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은 주권이요 민생이다

노동사회

쌀은 주권이요 민생이다

admin 0 3,574 2013.05.12 04:03

 

 

khjang_01.jpg최근 정부는 협상 상대국과 쌀협상을 거의 마무리하고 국내에서 큰 저항 없이 정부 뜻대로 쌀개방을 확대할 수 있도록 여론몰이에 나서고 있다. 이러한 여론몰이의 선두에는 두 가지의 대표적인 주장이 있다.

“정치와 선거가 농업을 망쳤다. 정치권은 여야 할 것 없이 선거 때마다 표를 의식해, 쌀시장개방 등 농업구조조정이 요구되는 현안들은 회피하면서 경쟁적으로 선심성 공약을 남발함으로써 농업문제 해결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조선일보』 11월15일).” 그리고 “쌀관세화를 유예하면 농업구조조정은 물 건너갈 것이다. 관세화를 통해 구조조정을 촉진하고 쌀의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사공용 서강대교수, 『문화일보』 11월17일).” 한마디로 말하자면 쌀시장을 완전개방하여 일정 관세만 내면 누구나 자유롭게 쌀을 수입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명백하게 실패한 정부 쌀개방 협상

정부는 이 같은 주장을 즐기고 있다. 실패한 쌀협상이라는 비판과 저항에서 벗어날 수 있는 명분을 제공해 주기 때문이다. 정부가 지난 11월17일 처음으로 공개한 쌀협상 중간결과에 의하면 내년부터 10년간 관세화를 유예하되, 의무수입물량(MMA)을 8~9%로 확대하고 수입물량의 최대 75%까지 시중판매를 허용하는 것으로 협상이 진행되어 있다. 이 조건을 받아들이든지 아니면 관세화로 전면개방을 하든지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 정부의 입장이다.

일각에서 관세화 전면개방을 주장하면 할수록, 무엇을 선택하든지 정부의 부담은 그만큼 줄어드는 것이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추종하는 기득권세력과 정부가 역할분담을 통해 쌀협상의 실패를 무마시키고 쌀개방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협조하고 있는 것이 현재의 모습이다. 그러나 정부가 제시하는 두 가지 선택사항 가운데 어떤 것을 선택하더라도 쌀농업은 치명적인 붕괴와 해체의 위기에 빠지게 될 것이다.

의무수입물량 8~9% 수준은 1인당 연간 쌀소비량이 120kg에 달하던 지난 1986~1988년의 3년간 평균소비량을 기준으로 산정된 것이며, 현재의 1인당 쌀소비량 80kg을 기준으로 할 경우 실제로는 국내소비량의 13~14%에 해당하는 물량이다. 현재의 쌀소비량 감소추세를 고려한다면 10년 후인 2014년에는 국내소비량의 15~16%에 해당하는 쌀을 의무적으로 수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여 물량을 조절할 수 있는 최대수준을 국내소비량의 10% 수준으로 보고 있다. 이 범위를 넘어설 경우 국내 쌀값의 폭락은 누구나 쉽게 예상할 수 있다.

게다가 의무수입물량의 일정부분을 시중 판매하도록 허용할 경우, 시장교란에 따른 쌀값의 폭락을 더욱 부채질하게 될 것이다. 쌀의 경우 대표적인 ‘얇은 시장(thin market)’으로서 공급량의 조그만 변화에도 가격변동폭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따라서 쌀개방 확대에 따른 가격폭락으로 쌀농사 포기가 속출하면서 쌀생산 면적의 감소와 쌀자급기반의 붕괴가 연쇄적으로 뒤따를 것이다.

