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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미국의 시사주간지 『뉴리퍼블릭』(www.therepublic.com) 1월14일치에 실린 하버드대학 대니 로드릭 교수의 기고문 ‘REFORM IN ARGENTINA, TAKE TWO. Trade Rout’를 옮긴 것이다. 로드릭 교수는 하버드대학 존 F. 케네디 공공대학원 국제정치경제학을 가르치고 있으며, 시장 만능의 신자유주의 경제학에 맞서 세계화와 국민국가, 개발도상국의 자율적인 발전전략 등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 -역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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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23일 아르헨티나의 1320억달러 채무불이행 선언은 해외 채권자들에게 놀라운 일이 아니다. 해외 채권자들은 여러 달 전부터 이를 예견해 왔다. 외부 관찰자들에게 페소화의 가치를 달러에 1대1로 고정시킨 이 나라의 통화위원회 체제가 다른 통화에 대한 페소화 가치를 유지불가능한 수준으로 속박해 왔다는 점은 명백했다. 또한 아르헨티나의 정치 체제가 임금, 연금 등에 대한 국내 지급에 앞서 해외 채권자들에 대한 채무 상환을 위해 필요한 ‘허리띠 졸라매기’를 불가능하게 만들 것이라는 점 또한 분명했다. 그래서 페르난두 델라루아 대통령과 도밍고 카바요 경제장관의 사임 직후 불가피한 일들이 발생했을 때, 전세계 시장은 거의 동요하지 않았다.
[ 현재 폐허가 된 아르헨티나는 정치시스템의 신뢰성을 다시 구축해야 한다. ]
신자유주의의 모범, 아르헨티나
거대한 규모의 재앙 이후 여느 때처럼, 아르헨티나 붕괴를 낳은 많은 혐의자들이 지목돼 왔다. 이를테면, 아르헨티나의 ‘정치권’(political class)은 너무 근시안적이어서 재정 정책에 관한 타협을 할 수 없었다. 통화위원회 체제는 너무 경직되어 있었고, 이로 인해 아르헨티나 수출업자들은 1999년 초 브라질의 레알 화(貨)가 평가절하된 이후 경쟁력을 다시 회복할 수 없었다. 노동조합 역시 개혁 요구에 너무 비협조적이었다, 카바요는 너무 많은 속임수를 썼던 관계로 경제를 부흥시킬 수 없었고, 부채 상환 비용을 낮출 수 없었다. 그리고 해외 채권자들은 너무 변덕스러웠다. “1990년대 초 아르헨티나로 몰려간 채권자들은 태도를 바꾸지 않았어야 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더 일찍 아르헨티나에서 손떼야 했다, IMF는 손을 떼서는 안됐다” 등의 설명이 그런 지적들이다. 그러나 아르헨티나의 비극은 이 모든 설명보다 훨씬 심각하다. 아르헨티나의 붕괴는 우리가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할 문제인 국민국가 주권의 시대에 경제적 세계화의 한계를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워싱턴은 잊고 싶겠지만, 사실 1990년대 아르헨티나의 정책은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이 전세계에 걸쳐 옹호했던 기준에 비춰 볼 때 모범 사례였다. 이 나라는 남미의 어떤 나라보다도 무역자유화 확대, 세제 개혁, 민영화, 금융 구조조정에 앞장섰다. 또한 국제 자본시장에서 사랑 받기 위해 노력했다. 아르헨티나의 경쟁력 상실은 페소화의 과대평가를 괴로운 문제로 만들었다. 그러나 경제학자들은 오랫동안 국민통화의 평가절하(평가절상에 대한 상식적 치료법)는 아르헨티나처럼 금융이 세계에 통합돼 있는 나라에서는 별 소용이 없다고 가르쳐 왔다(은행의 대차대조표가 달러 부채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면, 평가절하는 금융시스템에 재앙을 가져온다). 아르헨티나의 실험은 도박의 요소를 갖고 있었지만, 이 역시 미국 경제학자, 미국 재무부, 세계은행과 IMF와 같은 국제금융기구들이 주창해 온 이론에 굳게 기초를 둔 것이었다. 이들은 아르헨티나 경제가 십 년의 경기침체 끝에 1990년대 초 부상했을 때, 아르헨티나의 경기 부상은 수수께끼가 아니라, 개혁이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고 주장했었다.
