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부가 2004년 9월10일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안(이하 기간제법안)'과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중 개정법률안(이하 파견법안)'을 확정하고 입법예고하였다(양자를 합하여 '정부입법안'이라 함). 노동계와 시민사회단체가 2000년에 비정규직 보호를 위한 입법청원을 한 이후 4년 만에 이루어진 것이다.
비정규직 문제의 본질
비정규직은 1997년말 경제위기 이후 신자유주의 흐름 속에서 소위 고용유연성 확대를 최우선으로 하는 정책을 추진하면서 급격하게 증가하였다. 비정규직이 전체 노동자의 절반 이상을 차지함으로써 임시적이고 예외적이어야 할 '비'정규직이 오히려 원칙적인 고용형태가 되었다. 특히 여성노동자의 경우에는 70% 가량이 비정규직이다.
비정규직은 해고제한규정의 적용을 받지 못하여 고용이 불안하다. 노동조합활동에 관심을 보였다가는 일자리를 잃을 수도 있어 노동3권을 사실상 행사하지 못하며, 나아가 동일한 노동을 함에도 임금과 기타 근로조건에서 차별을 받고 있기도 하다. 해고제한규정과 노동조합활동의 보장 및 동등대우원칙은 세계노동운동이 이루어낸 성과이지만 비정규직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이 같은 열악한 상황은 비정규직을 우리 사회에서 가장 취약한 계층으로 몰아넣고 있다. 따라서 비정규직의 문제는 단순한 노동문제를 넘어서 사회정의와 인권의 문제, 사회통합의 문제로서 바라보지 않고는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어려운 시기가 되었다.
비정규직 문제가 심각한 사회문제가 된 것은 보호를 전혀 받지 못하고 차별을 받는 비정규직의 규모가 지나치게 많아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비정규직 문제의 해결책은 과도한 비정규직의 규모를 줄이고 차별을 시정함으로써 우리 사회에 정규고용(직접고용 및 무기고용)원칙을 확립하는 방향에서 찾아져야 한다.
비정규직 확대를 획책하는 정부입법안
그러나 발표된 정부입법안은 비정규직 남용과 차별을 해소하기 위한 방향과는 거리가 멀 뿐 아니라 오히려 역행하는 측면이 있다. 비정규직 사용에 대한 문호를 대폭 개방함으로써 정규직은 더욱 축소되고 비정규직은 더욱 확대되어 고용체계 자체가 비정규직 중심으로 전환될 것으로 예상된다. 비정규직화는 취약계층에서 먼저 빠르게 진행될 것으로 여겨져, 여성계는 여성노동자 거의 모두가 비정규직화 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는 실정이다.
기간제법안은 기간제근로의 사용에 대해 아무런 제한도 없는 경우를 폭넓게 인정하고 있고, 일반적인 경우에도 3년간은 아무런 제약 없이 기간제근로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기간제근로 사용 총기간이 3년을 초과하는 경우에는 정당한 이유 없이 기간만료만을 이유로 근로관계를 종료시킬 수 없도록 규정함으로써 기간제근로에 대해 총사용기간제한방식을 도입하였기 때문에 현재보다는 상황을 개선한 것이라고 정부는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3년 이내의 기간제근로 사용을 무제한적으로 허용함으로써 정규직으로 신규채용될 자들이 대부분 기간제화될 가능성이 농후해졌다. 게다가 3년이 경과하기 전에 근로관계를 종료하거나 파견근로로 전환하거나 또는 자발적 퇴직에 의한 상당한 기간의 휴지기를 가짐으로써(해석상 계속근로한 총기간의 의미와 관련하여 많은 논란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한 보호규정의 적용을 회피하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3년 이내에 재계약이 되지 않아 해고되는 경우 현재로서는 법원에 가서 다투어 볼 여지라도 있지만 정부입법안에 따르면 법원에 가서 다투어 볼 여지조차 없어진다. 한편으로는 근로자가 3년 기간의 근로계약을 체결한 경우에는 오히려 3년이나 사용자에게 구속되는 결과가 초래되기도 한다. 그리고 3년이 초과한 경우에도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으로 전환되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기간제 근로관계가 유지되며 단지 기간만료만을 이유로 근로관계를 종료시키지 못하도록 함으로써(정당한 이유에 대한 해석이 해고의 경우와 동일하게 이루어질 것이라는 보장도 없다) 보호에 만전을 기하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파견법안은 파견대상업무를 네거티브리스트방식으로 전환하여 원칙적으로 모든 업무에 파견근로를 인정하고 기간도 3년으로 연장하고 있다. 근로자파견제도가 초래하는 간접고용으로 인한 중간착취, 사용자책임의 회피, 노조조직률의 저해 등 부정적 폐해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파견근로를 대폭 확대하려하고 있어 과연 정부가 한국 사회를 어느 방향으로 끌고 가려는 것인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노동부는 파견근로를 업종으로 제한하는 입법례가 없다고 주장하나, 오히려 파견근로의 경우에도 사유로 제한하는 입법례가 있다. 만약 업종제한을 풀려면 사유제한방식을 도입해야 할 것이다.
기간제와 파견제 중 파견제 확대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대부분 심각하게 제기하면서도 기간제 확대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덜 심각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모든 비정규직은 기간제의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고, 규모에서도 기간제근로가 압도적으로 많다. 따라서 기간제근로 문제의 해결여부가 비정규직 문제 해결의 핵심이며 이 점에서 기간제근로에 대한 확실한 해결책이 제시되어야만 한다.
