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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2001년 8월 29일에 발표된 전국여성노동조합 출범 2주년 기념 토론회 보고서, 「여성의 세력화를 위한 여성친화적 조직방안」(박진영, 한승희, 김명숙, 이주환)을 수정, 보완하여 작성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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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몇 년 전부터 여성들의 낮은 조직률1)이 노동운동의 화두 중 하나로 등장했다.
특히 노동시장의 유연화로 비정규직화가 심각해지면서 비정규직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여성들의 조직화는 노동 운동의 중요한 과제라는 것에 대해 어느 누구도 부인하지 못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어떻게 조직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논의의 진전이 이루어지고 있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이 글은 여성들을 조직하기 위해서는 여성에게 적합한 조직 방식의 개발과 조직문화, 환경을 만들고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이 글에서는 기존 노조운동의 흐름과는 다른 측면에서 조직화 방식을 시도하고 있는 여성노동조합의 구체적인 조직활동 방식을 분석함으로써 여성 노동자들의 존재 조건과 문화, 정서에 적합한 조직화 방식을 살펴볼 것이다. 이는 고정 불변의 여성적 특성을 상정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인 조건에서 현실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여성적 특성을 고려한 방식을 말하는 것이며, 여성을 동원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 조직화가 아닌 여성들이 자신의 힘을 강화하고 발전시켜 궁극적으로는 세력화를 이루는 방식을 찾고자 하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은 여성노조뿐 아니라 기존 노동조합에서 여성을 조직하는 데도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을 것이다.
2. 여성적 특성과 조직화에 대한 여성의 일반적 특성
여성을 조직할 때 남성을 조직하는 것과 다른 방식이 필요한가? 필요하다면 어떤 것인가? 이것은 '남성과 여성의 특성에 차이가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질 수 있다. 남녀의 특성의 차이에 관해서는 정치적인 지향점에 따라 다양한 주장이 있지만, 현 사회에서 여성들이 남성과 다르게 평균적으로 가지고 있는 공통적 특성이 있다고 보는 점에서는 대체적으로 동의를 얻어왔다. 따라서 구체적인 사회 현실 속에서 살고 있는 여성들을 조직화하기 위해서는 현실에서 드러나고 있는 '여성적 특성'과 이를 조직화에 반영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노조 안팎에서 여성을 조직했던 서구의 경험은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 과정에서 나타난 여성의 특성은 관계를 중시하는 성향, 가족과 노동시장 내에서 부여되는 다양한 역할로 인한 복합적·다면적 정체성, 소규모 집단에 대한 선호, 상호 작용하는 리더십으로 특징지을 수 있다.
이 사회는 성별에 따라 다른 역할을 부여한다. 사회적으로 직업에서 성공하는 것을 요구받는 남성들은 직업을 중심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구성하지만, 여성들에게는 직업과 함께 어머니, 아내, 딸 등의 다중적 역할이 부여되며, 이로 인해 여성들은 복합적이고 다면적인 정체성을 가지게 된다. 그러므로 여성들은 직장과 가정, 노조활동을 우선 순위가 정해진 분리된 영역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러한 여성들을 효율적으로 조직하기 위해서는 생일축하파티, 음식 나누기와 같은 비공식 활동을 조직하거나 여성으로서, 아내로서, 어머니로서의 공통된 정체성을 소통과정에서 활용하기 등과 같이 "일과 가족을 연계시키는 전략(bring the family to work 혹은 humanizing the workplace 전략)"(Louise Lamphere, 1985), 즉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이 통합될 수 있는 방식을 개발하는 것이 중요하다.