관세화개방 주장의 기만적 숫자놀음

일부에서는 관세화로 전면개방할 경우 국내소비량의 약 6.5~7.5% 정도가 실제로 개방되어 쌀이 수입될 것이라고 주장한다(한국농촌경제연구원. 2004.11). 이를 근거로 차라리 관세화개방이 더 유리한 것이라는 주장을 펴기도 하며, 충격적인 관세화개방을 강력한 농업구조조정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극단적인 주장까지 서슴지 않고 있다. 이러한 주장은 관세화로 개방하더라도 약 360~400%의 고율관세를 부과할 수 있기 때문에 6.5~7.5% 수준에서 개방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라는 예측을 근거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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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관세화개방이 더 유리하다는 주장은 철저히 국민을 기만하는 것이다. 이들이 제시하는 관세율은 현재 진행중인 국제무역기구(WTO)의 도하개발의제(DDA) 협상이 타결되기 이전의 과도기에만 적용가능한 것이다. 내년 12월에 예정된 홍콩 각료회담에서 DDA 농업협상이 타결될 경우 현행 관세율을 대폭 낮추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관세율 상한과 관련한 DDA협상의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별로 볼 때, 최대 99.69%의 쌀수입, 즉 100% 수입과 다름없는 결과를 예상할 수도 있다는 연구결과(김충실. 2004.8)는 매우 충격적이다. 6.5~7.5%라는 연구결과를 발표한 한국농촌경제연구원조차 그 이상으로 개방이 확대될 가능성을 50%로 보고 있다. 즉 절반의 확률적 예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정부의 쌀협상은 실패작이라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 농민들은 8~9%의 의무수입물량에 기초한 관세화 유예 및 시중판매 허용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협상결과로 규정하고 총력투쟁을 결의하였다. 또한 관세화 전면개방 역시 100% 쌀수입의 결과가 나올 수도 있는데 50%의 확률적 가능성에 식량안보와 농민생존권을 ‘올인’하는 것은 정책이 아니라 도박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정부가 두 가지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도록 강요하는 것 역시 국민에 대한 협박이라 할 수 있다. 우리 농민과 국민들이 받아들일 수 없는 두 가지를 제시하고서 둘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정부가 협상실패의 책임과 부담을 고스란히 국민에게 전가하려는 의도에 지나지 않는다. 이에 따라 현재 국회 내에서는 민주노동당을 중심으로 쌀협상의 전면적인 재검토를 요구하는 결의안을 추진 중에 있으며, 정부의 쌀협상 결과에 대해서는 국회비준을 거부하는 운동이 추진되고 있다.

식량주권, 우리만 포기해도 되는 건가

다른 무엇보다도 쌀협상에 관심이 집중되는 첫 번째 이유는 쌀이 주권이기 때문이다. 주지하다시피 우리나라의 식량자급률은 2004년 현재 26.9%에 불과하여 OECD국가 중에서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다. 쌀은 100% 자급기반을 유지하고 있는데, 만약 쌀을 제외할 경우 식량자급률은 6~7%에 불과한 수준이다. [표2]에서 보듯이 주요 국가의 식량자급률은 100%를 넘고 있으며, 약 65~120%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스위스,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등은 비상시 식량공급대책을 헌법과 법률에 명시하고 있을 정도로 식량자급을 주권적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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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대부분의 주요국가들의 식량자급률이 100%를 넘어서고 있고, 일부 국가에서는 식량안보대책을 헌법과 법률로 명문화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는 과거의 경험과 미래의 예상 때문이며, 그 핵심에는 식량의 무기화 즉 식량주권이 자리잡고 있다.
미국은 과거 냉전시기에 소련 등에 대한 견제무기로 식량을 적극 활용해 왔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서유럽에 대한 식량원조를 바탕으로 사회주의권의 확산을 방지하고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하였으며, 제3세계 국가에 대해서도 식량원조를 전략적으로 활용해 왔다. 유럽연합(EU)의 경우 미국의 절대적 영향력에서 탈피하기 위해 1960년대부터 공동농업정책(CAP)을 실시하고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여 1980년대에는 식량자급을 달성하게 되었다.

게다가 인구의 폭발적인 팽창에 비해 환경오염 및 경지면적의 감소 등으로 식량공급의 부족이 심화되면서 21세기 식량위기를 우려하는 전망이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다. 1992년 리우환경회의에 이어 두 번째 세계정상회담의 의제가 1996년 로마식량회의에서 채택된 식량문제였다. 국제연합 세계식량농업기구(UN/FAO)를 비롯하여 유명한 연구기관들이 식량부족으로 인한 위기상황을 경고해 왔다. 심지어 2003년 미국 국방성 비밀보고서에는 군사무기와 에너지무기에 이어 2020년에는 식량무기를 국가안보의 전략적 수단으로 거론하고 있다.

FAO보고서에 의하면 2003년 현재 세계의 식량공급량은 18억3천만톤으로 소비량 19억3천만톤에 비해 약 1억톤이 부족한 상황이며, 이로 인해 전세계적으로 8억1천5백만명이 굶주리고 있고 매년 3천6백만명이 기아로 사망하고 있다. 향후 중국과 인도의 경제성장에 따른 식량소비의 급격한 증대 및 환경오염, 기상이변, 경지감소 등에 따른 식량공급의 감소로 식량부족과 식량위기는 더욱 심화될 전망이라는 것이 공통된 관측이다.

