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사회에서는 대부분의 생산활동이 탈가족화되었으나, 재생산노동(가사노동)만은 타 활동과 구조적으로 분리되어 여전히 가족 내 여성의 몫으로 남아있다. 한편 산업화는 여성들을 가족 밖의 노동시장으로 끌어들이는 경향이 있다. 이렇게 여성들을 생산노동과 재생산노동의 이중적 책임에 묶어 두는 상황은 노동시장에서의 차별로 이어진다. 여성노동자들은 노동시장 진입부터 남성보다 어렵고, 노동시장 내에서도 저임금 노동력으로서 주변적 지위에 머물면서 빈곤에 노출되기 쉽다.
성차별적인 한국 노동시장 상황에서 가뜩이나 어려운 여성취업이 요즘은 더 힘들다고들 한다. 그리고 설령 취업이 되더라도 임시직, 일용직 등 비정규직 외에는 일자리를 구하기가 어려운 것이 IMF 이후의 우리 현실이다. 취업난과 배고픔에 허덕이다 그만 편의점에서 음식을 훔친 어느 여대생의 이야기가 언론의 주목을 받고 세간의 화제가 된 상황에는 이러한 현실이 반영되어 있는 것이다. 더 많이 일하고 적게 버는 비정규직
비정규, 하청 노동자들이 잇달아 자살하는 등 비정규직에 대한 사회적 차별이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었다. 2002년에 이루어진 어느 조사에 따르면, 비정규직 노동자는 개인적 특성과 사업체 특성이 동일할 경우라도 정규직 노동자에 비해 시간당 임금이 24% 정도 적다고 한다. 2002년의 비정규직의 월평균 임금은 96만원으로서 정규직 월평균임금 182만원의 절반 수준이다.
게다가 ‘비정규’라는 명칭이 드러내는 것과는 달리, 실제 현실에서는 비정규직이 정규직보다 더 많은 시간을 일하고 있다. 정규직의 주당 평균 노동시간은 44시간인 반면 비정규직의 주당 평균 노동시간은 45.5시간이다. 퇴직금, 상여금, 시간외수당의 경우에도 정규직 적용 비율은 각각 93%, 92%, 77%인데 비해 비정규노동자들은 10% 안팎으로 형편없이 낮다. 다시 말해서 비정규직은 정규직과 동일한 직종에서 일을 더 많이 하고 더 적게 벌고 있는 것이다.
한편 비정규직 늘어나는 과정은 노동시장에서 원래부터 불안정한 처지에 있던 여성노동자들에게 크게 영향을 미쳤다. 여성노동자들의 고용형태를 살펴보면 과거에 비해 시간제, 임시직, 일용직, 파견직 등이 크게 늘어났음을 알 수 있다. 임시직의 비율만을 보더라도, 1985년 전체 여성 근로자의 52%이던 것이 1990년 62%, 1998년에는 66%로 증가했다. IMF 이후에 구조조정 바람이 불면서 2001년에는 71%까지 껑충 뛰어 올랐다.
비정규직 ‘여성가장’ 가족
이처럼 노동시장에서 비정규직이 늘어나고 사회적·성적 차별이 방치되면서 노인 여성과 여성이 가장인 가족의 삶의 질을 극단으로까지 내모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했다.
2000년 통계청의 가구소비실태조사 자료를 분석한 어느 연구결과에 의하면, 남성가구주 가구 중에서 월소득 1백만원 미만인 가구는 25%정도인데, 여성가구주 가구는 60%가 넘는다. 게다가 여성가구주 가구 열 개 중에서 아홉 개는 소득이 2백만원 이하였다. 2000년 도시가구의 월평균소득이 238만원이라는 것을 고려한다면, 여성가구주 가구의 빈곤이 상당히 심각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여성가구주 가구의 빈곤이 노동시장의 비정규직 양산과 관계가 있다는 사실은 여성가구주 가구의 종사상 지위별 월평균 소득에 대한 분석을 통해서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월평균 소득이 백만원 미만인 가구가 상용직은 10.6%인데 비하여 임시직은 38.6%이고 일용직은 52.3%나 되는 것이다.
복지에서마저 배제된 빈곤 여성들
이제까지 살펴본 것처럼 우리 사회에서 ‘빈곤의 여성화’는 심각한 수준이다. 그리고 그 주범은 노동시장에서의 성차별과 여성의 비정규직화, 그리고 비정규직 노동자의 낮은 급여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대부분 비정규직 노동자인 여성가구주들은 최저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임금을 받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뿐만 아니라 이들은 빈곤의 완충지대여야 할 영역들, 자녀양육, 노인간병, 의료, 주거 등 시민적 권리로서 당연히 사회적으로 제공받아야 할 부분들에서도 배제되어 있어 기본생활권을 더욱 침해받고 있다.
