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관계를 비롯한 북일, 북러, 북중, 그리고 북-EU(유럽연합)관계 등 한반도와 그 주변 정세에서 새로운 변화들이 일어나고 있다. 특히 반세기 이상 끊어졌던 남북 철도의 연결사업과 북한 내부의 경제관리 개선정책, 그리고 무엇보다 북일 간에는 6·15남북공동선언에 버금가는 평양선언이 채택되어 지난 시기의 낡은 유물들을 없애기 위한 '대담한 조치'들이 취해지고 있다. 그러나 단 하나,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 열강 가운데 북미 관계만 이상 기류를 타고 있다. 양국은 관계개선은커녕 오히려 악화일로에 접어들고 있다. 그 시발점은 10월 초 미 켈리 특사의 방북 이후 불거진 이른바 '북핵 사태'에서 비롯된다.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는 이 '북핵 파문'을 어떻게 봐야 할까?
켈리가 '북핵 시인'을 곧바로 발표하지 않은 이유
당시 '북핵 시인'과 관련해 신문지상에 발표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임스 켈리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 일행이 10월3일 북한을 방문해서 '북한의 농축우라늄을 이용한 핵개발 계획'에 대해 확인을 요구했다. 이에 북한측 파트너인 강석주 외무성 제1부상은 ▲ 당신의 나라는 우리를 '악의 축'의 하나로 지목했다. ▲ 당신들 군대는 한반도에 배치돼 있다. ▲ 물론 우리는 핵 프로그램을 갖고 있다고 밝힌 뒤, 더 나아가 ▲ (우리는) 더 강력한 것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물론 이 내용은 미국에 의해 언론에 일방적으로 누출된 것이다. 여기에서 '북핵 문제'와 관련 몇 가지 의문점과 쟁점이 나온다. 즉 ▲ 부시 행정부가 왜 이 사실을 9일 동안 숨겼는가. ▲ 북한이 과연 시인을 했을까, 시인을 했다면 무슨 이유에서일까, 그렇다면 북한의 핵개발 수준은 어느 정도일까. ▲ 북미 중 어느쪽이 먼저 1994년 제네바 기본합의문을 어겼는가 등등이다.
먼저, 부시 행정부가 '북핵 시인'를 곧바로 발표하지 않은 것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미 백악관이 북한 핵개발 시인을 전격 발표한 날은 10월16일이었고, 켈리가 방북했다 서울에 온 날은 10월5일이었다. 아흐레동안 미국은 침묵을 지킨 것이다. 이례적인 일이었다. '북한이 핵개발을 하고 있다'는 좋은 건수를 미국은 숨기고 있었던 것이다. 미국의 한 언론은 북한의 핵개발 시인 사실이 기자들에 의해 외부에 새어나가는 바람에 부시 행정부가 이 사실을 긴급히 발표했다고 보도했다. 미국은 왜 그랬을까?
아마도 미국은 북한측의 의도를 분석하고 또 그 대처 방안을 세우는데 일단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북한측의 의도를 어떻게 가공하고, 또 그 가공한 것을 갖고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미국은 북한의 '핵개발 의지의 시인'을 '핵개발 시인'으로 가공하고 그걸 갖고서 격변하는 한반도 정세에서 지렛대로 사용하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마침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정세의 급격한 변화 속에서 미국만 소외(?)된 채 다자간 구도가 새롭게 형성되고 있었다. 남북, 북일, 북러, 북중 관계에서 새로운 발전이 일어나고 있는데, 그 결정판이 북일 간의 수교회담 재개였다. 9월17일 평양에서 북일정상회담 성사와 거기서 합의한 평양선언, 그리고 수교교섭 재개 등은 미국의 입김이 전혀 작용하지 않았다고 말할 순 없지만 '보통국가'로 향하고자 한 '탈미(脫美)화'의 계기로서 일본의 독자행보일 가능성도 있다.
