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19일, 그 날은 노조 창립기념품이 들어오기로 한 날인데 비가 엄청 내리고 있었다. 집행간부들은 걱정이 태산이다. 쏟아지는 빗속에서 창립기념품을 실은 10톤 트럭이 하나 하나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창립기념품을 조합원들에게 나눠줘야 할 대의원이 오지 않아 집행간부가 대의원들에게 전화를 하니 분과장(각분과 대의원 대표)들이 창립기념품을 받지 말라고 했다고 한다. 이유는 '기념품이 계약과는 달리 중국산이라는 것'과 '업체가 집행부에 돈을 줬다는 말을 회계감사에게 들었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들은 집행간부가 출장 중인 회계감사에게 전화를 걸어 확인해 보니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며, 오히려 '누가 그런 말을 하더냐?'며 화를 내더라고 했다. 우여곡절 끝에 창립기념품은 비를 맞고 고생한 집행간부와 몇몇 대의원들의 협조로 조합원들에게 모두 나누어졌다.
[ 현대중공업노조 조합원들이 회사 안에서 오토바이 시위를 벌이고 있다. ▷ 출처:현대중공업노조 ]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날벼락!
다음날 아침, 회계감사 중 1명이 노동조합 사무실로 들어왔다. 회계감사실로 따라 들어간 총무부장이 "어떻게 된 거냐"고 물으니 "내가 업체한테 3천만 원을 받았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내가 "그걸 말이라고 하느냐?"고 화를 냈더니, 회계감사는 "내만 먹은 줄 아나? 집행간부도 먹었다"며 술 냄새를 풍기면서 횡설수설했다. 그 일로 한바탕 소란이 일어났다.
그리고 한 시간 뒤 사복을 입은 사람 3명이 노동조합 사무실로 들어왔다. 경찰이었다. 내가 그 중 한사람에게 노동조합 활동과 관련해 조사를 받은 적이 있어 경찰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나는 "여긴 어떻게 왔느냐?"고 물었더니 나를 알아 본 경찰은 "강호동씨를 만나러 왔다"고 했다. 나는 순간 '뭔가 있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그 날 아침, 상부단체 회의로 노동조합을 비웠던 위원장이 돌아와 강호동 사무국장에게 "현장에서 이상한 소문이 떠도는데 혹시 돈 받은 사실이 있느냐?"고 물어봤을 때만 해도 "절대 그런 일이 없다"고 했던 사무국장이었다.
위원장을 비롯한 임원들은 경찰이 왔다간 뒤부터 강호동 사무국장에게 캐물었고, 이렇게 1시간 정도를 버티다가 사무국장 입에서 나온 첫 마디가 "내일 경찰서에 출두할게요"였다. 정말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날벼락을 맞은 것이다. 신뢰와 도덕성으로 지켜온 15년 현중노조가 하루아침에 무너져 내리는 치욕스런 순간이었다.
그러나 강호동 뇌물사건을 폭로한 회계감사의 감사과정을 보면 이미 짜여진 각본에 의해 저질러졌다는 의혹이 짙다. 그동안 집행부 업무에 사사건건 시비를 걸어 왔던 운영위원 대표와 분과장 중 1명이 이 사건에 개입된 사실이 집행부의 자체 조사결과 드러나 이번 사건은 현 집행부와 민주노조를 말살하려는 사건으로 지금도 채 밝혀지지 않은 의혹들이 상당부분 남아 있는 상태다.
어떻게 지켜온 노동조합인데
87년 7, 8월, 한국노동운동에 민주노조의 불을 집혔던 현중노조는 전국 노동자들의 희망으로 활활 타올랐다. 현중노조는 민주노조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현대자본과 정권의 하수인에 의해 이상남 열사를 잃었다. 이후 128일 파업 투쟁과 90년 골리앗 투쟁을 해 오면서 수많은 노동자들이 구속되고 해고되었다.
그러나 현중노조는 굴하지 않고 독재정권과 현대재벌의 악랄한 탄압에 맞서 더욱 꿋꿋하게 민주노조를 지켜왔고, 현중노조 투쟁은 전국 민주노조운동에 많은 힘이 되기도 했다. 1992년 위원장의 임·단협 직권조인으로 한차례 홍역을 겪었지만, 다음해 현총련 공동 임투를 주도할 만큼 조직력은 되살아났다. 94년에는 현대자본의 악랄한 노동탄압에 맞서 또다시 골리앗과 LNG선을 점거하며 63일간 파업투쟁을 벌였다.
1994년 이후 회사의 대 노조 정책은 겉으로는 '평화' 속으로는 '회유와 탄압'으로 일관했고, 그러한 성과(?)로 지금까지 겉으로 드러난 8년간의 무쟁의를 기록하고 있다. 회사는 무쟁의 기간동안 노조 활동가들을 철저히 분리하는 정책을 폈다. 회사의 지시대로 활동하는 대의원에게는 현장에서 일을 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한없이 대접을 해주었고, 양심을 지켜가며 조합원들의 권익을 위해 활동하는 대의원에게는 온갖 불이익을 주었다. 이런 과정에서 활동을 편하게 하려는 대의원들은 늘어났고 힘들게 활동하는 대의원들은 갈수록 힘든 조건 속에서 활동을 해야 했다.
무쟁의 속에 무너진 현장조직력
이러한 분위기가 이어지면서 조합원들은 현장 활동가들에 대한 불신으로 '그 놈이 그 놈이다'며 관심조차 멀리했다. 현장 관리자들은 그 틈을 타서 대의원 선거 때만 되면 조합원들을 하나 하나 불러 면담을 하고 '누구 찍어라'는 협박과 회유로 조합원들을 힘들게 했다. 심지어 대의원에 출마하려면 회사의 공천(?)을 받아야 한다는 웃지 못할 말이 나올 정도로 회사의 대의원 선거 개입은 노골적이었다.
