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독일, 러시아가 강력하게 반대하는 데도 불구하고, 미국은 기를 쓰고 이라크와 전쟁을 벌이려 한다. 2차 대전 이후 전쟁을 가장 많이 치른 나라는 미국이다. 다른 나라를 가장 많이 침공한 나라도 미국이다. 소련이 무너질 때까지 오사마 빈 라덴은 CIA와 한패거리였고, 그의 가문은 부시 일가의 이권이 걸린 석유회사의 큰 투자자였다. 지금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군이 쓰는 무기는 미국 CIA가 파키스탄 군정보국을 통해 지원한 것이 대부분이다. ‘무신론자’ 소련과 싸우라고 기독교 국가 미국이 이슬람반군에게 엄청난 돈과 무기를 퍼부었던 것이다.자원이 갈등의 원인
전 쟁광이라고 공화당과 부시가 욕을 먹기는 하지만, 역사를 가만히 돌아보면 민주당이라고 별로 다르진 않았다. 클린턴 행정부 시절에도 미국이 주도한 전쟁은 끊이지 않았다. 코소보 전쟁이라 불리는 발칸반도의 분쟁이 대표적이다. 대량학살이 저질러져도 미국에 우호적인 정권이 한 짓이면 그냥 넘어가고, 비우호적인 정권이 한 짓이면 전쟁을 일으켰다. 지금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상대로 치르는 전쟁이 대표적이다.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대외정책에서 공화당이나 민주당이 크게 다르진 않았다. 1994년 6월 한반도 전쟁 위기는 부시의 공화당 정부가 아닌 클린턴의 민주당 정부 하에서 촉발되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지금 전쟁을 겪고 있거나 전쟁 위기에 휩싸여 있거나, 정치 상황이 불안한 나라는 대부분 미국과 관련이 있다. 대표적인 나라를 세 개 들면, 아프가니스탄이 그렇고, 이라크가 그렇고, 베네수엘라가 그렇다. 앞의 두 나라는 이해가 되는데 베네수엘라는 또 뭔가. 미국은 에너지 수입원을 다변화하려는 목적으로 베네수엘라로부터 엄청난 석유를 수입해 왔다. 만에 하나 중동에서의 석유 수입이 어려워질 때를 대비한 전략이다. 이는 베네수엘라의 석유가 미국 경제와 직결되어 있음을 뜻한다. 미국으로서는 믿지 못할 차베스같은 이가 집권하는 것을 미국이 극도로 싫어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작년 4월 차베스 축출 쿠데타에 미군부가 개입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 러면 미국은 왜 세계 곳곳에서 전쟁을 벌이는가? 전쟁광이기 때문인가? 미국 지배층의 입장에서 보면 미국이 벌이는 대외전쟁은 대단히 합리적이고 필요한 통치 행위가 된다. 왜냐하면 현재의 전쟁은 조만간 부족 사태에 직면할 에너지원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천연자원이 금세기 중반 무렵에 고갈될 것이라는 예측이 많다. 현재의 경제적 안보는 물론이거니와 앞으로 석유, 가스 등 천연자원이 부족할 때를 대비해 미국의 지배력을 확대하려는 것이 오늘날 전쟁 위기의 핵심이다.
공화당과 민주당 대외정책 별 차이 없어
이 라크와 이란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석유와 가스가 많이 나는 나라이자, 군주정이 대부분인 아랍권에서는 드물게 공화정을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미국의 세계 전략에 우호적이지 않다. 부시는 이 두 나라를 북한과 함께 ‘악의 축’으로 몰았다. 그럼 북한은 왜 악의 축으로 몰렸을까? 한국전쟁이래 쌓여온 두 나라의 구원(舊怨)과 더불어 북한의 미사일 제조기술 수출이 이란과 이라크의 국방력 강화에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중동의 자원을 장악하려는 미국의 일방주의에 군사적인 제동을 걸 수 있는 세력이 많지 않은데, 북한이 그 중 하나라는 것이다.
‘걸프 만에서 미국의 경제적 이해를 침해하는 행위는 어떤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격퇴한다’는 원칙은 인권대통령으로 알려진 지미 카터 민주당 행정부에 의해 1980년 만들어졌다. 이란에서 친미 성향의 팔레비 왕정이 무너지고 공화정이 수립될 무렵이었다. 이후 이 원칙은 공화당과 민주당에 상관없이 중동 정책의 핵심이 되어왔다. 중동말고도 많은 곳에서 전쟁과 분쟁이 일어나고 있다. 그 배경에는 역시 자원을 둘러싼 각축이 자리잡고 있다. 이 책은 그 보고서다. 읽기를 권한다. (세종연구원 1만6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