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산계급의 나라로 치닫는 미국

노동사회

유산계급의 나라로 치닫는 미국

admin 0 4,004 2013.05.10 11:33

최 근 한국과 미국에서 기업들이 '조세 정의'에 대해 주장하는 논리를 살펴보면 그 유사성에 매우 놀랄 수밖에 없다. 드넓은 태평양도 두 나라 기업의 자본가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의 동질성을 가로막지 못한다는 점을 절감하게 한다. '자본에는 국경이 없다'는 어느 사상가의 경구는 사고 패턴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듯하다.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정권 인수작업이 한창 진행중인 한국에서 조세 정의를 가로막는 논리는 역설 그 자체이다. '조세 법률주의'가 기업주 가족과 일부 부유층의 상속·증여세 탈세를 막기 위해 완전포괄주의를 도입하겠다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계획을 무산시키기 위한 근거로 동원되고 있기 때문이다. 자의적인 조세 행정을 막는다는 취지를 가진 조세 법률주의가 법에 나열되지 않은 세금은 거둘 수 없다는 식의 '열거주의'와 등치된 채 법의 허점을 파고드는 탈세를 정당화하는 논리로 둔갑하고 있는 것이다.

소득은 있는데 과세는 없는 게 조세 정의?

한 국의 기업과 부유층이 펼치는 논리를 들었다면, 아마 18세기 프랑스혁명과 미국 독립전쟁에서 목숨을 잃은 혁명가들이 지하에서 땅을 치고 통곡할 것이다. 이 두 혁명은 조세 법률주의 확립을 위해 가장 중요한 역사적 사건으로 평가된다. 프랑스 혁명 당시에는 전체 인구의 0.004%에 불과하던 성직자 계급이 전체 토지의 10%를 차지했고, 성직자와 귀족들을 위한 면세 정책이 취해졌다. 프랑스 혁명의 배경에는 불공평한 조세 정책이 있었던 것이다. 미국 독립전쟁도 마찬가지다. 영국은 제국을 운영하는 재원의 상당 부분을 식민지인 미국에 떠넘겼다. 차에 대한 미국의 관세를 영국이 일방적으로 낮춰 세계 최초의 다국적기업이라고 할 수 있는 동인도회사의 막대한 이윤을 보장한 것이 그 상징적 사례다.

결국 이 두 사건을 통해 '대표 없이 과세 없다'는 조세 법률주의의 취지가 성립된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한국은 '대표 없이 과세 없다'는 조세 법률주의의 취지가 구현되고 있는 것일까. 오히려 실상은 '기업가와 부유층의 대표가 너무 많아 탈세를 부추기고 있다'는 게 정확할 것이다. 더욱이 '조세 법률주의=열거주의'를 원칙으로 해서 보자면, 한국의 세법은 모두 위헌이라는 논리적 결론에 도달한다. 세법에만 한정시켜 보더라도 증여세법을 뺀 소득세법, 법인세법 등 나머지 법은 과세 유형을 일일이 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모든 과세유형을 법률에 담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현실을 이미 인정하고 있다는 것이고, 곧 완전포괄주의를 이미 도입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전쟁이 필요한 대통령' 조지 W. 부시가 지배하는 미국에서는 지난 1월7일 배당소득세(배당소득에 대한 개인소득세)를 철폐하는 내용을 핵심으로 하는 '부유층 살찌우기' 방안이 발표됐다. 이를 경기부양책으로 포장하기 위해 부시 행정부가 동원한 논리가 기업 이윤에 대한 '이중과세' 방지라는 것이다. 기업이 낸 이윤에는 법인세가 붙는데, 법인세를 낸 뒤의 기업 이윤에서 주주에게 지급하는 배당금에 세금을 매기는 것은 기업 이윤에 대한 이중과세라는 매우 조악한 논리 구조를 갖고 있다. 이 조악한 논리 구조가 '소득 있는 곳에 과세 있다'는 조세 정의의 대전제를 흔들고 있는 것이다.

한국과 미국이 다른 점이 있다면, 각 계급·계층의 이해를 조화시킨다는 명분을 내걸 수밖에 없는 국가가 한쪽에서는 이에 좀 더 충실한 모습을 보이려 하는 반면, 다른 한쪽에서는 이를 내팽개친 채 친기업적인 편향을 노골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가 권력의 성격으로 보자면, 부시 행정부가 이끄는 미국의 '국가는 자본가·투자자 계급의 도구'라는 고전적인 도구주의 국가관에 잘 들어맞는다. 그만큼 미국의 국가는 '벌거벗었다'는 얘기다.

