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노동조합 위원장으로 선출된 노조활동가들의 당선을 축하합니다. 그러나 한가지 반갑지 않은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감옥 갈 준비를 하시기 바랍니다. 배우자와 아이들에게도 당신의 형편과 사정을 미리 이야기해 두시기 바랍니다. 갑작스럽게 연행될 경우에 많이 놀랄 수도 있으니까요.
그리고 몇 가지 주의할 사항에 대하여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먼저 냉장고나 장롱 아니면 침대 밑에 도청장치가 없는 지 1주일에 한번씩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휴대폰은 켜 놓는 순간 당신의 위치가 파악되므로 노조가 파업을 시작하면 폐기처분 하시기 바랍니다. 파업으로 인하여 일이 산적해 있는데 너무 일찍 연행되면 곤란하니까요. 그리고 늘 제2집행부를 꾸려두시기 바랍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노조는 지켜야 하지 않겠습니까."
새로 당선된 노조 위원장에게 주는 축하치곤 꽤나 살벌하다. 그러나 2001년 한해 구속된 노동자 수가 241명에 이르고 김대중 정부 4년 동안 686명의 노동자가 구속되는 현실에 비추어 결코 과장된 이야기는 아니다. 위원장과 핵심간부만 구속되고 나머지는 불구속으로 조사를 받는 관행에 비추어 불구속으로 조사 받은 사람을 포함하여 노동조합 활동과 관련해 형사처벌을 받은 노동자의 수는 몇 배가 될 것으로 짐작된다.
여기서 그럼 왜 노동자들은 이렇게 불법(?)을 저지를까 하는 질문을 하게 된다. 신자유주의라는 더 나아가 자본주의체제가 원인이라는 근본적인 이야기보다 미시적으로 그리고 덜 근본적으로(?) 그 원인에 접근해볼까 한다.
터무니 없는 법제도
노동자들은 스스로 단결하고(단결권) 파업권을 포함한 단체행동권을 통하여 정부와 사용자와의 교섭(단체교섭권)에서 대등한 교섭력을 확보하게 된다. 이와 같은 노동3권을 통하여 노동자의 사회적·경제적 지위향상을 추구하게 된다. 헌법에 노동3권이 보장된다는 의미는 단순히 국가가 노동3권을 침해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를 넘어, 이의 보장을 위해 적극적인 조치를 취해야 할 의무를 지우게 한다. 부당노동행위를 일삼는 사용자들을 형사처벌하도록 노동법에 규정을 두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사회에서 노동자들이 처한 현실은 어떤가. 노동법을 비롯한 법규정, 이를 해석하는 법원 판례 어느 하나 노동3권이 보장되는 방향보다는 이를 제한하고 심지어 무력화하는 내용이 많다. 특히 사용자와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부분(근로자성, 단체행동권 등)에서 법원은 사용자 편향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오죽했으면 노동변호사들이 '우리나라에서 합법 파업은 불가능하다'는 이야기가 나왔을까.
법규정과 이를 해석하는 판례가 이미 노동3권을 상당히 제약하고 있는데 더하여, 이를 적용하고 집행하는 노동부, 검찰 또한 불공정을 넘어 사용자의 이익을 위해 봉사한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구체적으로 들어가 보자. 공무원들은 법으로 단결이 금지되어 있다.
쉬는 날에 모여 집회를 해도 집단행동 금지에 걸려 불법이다. 복수노조 금지 규정은 어떠한가. 여전히 2006년 12월31일까지는 건재하다. 설립신고 업무를 주관하는 노동부는 노동조합을 설립하는 것을 무슨 범죄단체를 조직하는 것처럼 생각하는지 복수노조 금지 규정을 대법원의 판례보다 더 확대 해석하여 단결권을 가로막고 있다. 대법원이 조합원의 실체와 구성범위라는 실질적 기준에 따라 복수노조 여부를 판단하라고 수차 이야기하고 있음에도, 노동부는 기존노조의 규약이라는 형식적 기준을 고집하면서 불만이 있으면 법원에 소송하면 될 것 아니냐는 식으로 이를 운용하고 있다. 기존 정규직 노조가 규약에는 포함하면서 단협 또는 실제에서 비정규직의 노조가입을 거부하는 경우에 위와 같은 행정해석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자주적 단결권을 봉쇄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는 것이다.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은 노동자가 아니어서 노동조합을 만들 수 없다는 레미콘 기사에 대한 최근 검찰의 입장과 법원의 판결은 이미 활동하고 있는 노동조합을 어려움에 처하게 만들었고, 나아가 노조 설립을 가로막고 있다. 대법원은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의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성을 부정해 왔다. 변화된 상황에 맞추어 판례의 태도를 전향적으로 변경할 것을 기대했지만, 노동자들의 절규와 고통은 외면하고 사용자들이 지게될 부담에 대한 걱정이 앞서고 있는 듯하다.