차별시정절차의 한계
정부입법안은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을 시정하기 위해 명시적으로 비정규 노동에 대한 차별적 처우를 금지하고 노동위원회에 차별시정기구를 설치하여 차별을 받은 비정규근로자로부터 시정신청을 받아 시정명령을 하고, 사용자가 확정된 시정명령을 이행하지 않은 경우에는 1억원 이하의 과태료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위와 같은 차별시정절차는 지금껏 없었던 절차였기 때문에 그 자체로 긍정적으로 간주할 수 있다.
그런데 위와 같은 차별시정절차의 실효성에는 많은 의문이 든다. 노동부는 정부입법안이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원칙을 채택한 것은 아니라고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원칙은 임금의 측면에서 차별적 처우에 해당하는가 여부에 대한 가장 중요한 판단기준이라 할 수 있는데, 이를 배제하고 어떤 기준으로 차별적 처우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판단하겠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 정부입법안은 차별이 있었는지 여부에 대한 비교대상근로자를 당해 사업 또는 사업장에서 동종 또는 유사한 업무에 종사하는 정규근로자로 정하고 있다. 그러나 사용자가 업무를 구분하여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사용하는 경우에는 차별적 처우금지조항은 처음부터 적용될 여지가 없게 된다.
한편 사용자는 차별시정신청이 있는 경우에도 근로자의 근로계약기간이 끝날 때까지 기간을 끌면서 대처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리고 과태료는 시정명령이 확정된 이후에야 부과될 수 있는데, 시정절차는 사실상 5심(지노위→중노위→행정법원→고등법원→대법원)의 단계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최소한 3~4년 이상은 걸려 실효성이 의문시된다. 나아가 차별적 처우에 대해서는 벌칙조항도 마련되어 있지 않다.
차별시정절차는 한계가 있기는 하지만 현재의 제도보다는 개선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다만 제대로 작동될 것인지 여부가 전혀 불확실한 차별시정절차를 이유로 비정규직 사용을 확대해서는 안 될 것이다. 비정규직 사용의 확대여부에 대해서는 차별시정절차가 제대로 작동함으로써 비정규직에 대한 불합리한 차별이 실제로 해소되는 단계가 되어야 검토의 여지가 있을 것이다.
노사정위 공익위원안을 최저 기준으로
정부입법안의 내용 중에는 비정규직 보호라는 측면에서 현재보다 개선적인 내용도 없는 것은 아니나, 전체적으로 평가하면 비정규직의 보호보다는 비정규직 사용의 유연화에 초점을 맞춘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비정규직 남용방지와 보호를 위해서 단번에 이상적인 법안을 입법하지는 못한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현재보다는 개선된 상황을 지향하는 입법을 하여야 할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노사정위 비정규특위 공익위원안은 만족스럽지는 못하지만 여러 사정을 고려하여 고심 끝에 비정규직의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마련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노사정위 공익위원안 중에서 정부입법안에 반영되지 않거나 왜곡된 부분들이 다수 있다. 무기근로계약원칙의 천명, 기간제근로관계가 일정기간 경과 후에도 지속되는 경우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으로 간주, '복지' 측면의 차별도 명시적으로 금지, 파견근로허용대상업무와 관련하여 현행 규정을 유지하면서 합리적으로 조정하기 위하여 노사가 참여하는 별도의 기구를 마련하여 정례적인 논의를 통해 허용업종 결정, 등록?모집형 파견에 대한 대책방안 마련, 파견기간 경과 후 직접고용의제규정의 유지, 집단적 권리 및 노사협의회에 참여 보장 및 사용사업주와 파견사업주의 연대책임의 강화, 단시간 근로자의 소정근로시간 초과근로에 대한 가산임금지급 등이다. 따라서 위의 사항들에 대해서는 노사정위 공익위원안의 내용이 최소한의 기준선이 될 것이다.
다만 기간제근로의 사용과 관련하여 임시적이고 예외적인 사유가 있는 경우로 제한하는 것이 옳지만, 완전한 형태의 사유제한방식이 어렵다면 기간제근로 사용기간을 원칙적으로 1년으로 하고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사유가 있는 경우에 한하여 예외적으로 1년을 초과하더라도 그 기간 동안 기간제근로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1년 또는 허용된 기간을 초과하여 계속 근로하는 경우에는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관계로 간주하는 것이 최소한의 기준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위 방안은 기간제근로의 사용사유제한방식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현재의 상황보다는 보호를 강화하는 측면이 있다.
'유연성'이 사회 지배가치 될 수 없어
참여정부는 대통령선거과정에서 제시한 개혁과제들을 완수해야 할 책무가 있다. 국가보안법 폐지, 과거사의 진정한 청산과 민족정기의 확립, 언론개혁, 양성평등의 실현, 권력기관(법원, 검찰, 경찰, 국정원 등)의 개혁, 행정과 관료의 개혁 등등 개혁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수구보수집단의 개혁에 대한 반발이 극심하기 이를 데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노동계와 정면 대결로 가는 비정규직 관련 정부입법안을 제시하고 무리하게 강행하는 정부의 태도를 이해할 수 없다.
비정규직 문제를 어떻게 이해하고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는 사회발전방향에 대한 철학 및 전망과 관련된 것이다. 우리가 추구하는 사회는 구성원 모두가 더불어 사는 공동체, 인권과 정의가 바로서는 사회, 통합을 지향하는 사회인가? 아니면 사회구성원들이 분열되고 차별되는 사회, 무권리상태에 있는 다수의 희생 위에 소수만이 인간대접을 받는 사회인가? 경제적 효율성이나 노동유연성이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가치가 될 수는 없다. 사회구성원의 가능한 한 다수가 차별받지 않고 인간다운 대접을 받으며 살아갈 수 있는 그런 사회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