십 년 간 7천억 달러 가까이 감세

부 시 행정부가 지난 1월7일 발표한 이른바 '경기부양책'(?)은 2012년까지 향후 10년 동안 감세를 통해 6,740억 달러 규모를 경제에 투입한다는 것이다. 이 감세안의 뼈대는 두 가지다. 하나는 배당소득세 철폐이고, 다른 하나는 경기 부양을 명분으로 지난 2002년 1월 발표한, 역시 부유층에 편향된 1조3,500억 달러 규모의 1차 감세 계획을 연장 적용하는 것이다. 애초 일몰시한은 2010년이었으나, 이번 계획을 통해 2011년과 2012년으로 늘리려는 것이다. 1차 감세 계획은 감세 규모의 36%인 4,860억 달러가 향후 10년에 걸쳐 연평균 소득이 110만 달러(약 13억2천만 원)가 넘는 상위 부유층 1%에 돌아가게 돼 있다.

2차 감세 계획에 대해 부시 행정부는 맞벌이를 하는 미국의 전형적인 4인 가정 납세자 9천2백만 명이 2003년 1인당 평균 1,083달러의 세금 부담을 덜 수 있다고 설명한다. 감세안의 핵심은 주주들에게 물렸던 배당소득세를 없애는 것이다. 배당소득세를 없애면 향후 십 년 동안 3천억 달러의 세수가 줄게 되지만, 주가가 10% 가량 상승해 소비와 투자가 촉진되고, 현재 6%인 실업률도 낮아진다고 한다. 애초 2004년과 2006년으로 돼있던 일정을 앞당겨 2003년과 2004년에 소득세율을 2∼3.6%포인트 내리는 방안도 들어있다. 1, 2차 감세 계획에 따라 현재 38.6%인 개인소득세 최고세율은 2006년 33%로 낮아지게 된다.

물론 이번 2차 감세안에는 자녀를 둔 부모에게 주는 세금 공제액을 현행 6백 달러에서 1천 달러로 올리는 것도 포함된다. 또한 지난해 말 종료된 75만 명에 대한 실업급여 지급 연장, 주정부들이 집행하게 될 36억 달러 규모의 새로운 연방재교육프로그램 실시 방안도 들어있다. 이를 통해 불황에 따른 세수 감소로 재정 압박을 받고 있는 주정부를 지원하는 효과는 100억 달러 정도다. 하지만 이는 '부유층 살찌우기'를 위한 곁가지 포장술에 불과하다. 효과를 발휘하기엔 그 액수가 너무 적기 때문이다.

경기부양책으로 둔갑한 부유층 살찌우기

부 시의 감세안이 경기 부양이 아닌 이유는, 무엇보다 경기 부양이 절실한 2003년에 감세를 통해 투입되는 규모가 전체 감세안의 1/6 수준인 1,020억 달러에 그친다는 점 때문이다. 게다가 이중 상당 부분도 소비에 지출되기보다는 저축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의 권위 있는 비정부기구인 조세정책센터(TPC)의 추정에 따르면, 2003년 감세액의 약 60%가 상위 10% 납세자에게 돌아간다. 고소득층이 저소득층에 비해 추가 소득이 발생하면 소비하기보다는 저축하는 성향이 높다는 것은 경제학적 상식에 속한다. 경기부양을 한다면서, 2011년과 2012년에도 세금을 감면한다는 것 역시 우스꽝스러운 일이다.

더욱이 배당소득세 철폐는 50년 만에 최악인 주정부의 재정위기를 더 부추길 가능성이 높다. 부시 행정부의 계산대로 하면, 배당소득세 철폐는 향후 10년 간 3천억 달러의 세수 감소를 초래한다. 이중 주정부의 세수 감소는 연간 40∼50억 달러, 10년 간 400억∼500억 달러로 추정된다. 세수가 줄어드는 주정부로서는 재정균형을 맞추기 위해 각종 사회적 지출을 줄일 수밖에 없게 되고, 가난한 노동자 가정은 더 타격을 받게 된다. 경기 부양에 오히려 역행하는 것이다. 부시 행정부는 36억 달러 규모의 연방재교육프로그램의 집행을 주정부가 담당하게 된다고 하지만, 이는 주정부의 재정위기에는 단 한푼도 도움이 되는 게 아니다.

