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왜 전태일 문학상 작품집을 읽습니까

노동사회

당신은 왜 전태일 문학상 작품집을 읽습니까

admin 0 4,109 2013.05.12 04:11

 

 

book_01_4.jpg1988년 3월, “인간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모든 불의에 맞서 그것을 이겨내려 노력하는 모든 사람, 모든 집단의 목소리를 한데 모으려는 뜻에서 제정된” 전태일 문학상이, 올해로 13회 째 수상작들을 세상에 내놨다. 수상자들은 소설 ‘기차, 언제나 빛을 향해 경적을 울리다’(강효정), 시 부분 ‘인력시장’ 외 4편(서상규), 생활·기록문 ‘참 고마운 삶’(오도엽) 등 각각 부문별로 3명씩 총9명. 

“전태일? 어느 시대 작가입니까?”

누군가는 ‘전태일문학상’이라고 하니까, 전태일이 어느 시대 작가냐고 묻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세상이 ‘전태일’이라는 이름조차 잊을 만큼 우리 사는 세상이 좋아졌다는 뜻일까요? 물음에 대한 대답이 어떤 것일지는 굳이 말할 필요가 없겠지요.
- 제13회 전태일 문학상 소설부문 <심사평> 중에서


1970년과 1988년, 그리고 2004년. 굳이 되새김질 안 해도 세상은 변했다. 그런데도 지금, 이렇게 ‘전태일’의 숨결이 닿는 곳에서 자기 글의 뿌리를 내리고자 하는 이들은 어떤 삶을 어떠한 목소리로 이야기하고 싶었을까? 2004년 자발적으로, 서점에서 『전태일 문학상 수상작품집』을 집어드는 사람들은 거기에서 어떤 위안을 얻고 싶은 것일까?

왕년의 학생운동권이었던 소심한 슈퍼마켓 주인이 민주노동당에 당원으로 가입하고 활동하면서 그리고 강제추방의 불안에 떨고 있는 이주노동자들과의 인간적 만남 속에서 다시 느끼는 삶의 작은 울림 이야기. 새벽 인력시장에서 팔려가기를 기다리는 노동자의 늙은 소 같은 불안한 꿈벅거림과 아침햇살처럼 진한 여운의 노래. ‘되살이’를 위해 가족과 함께 농촌에서 터를 잡은 공장노동자가 땅과, 도시생활 속에 굳어져버린 자신과, 가족과 싸우고 부둥키고 화해하고 고마워하는 나날의 기록. 얼추 각 부문 당선작들만 봐도 그것이 그리는 삶의 외양은 참 다양하다.  

그렇지만, 글쓴이들이 당선 소감을 통해 ‘글을 쓰는 원동력’이라고 밝히는 것에는 상당히 비슷한 면이 있다. 그리고 사실 대개 이야기들의 밑바탕에도 내포된 공통점이 있다. 바로 “부끄럽지 않아야겠다”는 것. 자신에게, 함께 아파할 줄 아는 이들에게, 우리들 속에서 이제는 어쩌면 미약하게 촛불로서 출렁거리고 있지만 살아있는, 전태일에게. 그렇게 전태일의 이름으로 문학을 한다는 것은 억압의 어둠을 사르는 한 점 불꽃의 환희와 고통을 기억하는 이들이, 변화된 세상 속에서도 간직해온 자기 안 촛불의 나울거림에 비춰진 세상을 조금은 서툴지라도 솔직하고 성실하게 그려낸다는 의미일 것이다.

물론 이는 일부분일 뿐이다. 우리 시대는 훨씬 더 ‘뜨거운’ 전태일의 문학도 만들어낼 수 있다. 굳이 되새김질 안 해도 세상은 다양하게 변하고, 그래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으니까. 어쨌거나 『전태일 문학상 수상작품집』에서는 뭐뭐 문학상 수상작품들에서는 거의 볼 수 없는 ‘솔직한 서투름’을 종종 보게 된다. 이는 단지 억압과 착취를 당하거나 거기에 맞서는 쪽에 있는 사람들이 ‘언어’를 사용하는데 서툴기 때문만이 아닐 것이다. 차라리 이는 삶이 강퍅했기 때문에, 삶을 에두르지 않고 직시하는 버릇과 관계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정교하게 표현되면야 더욱 좋겠지만, 전태일의 문학으로 터져 나오고 싶어하는, 뭉툭하고 무겁지만 절실한 목소리들은 우리 시대의 유행이 ‘문학’이라고 주장하는 ‘가벼운 관음증’들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서툰 표현 너머, 진한 목소리들에 공명할 줄 아는 ‘희소가치’한 취향이, 당신이 『전태일 문학상 수상작품집』과 같은 종류의 책들을 집어드는 이유일 것이다. (강효정 외 짓고, 사회평론 펴냄. 9천5백원)

 

  • 제작년도 :
  • 통권 : 제 9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