여성은 복지혜택도 남성보다 덜 받는다. 한 사회의 복지체계는 사회보험과 사회부조의 형태로 이분될 수 있는데, 사회보험은 임금노동자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때문에 유급노동을 하지 않거나 집에서 보살핌노동을 하는 사람들, 특히 여성들이 혜택범위에서 제외되어 있다. 또, 경제활동을 하는 경우라고 하더라도 비정규직 여성근로자들은 사회보험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로 인하여 여성은 실업이나 은퇴 후에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질 가능성이 현저하게 높다. 보건복지부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자 현황자료를 통해 성별 차이를 살펴보면, 2001년의 전체 65세 이상 남성노인 중에서 기초생활보장 수급비율은 6.5%인데 비하여 전체 65세 이상 여성노인 중에서 기초생활보장 수급비율은 11.8%로서 남성의 1.8배나 된다.
그러나 이러한 수치도 빈곤 여성의 규모를 제대로 드러내는 것이 아니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을 통해 급여를 받을 수 있는 수급자는 소득이 최저생계비 이하인 사람들 중에서 부양의무자가 부재한 사람을 말한다. 그런데 실제에서는 소득이 최저생계비 이하더라도 현행법의 너무 엄격한 부양의무자 기준, 황당하기 짝이 없는 재산의 소득환산액, 승용차 기준, 추정소득 기준 등으로 제대로 수급을 받지 못하고 있다. 2002년 4인 가구의 최저생계비가 99만원이므로 앞의 [표2]에서 볼 수 있듯, 여성가구주 중에서 소득이 월 1백만원 미만인 임시직 38.6%와 일용직 52.3% 중에서 4인 가구는 거의 모두 기초생활보장 수급권 대상자이었겠지만, 대부분 사각지대에 방치되어 있는 실정이다.
사회적 기본권 확장에 사명감 가져야
시장경쟁력이 취약한 사람에게도 사회적 권리로서 생존권은 보장되어야 한다. 이는 기초생활보장법에도 명시되어 있는 바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현실에서는 가난한 사람들은 큰 병이 나면 있는 재산을 모두 탕진하거나 그마저 없어서 마냥 앉아서 죽음을 기다리는 실정이다. 이러한 상황은 건강보험 재정악화를 빌미로 최근 더 악화되었다.
게다가 현재의 건강보험은 단기 질환 위주로 설계되어 있어, 장기요양을 필요로 하는 장애인이나 노인 환자들에게는 매우 가혹하다. 여성이 남성보다 수명이 7년 이상 길지만 건강수명은 오히려 짧은 상황을 고려하면 노인의료문제는 결국 여성문제일 것이다. 그러므로 현재 의료비보다 더 많이 들어가는 간병비용을 사회적으로 보조하도록 하는 장기요양제도 도입에 대해서도 여성노동자 운동이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한편, 모자가정의 양육권에 대한 관심 또한 필요하다. 1993년 영국의 전체 모자가정 소득의 63%는 국가에서 제공하는 공공부조와 양육수당이었다. 유럽에 비하여 복지제도가 열악한 미국에서도 모자가정은 공적부조제도를 통해서 전체 평균소득의 60%를 획득하고 있다. 이웃나라 일본의 모자가정은 아동부양수당을 통하여 자신들 전체 소득의 26%를 충당한다. 그러나 한국에서 모자가정지원 제도라고는 겨우 어린이집 무료 이용 혹은 감면 혜택 정도뿐이다. 따라서 전체 모자가정의 소득 중에서 공공부조 소득의 비율은 ‘0%’에 가까울 것이나, 통계자료조차 생산되고 있지 않은 실정이다.
‘여성의 빈곤화’에 의한 모자 가족의 빈곤이 방치되면 가난을 세습적인 것으로 만들 수 있다. 그러므로 여성노동운동은 빈곤여성의 모성권 보장이 보편적인 인권의 문제라는 점을 깊이 인식하고, 모자복지 제도에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이밖에도 무수히 많은 영역에서 그렇듯이 여성에 대한 차별은 노동시장 영역뿐만 아니라 그에 따른 빈곤을 완충해야할 복지의 영역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따라서 여성노동운동은 노동 현장에서의 현안 문제뿐만 아니라 복지정책을 포함한 광범위한 영역에서 문제 개선에 대한 사명감을 가져야 할 것이다. 사회권으로서의 생존권, 주거권, 의료권, 양육권, 간병권 등의 복지권 확보의 문제는 그 중요성에 비해 이제까지 너무나 간과되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