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의 두 과제: 지속가능성과 보장성
한국에서도 연금정치가 전면에 등장했다. 서구에서 연금 문제는 한번 논의가 시작되면 수년씩 걸리고 수백만 가입자들이 거리에 나올 만큼 무거운 의제다. 이제 한국도 비슷한 경로로 나아가고 있다. 작년부터 시작된 공무원연금 개혁 논의가 그러했고, 하반기에 진행될 공적연금 강화도 중요한 의제가 될 것이다.
한국의 연금정치는 노무현 정부에서 선보이기 시작했다. 1988년 국민연금이 도입된 이래 몇 차례 전문가를 중심으로 개혁 논의가 진행되었으나 다수 시민의 관심을 끄는 사회적 의제로 등장한 것은 2007년 연금개혁부터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정부 출범 직전에 제도가 바뀐 탓에 연금 의제가 수면 아래에 있었으나, 박근혜 정부 들어서는 ‘기초연금 20만 원 공약’ 수정을 시작으로 공무원연금, 공적연금 강화로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국민연금 의제가 시간이 흐를수록 중요해지는 핵심 이유는 평균수명 연장에 따른 수급기간 증가, 이를 반영하지 못한 보험료율·급여율 체계로 인한 재정 불안정성 때문이다. 현재 모든 가입자는 자신이 낸 몫(보험료 + 기금수익) 대비 더 많은 연금액을 받을 예정인데, 연금 수리적으로 수익비는 평균 1.8배에 이른다.
[그림1] 국민연금의 장기 재정 전망
국민연금 장기재정추계 분석에 따르면, [그림1]에서 보듯이 현행 국민연금 제도가 그대로 유지될 경우 기금은 2040년 중반까지 쌓이다가 이후 수급자가 늘어남에 따라 빠른 속도로 줄어 2060년에 소진될 전망이다. 만약 2060년에 당시 가입자 보험료만으로 수급자에게 국민연금을 지급한다면 필요보험료율은 21.4%에 달한다.
일부 사람들은 공적연금은 세대 간 연대 제도이므로 후세대의 책임을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하지만 관건은 세대 간 연대라는 ‘당위’가 아니라 그러할 수 있는 ‘조건’을 우리 세대가 어떻게 마련하느냐에 있다. 특정 시기 후세대의 부담이 급증하는 ‘재정경착륙’에 적절히 대응해야 비로소 연금이 세대 간 연대 제도로 기능할 수 있다.
한편 우리나라 국민연금의 법정급여율은 40년 가입 기준으로 40%이다(2028년 기준). 노후 소득보장의 시각에서 보면 그리 높은 수준은 아니다. ‘용돈연금’이라는 별명도 있다. 노동계, 시민단체가 꾸준히 급여율 인상을 요구하는 배경이다. 그런데 급여 인상에 조응하는 보험료 인상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미래의 연금재정은 더욱 불안정해지고 후세대의 부담도 그만큼 더 커진다.
요약하면, 우리나라의 국민연금은 재정의 지속가능성과 급여의 보장성 강화라는 서로 상충해 보이는 두 개의 과제를 동시에 지니고 있다. 이를 어떻게 해결해 나가야 할까?
국민연금 급여율 50% 방안, 적절한가?
우리나라에서 공적연금을 어떤 방향으로 강화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는 아직 충분치 않다. 이번 국민연금 인상 논란에서 확인되었듯이, 국민연금 재정을 이해하는 방식도 제각각이다. 그만큼 연금 제도와 미래 전망에 대한 인식의 공감대가 빈약하다.
공무원연금의 개혁 논의 과정에서 국민연금 급여율(대체율과 같은 용어) 인상이 논점으로 등장했다. 민주노총, 새정치민주연합이 주장하는 ‘국민연금 급여율 50%’가 적절한 공적연금 강화 방안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향후 공적연금 강화 논의는 여기에 국한되지 않고 더 넓게 논의되어야 한다고 판단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이제는 우리나라 법정연금의 다원체계를 감안해 연금개혁 논의를 전개해야 한다. 2007년까지 일반 국민에게 공적연금은 국민연금 하나였지만 지금은 기초연금이 짝으로 존재한다. 2007년 연금개혁으로 국민연금 단일체계는 국민연금·기초연금으로 이원화되었고, 아직 개편 중이지만 ‘법정’ 사적연금으로 퇴직연금도 있다. 보험료를 부담하는 기업이나, 급여를 받을 가입자 입장에선 세 연금을 모두 감안해 노후복지를 설계해야 한다(퇴직연금은 사적연금이지만 엄연히 법정연금이다).
이때 세 연금의 계층별 성격을 주목해야 한다. 퇴직연금은 노동시장 중심부에 있는 노동자에게만 유의미하며, 국민연금은 가입기간이 길고 상대적으로 소득이 높은 중상위계층일수록 연금액이 많다. 이에 반해 기초연금은 정액으로 지급되기에 소득재분배 효과가 크고, 앞의 두 연금과 달리 취약계층 모두를 연금 대상으로 포괄한다. 빈곤상태에 처해 있는 절반의 노인에게 바로 급여를 제공하는 것도 기초연금의 강점이다(기초생활보장 수급자인 노인에게 기초연금을 지급했다가 다음 달에 그만큼을 생계비에서 삭감하는 ‘줬다 뺏는 기초연금’ 문제는 별개로 남는다).