경제 주권의 포기
아르헨티나의 전략은 단순한 아이디어에 기초했다. 주권의 축소를 감수하는 것이 부유한 나라의 소득 수준에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빠르고 확실한 방법이라는 것이다. ‘주권의 위험성’(sovereign risk)은 정부가 그럴 능력을 갖고 있을 때조차도 해외 채무 상환을 꺼려할 가능성을 일컫는 것이다. 국내 금융에서 지급 의사와 지급 능력 사이의 구분은 훨씬 덜 중요하다. 법원과 규제당국이 까다로운 채무자를 제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가는 같은 방식으로 제재할 수 없다. 국가는 주권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주권의 위험성’이란 용어의 의미는 이런 것이다.
주권의 위험성은 국가간의 경제적 수렴에 중요한 걸림돌이기 때문에 중요하다. 만약 투자자들이 꿔준 돈을 떼일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자본은 풍부하지만 수익률이 낮은 부유한 나라에서, 자본은 부족하지만 수익률이 높은 가난한 나라로 대거 이동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소득은 국경을 넘어 균등화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자본은 자주 반대로 이동한다. 미국 마이애미와 스위스 취리히에 있는 개발도상국 출신의 부유한 개인들의 은행계좌를 떠올려 보라. 수익률은 높지 않을 수 있지만, 미국이나 스위스에 투자된 돈은 적어도 떼이지는 않는다.
이런 시각에서 볼 때, 경제 발전이란 과제는 세 가지 명제로 환원된다. 경제 발전은 외국자본을 요구한다. 외국자본은 (경제 정책 운영에 있어 - 편집자) 주권이라는 위험성을 없앨 것을 요구한다. 그리고 주권이라는 위험성이 제거된 다음에는 다른 사람의 돈으로 무책임한 짓을 하지 않을 것을 보장하도록 요구한다. 이 모든 것은 하나의 일관된 이론을 이룬다. 비록 이것이 도시국가보다 큰 나라들이 이룩한 경제발전의 성공 경험과 맞지 않아도 상관없다. 주권이라는 위험물을 없애는 것은 건전한 돈에 전렴(commitment to sound money)하는 것은 물론, 그보다 훨씬 많은 것을 요구한다.
1990년대 아르헨티나 경제 정책의 목표는 건전한 돈에 전렴하는 것이었다. 훨씬 더 중요하게는 이런 태도가 금융시장에서 실질적인 구속성을 띤다는 점을 확신시키는 것이었다. 통화위원회 체제라는 자승자박은 이런 전략의 요체였다. 곧 1991년 페소화의 가치를 미국 달러화에 1대1로 고정시키고 통화정책을 자유방임(automatic pilot)에 맡김으로써, 통화위원회 체제는 백 년이 넘게 지속되고 있는 미숙한 금융 관리의 결과에 대응코자 했다. 정부는 새로운 규율 체계 즉, 사기업화·자유화·탈규제에 전렴했다. 율리시즈가 사이렌의 유혹을 뿌리치기 위해 자신을 배의 마스터에 묶은 것처럼(호머의 대서사시인 『율리시즈』에 나오는 신화로, 아름다운 노래로 뱃사람들을 홀려 암초에 부닥치게 하는 괴물 사이렌의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트로이전쟁에서 승리한 뒤 고국 그리스로 귀환하던 율리시즈가 배의 마스터에 밧줄로 묶었다고 함 - 역자), 아르헨티나 정책 당국자들은 과거의 오류를 되풀이하는 유혹에 빠지지 않기 위해 자신들(또는 후임자들)의 정책 수단들을 포기했다. 이들의 희망은 ‘아르헨티나의 위험성’이 대폭 감소해 자본이 대규모로 유입되고 급속한 경제 발전이 이뤄지는 것이었다.
