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몰하는 '대한민국호' 구할 노동자 정당투표

노동사회

침몰하는 '대한민국호' 구할 노동자 정당투표

admin 0 3,403 2013.05.12 04:25

 


 

ytjung_01_4.jpg오는 4월15일이면 87년 민주화 이후 국민이 국회의원을 제대로 선출하여 이들로 하여금 국가의 중요 현안을 논의하고 미래를 설계토록 한 지 만 16년이 된다. '서당개도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데 우리네 국회의원들은 '개'만도 못한 것인지 '칼 들지 않은 강도'를 닮아 가고 있다. 경제가 망가져 민생이 도탄지경에 빠져도 속수무책, 이 동네 저 동네 이웃 사이에 분쟁이 벌어져도 수수방관, 그러면서도 '강도질' 한 동료의원을 체포할라치면 '방탄국회'는 잘도 연다. 이런 이들도 선거 때만 되면 좋은 정책공약들은 남의 당 것일지라도 베껴서 써먹고 그래도 모자라 지역감정을 선동하고 색깔논쟁이나 벌인다. 참다못한 시민단체에서 낙천·낙선운동을 벌이면 '불법' 운운하면서 죽어라 탄압한다.

기성정치인과 침몰 직전의 한국사회

어디 그뿐인가. 이들은 자기가 마치 손오공인양 자기를 닮은 국회의원들을 양산하고 있다. 아무리 깨끗하고 훌륭한 사람이라도 꾐에 빠져 이들의 품안에 들어가는 순간 부패하고 무능한 철면피 정치인으로 돌변한다. 이들이 주도권을 잡고 있는 정당은 마술 상자임에 틀림없으리라.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것은 국민과 언론에 의해 이토록 지탄을 받는 국회의원들이 선거가 끝난 뒤에도 사라지지 않고 당당하게 국회의사당을 들락거린다는 점이다. 어떻게 된 셈일까? 그동안 우리 국민들은 최첨단 '장비'와 '지식'을 갖춘 '전문의'(선관위, 사법당국)에게 부패, 지역감정, 색깔논쟁 등의 만성질환을 치료해 주기를 기대해 왔다. 하지만 아직도 구태는 반복되고 있다. 아무리 좋은 처방이라도 환자가 스스로 복용하지 않을 때는 억지로 먹여야 하는데, '전문의'들이 국회의원과 동창관계여서 그들의 엄살에 무기력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우리가 너무 순진했는지 모르겠다. 이제 우리 국민들이 직접 나서서 한국 정치의 병폐를 치료할 때가 온 것 같다. 이대로 가다가는 국민 경제의 기반은 더욱 약화되고 빈부갈등을 비롯한 사회갈등은 더 심해져 우리나라가 외부 침략에 의해서가 아니라 내부로부터 붕괴될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 정치가 앓고 있는 만성질환인 부패와 무능, 지역감정과 색깔논쟁을 제거하기 위한 치료제는 너무 흔해서 어디서든지 쉽게 구할 수 있다. 다가오는 총선 때 우리는 그 치료제를 불량 정치인에게 반드시 사용하겠다는 정당과 후보를 선택하기만 하면 된다. 처방의 내용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한국 정치의 만성질환을 위한 치료제

첫째로는 정당이 바로 서야 한다. 정책정당이어야 하고 민주적으로 운영되어야 하며 중대 현안이 생길 때마다 국민 여론을 수렴하는 정당이 국회로 진출해야 한다. 기성정당 모두 스스로 정책정당을 지향한다고 선전한다. 그러나 자세히 들어보면 '그 놈이 그 놈'이다. 정책에 큰 차이가 없다는 뜻이다. 적어도 우리 사회에서 다수이지만, 경제성장의 혜택은 가장 적게 받고 경제성장에 필요한 대가는 가장 많이 치르는 노동자와 빈민 그리고 여성의 입장에서 보면 기성정당이 내세우는 정책공약은 서로 다를 게 없다. 설령 다른 정당과 다른 정책공약을 가졌다 하더라도 실현할 의지가 대단히 미약하다. 선거용일 뿐이다. 

대의제 민주주의 하에서 정당이 민주적으로 운영되지 않으면 국민의 요구나 불만이 정책에 제대로 반영될 수 없다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기성정당들도 당내 민주주의를 실천한다고 선전한다. 그 증거로 상향식 공천을 제시한다. 하지만, 당비도 내지 않는 당원을 돈으로 매수하여 이들로 하여금 선거 후보를 결정하게 한다면 민주주의가 아니라 금권정치다. 뿐만 아니다. 기성정당들은 국가의 중대 현안에 대해서 당원의 참여를 허용하지 않는다. 물론 인터넷 등을 통해 의견을 제시할 수는 있지만 결정에는 참여할 수가 없다. 일단 선출되면 대표가 마음대로 하는 대의제의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서는 중요한 현안에 대한 당원의 일상적인 참여가 허용되어야 한다.