오히려 배당소득세 철폐는 부유층을 살찌울 뿐이다. 혜택을 받는 수가 극히 일부에 부과하기 때문이다. 주가 폭락 전에 모든 미국 가계의 절반 가량이 주식시장에서 돈을 굴리고 있는 것으로 추정됐다. 이는 저소득 가정이 대부분인 나머지 절반은 주식시장 근처에 가보지 못하고 있음을 뜻한다. 주식시장에 접근한 가계는 개인퇴직계정(IRAs), 401(k) 계획 등 노후생활을 위한 개인·기업연금 계정에서 신탁한 뮤추얼펀드를 통해 주식을 소유하고 있다. 여기에 배당소득은 면세지만, 이들 계정에서 돈을 찾으면 소득세가 부과된다.

배 당소득세 부과 대상은 이들 퇴직연금 계정 바깥에서 직접 소유하거나 뮤츄얼펀드를 통해 소유하고 있는 주식에서 나오는 배당금이다. 하지만 1998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작성하는 소비자금융서베이(SCF)를 이용해 계산해 보면, 이렇게 주식을 소유하는 비중은 미국 전체 주식 보유 가계의 16.5%∼19.2% 밖에 안 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대부분이 부유층인 것은 물론이다. 소득 상위 10%가 배당소득세 부과대상 주식의 약 85%를 보유하고 있고, 상위 1%는 49%를 보유하고 있다. 나머지 90%는 15%를 갖고 있을 뿐이다. 결국 대다수의 미국 주식 보유 가계는 부시의 배당소득세 철폐로부터 아무런 이득도 보지 못하는 것이다.

주가 거품만 부추길 가능성 높아

이와 대조적으로, 부시 행정부가 1인당 연간 1,083달러의 세금을 절약하게 된다는, 자녀가 2명이고 연간 2만 달러 정도를 버는 맞벌이 노동가정의 경우, 실제로 아무런 감세 혜택도 받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주정부로부터 받는 사회적 지출이 줄어들기 때문만은 아니다. 배당소득세 철폐가 낳을 금리 상승 효과 때문이다. 배당소득세 철폐는 부유층의 자금이 주식시장으로 흘러들게 하고 이에 따라 채권값 하락과 채권 금리 상승을 동반하고, 이는 경제 전반의 금리 상승 압력을 낳는다. 또한 배당소득세 철폐에 따른 재정적자 악화는 장기금리 상승으로 이어져, 이들 가정이 이용하는 주택저당채권(home mortgage) 금리, 자동차 할부구매 금리 등을 올리게 된다.

부 시 행정부가 기대를 거는 것은 배당소득세 철폐가 낳을 주가 상승과 이에 따른 부의 효과(wealth effect), 그리고 자본소득세 세수 증가이다. 2002 회계 연도(2001년 10월∼2002년 9월)의 재정적자는 약 1,500억 달러였는데, 주가 폭락에 따른 자본이득세 감소분이 거의 이와 맘먹는 규모였다. 결국 부시 행정부는 배당소득세 철폐 → 주가 상승 → 소비증가 → 투자 증가 → 소득 증가 → 세수 증가', 배당소득세 철폐 → 주가 상승 → 자본이득세 증가'라는 두 가지 효과를 통해 배당소득세 철폐로 인한 세수 감소를 상쇄하려는 도박을 하고 있는 것이다.

2000년 하반기부터 시작된 미국 주가 폭락은 인위적인 주가 상승에 경제의 운명을 맡기는 것은 분명히 '도박'임을 보여준다. 게다가 여전히 미국의 주가에는 상당한 거품이 끼어있다. 기업이 벌어들이는 수입으로 주가를 나눈 주당 주가수익률(PER, price-to-earnings ratio)은 여전히 18대1이나 된다. 하지만 지난 75년 간 주가수익률의 역사적 평균치는 14.5 대 1이다. 설사 배당소득세 철폐가 주가 상승을 낳는다고 해도, 이는 거품 위에 거품을 쌓는 위험한 행위나 마찬가지이다.

주식 배당소득세가 이중과세?

