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노동운동에서 대공장 노동운동의 막대한 지위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이는 한국이 재벌대기업을 중심으로 발전해 온 산업구조를 반영하는 것이자 또한 몇몇 대기업노조가 차지하는 양적규모와 파급력 때문이다. 그러나 근래 몇 년간 대공장노조의 역할에 대한 의문은 쉼 없이 제기되고 있다.
이를 반영하듯 금속연맹에서는 현대중공업을 제명하는 사건이 발생했으며, 또한 대공장노조들에서 전통적인 민주파 대의원들이 5%를 넘지 못하고 있다는 심각한 소식이 들려온다. 더 나아가 대기업 조합원들의 개별화와 단기적인 실리추구의 경향들이 증대되고 있다는 인식들이 광범위하게 회자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낡은 관성으로 민주노조운동의 정통성과 투쟁성을 외친들 그것은 당위적인 주장에 그칠 뿐이다.
[ 지난 10월 20일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에서는 노동조합과 활동가들의 근본적인 성찰을 요구하는 토론회가 열렸다. ]
대공장 노조의 변화 원인은 무엇인가
원인에 대한 분석들은 다양하다. 그러나 원인에 대한 추상적 분석을 넘어서는 구체적이고 전면적인 진단이 종합적으로 진행된 것은 아니다. 따라서 전면적이고 체계적인 진단이 필요한 시기가 바로 지금일지도 모른다. 이런 상황에서 섣부를지 모르지만 필자는 세 가지 측면에서 그 원인을 지적하고자 한다.
첫째는 '작업장의 구조'다. 몇몇 대공장들의 작업장 진단결과에 따르면 한국의 작업장구조와 노동자의식은 낡은 패러다임을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말해 준다.
다수의 노동자들은 작업장을 단순히 '돈벌기 위한 곳'으로 취급한다. 이것은 어쩌면 노동자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인식인지 모른다. 노동력을 제공하고 임금을 받아 사는 임금노동자로서 작업장은 돈벌기 위한 공간에 머물 수밖에 없다. 이런 인식을 가진 노동자들에게 자발적 노동을 기대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사측에서 아무리 '기초질서 지키기'를 강조하고 근태규율을 주장한들 그것은 외부적 강제에 불과할 뿐이다. 더구나 노조가 있는 상황에서 강제적으로 노동력을 동원하려고 한다면 강한 반발에 부닥치는 것은 자명하다. 따라서 사측은 물질적 보상을 통해 노동력을 동원하고자 한다. 경제상황의 불안과 만성적 고용불안 속에서 노동자들은 당장의 임금인상 효과를 노리고 잔업특근에 참여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러한 경향은 노동시간 단축, 삶의 질 향상과 이라는 방향과 배치되는 것이다. 배치되는 것을 넘어서 '물질적 보상'이라는 만성화된 경향 속에 파묻히게 된다.
둘째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다. 대표적인 대공장인 자동차 완성차의 노동자들은 모두 구조조정기에 혹독한 시련을 거쳤다. 여전히 구조조정의 악몽이 현장 노동자들에게 살아 있는데 과연 미래는 확실할까? 당연히 그렇지 않다. 가장 큰 기업인 현대차에서 '2007년 위기설'이 떠도는 것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악몽과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속에서 조합원의 선택은 너무나 당연하게도 확실한 현실이다. 그 확실한 현실이란 이미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처럼 "잘 나갈 때 벌자"는 것이다. 미래에 대한 전략적 접근의 가능성은 사라지고 당장의 '현금'을 우선시하는 경향은 한국경제 주체들의 일반적 현상이며 이는 대공장노동자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셋째는 '담합적 노사관계'라고 할 만큼 고착화된 대기업 내부의 노사관계의 구조다. 작업장에서 노동도구주의, 불확실한 미래 속에서 선택하는 단기실리주의는 오직 하나의 것을 원한다. 말 그대로 '현금'이다. 물론 조합원들에 대한 설문조사를 통해 드러나는 것은 임금인상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다가오는 위기를 넘어설 안정적인 고용대책을 우선적 과제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확고한 대안으로 발전되지 않는 한 주요한 요구로 선택되지 않는다.
