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시아의 정세는 미국의 부시 정권 등장 이후, 냉전체제의 청산에 중대한 제약을 경험하고 있다. 그리고 이는 남과 북의 관계 정상화에 적지 않은 압박을 가하면서 우리의 평화통일을 위한 민족적 역량을 위축시켜 왔다. 부시 정권은 '자본주의 체제 확대를 겨냥한 세계화 전략'에 '대 테러 전쟁을 명분으로 한 군사주의 노선'을 결합시켜 제국의 패권적 질서 강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냉전체제 유지는 동북아시아 지역에서 이러한 미국의 패권전략을 위한 핵심 선택이다. 이와 같은 일련의 상황을 주시해보면, 역시 미국의 제국주의적 한반도 지배전략을 극복하는 일없이 우리 민족의 새로운 역사발전단계를 논한다는 것이 얼마나 공론(空論)에 불과한가를 절감하게 된다.
미국의 제국주의적 패권전략
부시 대통령은 취임 초기, 플로리다 투표 결과에 대한 판정 무리로 정통성에 상당한 부담을 안고 출발했다. 그에 대한 언론들의 태도도 그렇게 호의적이라고 하기 어려웠다. 대통령으로서의 지적 역량에 의문이 있다는 식의 인상을 주기조차 했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의 위상을 결정적으로 바꾼 것은 역시 9·11 테러 사건 이후 전쟁 수행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만일 이 전쟁이 없었다면 부시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지금도 제대로 극복되고 있지 못한 경제적 난관에 대한 비판으로 지금과 같은 상황이 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의회에 대한 주도권도 상원으로 넘어가 여러 가지 정책 결정권에 한계가 있었을 것이며, 국제적으로는 미사일 방어망 문제로 중국과 러시아의 연대, 유럽의 반발 등이 겹쳐 부시 대통령의 위상은 간단치 않은 상황에 있었을 것이다. 취임 초기 부시 대통령의 유럽 순방 과정에서 유럽인들의 격렬한 시위의 대상이 되었었다는 점을 상기해보면 이러한 현실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반세계화 시위가 번져나가면서 미국의 국제적 영향력도 타격을 입고 있는 형편이었기 때문에 부시 대통령으로서는 미국의 패권적 위기를 수습할 수 있는 여지가 상당히 위축되었던 상황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전쟁을 수행하는 대통령이라는 점이 결국 그에 대한 비판 자체를 엄청나게 약화시켰고, 그 같은 비판의 공백상태에서 미국인들의 보복전쟁 욕구를 충족시켜나간 것이 그의 지도력 강화에 이바지했다고 할 수 있다. 한마디로 부시 대통령은 "전쟁국가의 지도자"라는 점에서 미국의 역사학자들이 지적하듯이, '제왕적 대통령(Imperial President)'의 위상을 확보하는데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대자본과 이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부의 권한이 서로 강력하게 결합하여 대통령의 권한을 극대화한 것이다. 이것은 일종의 미국식 파시즘의 정치형태라고 하겠다. 여기서 우리는 미국 정치의 계급적 기반을 선명하게 본다. 미국의 제국주의적 패권정책의 기초에는 대자본의 계급적 주도권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내부적으로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외부적으로는 다른 나라의 주권을 유린한다.
국제사회의 반감과 미국 경제의 위축
부시 정권의 외교, 즉 세계전략의 기초는 미국의 일방적 패권체제의 강화에 있다. 그래서 부시 정권의 미국은 지구온난화 협정이라든가 국제형사재판소 설립, 또는 생화학 무기 금지 조약이라든가 기타 여러 가지 중요한 국제협약의 인정·준수를 철저하게 거부해버리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한 조약이나 협정이 미국의 일방적 패권체제의 행동방식을 제약한다는 이유를 내세운 것이었다. 이슬람권이 제기했던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해서도 이스라엘 일변도의 자세를 보이는 바람에 이슬람권의 격렬한 저항과 반발을 불러 일으켰다.
이러한 부시 정권의 움직임은 당연히 국제적 반발을 사고 있다. 미국 안에서도 부시 정권의 일방주의 외교가 미국의 영향력에 도리어 타격을 줄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하여, 부시 대통령의 등장으로 인해 중국과 러시아가 급속하게 가까워졌고, 그 결과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이른바 일극 체제에 대한 다극화 움직임이 국제사회에서 중요한 반작용으로 나타났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세계정세는 전쟁을 고비로 일순간에 침묵에 휩싸였고, 부시 대통령의 무리한 일방주의는 군사적으로 정당성을 얻는 환경이 되었다. 따라서, 부시 노선은 적어도 현재의 시점에서는 승세를 굳혔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부시 대통령의 이러한 외교 노선은 아무런 국제적 저항 없이 무한히 지속될 수는 없다. 부시 대통령과 그의 정부가 선택한 군사주의 외교노선은 길게 볼 때 미국에 대한 국제사회의 반감을 보다 심화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 전쟁을 수행한 지도자라는 점에 대해서는 높은 점수를 받고 있지만, 경제 문제는 여전히 수렁 속에 있다.