효 과가 의문스러운 경기부양을 위해 배당소득세를 철폐하는 것은 조세정의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다. 배당소득세 철폐의 논리적 근거로 꼽히는 기업이윤에 대한 이중과세는 이론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타당하지 않다. 이론적으로 배당소득세 철폐는 법인세 철폐 주장과 마찬가지로, 기업은 주주와 구별되는 별개의 실체가 아니라는 논리에 기반한다. 하지만 이 논리를 따르더라도 배당소득세 철폐는 앞뒤가 맞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논리에 따르면 주주가 유일한 실체이며, 따라서 없애야 할 것은 배당소득세가 아니라 법인세가 돼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류 경제학에서조차 정부, 가계와 함께 3대 경제주체로 불릴 만큼 기업은 독자적인 법적 실체이다. 기업의 유일한 법적 실체는 자본을 소유한 주주라는 '주주 자본주의' 논리에 비춰볼 때, 기업이 독자적인 법적 실체라는 주장을 입증하는 것은 법인기업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이다. 주주들이 법인세가 부과되는 법인기업을 설립하는 것은, 법인기업 설립에 따른 비용과 편익을 따져보고 설립이 유리하다고 판단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주주들은 법인기업을 설립하지 않고 합명회사나 합자회사(파트너십)를 세웠을 것이다. 합명·합자회사는 법인세가 부과되지 않고, 소유자들에게 개인소득세만 물리기 때문이다.
그 러므로 법인기업과 주주는 별개의 실체이다. 따라서 기업에 발생한 소득, 곧 이윤에 법인세를 물리는 것과 주주에게 발생한 소득, 곧 배당금에 개인소득세를 물리는 것은 결코 이중과세가 아니다. 만약 이것을 이중과세라고 한다면, 이 세상에 이중과세가 아닌 것이 없다. 노동자는 임금에 대해 개인소득세를 물고, 세금을 물고 난 나머지 소득으로 물건을 살 때 부가가치세, 특별소비세를 낸다. 이 역시 이중과세인 것이다. 전 세계 모든 노동조합에서 조합비로 급여를 받는 모든 노동조합 활동가의 급여에 소득세를 물리는 것 역시 이중과세이다. 활동가들에게 지급되는 급여의 원천인 조합비는 이미 소득세가 부과된 것이기 때문이다.

감세가 설비투자를 늘린다?

이 런 이유에서 과세에 대해 사고할 때, 과세 횟수는 그리 현명한 개념이 아니다. 과세 횟수가 몇 번이든, 중요한 것은 총과세 규모다. 국가는 세율을 설정할 때 법인세율과 배당소득세율을 함께 고려한다. 법인세율이 높으면 배당소득세율을 낮추고, 배당소득세율을 높이면 법인세율을 낮춘다는 얘기이다. 따라서 배당소득세를 철폐한다면 법인세율을 대폭 올려야 한다.

하지만 부시 행정부의 감세안은 전혀 그렇지 않다. 백 번 양보해 소득 원천이 어디냐를 기준으로 삼을 때도, 미국의 경우 배당소득세는 결코 이중과세가 아니다. 오히려 기업이윤에 단 한번 과세하는 성격이 짙다. 미국 기업들이 조세 피난처나 각종 창조적인 회계기법 등을 이용해 법인세 부과를 회피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권위 있는 비정부기구 '조세정의를 위한 시민들'이 추정한 바에 따르면, 미국 법인기업 이윤의 절반 미만만이 법인세 부과를 받고 있을 뿐이다. 최근 미국 경제학 연구의 요람인 전국경제연구소(NBER)에서 최근 발간한 분석보고서를 보면, 주주들에 대한 보고서에 기록된 기업 이윤과, 세금을 내기 위해 국세청(IRS)에 신고하는 이윤 사이의 갭(차액)은 지난 10년에 걸쳐 계속 커져 왔다. 이 연구가 분석한 가장 최근 년인 1998년의 경우, 이 차액은 1,540억 달러나 됐으며 그 절반 이상이 전통적인 회계기법의 차이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었다.

