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이탈리아 총파업

노동사회

4월 이탈리아 총파업

admin 0 4,602 2013.05.08 11:15

‘정지된 이탈리아’. 소설 제목처럼 보이는 이 문구는 4월 17일자 이탈리아의 주요 일간지들이 내걸었던 1면 톱기사의 제목이었다. 서방선진 8개국 중에도 다섯 번째나 여섯 번째의 경제규모를 자랑하며 유럽의 선진국답게 사회보장제도가 튼튼한 이탈리아에서 20년 만에 총파업이 거행된 사실을 알리는 기사 제목은 국가 전체를 정지시켜야 할 만큼 이탈리아 노동계의 상황이 심각하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utikim_01.jpg이미 지난 3월 23일에 로마의 콜로세움 옆의 대전차 경기장이었던 곳에서 300만이 운집한 가운데 집회를 갖고 난 뒤였기에 이 날 총파업은 정치적으로나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파업이었다. 더욱이 이탈리아의 주요 노총들인 CGIL, CISL, UIL 모두가 단결하여 파업이 결행되었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이와 같은 공고한 연대를 바탕으로 지속적인 대정부 투쟁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는 점에서 이 날의 총파업이 갖는 의미는 작지 않다. 이와 같은 정부와 노조단체간 대립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는 쟁점은 바로 노동법 제18조다. 

이탈리아 노동법 제18조는 노동자의 신분과 지위를 다루는 조항이다. 특히 해고 사유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담고 있는데, 고용자가 특별한 이유 없이 노동자를 해고할 수 없다는 규정을 명확하게 담고 있기에 노동자의 입장에서 보면 노동자의 신분과 지위에 관한 가장 중요한 항목이라 볼 수 있다. 이 조항을 둘러싸고 현재 이탈리아 정부와 이탈리아 노동단체들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데, 정부측에서는 이를 ‘개혁’이라는 명분으로 개악하려는 것이고 노동단체 측에서는 절대로 이 조항의 개정은 있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협상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입장을 견지하여 결국 300만이라는 시위자가 참석한 집회에 이어 총파업이라는 심각한 상태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렇다면 어째서 이탈리아 정부가 노동법 18조의 개정을 추진하게 되었는지가 현재의 이탈리아 노동계의 상황을 이해하는 열쇠일 것이다.         

우익 정부의 재등장

이탈리아는 전후 50년간의 우파 정권인 기독교 민주당 연정이 줄곧 집권하고 있었는데, 1996년 총선에서 집권 여당의 후신으로 현 수상 베를루스코니가 이끄는 포르짜 이탈리아(Forza Italia; 강한 이탈리아 또는 파이팅 이탈리아의 의미)에 맞서 좌파인 좌익민주당이 울리보(Ulivo; 올리브 나무를 의미)를 결성하고 현재의 유럽연합 의장인 프로디를 내세워 전후 처음으로 승리하였다. 그러나 다시 2001년 총선에서 베를루스코니는 우파 연합을 이끌고 승리하여 이탈리아를 과거 50년 간의 우파 집권 시절로 회귀시켰다.

베를루스코니가 승리할 수 있었던 비결은 두 가지였다. 첫째는 베를루스코니 자신이 미국 잡지 『포쳔』이 선정한 세계 14위의 부자로 재력을 통한 자본의 위력이었고, 둘째는 이전 5년 동안 좌파 정부가 이탈리아 국민의 열화 같은 기대만큼 성공적인 집권을 하지 못했다는 반대 급부적 요소에 기인한 것이었다. 그러나 두 번째 요인은 정권교체의 직접 원인이라기보다는 부차적이고 상대적인 것이라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베를루스코니는 총선 전에 당시 분열되어 있던 우파의 여러 정파들을 돈으로 사들였다는 표현이 적합할 정도로 모든 우파 정당을 자신의 정당아래 결집시킴과 동시에 3개의 주요 민영 방송(레떼 꽈뜨로; Rete 4, 까날레 친꿰; Canale 5, 이탈리아 우노; Italia 1)을 통하여 간접 선거운동을 펼침으로써 상당한 효과와 함께 총선에서 제1당이 되었다. 그런데 이 우파 연정에는 이탈리아 국민연합(Alleanza Nazionale)과 북부 동맹(Lega Nord) 및 카톨릭 관련 여러 정파들이 혼합되어 있으며, 수많은 기업주들의 지원이 집권의 기반이 되었다. 특히 이탈리아 파시스트 정당의 후신인 국민연합과 나치즘적 성격의 북부동맹 그리고 많은 기업주들의 지원은 베를루스코니 정부의 정책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중요 지표가 된다는 점에서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정권 체제가 정비된 이후 베를루스코니는 기업가 출신답게 국가의 효율적 운영이라는 기치 하에 향후 집권기간 동안 무려 40여 개에 달하는 법률의 ‘개혁’을 연초 시정연설의 화두로 던졌다. 그리고 파시스트 정당(국민연합)과 나찌즘 정당(북부동맹)의 이해, 그리고 기업가들의 이해 등이 얽혀 곧바로 노동법 개정으로 이어졌다. 