따라서 쌀은 우리나라 식량자급에서 절대적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핵심작목으로서 그 자체가 하나의 주권으로 봐도 무방하다. 특히 통일시대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식량주권은 우리 민족의 발언권을 강화시키는 중요한 토대가 될 것이다. 그럼에도 정부와 신자유주의 추종자들은 식량위기와 식량주권에 대해 아무런 관심도 기울이지 않고 있다. 어차피 돈 많은 자들은 식량부족사태가 와도 비싸게 주고 사먹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일까? 식량위기가 현실로 다가왔을 때 돈이 없어서 식량을 구입할 수 없는 국민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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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월 13일 열린 전국농민대회  - 출처: 범민련 선전국  ]

쌀 포기가 일으킬 연쇄적 ‘민생악화’ 

쌀협상에 관심이 집중되는 두 번째 이유는 쌀이 민생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쌀개방을 확대하더라도 170,070원/80kg의 목표가격을 기준으로 쌀농가의 소득을 안정화시킬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가 11월11일에 발표한 쌀소득대책을 조금만 분석해 보면 농민을 기만하는 눈속임에 불과하다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정부는 목표가격을 기준으로 내년부터 1ha(=3,000평)당 평균 60만원의 고정형 직접지불을 하겠다고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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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3]에서 보듯이 현재 추곡수매, 논농업 직접지불, 쌀소득보전 직접지불 등을 모두 합하여 정부가 농가에 지원하는 쌀소득보전 규모는 593,030원/ha이며, 총액기준으로 5,666억원에 달한다. 그런데 정부가 내년부터 새로 시행하겠다는 목표가격 고정 직접지불은 총액 5,730억원으로 현행 수준과 큰 차이가 없다. 결국 정부가 제시한 쌀소득대책이란 것이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여러 가지 지원방식을 하나로 통합하여 이름만 다르게 붙였을 뿐 그 규모는 현재와 동일하다는 것이다. 정부방안에 의하면 목표가격 170,030원/80kg은 최대목표치이며, 향후 예상되는 쌀값의 하락, 생산비의 상승, 물가인상 등으로 인한 실질소득의 감소를 전혀 보전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정부가 쌀개방의 대책으로 제시한 쌀소득대책은 실질소득의 감소를 통해 농업구조조정을 진행시켜 나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볼 수 있다. 아마도 정부는 현행 330만명의 농가인구를 10년 후에 절반수준인 약 165만명으로 줄이겠다는 농업구조조정을 포기하지 않은 것으로 보여진다.

쌀에 대한 실질소득의 감소와 농업구조조정을 통한 농가인구의 절반 퇴출은 농업·농민·농촌의 피해에 국한되지 않고 국민경제 전체로 파급될 것이며, 그로 인한 부담은 결국 도시의 노동자와 서민들에게 전가될 것이다. 농촌진흥청이 추정한 2003년 현재 농업의 다원적 기능의 경제적 가치를 50조원이라고 할 때, 농업구조조정으로 다원적 기능이 손실될 경우 삶의 질을 동등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이를 보충하기 위해 추가적인 재정지출이 필요한데 그 부담은 결국 국민의 세금으로 전가될 것이다.

또한 퇴출되는 농가인구 1인을 부양하기 위한 사회적 비용부담이 연간 약 200만원이라고 할 때, 농업구조조정으로 약 165만명의 퇴출되는 농가인구를 부양해야 하는 천문학적인 부담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농업의 고용능력이 절반으로 줄어들 경우 약 50~60만개의 일자리를 잃어버리는 결과를 초래하여 실업률의 증가 및 비정규직의 확대 등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강제하는 기제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농업부분의 강력한 구조조정은 도시의 노동자와 서민에게 그 부담이 전가되어 국민 전체의 삶의 질을 악화시키게 된다는 점에서 쌀은 민생이다.

솔직하게 답하라, 농업을 포기할 것인가!

정부의 쌀개방확대와 쌀소득대책은 농업문제의 해결 차원이 아니라 대규모 구조조정을 통한 농업·농촌의 강제적 해체를 추구하고 있다. 이 시점에서 농민들은 농업의 운명을 국민들에게 직접 물어볼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것은 과연 우리나라에서 농업을 유지할 필요가 있는지 없는지에 대한 국민적 선택을 요구하는 것이다.

정부가 신자유주의 추종자들이 주장하듯이 국제시장에서의 농업경쟁력은 사실상 실현불가능한 것이며, 농업구조조정을 위한 이데올로기로서 기능하고 있을 뿐이다. 판단과 선택의 기준은 농업을 유지할 것인가, 포기할 것인가에 놓여져 있다. 농업포기를 선택한다면 정부가 하듯이 쌀개방을 확대함으로써 대규모 농업구조조정을 추진해 나가면 될 것이다. 농업유지를 선택한다면 쌀개방을 최소화하고 식량자급률 법제화를 통해 국내 쌀자급기반의 유지와 생산비를 보장하는 쌀소득보전을 시행하면 될 것이다.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 제작년도 :
  • 통권 : 제 9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