해외 자본이 국내 정치를 눌러
잠시 동안 이 전략은 작동하는 것처럼 보였다. 1990년대 전반에, 자본 유입은 상당히 증가했고, 경제는 전례 없는 비율로 팽창했다. 그러나 그때 아르헨티나는 일련의 외부 충격으로 타격을 받았다. 1994년과 1995년 멕시코 페소화 위기, 1997년과 1998년 아시아 위기, 가장 타격이 컸던 1999년 1월 브라질의 평가절하 등이 그것이다. 브라질의 평가절하는 아르헨티나 경제가 남미에서 경쟁력을 유지하는 것이 부질없는 일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경제성장은 1999년 마이너스를 기록했고, 외국인 투자자들은 지난 십 년 동안 늘어난 막대한 채무를 재상환하는 게 가능한 지를 걱정하기 시작했다. 2001년 2/4분기쯤, 아르헨티나의 국가 위험도는 다른 ‘신흥시장’보다 커지고 있었다. 통화위원회 체제의 설계자인 카바요가 2001년 3월 경제의 키를 다시 잡았지만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처음엔 금융시장의 두터운 신뢰를 받고 있는 카바요가 아르헨티나에 절대 필요한 인물로 보였다. 그러나 조세 정책과 무역 정책을 새롭게 결합하고, 유로화에 달러에 버금가는 역할을 부여해 통화위원회 체제를 바꾸기 위한 시도를 통해(이 시도는 실패했다) 경제성장을 추진하고자 했던 그의 노력은 시장에서 그리 환영을 받지 못했고, 그에게 비싼 대가를 요구했다. 그 해 여름이 끝날 즈음, 금융시장의 신뢰성에 대한 우려가 팽배했다. 시장은 아르헨티나가 채무불이행을 할지 모른다고 우려해 막대한 금리 프리미엄을 요구했다. 그러나 금리가 지나치게 높아지면서, 채무불이행은 더욱 확실해졌다. 결국 아르헨티나의 채무불이행 가능성은 채무불이행으로 이어지기에 충분했다.
금융시장은 여건이 좋을 때만 친구가 된다는 것은 새로운 사실이 아니다. 금융시장이 그렇게 급속하게 아르헨티나에 등을 돌렸다는 것은 더 많은 설명을 필요로 한다. 결국 신용시장에서 투자등급을 올리는 데만 집중하고, 다른 것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주체는 다름 아닌 아르헨티나 정부다. 대외채무를 갚겠다는 정치 지도부의 의지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실제 카바요와 델라루아는 해외 채권자들의 돈을 단 한푼도 떼먹지 않고 갚기 위해 공무원, 연금생활자, 지방정부, 은행예금자 등 국내의 모든 유권자와 맺은 계약을 파기하려고 했다. 하지만, 투자자들은 아르헨티나의 신용위험은 나이지리아보다도 나쁘다고 결론 내렸다.
민주 정부가 국제 자본 규제했어야
2001년 말, 금융시장이 보기에 아르헨티나의 운명을 결정지은 것은 카바요와 델라루아가 했던 것이 아니라, 아르헨티나 국민들이 기꺼이 받아들이려 했던 것이었다. 카바요는 아르헨티나 채무에 붙은 엄청난 이자 부담을 낮추기 위해 시장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경제를 부흥시키려는 애초의 노력이 좋은 결과를 낳지 못하자, 그는 노동자 5명에 1명 꼴로 실업 상태에 있는 경제에서 긴축정책과 급격한 재정지출 삭감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제로 적자’ 계획을 추진해 공무원의 봉급과 연금을 13% 삭감하면서 이를 실행했다. 그러나 시장은 이런 후버식(Hooverite) 정책을 아르헨티나 의회, 지방정부, 국민들이 참고 견딜 것인지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결국 시장이 옳은 것으로 드러났다. 크리스마스 직전 며칠 동안 대중시위와 폭동이 발생했고, 카바요와 델라루아는 잇달아 사임해야 했다.
미국 뉴욕타임스의 외교문제 칼럼니스트인 토머스 프리드먼은 2000년 5월에 나온 『렉서스와 올리브나무』에서 유명한 선언을 했다. ‘사이버 도적떼’, 곧 한순간에 수십 억 달러를 세계 어디나 보낼 수 있는 대부자와 투기자 무리들이 국내 정치를 펩시와 코카콜라 사이의 선택으로 축소하면서 다른 모든 맛을 없애버렸다는 것이다. 금으로 만든 포승줄(통화위원회 체제를 금본위제에 비유 - 역자)을 스스로에게 열심히 묶었던 1990년대의 아르헨티나는 프리드먼의 지적을 완벽하게 보여주는 것 같다. 사실 경제정책에서 델라루아와 페론주의자였던 그의 전임자들을 구분하기란 불가능했다.
하지만, 아르헨티나의 교훈은 프리드먼이 제시한 것과는 사뭇 달랐음이 드러났다. 정치 지도자들은 자주 잊어버리지만, 민주주의 정치는 국제적인 자본 흐름에 긴 그림자를 드리운다. 다시 말해, 해외 채권자의 요구와 국내 유권자의 필요가 충돌할 경우, 종국에는 해외 채권자가 국내 유권자 앞에 무릎을 꿇는다. 국민국가가 독립적 실체로 존재하는 한, (해외 채권자가 보기에 - 역자) 주권이라는 위험성은 국가 뒤에 숨어 있는 것이다.