미국은 '북핵 시인' 카드를 갖고 당면하게는 이 같은 북일수교 협상에 일단 제동을 걸고자 한 면도 크다고 여겨진다. 즉 북일 관계가 정상화된다면 미국은 지금까지 유지해 온 부시 행정부의 대북 강경정책이 무의미하게 되는 것을 우려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실제로 '북핵 시인'건이 미국에 의해 발표되자 일본 교도통신은 '미국이 북한의 핵무기 개발계획을 공개하고 나선 이유는 급물살을 타고 있는 북일관계를 견제하기 위한 차원일 수 있다'고 보도했다.
북한은 '핵개발 시인'을 했는가
다음으로 북한의 핵개발 시인이 사실이냐 하는 점이다.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보아 앞에서 소개한 강석주-켈리 대화가 있었던 것은 확실해 보인다. 문제는 강석주 제1부상이 한 말(wording)이 정확히 무엇이냐는 점이다. 앞에서 밝혔지만 미국은 북한의 '핵개발 의지 시인'을 '핵개발 시인'으로 가공했을 가능성이 크다(이와 관련해서는 김승국 '북한 핵문제의 본질과 우리의 대응' 평화만들기 26호http://peacemaking.co.kr 2002. 11. 9 참조). 즉 '핵무기를 개발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뉘앙스를 의도적으로 왜곡한 켈리가 '북한 지도부가 핵무기 개발을 시인했다'는 쪽으로 몰고 갔다는 것이다. 사실 북한 당국이 발표한 문서의 어느 곳을 보아도 '시인'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는다. '시인'이라는 말은 켈리와 미국 정부가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한 용어라는 것이다.
사실 어느 나라고 간에 보통 핵개발과 관련해서는 NCND(Neither Confirm nor Deny) 정책을 쓰게 마련이다. NCND란 글자 그대로 핵무기의 존재 여부를 시인도 부인도 않는 정책이다. 그런데 미국에 의해 일방적으로 발표된 내용은 북한이 '핵 프로그램'을 갖고 있다고 '시인'했다는 것이다. 이는 국제질서의 일반 상식에도 어긋날 뿐만 아니라 고 김일성 주석이 지속적으로 말해 온 '우리는 핵무기를 개발할 능력도 의사도 없다'는 주장을 뒤엎는 것이다. 게다가 '시인'은 북미기본합의서를 먼저 깰 수 있는 세칭 '독박'을 쓰는 행위이기도 하다. '전략 전술의 나라' 북한이 모험적으로 자국에 불리한 이런 '시인'을 할 수 있을까?
미국이 '북핵 시인'을 기정사실화하고 북한은 침묵을 지키다가, 지난 10월25일 북미 불가침조약을 제의하는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통해 북한측의 최초의 공식입장이 나왔다. 이후 일주일 사이에 이에 대한 북한측의 입장이 몇 차례 바뀌고(?) 있다. 다음 표는 당시 북한측의 핵관련 발언의 변화과정을 보여준다.
표1에서 보듯 일주일 사이에 핵관련 발언이 무수히 쏟아졌으며, '핵 주권'을 앞세워 미국의 대북 적대시정책이 바뀌지 않는 한 핵무기를 개발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주장해 오던 북한이 말을 바꾸기 시작한 것은 11월4일 박현보 독일주재 북한대사의 발언을 통해서이다. 그리고 북한이 '핵개발 부정' 입장으로 선회한 결정판은 11월2일∼5일까지 도널드 그레그 전 주한미국대사의 방북 때 이같은 메시지를 전달한 것으로 보인다. 그레그 전 대사는 11월6일 특별기자회견에서 북한은 핵문제와 관련 "NCND정책임을 밝혔다"고 말했다. 이는 켈리 특사의 핵시인 발언과는 상당히 뉘앙스가 다른 것이다. 북한의 이른바 '핵개발 시인' 파문은 이처럼 북한의 '핵개발 의지 시인' 또는 'NCND정책'과 미국측이 주장하는 '북한 핵개발 시인'과 첨예하게 맞서고 있다.