사례를 찾기 위해 멀리 갈 필요도 없다. 부시가 임명한 새 재무장관 존 스노가 운영하는 철도업체 CSX가 대표적이다. CSX의 최신 연간 보고서에서, 스노는 자신의 기업이 "연방, 주, 해외에서 부과하는 최저의 세금을 내기 위해 가능한 모든 기회를 추구하고 있다. … (그리고) 낮은 세율을 위한 입법 과정을 위해 애쓰고 있다"고 자랑한다. 그런 영악한 회계와 로비의 결과로, CSX는 지난 4년에 걸쳐 미국에서 벌어들인 이윤 9,340억 달러에 대한 연방 법인세를 한푼도 내지 않았다. 오히려 재무부로부터 총 1,640억 달러의 세금 환불을 받았다. CSX의 이윤에 대한 이중과세는 불가능했던 것이다. 오히려 배당소득세를 통해 단 한번 세금을 물었을 가능성이 높은 셈이다. 실제로 미국 법인기업 이윤에 부과된 법인세 실효세율은 1959년 43.9%에서 2000년 32.9%로 크게 감소했다.

설비 투자를 촉진하기 위해 감세를 한다는 부시 행정부의 명분도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지난해 1월 작성된 1차 감세안의 명분 역시 기업의 투자 의욕을 높여 더 많은 투자를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부시 행정부는 향후 3년에 걸쳐 기업에 대한 새로운 세금 공제로 1,140억 달러를 퍼부었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투자 자금의 대부분을 갖고 있는 미국 200대 기업을 대표하는, 우리나라의 전국경제인연합회 격인 '재계원탁회의'(비즈니스라운드테이블)가 회원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60%가 올해 노동자를 일시해고하고, 80% 이상이 공장과 설비투자를 늘리지 않을 계획인 것으로 나타났다. 부시의 1차 감세 정책은 목적을 달성하는 데 실패한 것이다. 당연한 일이다. 미국 경제의 문제는 과잉 설비와 수요 부족인데, 소비하지도 않을 부유층의 주머니에 막대한 추가 소득을 넣어주었기 때문이다.

배당소득세 유지해야

미 국 법인기업들이 벌어들이는 이윤에 단 한번 과세하기 위해서라도 배당소득세(16.5∼27%)는 유지돼야 한다. 다행스러운 점은 지난해 1월 1차 감세 계획에 무비판적으로 찬성했던 미국 민주당이 이번에는 부시의 계획에 동의하고 있지 않은 점이다. 공화당 내부에서도 재정적자가 너무 늘어난다며 신중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미국 민주당은 지난 1월6일 부시보다 하루 앞서 대안을 내놓고, 당내 좌파와 중도파 모두 이 방안을 적극 지지하고 있다. 슬로건은 필요한 것에 돈을 보낸다는 것이다. 재정 압박을 겪고 있는 주정부들이 불황에도 건강 및 교육 관련 지출을 줄이지 않도록 하는 데 310억 달러를 배정하고, 맞벌이 노동자 가정당 600달러의 즉각적인 세금 환급을 주는 내용으로 돼 있다. 규모는 1,310억 달러이고, 그 대부분이 경기 부양을 위해 올해 지출된다. 10년 동안 6,740억 달러의 세금을 부유층을 중심으로 깎아주면서 경기부양이 절실한 올해는 1,020억 달러밖에 투입하지 않는 '낭비적인' 부시의 계획에 비하면 한층 효과적으로 보인다.

부시의 배당소득세 철폐에 대해 극히 일부를 빼곤 대부분의 월스트리트가 지지를 보낼 것이다. 다만 부시는 미국 민주당의 반대와 공화당 내부의 신중론자들을 설득하기 위해 배당소득세 철폐에서 50% 인하로 한발 물러설 가능성이 높다. 부시의 애초 계획은 배당소득세 50% 인하였으나, 의회 통과를 위한 계산 차원에서 철폐를 내걸었을 가능성이 높은 편이다.

조세 정의를 파괴하는 미국의 이런 움직임이 우리와 무관한 것인가. 우리나라의 법인세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을 훨씬 밑돎에도, 한나라당이 법인세 축소와 철폐 운운하던 게 불과 1년 전의 일이다. 한나라당은 2001년 12월 법인세율을 1% 내리기도 했다. 아마 이회창 후보가 당선되었으면 지금 부시 행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감세 정책이 한국에서도 비슷하게 추진되었을 것이다.

지난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 당선자가 됐다. 그는 선거 기간 동안 상속·증여세 완전포괄주의 도입을 공약했다. 올바른 조세정책 방향이다. 부시의 감세 정책을 둘러싼 논란을 지켜보면서 노 당선자의 공약이 말에 그치지 않고 정책으로 실현되길 기대해 본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 7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