여성에게 주어진 다면적인 역할은 여성들이 '관계'를 중시하는 특성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러한 역할 수행의 과정은 여성들과 관련된 사람들의 일상사에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친밀한 관계의 형성과 유지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직장에서도 상대적으로 낮은 임금과 승진 가능성이 적은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여성들의 경우, 일을 통해 경력을 쌓기보다는 사교적인 동료 집단을 만들고 이를 중요시하는 경향(Rosabeth M. Kanter, 1977)을 보인다.2)
여성 중심적 조직화 모델로 평가받는 하버드 대학의 경우, 이러한 여성들의 특성을 고려하여 개별적인 "관계 맺기"를 중요한 조직화 전략으로 사용했다. 그 결과, 강력한 노조를 만들게 되었다(Richard W. Hurd, 1993).
이러한 '관계'를 중시하는 여성들의 특성은 갈등이 발생했을 때도 '관계의 지속'에 더 많은 관심을 두어, 다투기보다 해결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이로 인해 노사의 갈등 상황에서도 기존의 거칠고 전투적인 노조운동과는 달리 유연하게 대처하기도 한다.3)
이 외에도 여성들은 어린 시절부터 소규모의 친밀한 집단에 익숙하게 사회화되었기 때문에 여성들이 소규모의 비공식적인 관계를 선호하는 특성을 나타낸다. 즉 여성들이 소집단 속에서 편안함을 느끼며, 자연스럽게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또, 여성들에게 부여된 다면적인 역할은 여성과 남성을 다르게 사회화하고 다른 직업 경로를 거치기 때문에 서로 다른 리더십을 발휘하게 한다(Rosener, 1990). 즉 여성들은 조직의 위(top)에 서기보다는 조직의 중심(center)에서 구성원들을 상호 연계시키는 '상호 작용적 리더'의 모습을 보인다(Sally Helgesen, 1990)는 것이다.
한편 여성들을 조직했던 서구의 조직가들은 종종 여성들의 사회적 권력과 지위가 낮음으로 해서 오는 무력감과 낮은 자아존중감으로 고통받는다는 것을 발견하곤 했다. 이러한 무력감을 극복하고, 자아 존중감을 회복하지 않고서, 조직화는 성공할 수 없으며 이것을 극복하는 과정이 조직화 그 자체가 되기도 한다. 이렇게 형성된 내적 힘은 개인에 머무르지 않고 상호 관계를 통해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사회적, 정치적 행동으로 확장될 수 있다. 따라서 자기 존중감을 높이고 사회적 조건에 대한 집단적 영향력을 개발하는 것은 조직화의 중요한 과제가 된다.
이처럼 여성들은 남성과 다른 특수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여성이 가지는 문화와 조건에 기반해서 조직활동을 해야 한다는, 노동조합 운동에서 남성과 여성에 대해 다른 접근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 여성은 일터와 가족 내에서 남성과 다른 경험을 하기 때문에 남성과 다른 방식으로 노조에 가입하고, 남성과 다른 이슈를 자신들에게 중요한 것으로 인식하며, 다른 방식으로 조직하고 저항하기 때문이다(Linda Briskin, 1993).
3. 사례분석 : 여성노조의 여성친화적 조직화 과정
기존 노동조합에서 포괄하지 못하는 중장년층의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을 광범위하게 조직해 온4) 전국여성노동조합(이하 여성노조)의 조합원들은 앞서 지적한 여성들의 일반적인 특성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집단이다.
1999년 출범한 여성노조는 지난 2년간 여성들의 이러한 특성들을 고려하여 여성들을 조직하고자 노력하였다. 이 글에서는 여성노조의 여러 측면 중에서 이러한 특성이 반영된 것을 중심으로 살펴볼 것이다.
조합원 특성을 고려한 노동조합 운영 : 노조 민주주의 실현 과정
여성노조의 구조는 지역을 근거로 한 지부, 사업장 단위의 분회, 직종별, 취미별, 존재조건(예를 들어, 미혼 소모임, 여성가장 모임 등)을 기반으로 하는 소모임 구조로 구성되어 있으며, 최근에 전국의 구성작가를 중심으로 직종 지부가 조직되었다.