[ 노동사건은 공안부가 담당한다. 노동조합활동이 사회의 안전을 위협하는 행위란 말인가. ▷ 민주노총 ]
사용자 편인 정부와 사법부
단체행동권으로 오면 상황은 더 심각하다. 쟁의행위는 일단 형법상 업무방해죄라는 범죄구성요건에 해당되는 범죄행위의 한 유형으로 분류되고 있다. 다만 예외적으로 주체, 절차, 목적, 수단과 방법에서 정당성을 가지고 있으면 위법성이 없어 처벌되지 않을 뿐이다.
노동쟁의의 개념을 '임금, 근로시간, 복지, 해고 기타 대우 등 근로조건의 결정에 관한 주장의 불일치'로 인하여 발생한 분쟁상태로 정의해 놓고(노동조합및노동관계조정법 제2조 제5호) 법원은 이에 해당하지 않는 목적을 가지고 쟁의행위를 하면 모두 불법으로 처벌하고 있다.
정리해고를 단행해도, 합병·영업양도 등 기업변동이 있어도, 사업부를 일방적으로 폐쇄해도, 사용자가 단체협약을 무시해도, 부당노동행위가 심각해도, 항공안전운항규정을 마련하자는 요구도 이러한 문제를 목적으로 쟁의행위를 하면 모두 목적이 정당하지 않다는 것에 걸려들게 된다. 최근 노동부는 노동자들을 감시하기 위하여 설치한 CCTV 철거를 요구한 대용노조의 쟁의행위에 대하여 'CCTV 설치는 사용자의 권리'라는 행정해석을 했다. 노동강도를 강화하고 작업장 안에서 개인의 인격권을 박탈하는 CCTV 설치가 '근로조건에 관한 사항'이 아닌가. 법원에 가서 판단이 나겠지만 노동부 노동조합과 사무실에 CCTV를 설치해서 그들의 근로조건에 아무런 영향이 없는 지 체험해 보도록 할 일이다.
이런 정부와 사법부의 태도 때문에 회사는 기세가 등등해 노조 간부와 조합원들에 대한 징계와 함께 노조를 무력화시키기 위한 시도를 하고 있지만, 여전히 노동부는 단체행동권 부분에 관해서는 노동기본권을 제약하고 사용자 편향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가능한 한 단체행동권의 범위를 좁히려는 나름대로의 목적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법원에서 정당하다는 판결이 난다해도 대법원의 결정까지는 3∼4년이 걸린다. 현실의 노사관계는 역동적이고 단기간에 진행되며, 이런 점에서 노동부의 행정해석은 (무슨 권위가 있을까마는) 현실 노사관계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파업이 사회악이자 범죄?
이렇듯 법원이나 노동부, 검찰은 (무식한 노동자가-이것이 생략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인사권이나 경영권에 간섭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를 들이대며, 소송이나 법에서 정한 구제절차를 밟을 사항이라는 논리로 목적이 정당하지 않다고 한다. 주5일 근무제나 비정규직, 조세개혁 등 전체 노동자 또는 해당 산업 노동자의 사회·경제적 지위 향상에 관한 요구를 내걸고 민주노총이나 산별노조 차원에서 파업을 벌이는 것도 '사용자가 처분할 수 없는 사항을 요구했다'는 이유로 불법으로 간주된다. 국제노동기구(ILO) 등의 국제기준이나 노동법학자들의 견해를 보여줘도 검찰과 법원은 요지부동 모두 불법으로 간주한다.
필수공익사업장으로 지정된 병원 등은 단체행동권이 박탈된다. 직권중재에 회부되고 중재재정이 내려지면 그것이 단체협약이 되어 쟁의행위가 불가능하다. 사용자로서는 이를 악용해 교섭에 응하지 않는다. 어차피 노조와 교섭해서 체결하는 것보다 사용자에게 유리한 중재재정이 내려질 거고 파업에 들어가면 간부들을 해고까지 할 수 있으니 굳이 단체교섭에 성실히 응할 리 없다.
쟁의행위는 사회악이자 범죄행위이므로 가능하면 이를 막아야 하고, 그래서 쟁의행위에 들어가기 전에 강제로 조정을 거치게 되어 있다. 조정이 싫어도 해야 한다. 그러나 공정성에 의심을 받는 노동위원회에서 행정지도라도 내려지면 불법으로 간주되어 버린다. 대한항공조종사노조의 경우에 두 달 반 동안 교섭했건만 중앙노동위원회는 교섭이 미진하다고 행정지도를 하였다. '행정지도가 내려지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하여 현 집행부의 사법처리를 유도한다'는 대한항공 사측의 대외비 문건 시나리오가 그대로 들어맞은 것이다. 검찰과 언론은 당시 행정지도여서 불법파업이라며 매도하고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그러나 정작 1심 법원에서는 목적을 문제삼아 유죄를 인정했지만 절차에 관하여는 '행정지도가 있다 해서 불법파업이 된 것은 아니라'고 했다.