누가 먼저 제네바 핵합의를 파기했는가
그렇다면 다음으로 누가 먼저 제네바 기본합의문을 어겼는가가 쟁점으로 된다. 이는 당장 책임 떠넘기기와 차후 협상과 해결방식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한 중대한 문제이기도 하다. 양국은 서로 상대방이 기본합의서를 어겼다고 주장한다. 명분 싸움이다. 이를 살펴보기 전에 먼저 1994년 양국이 제네바에서 합의한 기본합의서의 내용을 잠깐 살펴볼 필요가 있다. 북미기본합의서는 모두 네 개항으로 되어있다.
첫째, 북한이 흑연감속로와 연관시설들을 동결시키며 궁극적으로는 해체한다는 전제 하에 2백만㎾의 경수로 발전소를 유상지원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이에 따른 전력손실을 보상하기 위해 미국이 북한에 중유를 매년 50만톤을 제공하는 것이다. 둘째, '양측은 정치ㆍ경제적 관계의 완전 정상화를 추구한다.' 셋째, '양측은 핵이 없는 한반도의 평화와 안전을 위해 함께 노력한다.' 넷째, '양측은 국제적 핵 비확산 체제 강화를 위해 함께 노력한다' 등으로 되어 있다.
미국은 북한이 3항인 '한반도 비핵화'에 어긋나게 핵개발을 하고 있기 때문에 기본합의문을 먼저 파기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북한은 10월25일 발표한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통해 일일이 반박하고 있다. 북한은 기본합의문의 네 개항 중에 미국이 준수한 것은 단 하나도 없다면서 "부시 행정부가 우리를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핵 선제 공격 대상에 포함시킨 것은 명백히 우리에 대한 선전포고로써 조미공동성명과 조미기본합의문을 완전히 무효화시킨 것이다. 부시행정부는 우리에게 한 핵 선제 공격을 정책화함으로써 핵무기 전파방지조약의 기본정신을 완전히 유린했으며 북남 비핵화공동선언을 백지화해버렸다"고 주장했다.
양국은 서로 상대방이 기본합의서를 어겼다고 주장하지만 파기에 대한 후속조처를 아직 취하고 있지 않다. 미국측이 취할 수 있는 것은 중유제공 철회와 KEDO(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에서 추진중인 대북 경수로사업단의 철수다. 그러나 아직 그 뚜렷한 징후는 나타나고 있지 않다. 무엇보다 남한과 일본이 이를 반대하고 있다. 북측은 미측에 기본합의문을 지킬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만약 중유제공이 중단되거나 경수로사업단이 철수한다면 북한은 1994년 제네바합의 체결 이후 동결시킨 영변 핵시설을 재가동하거나 또는 미사일 실험발사 유예조치 해제를 일방적으로 선언한 뒤 미사일 시험발사를 재개할 가능성도 열려져 있다. 그렇다면 한반도는 회복하기 힘든 상태로 치달을 공산이 크다.
이처럼 북한과 미국간의 기본합의문 파기를 둘러싼 책임공방이 치열한 만큼 북핵 문제에 대한 해법 제시도 다르다. 북한은 10월25일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통해 ▲ 자주권을 인정하고, ▲ 불가침조약을 체결하며, ▲ 경제발전에 대한 장애를 조성하지 않는 조건에서 협상을 통해 핵문제를 해결할 용의가 있음을 미국에 밝혔다. 이에 대해 미측은 '선(先) 핵개발계획 포기, 후(後) 대화'를 요구하면서 북측의 메시지를 일축하고 있다.