특히 대기업은 안정적인 지불능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임금인상은 물론 특별성과급 등을 통해서 일정한 물질적 보상요구를 수용하고 있다. 반복적인 물질적 보상을 통한 문제해결은 일종의 법칙처럼 정착되고 있다. 최근 S자동차에서 매각투쟁을 하였지만 그 최종적 요구는 1,000만원에 가까운 매각 격려금에 대한 기대심리로 바뀐 것으로 드러났다. 여기에 현장의 활동가들과 노조집행부는 새로운 전략에 대한 도전보다는 조합원에게 당장 가능한 결과를 가져다줌으로써 지위를 유지하려는 경향이 없지 않다. '전투적 실리주의'라는 냉소적 표현을 달리 하는 게 아니다.
대공장 노조 죽이기 VS 대공장 옹호론
대공장노조를 바라보는 눈은 매우 엇갈린다. 노동운동 안에서는 노무현 정권의 '대공장노조 죽이기'를 강도 높이 비판한다. 대공장의 고임금론 등을 강력히 유포하면서 노동조합을 통제하려 한다는 위기의식을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대공장노조 죽이기'란 말 그대로 노조에 대한 적대적인 태도의 표현이다. 만약 대공장노조를 억누르면서 중소사업장의 노조나 미조직, 비정규직 노조를 적극 옹호하고 있다면 모르지만 그도 아닌 한 이는 노조에 대한 적대감의 표시에 불과한 것이다.
대공장노조에 대한 집중된 공격에 맞서 '대공장 옹호론'을 펼치는 경향도 강화된다. 대공장의 고임금론에 대한 반박을 통해 실제 대공장의 임금이 많지 않다는 점을 증명하기 위한 노력을 벌이고 또한 현재의 연봉 수준은 잔업특근을 해야만 유지될 수 있다는 반론이 펼쳐진다. 대공장 임단투를 옹호하기 위한 노력들은 십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런 류의 반박은 설득력 있게 확산되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단연 현재 양극화되어 있는 노동시장의 구조때문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를 비롯해서 사회 심리적으로 상시적 불안상태에 놓인 다수의 노동자들에게는 대공장 고임금론에 대한 반박을 지지할 여유도 없다. 오히려 지엽적인 수준에서 '대공장노조에 대한 옹호론'을 펼치는 것은 원하는 것과 정반대로 대공장노조에 대한 공격의 빌미를 훨씬 더 많이 제공할 수도 있다.
무엇이 혁신되어야 할 것인가
필자는 대공장 노조는 죽일 대상도 아니며 그 자체로 옹호될 대상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혁신을 통해서 거듭나야 할 대상으로 생각한다. 이제 대공장 정규직 노조는 스스로 유지해온 모든 정책과 활동을 재평가함으로서 전면적으로 바꿔야 할 단계에 이르렀다. 그렇지 않으면 결코 고립화와 우경화라는 결과를 면치 못할 것이다.
이를 위해 대공장노조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첫째는 '임금정책의 전면적 혁신'이 필요하다. 과거에는 임금의 양적 인상요구가 전체 노동자의 임금 향상을 주도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오히려 임금격차의 확대 주범으로 왜곡될 뿐이다. 이제는 임금구조에 대한 전면적인 제기로 나가야 한다.
둘째는 '작업장의 혁신'이다. 작업장 혁신은 과거의 현장조직력 강화를 위한 현장활동에 대한 전면적 재고를 요구한다. 방어적 차원에서 기업의 작업장 통제전략에 맞서는 문제가 결코 아니다. 직접 부서와 간접 부서 사이에 생기는 작업성과에 따른 임금보상의 차이를 비롯한 대공장 노동자들 내부의 불평등구조, 대공장 정규직의 급격한 고령화에 따른 직무재편의 필요성, 단순히 생산성 향상에 대한 수동적 거부가 아니라 보다 능동적이고 주도적인 노동생산성에 대한 대안적 방향을 제시하지 않으면 안 된다.