현재 우리나라의 법정연금 총 급여율은 약 70%(기초연금 10%, 국민연금 40%, 퇴직연금 20%)다. 결코 낮지 않다. 그런데 가입자 개인이 받는 실질 연금액은 자신의 가입(근속)기간과 소득 수준에 연동되어 있다. 법정급여율이 70%에 이르지만 불안정 노동자의 실질 연금액은 빈약하다. 따라서 연금 급여율을 올린다면 각 연금의 계층별 특성을 감안해 우선순위를 정해야 한다. 국민연금도 올리고 기초연금도 올리자는 주장은 안이하다. 만약 국민연금 급여율을 50%로 올린다면 총 법정급여율이 80%에 달하기 때문에 그만큼 기초연금의 인상을 공론화하기 어렵게 된다.
둘째, 이제는 세대별 연금 재정부담의 형평성을 따져야 한다. 새정치민주연합은 국민연금의 급여율을 40%에서 50%로 인상하면서 보험료율을 1%p만 올리면 된다고 하는데 이는 무책임한 이야기다. 국민연금의 소진년도만 변하지 않으면 선택 가능한 정책수단이라는 논리인데, 2060년에 기금이 소진된다는 전망은 그 때까지 국민연금이 괜찮다는 안전 신호가 아니라 그 때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므로 지금부터 대비하라는 경고 신호다. 신호의 의미를 거꾸로 해석하는 건 위험천만한 일이다(야당의 논리를 연장하면, 60%의 급여율로 가기 위해서는 보험료를 2%p, 70%는 3%p만 인상하면 된다).
이러한 경고 메시지를 가볍게 여길수록 이후 특정 시기부터 보험료 혹은 세금을 급격히 인상해야 하는 재정경착륙 문제가 발생한다. 이는 후세대가 그만한 경제적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기대와 별개의 것이다. 후세대가 이러한 경착륙을 수용하느냐 여부에 따라 세대 간 갈등이 커질 수 있고 공적연금의 뿌리도 약화될 수 있다. 연금의 세대별 지속가능성을 모색하려면 지금 세대의 책임과 몫을 분명히 정하고 이행하는 노력이 요청된다.
공적연금 강화, 기초연금으로
공적연금의 강화를 위해 기초연금의 보편주의적 인상을 제안하고자 한다. 기초연금은 현세대 노인 빈곤에 대처할 뿐만 아니라 가입 여부를 묻지 않기에 사각지대도 없다. 또한 기초연금은 당해 필요재원을 당시 세대가 마련하는 부과방식의 재정구조를 지닌다. 고령화에 따라 미래로 갈수록 기초연금 재정 규모가 늘어나지만, 그 증가 방식은 노인 수, 기초연금 인상 등에 맞추어 점진적이다. 특정 시기 후세대의 부담이 갑자기 증가하지 않는 세대별 재정연착륙을 가능케 해준다.
구체적으로 기초연금 강화는 ‘기초연금 제자리’와 ‘기초연금 인상’이라는 투트랙으로 가야 한다. 하나는 현재 기초연금을 보편주의 노후복지로 정비하는 일이고, 또 하나는 기초연금 급여율을 올리는 일이다.
‘기초연금 제자리’는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가 국민에게 약속한대로 연금을 원상회복하는 일이다. 기초연금의 조정 기준을 물가에서 소득으로 되돌리고,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인 노인에 대한 ‘줬다 뺏는 기초연금’ 문제를 해결하며, 국민연금 연계 감액을 폐지하고, 연금 지급 대상을 하위 70%에서 점차 상향해 나가야 한다.
‘기초연금 인상’은 두 단계를 거칠 수 있다. 우선 급여율을 점차 15%(30만 원)로 올려야 한다. 그러면 공적연금 체계가 국민연금 40%, 기초연금 15%로 구성되는데, 이는 노무현 정부 당시 민주노동당이 주창한 방안이다. 더 나아가 기초연금을 20%(40만 원)로 더 올릴 수 있다면 국민연금 급여율은 30%로 낮출 수 있다. 가입기간을 감안한 실질급여액을 비교하면 국민연금의 명목급여율 10%는 기초연금의 5%와 비슷하기에, 양 급여율의 재구조화는 실질연금액의 하후상박 효과를 낳게 된다. 또한 당해 세대가 책임지는 기초연금의 몫이 늘어나고, 후세대로 이연(移延)되는 국민연금의 몫이 작아지므로 세대별 재정부담의 형평성도 개선되고, 연착륙 가능성도 커진다.
[그림2] 공적연금 제도의 변화 비교
남는 과제: 세금과 일자리 개혁
물론 기초연금 중심의 연금체계로의 개편이 쉬운 과제는 아니다. 무엇보다 그만큼 세금을 늘려야 한다. 2013년 기준 국민부담률(세금에 사회보험료를 더한 총액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4.3%로 OECD 평균 34.1%에 비해 거의 10%p 낮다. 올해 국내총소득 1,500조 원을 적용하면 무려 150조 원이 부족하다. 향후 증세정치는 공적연금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재정을 정상화하는 일이기도 하다. 공적연금의 강화를 주창한다면, 재정의 지속가능성과 형평성을 생각한다면, 증세 의제를 더 이상 피해갈 수 없는 상황이다.
미래 공적연금에 대한 논의는 노동시장 개혁의 시급성도 더욱 일깨워 준다. 모두가 국민연금에 가입하고 보험료를 제대로 낼 수 있게 소득이 확보되는 게 최선이다. 특히 평균수명이 연장됨에 따라 노인도 일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은 노인들이 연금수급자이지만 보험료 납부자로 전환될 수 있다면, 향후 공적연금 논의의 틀 자체가 크게 바뀔 수 있다. 연금개혁을 압박하는 고령화 문제는 인구학적 의제이지만 궁극적으로 노동시장 의제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