‘해고의 자유’에 반대한 파업 

utikim_02.jpg노동법, 특히 제18조의 개정 내용은 특별한 이유 없이도 해고가 가능하게 되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이는 표면적으로 주장하는 보다 많은 일자리 창출과 기업경영의 효율성 제고라는 목적을 내걸었지만, 결국 해고라는 수단을 통하여 노동자들을 통제하고 노조를 무력화시키려는 의도를 내포한 것이었다. 이후 노동법 개정을 둘러싼 정부 대표단과 노동단체들의 힘겨운 협상이 현재까지 계속되는 과정에서 정부가 기획하는 제18조의 개정을 둘러싸고 첨예한 대립을 지속하다, 결국 3개 노총을 주축으로 정부의 입장 변화를 촉구하는 대규모 시위에 이어 총파업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이번 4월16일의 총파업은 이미 예정된 것이었다. 3개 노총, 즉 CGIL, CISL, UIL이 단결하여 조직한 총파업은 20개 주의 주도 또는 주요 도시에서 동시다발 집회를 가졌고, 산하 지부나 직장 단위별로 참가하였다. CGIL, CISL, UIL 자료에 의하면, 이번 총파업에는 총 300만 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지역별로 빠짐없이 참가했으며, 평균 파업 참여율이 92%에 달할 정도였던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또한 단위 사업장별로 100%의 파업 참가율을 보인 곳도 수십 개가 넘을 정도로 그 규모 면에서나 호응도 및 조직화 면에서 이탈리아 노동운동사의 한 획을 긋고도 남을 정도로 의미 있는 총파업이었다는 평가다. 더군다나 커다란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것 중의 하나가, 파업과 투쟁에 소극적이었던 젊은 노동자들의 참여와 대학생들의 동조가 높았다는 점이다.  

총파업의 요구사항은 네 가지 정도로 압축된다. △ 현재 정부측의 노동법 18조 조항과 관련된 협상 대표단과 중재안에 반대하며, △ 사회보장제도에 관한 예산삭감에 반대하고, △ 개발이 지체된 이탈리아 남부의 발전과 고용촉진을 위해 확실한 계획을 마련하며, △ CGIL, CISL, UIL의 노조 3단체가 제안한 조세, 교육, 사회, 의료 정책을 반영하라는 것이었다. 

총파업이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며 성공적으로 거행될 수 있었던 요인으로는, 우선 정부측이 추진하고 있는 노동법 제18조의 ‘개혁’을 노동자뿐만이 아니라 모든 국민이 자신의 생존권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아무 이유 없이 해고가 가능하다는 사실은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 가족과 친지 및 동료들에게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이 됨으로써 제3자 입장에서 방관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두 번째 요인은 노선과 정책 등에서 다소 이질적이었던 3개 노총이 일치 단결하여 탁월한 조직능력과 동원능력을 발휘하였다는 점이다. 여기에다 CGIL 의장인 꼬페라띠(S. Cofferati)에 대한 대중의 신뢰가 배가 효과를 가져왔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평가다. 세 번째는 현 베를루스코니 정부의 계속되는 실정과 노동법 개악을 추진하고 있는 핵심인 국민연합(AN)의 피니와 북부동맹(Lega Nord)의 보시에 대한 반감 등이 어울린 정치적 요소 등을 기본 요인으로 거론할 수 있다. 

공정한 언론 논조  

한국에 남아있는 노동 천시 경향은 노동운동이 사회적으로 자리잡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으며, 한국의 언론과 정부는 노동권을 국민의 기본권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몇 푼’ 더 얻기 위한 경제 투쟁으로 몬다는 점에서 이탈리아와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이탈리아뿐만 아니라 유럽의 대부분 국가들은 노동자에 대한 인식이 한국과는 다를 뿐 아니라, 봉급의 많고 적음이나 직종 여부를 떠나 ‘일하는 사람’은 노동자라는 생각이 확실하다. 

또한 이탈리아 언론의 보도 태도는 한국과 크게 틀리다. 물론 관제 언론(베를루스코니 소유의 3대 민영 방송과 1개의 일간지)이 있고, 보수 성향 신문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이번 총파업에 대한 기사를 내보면서 위기나 공포를 자아내는 제목이나 내용은 없었다는 점도 필자로서는 부러운 점이었다. 

총파업 관련 기사의 제목으로 ‘정지된 이탈리아’ 또는 ‘4월에 닥친 휴가 절정일’ 등의 표현은 한국 언론의 보도 태도와 대조를 이룬다. 아마 한국에서 이런 총파업이 있었다면 전시 상황이나 파국을 연상케 하는 제호를 달았을 것이다. 특히 노동자 입장과 정부 입장을 동일한 비중으로 다룸으로써 국민들에게 스스로 판단할 선택권을 주었다는 사실은 참으로 부러운 일이다. 

아직까지 베를루스코니 정부에 변화된 모습이 감지되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베를루스코니에게 총파업으로 드러난 국민적 저항과 유럽 국가들의 이탈리아 우익 정부에 대한 우려는 무거운 부담임에 틀림이 없다. 하지만, 연정의 한 축인 국민연합과 북구동맹의 요구를 무시하는 것은 집권 포기를 뜻하기에 앞으로 어떻게 사태가 전개될지 자못 궁금하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 6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