한국 정치의 병폐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당내 민주주의만으로 부족하다. 당원들이 기득권을 갖게 될 수도 있고 시야가 좁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국가적으로 중대한 사안에 대해서 당원이 아닌 일반 국민들에게도 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이라크 파병이나 미군기지 이전과 같이 명백하게 국가적인 중대사는 물론, 일부 지역에 국한된 것일지라도 중장기적으로 국가 전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안에 대해서는 국민투표에 붙여 결정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국민의 직접 참여를 위한 제도에는 국민투표 이외에도 대국민 공청회나 토론회 등이 있으며, 이를 방송사 등 민간기구에 맡겨둘 것이 아니라 국가가 주도해서 시행해야할 것이다.

타협의 정치를 이뤄내기 위해

둘째 어느 정당도 국회에서 과반수를 차지해서는 안 된다. 우리 정치현실로 볼 때 어느 정당도 단독으로 국회를 소집하거나 의결할 수 없어야 타협의 정치가 가능하다. 지금 집권여당인 열린우리당에서는 강력한 여당이 있어야 대통령이 국정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다는 논리를 펴고 있고, 거대야당인 한나라당에서는 강력한 야당이 있어야 대통령과 여당을 견제할 수 있다는 논리를 전개하고 있다. 그러나 이 두 논리 모두 허구임을 인식해야 한다. 

1987년 이후 우리는 87년 총선 이후 1990년 3당 합당 이전까지는 사실상 다당제인 여소다야(與,小多野), 1990년 3당 합당 이후 1997년 대선까지 여대야소(與大野小), 1997년 대선 이후 2001년 9월 민주당과 자민련의 공조체제가 와해될 때까지의 특이한 여대야소(與大野小), 그리고 2001년 9월 이후 지금까지의 여소거야(與小巨野) 등 다양한 형태의 정당체제를 경험했다. 이러한 다양한 경험 중에서 어느 때가 가장 민주적인 발전을 했는지 생각해 보라. 87년 직후 형성된 여소다야의 다당제가 아니었던가. 그 원인은 국회 의석이 가장 큰 여당인 민정당 125석, 제1야당인 평민당 70석, 제2야당인 민주당 59석, 제3야당인 공화당 35석으로 나누어져 어느 정당도 독자적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조건에서 사안에 따라 끊임없이 협상하고 타협해야 했기 때문이다. 

87년부터 90년 1월까지의 여소다야 시기를 제외하면, 여소야대일 경우에는 야당의 발목잡기와 방탄국회가 다반사였고, 여대야소일 경우에는 대통령과 여당의 횡포와 날치기 통과가 횡행했으며, 민주당과 자민련의 지역연합에 의한 여대야소에서는 권력지분과 정책방향을 둘러싼 두 당간 갈등으로 정국이 혼란스러웠다. 이 모두 민주주의의 핵심인 타협의 정치를 무시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지루하게 느껴질지도 모르는 토론과 협상을 받아들이고 실천할 의지가 있을 때만 가능하다. 정당간 토론과 협상을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어느 정당도 다른 정당과 협력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그것은 바로 87년 직후에서와 같은 다당제이다. 그리고 이러한 다당제는 전국 수준에서만 아니라 지역 수준에서도 도입되어야 한다. 지역 수준에서의 다당제는 지역감정 해소를 위해서만이 아니라 지역 내 민주주의를 위해서도 필수적인 조건이다. 일당이 단체장과 지방의회를 독점하고 있는 영호남지방을 보라. 이런 조건에서 유의미한 반대의견과 협상은 있을 수 없으며, 따라서 지방권력은 타락하고 부패하기 십상이다.

불량 정치인은 '리콜' 돼야

셋째 부패하거나 탈법한 국회의원에 대해서는 엄중한 처벌이 이루어져야 하고, 사법기관이 제대로 하지 못할 경우를 대비하여 국민소환제를 도입해야 한다. 부패하고 탈법한 정치인에 대한 엄중한 처벌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데 대해서는 새삼 설명이 필요 없으리라. 다만 방탄국회를 소집하더라도 비리와 부패의 혐의가 확실히 있는 정치인을 소환 체포할 수 있는 법안을 제정할 필요가 있다는 점은 강조되어야 한다. 

이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국민소환제이다. 사법기관이 제대로 처벌하지 못하는 부패비리 정치인이나 명백한 범법행위는 아니지만, 무능하거나 국민의 이익에 반하는 정책을 수립 비호하는 정치인을 국민이 직접 책임을 물어 공직에서 물러나게 하는 국민소환제는 다른 정치선진국에서는 이미 시행하고 있다. 작년 아놀드 슈워제네거가 캘리포니아 주지사로 당선된 것도 바로 '공직자 소환제' 즉 국민소환제에 따른 현직 주지사에 대한 불신임선거에서 승리했기 때문이다. 