클린턴 정부 말기에 미국 경제는 이른바 신경제의 에너지가 소진되는 상태에 있었다. 투기증시의 거품이 꺼지고, 경기는 하락세에 있었던 것이다. 부시 정권 1년의 시점에서 이러한 상황은 아직도 변화의 조짐을 뚜렷하게 보이지 못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엔론사 스캔들이 겹치면서 부시 정권의 경제정책에 대한 전면적인 검토와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전쟁을 선택함으로써 전쟁 경기에 기대를 건 측면이 있었지만, 이 또한 그렇게 쉽지는 않았다. 사실, 전쟁경제를 가동시켜서 미국 경제를 일으켜 보겠다는 발상도 상당히 구시대적이지만, 이번에 확인된 것 가운데 하나는 과거와는 달리 전쟁의 분위기가 도리어 경기위축의 심리를 가져와 경제에 불리한 요인이 되었다는 점이다. 결국, 부시 정권의 경제정책과 관련해서 뚜렷하게 부각되는 초점이 없다는 것이 부시정권의 장래에 중대한 부담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대자본가와 기득권층의 정권
한편,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기본적으로 부시 정권, 그리고 집권 여당이라고 할 수 있는 공화당은 미국 상류 기득권 층의 이익을 적극 대변하는 일종의 계급 정당으로서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런 점에서 부시 대통령의 정치는 클린턴 대통령 시기까지 그런 대로 유지되어 왔던 사회보장제도라든가 기타 개혁적 사회경제정책의 요소들을 제거하는 쪽으로 방향이 잡혀져 있다. 서민층을 위한 사회보장 예산은 줄이면서 대기업의 법인세 인하까지 하는 정권이라는 점에서 부시 정권의 정치는 반(反)서민적, 반(反)개혁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한마디로, 미국 내 기득권 층을 위한 보수 강경 정권으로서 이번 엔론사 스캔들은 그러한 정권의 사회경제적 본질을 극명하게 드러내주고 있다.
이러한 정권의 관심이 어디에 있겠는가는 자명하다. 한반도 문제 해결이 이와 같은 정권의 주도하에 이끌려 가게 되면, 우리의 민족적 입지는 심각하게 훼손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미국 정부의 이해관계에 좌우되는 정치권이 누구의 이익을 대변하게 될 것인지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우리 민족의 이해관계를 저해하고라도, 미국의 입장을 극대화하는 정책으로 자신들의 권력입지를 지키는 선택을 하기 쉬운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보고 있는 일련의 대선 주자들을 비롯한 정치지도자들의 행태는 이러한 범주에 속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국의 정치인들이 미국 부시 정권의 제국주의적 이해와 계급적 관심에 호응하여 움직일 때, 우리 사회는 민족적으로나 계급적으로나 적지 않은 고통과 피해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민족·노동·평화 운동의 결합이 필요하다
부시 대통령이 이제 2월이면 방한한다. 이러한 현실에서 우리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할 것인가?
우리에게 남북 관계를 평화지향적 방향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가장 중대한 민족적 관건이라고 한다면, 부시 정권의 등장은 한반도 냉전체제 청산에 있어 심각한 장애가 나타난 것을 의미하게 되었다. 분쟁지역에서 대화보다는 군사적 압박과 대결주의를 강조하는 강대국의 존재는 우리 민족에게 매우 위험한 위기를 뜻한다. 부시 정권이 이러한 자신의 패권주의적 군사노선을 우리에게 강요하고 우리가 여기에 휘말려 들어가게 되면 우리는 평화와 통일의 기회를 자꾸만 놓치게 되고 불필요하고 소모적인 적대상황을 감당해야 하는 부담만 늘어나게 된다.
따라서 우리는 부시 정권의 한반도 정책에 대한 당당한 비판과 반대, 그리고 우리 정부가 이러한 부시 정권의 요구에 머리를 숙이지 않도록 보다 강력하게 요구하는 일이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부시 대통령의 방한과정에서 민족의 자주를 지향하는 한국의 민족운동과, 신자유주의 정책의 철폐를 부르짖는 노동운동, 그리고 군축의 환경을 만드는 평화운동의 결합이 유기적이고 총체적으로 이루어진다면 우리의 역사발전 단계의 진전을 위한 역량은 상당한 성장을 기록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