셋째는 '고용전략의 전면적 개편'이다. 과거의 고용전략은 매우 단순했다. '공장 내에서의 일자리 지키기'인데, 이것은 대공장에서 빠져 나가는 일자리를 지키려는 외주화 반대 투쟁이나 해외공장의 건설에 대한 저항의 모습을 띄었다. 그러나 다른 측면에서 본다면 이것이 일관되지 않고 매우 이중적인 태도로 나타난다. 최근 쟁점이 된 불법파견을 둘러싸고도 그 일차적 책임은 불법파견을 일삼은 사측에 있지만 비정규직을 방패막이로 활용하면서 노조가 비정규직의 도입을 허용해 준 사실들을 부정할 수 없다. 또한 자동차공장들에서는 모듈화 과정의 외주화에 맞선 투쟁을 전개하지만 결국은 외주화를 인정하는 사례들이 늘고 있다. 이미 확산된 비정규직 외주 공장들의 문제는 이런 '공장 울타리에 일자리 묶어두기'로는 해결할 수 없다. 따라서 한편에서는 대공장내의 일자리 지키기를 위한 노력과 함께 산업적 차원의 고용연계성을 위한 전면적인 변화가 시급하다.
넷째는 '산업정책에 대한 전면적인 개입'이다. 이미 중소기업의 공장폐쇄와 해외로 공장이동과 같은 상황은 일반화되고 있다. 글로벌소싱 또한 마찬가지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조합이 아무리 기업 내의 임단협을 붙잡고 늘어진다고 한들 산업변동에 대응할 수 없다. 보다 확장된 산업정책에 대한 개입과 이를 통해서 전략적 대응력을 갖추지 못한다면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인한 탈노조적 경향을 방치하게 될 것이다.
다섯째는 '노조활동에 대한 전면적 혁신'이 필요하다. 이미 대공장 내부에서도 노조활동에 대한 혁신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현장활동가 조직에 대한 비판적 분위기는 매우 높다. 상당수의 조합원들이 현장활동가나 조직을 준 기득권 집단으로 간주한다. 노조 집행부는 현장조직들의 경쟁게임 속에서 오직 그 게임에 참여하는 현장활동가들만이 차지할 수 있는 자리가 되었다. 문제는 그런 현장활동가나 현장조직에 대하여 조합원들의 신뢰가 높지 않다는 것이다. 특히 대공장에서부터 상급단체에 이르는 정파활동은 과거의 민주노조운동을 발전시킨 견인차로서가 아니라 노조권력을 둘러싼 최악의 왜곡상태로 진입하고 있는 사례들을 보여 준다.
변화된 상황, 새로운 문제들
확실히 사회는 놀랄만한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추상적 현상이 아니라 구체적인 현실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고도성장의 시대에 안고 있던 문제들이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제기되고 있다.
노동 내부의 분할시대의 임금정책, 글로벌소싱이 확장된 상황에서 고용전략, 낡은 성장패러다임을 지탱해온 작업장 체계의 무력화, 기업을 넘어선 산업정책의 결정적 변화 등등. 이런 상황에서 낡은 사고방식을 가지고 노동운동을 풀어 나아가려 한다면 그것은 우매하기 짝이 없는 짓이다. 당장 이런 상황에서 대공장들이 과거와 같이 민주노조운동의 투쟁선봉대가 될 것이라고 믿고 있다면 그것은 완전한 착각일 뿐이다.
'혁신'은 누구나 얘기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누구도 '혁신'을 얘기하지 않고 있는 상황은 아닐까? 다행히도 최근 몇몇 대공장노조에서 이를 전면적으로 제기하는 흐름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을 작은 위안으로 생각한다. 더 큰 희망은 훨씬 더 많은 개별적 활동가들이 낡은 조직의 틀을 넘지 못하지만 심각하게 현재의 상황을 고민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전면화 되는 순간 대공장노조운동은 비로소 새로운 도약이 가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