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운동과 시민운동이 만나는 곳, 기업의 사회적 책임

노동사회

노동운동과 시민운동이 만나는 곳, 기업의 사회적 책임

admin 0 3,573 2013.05.12 03:49

시민운동이 본격화된 이후 기업을 상대로 해 온 운동을 정리해 본다면 몇 개의 영역으로 나눌 수 있다. 먼저 가장 역사가 오래되었고 전통적인 영역은 아무래도 '소비자운동'이다. 이는 90년대에 역동적으로 발전한 시민단체들보다 오래 전부터 활동해 왔던 시민단체들의 주요한 운동영역이었다. 한국소비자연맹이나 YMCA 시민중계실을 비롯한 각종 소비자단체들이 일찍부터 기업을 상대로 운동을 전개해 왔다. 소비자 상담을 매개로 상품의 안전과 품질, 서비스의 질 향상에 이들 단체가 기여한 바가 적지 않다. 소비자운동은 소비자문제를 연구하는 시민의 모임이나 녹색소비자연대의 창립과 활동에서 보듯 이후 환경운동의 영향을 받으면서 그 인식과 사업영역이 확장되어 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shha_01.jpg기업 상대 시민운동에 대한 대략적 분류

다음으로는 '재벌개혁운동'이다. 재벌개혁운동은 다시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하나는 경실련이 중심이 되어 전개해 온 제도개혁운동이다. 공정한 시장거래 질서의 구축이라는 목표를 가진 이 운동은 특정한 기업에 대한 직접적 공격이라기보다 경실련의 전통적 운동이었던 정경유착의 근절과 함께 시장의 공정성, 투명성을 담보할 사회적 룰과 제도에 관한 운동이었다 할 것이다. 다른 하나는 참여연대 중심의 소액주주운동으로 재벌기업의 기업지배구조 개혁을 통한 재벌개혁운동이다. 특정한 재벌기업을 목표로 했다는 점과 소액주주라는 기업의 이해관계자들을 직접 참여케 하였다는 점에서 이전운동과 구별되며, 결과적으로 관련 제도의 개혁을 가져왔다는 점에서 실제적 성과를 내기도 하였다.

또 하나의 영역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은 '기업평가운동'이다. 소비자운동 단체들은 소비자대상이라는 이름으로 기업평가에 기초한 수상제도를 운영하면서 상품의 질과 서비스의 질 향상을 촉구하는 운동을 해 온 것이 보편적이었다. 90년대에 경실련은 자체 개발한 경제정의지수를 기준으로 기업을 평가하여 경제정의에 기여한 기업을 시상하는 '경제정의 기업상'을 운영하기 시작하였다. 이는 포지티브한 방식으로 기업의 변화를 추동해 가는 운동방식이다.

그리고 이 밖에도 환경운동이 오염원에 대한 감시 운동을 단속적이기는 하지만 일정하게 전개해 왔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사실 이상의 분류가 정확하다고 할 수는 없다. 필자가 이 원고를 위해 대략적이고 편의적으로 나누어 본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시민운동의 기업감시운동에 대한 글이 거의 전무한 편이어서 특별히 참고하기도 어려웠다는 점도 밝혀둔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기업의 인식

최근 들어 시민운동 일각에서 논의되기 시작하는 것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매개로 한 운동이다. 이미 참여연대에서 활동하던 멤버들이 기업지배구조연구소를 창립하면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논의를 전개한 바 있고, 경실련도 경제정의기업상의 발전방향으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또 천주교대안연대에서도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매개로 한 사회책임투자운동을 준비해 오기도 하였다. 대개 2000년 이후에 이 같은 논의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했음을 감안하면, 시민운동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주제를 매개로 기업감시운동에 대한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최근의 일이라 할 것이다.

흔히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논의를 전개할 때 꼽는 것이 '캐롤의 분류'이다. 기업의 책임을 경제적 책임, 윤리적 책임, 법적 책임, 자선적 책임으로 분류하는 것은 현재 보편적 분류처럼 되어 있다. 각 기업의 사회공헌팀들이 대체로 이 이론에 기초하고 있고, 특히 자선적 책임에 대한 의미가 커져가고 있어서 각 기업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면서 사회공헌팀을 구성하여 활동 중이다.

특히 일부에서는 '기업시민'이라는 개념을 사용하면서 기업이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가져야 할 사회적 책임에 대한 인식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기도 하다. 따라서 시민사회에 대한 재정적 기여만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구성원의 자원활동으로 넓어져 가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기도 하다.

그럼에도 여전히 기업의 홍보, 이미지전략 차원이 강한 상태라고 할 수 있지만 점차 기본적 경영방침으로 발전하고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삼성이 이미 21세기 경영전략으로 친사회적 기업이라는 방침을 채택하고 있는 것에서 알 수 있고, 올해부터 시작된 여러 기업의 '지속가능보고서' 발간 움직임이 그러하다. 함께하는 시민행동이 올해 발간한 지속가능보고서에 대한 의견서를 작성하거나, 환경재단이 올해 기업이 발간한 환경보고서를 모니터링하여 시상하는 등 보고서를 매개로 한 감시운동이 서서히 시작되고 있는 것도 기업들로 하여금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는 계기들이 되고 있는 것도 분명하다.