여성노조의 운영상의 특징 중 하나는 조직의 가장 기본적인 구성단위를 소모임을 비롯한 소규모 집단에 두고 있다는 것이다.5)
소집단 중심의 운영은 고용이 불안정하고, 직업이동이 빈번하며, 소규모의 다양한 사업장에 흩어져 있는 조합원들을 묶어낼 필요성과 함께 여성들의 특성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즉 여성들은 소규모 집단을 선호하며, 공식적이고 규모가 큰 집단보다는 소규모 집단 내에서 활발하게 의사를 표시하는 경향이 있다(Oppenheim, 1991).
소모임의 운영은 조합원들의 직접적인 참여와 책임의 분담의 측면에서 주요한 기능을 하고 있다. 소모임 구성원들은 '역할 나누기'를 통해 조합원 모두가 작은 역할이라도 나누어 맡도록 하며, 지부 차원의 행사가 있을 때에는 소모임의 상황을 고려하여 소모임별로 역할을 나눈다. 구체적인 역할 분담은 자신이 무엇을 잘 하는지, 혹은 할 수 있는지, 하고 싶은 지에 따라 스스로 선택하거나 구성원들간의 논의를 통해 이루어진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조합원들은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선'에서 역할을 맡고, 주체적으로 역할을 수행한다. 조합원들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역할을 스스로 선택하고 진행함으로써 소모임의 운영이나 행사를 만들어 가는 주체로서 참여한다.
여성 조합원들의 존재 조건을 고려한 조직화 방식으로 소집단 중심의 운영뿐 아니라 다양한 일대일 접촉 방식 또한 존재한다. E-mail이나 인터넷 카페, '조합원 연락망' 등과 같이 조합원들의 조건에 적합한 다양한 일상적인 접촉방식을 개발하고 있는데, 이 중 가장 많이 사용하는 방식은 '전화통화'다. 전화 통화의 내용은 여성들의 '수다떨기'와 상당히 유사한 것으로 나타나는데, 이를 통해 여성들과 친숙하고 편안하게 의사소통 하는 것이다. 또, 일대일 접촉은 다수의 대중 속의 익명의 존재가 아니라 조합원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고유성을 인식하고 있을 때만이 가능한 것이다. 이는 여성들이 누구의 아내나 어머니가 아닌, 자기 이름을 가진 하나의 개별적인 존재로서 존중받는다는 것을 경험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러한 소집단 중심의 운영과 다양한 의사소통 방식을 개발하고 일대일로 접촉하는 것을 통해 다중적이고 민주적인 의사소통이 가능해 진다. 소집단은 사람들이 편안함을 느끼며 대다수의 사람들이 의견을 표시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때문에 의사소통과 관계를 형성하는데 유용(Oppenheim, 1991)할 뿐 아니라 구성원들의 의사가 소집단의 운영에 반영되는 것을 용이하게 한다. 이것은 민주적 의사 수렴의 가장 기본적인 출발점이 된다. 또한 모임 내에서 의사소통이 일방적이지 않고, 성원들간에 다중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대표나 영향력 있는 소수의 사람을 중심으로 의사소통이 이루어지기보다 성원들 상호간의 의사소통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조합원들의 의견은 지부 차원의 운영위원회를 통해 공식적으로 수렴되는데, 이와 같이 의사결정 구조를 열어 놓은 것은 소집단들의 관계망 속에서 수평적이고 유연하며 비위계적인 의사결정이 가능하도록 한다.
공사영역 경계 허물기
여성들이 가지고 있는 다중적 정체성을 포괄하고, 낮은 자아존중감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여성노조에서는 대략 세 가지 방향으로 노력을 진행하고 있다.