이와 관련 평양에 갔다온 그레그 전 대사는 북한이 미국에 대해 체제 안전보장 등 3가지 선결 조건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미국과 북한이 '동시에' 조치를 취하면 이 사태가 해결될 것이라는 쪽으로 인식변화가 있었다"고 밝혀 '동시 해결방식'이 하나의 대안으로 떠오를 것임을 시사했다. 이렇듯 양국은 서로 기본합의서 파기 책임을 전가하고는 있지만, 아직 구체적인 행동을 취하고 있지는 않고 있으며, 또 해결방식에서도 차이는 있지만 의견수렴을 위한 냉각기를 가지려는 듯 보인다. 즉 어느 쪽도 먼저 판을 깨고 싶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남한과 일본도 나서야
북핵 문제는 북일수교 협상과 남북관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먼저, 북핵 문제는 순풍에 돛단 듯 순항을 하던 북일 관계에도 암초로 작용했다. 10월29일 말레이시아 콸라룸푸르에서 재개된 북일수교 교섭에서 일본측이 '새로운 핵개발 계획을 포기하라'고 하자 북한측은 '핵과 미사일 문제는 미국과 해결할 사안'이라면서 일본이 수교회담에서 과거사 문제를 해결하기 이전에 핵문제와 납치문제를 고집해 양국관계 정상화를 진전시키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엄밀한 의미에서 북일 간에 이미 정리가 된 납치문제와 북미간에 풀 문제인 핵문제를 일본측이 제기한 것은 수교협상을 파기하려 했다기보다는 미국의 눈치를 보면서 메가톤급인 '북핵 파문'의 와중에서 잠시 벗어나기 위한 '시간 벌기'로 보인다. 따라서 이번 북일수교 협상에서 다음 협상 약속까지 파기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협상은 곧 재개될 것으로 보인다. 분명한 것은 북일수교 협상이 그 자체의 '독자성'과 함께 북핵 문제 해결의 리트머스 시험지로 작용된다는 점이다. 즉 수교협상이 재개된다면 이는 북미간 북핵 문제 해결의 담보물이 되겠지만 중단된다면 북핵 문제 해결의 빨간불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또한 북핵 문제는 남한 당국의 입장을 난처하게 만들면서 확실한 입장표명을 요구하고 있다. 남한 당국 역시 미국측의 눈치를 보면서 북한측의 입장을 사려는 듯이 보인다. 그래서 북핵 문제 해법에 있어 남한 당국은 '핵무기 절대폐기' 운운하면서도 '평화적 방법으로의 해결'을 강조하고 있다. 반미반북(半美半北)정책인 셈이다.
이에 대해 북한은 미국과의 전쟁위기를 감지하면서 "핵 전쟁의 구름은 북과 남을 가리지 않으며 이 땅 그 어디에도 핵 위험을 받지 않는 안전지대란 없다"면서 "핵 문제는 결코 북과 미국과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전체 조선민족 대 미국과의 문제"라고 강조하고 있다. 북측은 남측에 6·15남북공동선언의 정신인 민족공조를 이 기회에 성사시키자며 압박하고 있는 것이다.
북핵 문제를 둘러싸고 북미간에 치열한 책임공방이 일어남에도 불구하고 양국관계가 파탄나지 않는 것은 그래도 남한과 일본이라는 완충지대가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대북 강경책을 쓰고 있지만, 남한과 일본은 최근 진행중인 북한과의 관계개선이 자국의 이익과 또 역내 안보를 위해 계속 이어지길 바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아무튼 북핵 문제는 잘 나가던 남북관계와 북-일수교 협상에도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남한과 일본은 한편으로 미국의 눈치를 봐야하는 한계가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각각 북한과 합의한 6·15남북공동선언과 북일평양선언을 실천해야 하는 부담도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북핵 문제는 북한과 미국과의 문제만이 아니라 남한과 일본이 모두 영향 받고 개입하는 다자간 문제이기도 하다.
따라서 북핵 문제는 그 해결에 있어 남한과 일본이 앞으로 계속 열릴 대북정책조정감독그룹(TCOG) 회의와 KEDO 집행이사회 등에서 어떻게 처신하고, 또 미국을 설득할 수 있을지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남한과 일본이 최근 급진전하고 있는 북한과의 관계개선과 정상화를 계속 유지·발전시키냐 아니냐는 역으로 양국이 북핵 문제에 대한 미국의 강경정책 압력에 굴복하느냐 아니냐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