먼저 말씀드리면, 미래에 역사를 기술했을 때 2017년과 2018년이 1987년 이후 30년 만에 우리 노동운동의 르네상스, 노동조합의 확장을 다시 열어낸 기점으로 기록되어 있기를 바랍니다. 물론 쉽지는 않을 겁니다. 그런데 여기서 노조의 확장이라는 말씀드리는 것은 기존 노조의 확장이 아니라, 비정규와 특수고용, 중소영세기업, 서비스직 등 새롭게 등장하고 있는 불안정 노동자들로의 확장을 의미합니다. 새로운 노동운동의 주체들이 만들어질 필요가 있고, 이에 대해서는 사회적 지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기존 조직노동도 혁신하고 변화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위해서는 조직노동이 기존 사업계획서를 던져버리고, 완전히 백지 상태에서 전략과 전술을 재구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격차를 줄이기 위한 노동연대, 사회정책의 강화 등을 중심으로 구체적인 계획과 프로그램을 짤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혁신이 진행될 때 노동조합에 대한 사회적 신뢰도 커지고 조직도 크게 확장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병훈: 한 마디로 ‘2018년 노동체제를 열고 굳히자’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저도 정말로 바라는 바이고, 함께 노력해보자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촛불시민혁명 및 문재인 정부와 함께 열린 2018년 노동체제를 노동조합 활동가들이 올라타야 합니다. ‘노동 있는 소득 주도 성장 하자’, ‘노동자가 제대로 대접받는 노동 존중 사회 만들자’, 이런 요구들을 노동운동이 선도적으로 제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촛불시민혁명에서 간절하게 외쳐졌던 요구들을 노동운동이 짊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임금체계와 일자리 문제, 노동시간 단축과 노동법 개정 같은 쟁점들을 조직노동이 연대적 관점에서 제기하고 실천해나갈 수 있을 때 우리가 바라는 사회 변화, ‘헬 조선’이 아니라 ‘헤븐 조선’을 실현시킬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노동운동이 우리 사회의 새로운 도약을 주도했으면 좋겠습니다.
이주환: 촛불시민혁명 이후에 열린 긍정적인 정치적 기회 속에서 우리 사회가 구조적 변화의 계기를 맞고 있고, 그 속에서 노동운동은 전략적으로 정치적 관계 설정을 하고 새로운 주체를 능동적으로 만들어 낼 필요가 있다는 것, 그리고 과감하게 공적인 사회적 의제들을 제기하고 조직을 확대해 갈 필요가 있다는 정도로 오늘 얘기를 종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긴 시간 동안 귀중한 말씀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