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죽거리의 70년대 고삐리를 아시나요

노동사회

말죽거리의 70년대 고삐리를 아시나요

admin 0 6,893 2013.05.12 04:34

 


bsson_01%20%281%29.jpg'바람 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한다', '이소룡 세대에게 바친다' 등 인상적인 시를 쓴 시인이기도 한 유하 감독이 이소룡 세대의 노스탤지어(향수)를 담은 자신의 세 번째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를 가지고 충무로에 돌아왔다. 

이소룡 세대의 성장영화

영화는 1978년 땅값이 오를 것이라는 부모의 기대에 따라 지금의 강남 양재역 부근인 말죽거리로 전학 온 현수(권상우)라는 소년의 성장기를 다루고 있다. 

'성장영화'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소년이나 소녀가 불안감 속에서 어른으로 커 가는 모습을 담은 영화는 많이 만들어져 왔고 이런 영화들은 대부분 어떤 사건으로 인해 어른의 세계를 이해해 가는 주인공을 통해 그 시대 젊은이의 고민을 표현해 왔다. 이런 영화들은 그 성장과정을 그릴 때 기존의 영화들과 얼마나 다른 색깔과 시점으로 관객에게 다가가느냐에 따라 그 흥행성과 작품성이 좌우되었다. 

<시네마천국>은 영화라는 익숙한 소재와 영사실이라는 낮선 공간을 적절히 사용해 어린 토토의 성장을 보여주며 '꿈을 이루려면 과거와 단절하고 세상으로 나가야 한다'는 늙은 영상기사 알프레도의 지혜를 보여줬다.

<비트>는 가족이 붕괴되는 시대를 아버지 같은 친구(유오성)와 아들 같은 친구(임창정)를 번갈아 만나며 오토바이를 통해 자신을 억압하는 것들에 돌진해 부닥치는 정우성의 모습을 보여주어 1990년대 '세기말'을 살아가는 청춘의 아픔을 그렸다. 

bsson_02_2.jpg'통행금지' 시대의 이야기

<말죽거리 잔혹사>는 잘 알려져 있듯이 유하 감독의 개인 체험을 뼈대로 해서 만들어 졌기에 영화 속에서 78-1번 버스를 타고 통학하는 '은숙이들'(지금도 양재역 부근에 있는 모 여고의 학생들을 주변에선 이렇게 부른다)이나 논두렁 옆에 있는 신설고등학교 같은 당시의 시대적 특징이나 검정색 교복, '올리비아 핫세'가 주연한 옛 영화포스터 같은 복고적인 소품들, 그리고 이소룡에 대한 남학생들의 숭배, 심야라디오 엽서사연 같은 회고적인 감성을 재현하는 데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 

이런 유 감독의 연출은 1970년대를 경험한 30대 이후의 관객에게는 향수로, 이를 신기한 볼거리로 보는 20대와 10대 관객들에게는 새로움으로 다가가며 영화에 몰입하도록 역할을 잘 해내고 있다. 이 영화는 이렇게 70년대에 대한 향수를 부풀린 후 거기에 집중된 관객들에게 다시 그 '시대'와 소년의 성장에 대해 묻기 시작한다.

교사와 선도부의 이유 없는 폭력이 난무하는 교실과 복도를 통해 억압과 폭력, 금지가 일상화된 통행금지 시대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논을 지나 집으로 향하는 70년대 '8학군' 소년소녀를 통해 우리가 얼마나 빠르게 농경사회에서 투기와 금융이 지배하는 곳으로 변했는지 돌아보게 한다.

폭력 앞에서 비굴하게 대처하다가 이를 옥상에서의 혈투로 일거에 만회한 주인공의 모습과 "대한민국 학교 OO라고 그래"라는 외침에도 불구하고 후일담에서 대학을 준비하는 재수생이 된 주인공과 여자친구의 모습에서 사회구조를 빠져 나올 수 없는 답답함이 통쾌함보다 먼저 느껴진다. 이 영화를 보며 문득 우리나라 학교에서 언제쯤 구타와 부당한 억압이 사라질지 궁금했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 8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