불법파업으로 규정되면, 다음은 여러 가지 법적 수단을 통한 탄압이 가능하게 되어 있다. 사용자들이 업무방해죄로 고소를 하면 검찰은 신속한 수사를 진행하여 체포영장을 발부 받는다. 이를 이유로 경찰병력을 투입하고 노조간부들을 체포하여 구속한다. 사용자들은 또 불법행위로 손해를 입었다며 조합비·임금·신원보증인의 재산을 가압류하고, 손해배상청구를 하게 된다. 이뿐인가 업무방해 가처분도 들어온다. 법 논리상 불법파업이 되면 이런 것들은 자동적으로 따라오는 것이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직장폐쇄를 단행하고 용역깡패를 고용하여 린치를 가하기도 한다.
'공안'의 대상일 뿐인 노동
반면에 사용자들의 불법행위에 대한 노조의 고소고발에 대하여 검찰은 고소사건 처리기간을 들이대며 '조사중'이라는 말만 되풀이한다. 통상 노사 합의 시 고소고발이 취하되면 친고죄가 아니건만 수사는 흐지부지된다. '부당노동행위 의사를 증명할 수 없다'고 하면 그만이니 ….
언론은 파업으로 인해 늘 경제가 위기에 처할 것처럼 호들갑이다. 노동자들의 주장과 요구를 진지하게 다루는 기사를 찾기는 힘들다
모든 파업을 불법으로, 내일이라도 나라가 망할 것처럼 매도하는 기사 속에서 노동3권을 보장하는 헌법의 정신을 찾기는 힘들다. 노동자들의 주장과 요구가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다루는 기사를 찾기도 힘들다.
자신들의 주장을 알리기 위해 거리로 나선 노동자들에게 기다리는 것은 집시법이다. 민주노총에서 법규차장이라는 직책으로 있다보니 민주노총뿐만 아니라 여러 시민사회단체가 당하는 집시법에 관한 다양한 사례들을 접하게 된다. 소송업무를 하지 않던 2000년에는 집단접견까지 포함하면 수백 명의 사람들을 경찰서 유치장에서 만났는데, 그들 대부분은 시위현장에서 연행된 사람들이었고 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 폭처법(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 위반, 일반교통방해, 집시법위반이라는 네 가지 죄명이 공식처럼 붙어 있었다. 그리고 집회신고 과정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침해사례들을 보면, 우리 사회에서 집회와 시위는 경찰당국(정부)에 의한 선택적 허가의 대상일 뿐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으로서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는 강한 의문을 갖게 된다.
노동사건은 학생단체들 사건과 함께 검찰청 사무기구에 관한 규정에 따라 공안부에서 담당하고 있다. 공안의 사전적 의미는 '사회 모든 사람의 안전'을 의미한다. 공안부라면 이를 지키기 위한 부서인데, 결국 노동자들의 노동조합 활동은 잠재적으로 사회의 안전을 위협하는 행위라는 이야기에 다름 아니다. 노동조합 활동이나 파업 등을 범죄시하지 않고서는 나올 수 없는 발상이다.
내가 보기에는 자본가의 끝없는 이윤추구를 위협하거나 이를 옹호하는 국가권력에는 위협이 될지 모르겠으나, 노동으로 하루하루를 정직하게 살아가는 우리 사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전혀 위협이 되지 않는데 말이다.
2001년 5월11일 국제연합(UN)의 경제·사회·문화적 권리위원회(사회권 위원회)는 한국정부에 대하여 ① 파업을 범죄시하는 정부의 접근방식이 잘못되었음과 파업권을 행사하는 노동조합에 대한 형사소추를 중지할 것, ② 노동관련 시위 및 파업에 경찰력 사용을 자제할 것을 촉구하고, ③ 파업의 합법성을 판단하는데 관련기관에 과도한 재량권이 주어져 있는 것에 대한 우려를 표시하였으며, ④ 공무원의 노동3권 보장을 권고를 하였다. 국제노동기구(ILO)도 노동자들에 대한 구속 및 형사처벌에 대하여 비슷한 권고를 한 바 있다. 한국도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속해있는 만큼 이러한 권고를 당연히 의무로서 받아들이고 지켜야 하며 이미 사회권 규약이나 ILO에 가입할 당시에 규약과 협약을 비롯한 이에 근거한 구체적 권고를 이행하겠다는 약속을 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상황은 이러한 국제사회의 권고를 비웃기라도 하는 듯이 정반대로 가고 있다.
한 나라의 노동자를 대표하는 조직의 수장이 감옥에 갇혀 있다. 그러고도 우리 사회는 태연하며,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경제부총리나 노동부는 월드컵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노사평화선언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제 월드컵을 앞두고 집회나 파업이라도 할라치면 정부와 언론은 어떻게 나올까. '민주노총 때문에 16강 진출에 실패했다'고 하지는 않을까. 난 감옥 갈 각오하지 않고서는 우리 사회에서 노조위원장을 맡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투쟁을 위한 투쟁을 한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내가 보거나 경험하기로 대부분의 노동조합 간부들은 투쟁을 피할 수 없기 때문에, 조합원들의 요구와 희망을 받아 나서게 된다. 그들도 가족이 있고 아이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