노동운동과 시민운동의 연대, 막힘과 트임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란 주제는, 노동운동이 사회적으로 자신을 확장 발전시키는 데 있어 문제의식을 갖고 있거나 시민운동이 생산영역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운동적 도전을 생각할 때 다가서게 된다고 할 수 있다. 노동운동과 시민운동이 만날 수 있는 영역인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노동운동과 시민운동의 연대는 대개 정치적 현안에 대한 사안별 공동대응의 성격이 강한 상태라 할 수 있다. 물론 노동법개정투쟁이나 우루과이라운드범국민대책위 등 노동자, 농민의 계급적 요구에 기초해 있지만 기본적으로 우리 사회 전체의 이해와 직결되어 있는 문제의 경우에는 함께 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정작 기업을 매개로 한 연대활동의 경험은 거의 없는 편이다. 우리 노동운동이 기업별 노조 중심이어서 기본적인 한계를 가지는 것도 있지만, 그간 노동운동의 주요 과제 자체가 노동자계급 자신의 계급적 요구를 크게 넘어서지 못한 까닭도 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엘지노조 파업의 경우에도 요구사항에는 지역발전기금 등 사회적 요구가 있었고 또 주요하게 제기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부각되지 못하고 이기적인 요구로만 취급되기도 하였다.

올해 임단협을 계기로 87년 이후 성장해 온 노동운동에 대한 내적인 성찰이 필요하다는 제기들이 뒤를 잇고 있다. 과거에도 왕왕 이 같은 성찰에 대한 요구는 있었지만 발전하지 못했다. 요즘의 평가를 의례적인 평가로 이해하지 말고 근본적인 성찰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왜 이기적인 요구로만 이해되고 사회적 요구로 나아가거나 결합하지 못할까 하고 스스로에게 되물어야 한다고 본다.

마찬가지로 시민운동도 기업의 지배구조의 변화를 요구하면서도 노동자의 경영참여와 같은 주제에 대한 적극적인 입장정리나 요구는 없었다. 즉 시민운동도 노동운동의 요구를 사회적 요구로 이해하고 발전시키기 위한 노력을 전개하지는 못하였던 것이다. 시민운동과 노동운동의 연대라는 것이 그동안에는 '정치적 요구'를 중심으로 사안별로 연대가 이루어지면서, 뚜렷한 정치적 목표를 갖고 있지 않은 시민운동으로서는 그 요구를 공유할 수 없었다. 공통의 정치적 목표가 없는 시민운동의 경우에는 노동운동과 일상적 연대를 이루어 낼 기본적인 프로그램을 갖지 못한 셈이었다.

그러나 기업의 사회적 책임의 경우에는 시민운동과 노동운동이 추구해야 할 공통의 가치에 기반한 영역이 존재하게 되므로 뚜렷한 공통의 목표를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를 매개로 이전과는 다른 '연대'의 가능성이 시민운동과 노동운동에 열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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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기업의 사회적 책임의 일환으로 진행되는 자원봉사 활동. 사진은 SK에서 진행한 '사랑의 김장배추' 활동이다. ]

연대 가능성을 여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 운동

필자가 속한 '함께하는 시민행동'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주제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생산영역에서의 실제적인 사회변화를 이끌어 낼 시민운동의 방법이 무엇인가에 대한 관심으로부터였다. 시민운동이 생산과 유통, 소비의 모든 과정에 대한 관심을 가질 때 비로소 실제로 사회변화를 이루어 내는 데 기여하게 될 것이라고 보았고, 결국 이는 노동과정과 노동력의 재생산과정 전체와 맞물리는 것이라고 보았다. 이 지점에서 시민운동과 노동운동은 공통의 과제를 상호간에 천착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생산과 유통, 소비의 과정에 대해 시민운동은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의 기업이 가져야 할 공통의 사회적 책임으로서 지속가능한 생산, 성평등, 보편적 인권 등의 가치를 지키고 있는지 감시하고 이를 지키도록 압력을 행사함으로써 실제로 생산과정과 유통과정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시민운동은 주장을 할 수는 있지만, 구체적 생산과정에 대한 정보 없이 구체적인 감시는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지금으로서는 일정한 한계가 있다. 이 지점에서 노동운동과 시민운동이 자신과 공통의 가치로 여기는 영역에서는 함께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기업별 체제에서 노조가 정말 자기 회사의 이익에 해를 끼칠 수도 있는 일에 대해 선뜻 나서려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따라서 현재조건에서는 노조와 시민운동이 직접적으로 결합하기보다는 노조 내에 각종 '써클'이 만들어지고 이들 써클과 시민운동이 결합하는 것이 훨씬 현실성이 있어 보인다. 노조 내에 환경 혹은 인권에 관심이 많은 노조원들이 스스로 만든 써클 활동의 일환으로 기업 내 생산과정과 유통과정에 문제제기하는 것만큼 실제적인 힘을 갖는 것은 없을 것이다. 이 과정은 노동운동 내부에서 성찰적 노동자들이 훈련되는 과정이기도 할 것이며, 성찰적 시민의 확대를 통해 우리 사회의 변화를 추구하는 시민운동의 과정과도 일치할 것이기 때문에 노동운동과 시민운동이 새로운 패러다임 아래 지금과는 다른 전면적 연대를 형성해 가는 중요한 단서가 되리라 생각한다. 이런 생각으로 필자는 왕왕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노동운동과 시민운동이 새로운 세상의 질서를 만들어 가는 '공상'을 해본다.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고들 하니까.


 

  • 제작년도 :
  • 통권 : 제 9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