우선 '자기 발견 및 개방 프로그램' 이 교육 프로그램의 한 영역으로 자리잡고 있다. 자신의 삶을 말하는 것을 통해 '나의 출발점이 어디에 있는지를 돌아보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할 지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기회'로 삼아, 자신의 삶을 비교적 객관화시키고, 성찰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또한 이 프로그램은 동료들과 함께 진행되기 때문에 구성원간에 동질감을 느끼게 하며, 서로에 대해 이해를 바탕으로 전면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즉 '자기 발견 및 개방프로그램'은 여성들에게 자아존중감을 갖게 하고, 조합원 상호간의 연결 고리를 만들어 문제에 대한 인식과 해결방안을 모색할 수 있게 하는, 자신의 삶에 주체가 될 수 있게 하는 출발점이 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생활 나눔'이다. 이를 통해 일상을 공유하는 방식으로 공식적인 영역과 사적 영역의 경계를 허물고 있다. 이것은 여성들의 복합적인 자아정체성을 받아들여 사적 영역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공적 영역에 속한 노조가 인정하고 포괄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생활 따로, 일터 얘기 따로, 아이 키우는 문제 따로'가 아니라 현재 자신의 처지를 온전하게 드러낼 수 있고, 그에 대해 함께 공유하고 서로를 북돋아 줄 수 있는 하나의 공간, 여성들이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하고 요구를 채울 수 있는 조합원 자신만의 '공간'6)으로서 여성노조가 자기매김하는 것이다.
이 과정을 통해 조합원들은 총체적이면서도 전면적인 관계를 맺게 되며, 각 사업장에 분산되어 있더라도 상호간에 이해를 높일 수 있다. 이렇듯 여성노조는 근로조건과 관련된 사안뿐 아니라 생활의 문제, 여성이 갖고 있는 직장 밖의 문제, 일하는 여성으로서의 문제로 관심의 영역을 확장하여 공사 영역이 통합된 공동체의 역할을 하고 있다.
여성들의 사적 영역에서의 역할과 책임을 노동조합 안으로 포괄하고 있는 것 중 하나가 '가족 친화 프로그램'이다. 가정에 대한 책임이 주어진 여성들의 상황에 따라 모임이나 회의 장소와 시간을 여성들이 참여하기 좋도록 배려하는 것과 탁아를 지원하는 것은 기본적인 부분이다. 탁아에 대한 지원은 상황에 따라 다양한 방식이 개발되고 있다. 외부에서 보육 교사를 초빙하고, 숙박 교육에 참여하는 조합원들을 위해 노조 간부 한 사람이 집을 제공하고 자원자의 도움을 받아 아이들을 돌보는 방식을 취하기도 한다. 또한 캠페인이나 야유회 등의 조합활동에 아이들을 참가시키거나, 캠프 등에서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별도로 준비하기도 한다. 이와 같이 육아의 문제를 조합 내에서 공식적인 프로그램으로 간주하는 것은 조합원들의 참여를 높일 뿐 아니라 조합원들에게 육아의 문제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공동으로 해결해 가야한다는 공감대를 가지게 한다. 조합 행사 때 돌아가며 탁아를 담당하고, 개인적인 필요에 따라 '품앗이' 방식으로 탁아의 문제를 해결하는 등 조합원들이 주체가 되어 스스로 해결 방법을 모색하는 데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여성중심적 리더와 리더십
'관계 맺기'와 '유지'를 중시하는 여성들의 특성은 조직을 관계의 네트워크, 대화를 통해 유지되는 제 관계들의 그물망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이는 여성들이 조직을 이끌어 가는 방식에도 영향을 미쳐, 조직의 중심(center)에서 구성원들을 상호연결시키는 '왕언니 (center-women)'의 역할을 수행하는 리더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Sacks, 1988). 여성노조에서는 '왕언니'의 역할을 수행하는 사람들에게 공식적인 간부로서의 직위를 부여하고 있으며, 이들은 조직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여성들간의 관계에서 일상적으로 해왔던 경험을 살려, 사람을 챙기고, 갈등을 풀며, 충고하는 역할뿐 아니라 중심에서 다른 사람들의 견해를 취합하고 합의를 이끌어 내는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기존 노동조합에서 여성들의 능력이 평가절하(정현백, 2000)되어왔던 것에 반해, 여성노조의 구조는 여성들의 장점을 발견하고 그 장점이 발휘될 수 있는 배경이 되고 있다.