국민소환제는 우리나라 상품시장에서는 '리콜제'라는 이름으로 오래 전부터 시행하고 있다. 리콜제는 상품의 결함으로 소비자가 생명이나 신체에 위해를 입거나 입을 우려가 있을 경우 정부의 명령에 의해 상품의 제조업체 또는 유통업체가 결함 상품 전체를 교환 환불 수리해 주는 제도이다. 마찬가지로 국민소환제는 불량 정치인들을 리콜하여 불량 정책과 부패를 근절하자는 것이다.

앞에서 제시한 제도를 도입 시행하지 않으면 우리의 정치는 회생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 문제는 이러한 처방을 시행할 정당 또는 정치인이 이번 선거에서 나올 것인지, 나온다면 누가 얼마나 지지할 것인지 하는 것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여론조사에서 3% 이상의 지지를 받고 있는 정당 가운데 위에서 제시한 처방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의지를 갖춘 정당이 분명히 있다. 문제는 그 정당이 발본색원의 정치개혁을 추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국민이 다가오는 총선에서 적극 지지해줘야 한다는 점이다. 특히 영호남 지역에 있는 유권자들이 정당투표는 물론 후보투표에서도 그 정당과 그 후보를 적극 지지해줘야 한다. 

그러나 최근의 여론조사나 현장 취재에 의하면, 이 지역 유권자들 가운데 아직도 지역감정에 사로잡혀 있는 이들이 적지 않은 듯하다. 따라서 우리 사회를 정치위기로부터 구출해줄 주도 세력은 노동자일 수밖에 없다. 노동자들이 다가오는 총선 때 개혁의지가 투철한 정당과 후보를 지지하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그렇게 하도록 권유하기 위해서는 다음 사항을 잘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개인' 아닌 '정당'이 투표 기준

국회의원은 지역구 대표로서 지역주민의 이익을 대변해야 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국가적, 전국적 과제를 국가와 민족 전체의 입장에서 토론하고 심의하고 의결하는 역할도 동시에 수행해야 한다는 점을 다시 한번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유권자로서 후보들이 제시하는 지역개발 공약에 대해서 국가 전체의 입장에서 그 타당성과 실현가능성을 고려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다음으로 다가오는 총선은 '물갈이'는 물론 '판갈이'를 하는 선거가 되어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는 아직도 절대 다수이고 경제성장을 위한 대부분의 대가를 치르고 있는, 노동자와 빈민 그리고 여성의 고통과 희생을 대변하는 원내정당이 없다. 더구나 기성정당들은 그 어느 누구도 부패와 타락의 원죄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이들은 추악한 자신의 모습을 감추고 정책정당의 외양을 갖추기 위해 인지도가 높은 시민단체 활동가와 전문가들을 영입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당연하게도 기성정당의 한계를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은 거부하고 있다. 그나마 괜찮은 이들이 기성정당에 들어가기도 하지만 이들은 사회적 약자의 이익과 목소리를 대변할 수가 없다. 그들을 못 믿어서가 아니라 기성정당을 믿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선배 정치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이들도 국회에 진출하는 순간 기성정당의 주류가 오염시키거나 벙어리나 거짓말쟁이로 만들어 버리기 때문이다.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따라서 우리 노동자들은 후보자 개인보다는 정당을 보고 지지할 후보를 선택해야 할 것이며 정당투표에서는 당연히 개혁의지가 투철한 정당을 지지해야 할 것이다. 힘이 닿는다면 주변 사람들도 그렇게 하도록 설득해야할 것이다. 

이제 두 달 정도만 지나면 향후 4년 간 한국정치를 이끌어갈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선거가 있다. 87년 민주화 이후 다섯 번째 국회의원 선거가 될 것이다. 우리는 국회의원 선거 이외에 대통령선거 세 차례, 지방선거 네 차례를 치러봤다. 87년부터 투표권을 행사한 사람은 모두 열한 차례의 선거를 치러본 셈이다. 이제 합리적으로 투표를 할 수 있을 만큼 경험과 지식이 축적되었다고 할 수 있다. 지금 우리는 침몰 중에 있는 '대한민국 호'에 몸을 싣고 있다. 기성정당들은 자신의 기득권과 쾌락에 집착하여 배가 침몰하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누가 이 배에 탄 승객들을 구할 수 있을 것인가. 태양이 비치고 맑은 공기가 있는 바깥으로 인도할 안내자는 이미 있다. 노동자들이 앞장서서 안내자를 도와 주변의 많은 사람들을 구해야하지 않을까.

 

 

  • 제작년도 :
  • 통권 : 제 8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