사람들이 교훈을 얻었는지는 그리 분명하지 않다. 많은 이들이 아르헨티나가 잘못된 변화를 선택했다는 결론을 내릴 것이고, 세계화라는 성배(聖杯)를 찾아 멀리 나왔기 때문이 아니라, 조금만 나섰기 때문에 문제라고 말할 것이다. 이런 입장에 서면, 아르헨티나 모델을 개선하는 방법은 국가의 주권을 없애고 국내 정치의 경제 장악력을 축소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국민국가에 필요한 것은 백금으로 만든 포승줄을 스스로에게 열심히 옭아매는 것이다. 이러한 신자유주의적 견해는 경제학자와 정치 지도자들이 지역 운영의 해결책으로 나라 경제의 완전한 달러화를 추진하거나 미주자유무역지대(FTAA)를 신봉하도록 고무시키고 있다. 하지만 이 견해는 각 국을 미국의 보호령인 푸에르토리코의 복사판으로 만드는 것으로 비난받아 마땅하다.
대안은 경제 주권 회복
물론 대안은 있다. 그것은 정치와 경제의 분리가 쉽지 않으며, 나아가 바람직하지도 않음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한다. 나 자신을 포함해 이 견해의 옹호자들은 주저함 없이 주권의 위험성이 무엇을 뜻하든지 간에 민주주의 정치가 ‘사이버 도적떼’에 우선해야 한다고 본다. 이 견해의 옹호자들은 주권을 가진 개발도상국 정부가 경제를 미숙하게 운용함으로써 비싼 대가를 지불해왔음을 인정한다. 하지만, 미숙한 경제 운용에 대한 올바른 대응은 운용을 포기하는 게 아니라 전보다 더 잘 운용하는 것이라 믿는다. 물론 이 견해가 아르헨티나 정책입안자들에게 쉬운 해결책이나 지름길을 주는 건 아니다. 금융시장과 무역협정이 부과한 규율을 통해서 경제 운용의 개선책을 쉽게 마련할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다. 필요한 일이 외국자본을 위한 성대한 환영파티를 여는 것이라면 경제개발은 훨씬 쉬울 것이다. 그러나 역사의 경험은 저개발 문제의 해결책이 외국 제도를 그대로 모방하거나 국민국가의 자율성을 약화시키는 데 있지 않음을 말해 준다. 해법은 국내의 필요와 정보에 기반해 제도적 혁신을 추진할 수 있도록 국가의 능력을 강화하는 데 있는 것이다.
아르헨티나의 정책입안자들에게 주어진 과제는 거대하다. 인플레이션의 악순환을 낳지 않으면서 통화의 평가절하를 통해 경제의 경쟁력을 높이는 것, 실물경제의 필요에 부응하는 쪽으로 금융시스템을 다시 구축하는 것, 경제를 다각화하고 농산물에 대한 지나친 의존을 탈피하는 것, 새 사회보험제도를 통해 중산층을 괴롭히는 경제적 불안정성을 해소하는 것 등이 그것이다. 채무불이행을 선언한 이상, 아르헨티나는 정치 시스템의 신뢰성을 다시 구축하는 어려운 작업에 나서야 한다. 물론 이번에는 금융시장을 위한 것이 아니라, 아르헨티나의 보통 사람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이런 대안들을 생각할 때, 다음의 놀라운 사실을 고려하는 게 좋을 듯 하다. 지난 십 년간 남미를 휩쓴 노도와 같은 신자유주의 개혁의 물결에도 불구하고, 1990년대 남미에서 칠레, 우루과이, 아르헨티나 세 나라 경제만이 가까스로 과거의 내부지향적이고 민중주의적인 정책 아래에서 거둔 성과를 웃돌았다는 점이다. 칠레는 다른 나라보다 자본 유입에 냉정한 태도를 취했기 때문에 성공 사례로 남아있다. 우루과이는 흔들리는 듯 하며, 결코 장려할만한 사례는 아니다. 우루과이의 성장률은 빈혈 증세를 앓아 왔다. 아르헨티나는 현재 폐허가 되었다. 아르헨티나의 붕괴는 남미와 다른 지역의 개발도상국들이 직면한 엄중한 선택을 더 이상 미룰 수 없음을 보여준다. 즉 주권을 대폭 희생하거나, 아니면 주권을 단호하게 다시 주장하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