한편 조직 담당자를 훈련시키기 위한 공식적인 교육에도 이러한 측면이 드러나고 있다. 소모임 대표, 분회장 등 운영위원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 「조직일꾼 가이드 북」(전국여성노동조합, 2001)에서는 '듣기 훈련'으로부터 시작하여 '대화하기, 조합원 가입시키기, 친해지기, 소모임 운영의 어려움과 해결 방안' 등의 순서로 교육이 진행된다. '듣기'와 '말하기'는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기본적인 방식이며, 동시에 관계를 중시하는 여성들을 조직하는데 유용한 방식7)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내용은 현실에서 직면할 수 있는 구체적인 상황 설정과 실습, 토론, 역할 연기 등과 같은 다양한 방식을 통해 체험하고 스스로 정리할 수 있도록 하는 참여형 교육방식으로 진행되어 조직활동의 경험이 적은 여성들도 쉽게 소화할 수 있도록 한다.
여성들이 가지고 있는 장점의 측면을 살리는 것과 함께 리더십의 또 다른 측면, 즉 노동조합을 대표하고 협상하는 '대변인(spokesmen)'역할도 수행할 수 있도록 발전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노조 내에서 대변인의 위치를 차지한다고 볼 수 있는 여성노조의 위원장이나 지부의 대표들이 자신들을 '머리'가 아닌 '심장'으로서 비유8)한 것은 여성의 특성을 포괄할 수 있는 새로운 리더십이 만들어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러한 여성친화적인 조직의 운영과 활동 방식은 일상적인 조합활동일 뿐 아니라 투쟁이라는 상황에서도 적용되고 있다. 연구에서 구체적인 사례로 살펴보았던, 치밀한 내부 조직화를 통해 최초의 경기보조원 노조를 지켜내고 단체협상까지도 성사시킨 88CC 경기보조원들, 15년이 넘게 장기 근속한 노동자를 파견 노동자이기 때문에 마음대로 해고할 수 있다고 생각한 고용주들에 대한 투쟁을 통해 자기 존중감을 지켜낸 AMPM 소피텔 분회 노동자들, 능력 신화를 넘어 동료애를 형성하고 이를 전국적으로 확대, 조직해 가고 있는 방송국지부 노동자들의 조직화 과정과 투쟁의 경험에는 앞서 살펴보았던 내용들이 그대로 녹아들어 있다. 특히 집단적인 투쟁의 과정에서는 소규모 집단을 통해 이루어지는 의사소통과 민주적인 의사 결정, 자기 개방 프로그램을 통한 상호이해와 의사소통, '왕언니' 유형의 리더 활동, 조합원들의 상태와 정서를 고려한 유연한 전술의 채택 등이 압축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4. 조직활동을 통한 성장과 세력화
여성노조 활동을 통해 개별 여성조합원들은 무력감에서 벗어나 자기에 대한 존중과 자신감을 가지고, 자신의 삶에 주체가 되는 과정을 경험하였다. 이는 노조활동 속에서 자신에 대해 긍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자신이 가진 저력을 확인하며, 자신의 역할을 찾아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가능했다. 자신이 '여성 노동자'임을 자각하고 경험을 공유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은 조합원들간의 연대를 통해 집단적인 싸움을 벌이기도 하며, 법제도 개선과 같이 여성노동자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사안을 해결하기 위해 사회적인 투쟁에 참여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 속에서 사회문제를 보는 눈을 갖게 되고 의식을 확장하면서 개인적인 측면뿐 아니라 집단적인 성장을 가져 온 것이다. 사업장 단위의 투쟁을 경험하지 않았을 지라도 개별 조합원들은 개인적인 성장을 경험하며, 다른 조합원들과의 관계와 조합 활동을 통해 의식을 확장하고 연대 의식을 가지면서 실천활동에 참여하고, 다시 그 실천 활동을 통해 자신의 활동과 존재를 긍정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러한 여성들의 변화 과정을 세력화라는 개념으로 규정할 수 있다. 세력화는 긍정적 자아 관념의 확립을 통해 내적 강인함을 키우고, 자신의 삶을 통제하는 능력을 가지게 되며, 나아가 개인 대 개인의 관계적 차원으로 확대되면서 사회적·정치적 행동을 위해 개인적·집단적 기술과 자원을 개발하려는 노력으로 이어진다. 사회적 차원으로 확대될 때 세력화는 상대적으로 힘없는 집단들이 사회적 힘의 성격을 바꾸고 권력 배분을 바꾸려는 목적을 갖고 있는 정치적 행위로 확장된다(Jancie L. Ristock and Joan Pennel, 1996). 이러한 과정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상호작용하며, 그 속에서 서로를 강화하는 역동성을 가지고 있다.