조합원이 대의원에 출마할 때 20명의 추천인 서명 제도가 규약에 명시되어 있었던 2000년 대의원 선거 때까지만 해도 회사에서 싫어하는 조합원이 대의원 출마를 위해 추천인 서명을 받으러 다니면 관리자들이 조합원들에게 서명을 못하도록 했다. 어쩌다가 서명을 해준 조합원이 있으면 밤에 집까지 찾아다니며 추천 서명을 취소하라고 압력을 넣기까지 했다.
실제로 서명을 해주고도 "너한테 서명해 주는 바람에 귀찮아 죽겠다"며 자기 이름을 지워달라고 부탁한 조합원도 많았다. 결국 300명이나 되는 부서에서 20명 추천을 못 받아 대의원에 출마하지 못하는 일까지 벌어진 것이다. 이러한 일로 인해 동료 사이의 인간성마저 파괴되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그 때문에 규약에 명시되어 있던 '20명 추천인 제도'를 없애자고 집행부에서 수 차례 운영위원회에 올렸지만 운영위원들은 '조합원들이 규약개정을 반대한다'는 왜곡된 여론을 가지고 묵살하였다. 결국 2001년 12대 집행부가 임·단협 안에 대한 총회 때 함께 안건으로 올려 조합원 찬성으로 지금은 '20명 추천인 제도'가 없어졌다.
현장은 지금도 어렵다
대의원 선거에서 회사가 원하는 대의원이 당선되지 못하면 그 부서 관리자들은 윗(?)사람에게 면박을 당하고, 능력 없는 관리자로 찍히기 때문에 관리자들은 부서에서 내세운 조합원이 대의원에 당선되게 하기 위해 관리자들은 날뛰고 다닐 수밖에 없다.
부서 대의원(조합원 1백 명당 대의원 1명)을 뽑는 선거 때는 관리자들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선거에 개입해 '누가 누구를 찍었다'는 것을 추측으로 알 수 있기 때문에 조합원들은 본의 아니게 관리자들이 원하는 사람에게 표를 주게 된다. 이해하지 못할 일이라 생각하지만 현대중공업에서는 지난 수년간 있었던 일이다.
이렇게 해서 뽑힌 상당수 대의원들은 관리자들이 제공하는 각종 술자리나 식사대접, 또는 현장을 비우고 다녀도 될 만큼 각종 혜택을 누리면서 회사에서 원하는 쪽으로 활동을 해 왔다. 이러다 보니 노동조합 의결기구는 자연스럽게 회사에 장악되어 임·단협 시기 때마다 집행부의 정책을 발목 잡았다.
대의원대회에서 승인을 거쳐야 하는 교섭위원 선임은 전국의 투쟁집중 시기를 피해 교섭이 진행될 수 있도록 맞춰지는가 하면, 협상이 한참 진행 중에 회사에서 1차 제시안이 나오면 엉뚱하게도 대의원들은 '집행부가 현안문제와 해고자 복직에만 신경을 쓰고 조합원의 실리에는 염두에 두지 않는다'는 등 집행부를 매도하는 홍보물을 내 마치 밖으로는 노노싸움으로 비치도록 했다. 그래서 집행부는 이러한 대의원들의 실상을 홍보물을 통해 알리고 대의원을 잘 뽑자고 호소하기도 한다. 하지만 현장 조직력이 회사에 장악되어 있는 현실에서 노동조합을 위해 활동하는 대의원들은 전체 대의원의 약20% 수준에 그친다.
그러나 대의원 선거와는 달리, 2만 조합원의 대표를 뽑는 조합장 선거 때에는 누가 어느 후보에게 표를 찍었는지 쉽게 알 수가 없기 때문에 회사에서 선거 개입이 있어도 조합원들은 현중노조의 정통성을 이어갈 민주집행부를 선택한다.
둑이 무너진 데는 이유가 있다
무쟁의 8년 동안 이어져 온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열심히 활동해 온 활동가들은 점점 지쳐가고 실리 투쟁에만 안주하는 모습이 조합원들 눈에 비춰지기 시작했다. 이런 가운데 대의원이나 활동가들은 도박성 게임(화투, 포카)에 손대는 날이 많아지고 더 나아가 대의원 수련회나 분과 대의원 수련회에서도 밤새도록 큰돈이 오고가는 화투나 포카를 하는 경우도 있다.
심지어 현장에서는 대의원들이 수련회를 가면 으레 담당 부장이나 중역들이 따라와 함께 놀아주고 돌아가거나 활동비를 준다는 소문이 조합원들 사이에 퍼져 있다. 이러한 분위기를 알고 있는 집행부에서도 어떻게 말릴 방법이 없고, 조직관리 차원이라는 미명으로 묵인하기도 한다. 이미 현중노조에서 이름 꽤나 알려진 활동가가 도박에 손을 댔다가 재산을 몽땅 날려 활동을 중단했거나 회사를 그만 두고 떠난 사람도 있다.
이번 강호동 사건은 어려운 현중노조를 더욱 위기로 몰아넣었다. 하지만 지금은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고 있는 중이다. 어쩌면 이러한 위기를 잘 극복하여 활동가들이 새로운 각오로 2만 조합원들 앞에 다시 나선다면 현중노조의 역사는 새롭게 바뀔 수도 있을 것이다. 왜냐면 현중노조 2만 조합원들은 결코 민주노조를 버리지 않을 것이란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