세력화는 실천의 과정과 그 결과를 통해 이루어진다. 개인적이든 집단적이든 혹은 사회적이든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힘에 대한 자각은 실천으로 이어진다. 강력한 실천과 주체적인 참여를 통해 현실이 조금씩이라도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은 주체들을 보다 강하게 만들며 이를 통해 다시 실천을 강화한다.
여성들을 조직할 때 이러한 세력화는 그것 자체가 과정이자 목적 그리고 결과로 여겨져야 한다. 앞서 언급한 이유(여성들의 낮은 자아존중감) 때문에 세력화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여성들은 조직화되기 어려우며, 여성들이 조직화되었다고 하더라도 여성들의 세력화 없이는 그 조직은 힘을 발휘하기 어렵다. 단순히 여성들을 동원하기 위한 조직화가 성공하기 어려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5. 과 제
여성노동자를 조직하기 위해서는 조직화 과정에서 나타나는 여성의 특성을 잘 알고 여성친화적인 정책과 조직방식, 조직문화를 체계화하여 목적 의식적으로 확대 실시하고 정착해 나가야 할 것이다. 또한 조직화의 과정은 조직화의 수동적 '대상'이 아닌 '주체'로 여성들이 성장하고 스스로 세력화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여성의 조직률을 높이기 위해 기존 노동조합과 연맹, 총연맹중앙센터에서 주요의사결정기구에서의 여성할당제와 같은 적극적인 제도를 도입하려 하고 있다. 그러나 활발한 논의에도 불구하고 할당제를 노조의 공식적인 정책으로 채택한 조직은 전국교직원노동조합과 민주노총 중앙 두 곳에 불과하다. 또한 토론회에 토론자로 참여했던 한국노총 정영숙 본부장이 지적한 바와 같이 대다수가 비정규직인 여성노동자를 조직하기 위해서는 정규직 중심의 기존 노조가 갖고 있는 기득권에 대한 일정 정도의 포기 내지는 양보가 선행되어야 하므로 빠른 시일 내에 이를 기대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현실이다.
그러나 더 이상 여성의 조직화를 미룰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미 노동운동 내에서도 비정규직 조직화 문제를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로 인식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위기 의식을 어떻게 현실적인 대안마련과 조직화로 연결시킬 것인가에 대한 실천이 남아있을 뿐이다. 위에서 지적했던 여성친화적인 조직방식과 문화는 단지 여성노조에서 뿐만 아니라 여성을 조직하고자 하는 모든 단위에 적용될 수 있을 것이라 본다. 물론 이번 연구가 전국여성노조의 사례만을 중심으로 보았기 때문에 기존노조에 직접 적용하는 것은 무리가 있을 수 있으며, 각 조직은 자신들에게 맞는 방식에 대해 좀더 심도 깊은 연구와 고민을 통해 구체화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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