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짱, 몸짱에 이어 이제 돈짱까지 나올 모양이다. IMF 구제금융 이후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라는 책이 나와 노동자들을 부자 아빠의 꿈으로, 또 그렇게 되지 못한 데 대한 자괴감으로 몰아넣더니, 6년이 지난 지금은 중학생이 열두 살에 1천만원을 모은 일을 동화로 쓴 『예담이는 열두 살에 1천만원을 모았어요』가 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가 됐다.
치명적인 유혹, “부자가 돼라”
최근까지도 그 후속작들이 베스트셀러 상위에 빠짐없이 등장하는『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는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제목부터 ‘돈냄새’ 풀풀 나는 이 책이 전해주는 메시지는 간단하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임금노동자로 살아서는 희망을 찾을 수 없다. 이제 뭘 하든지 돈을 벌어라, 그래서 부자가 돼라, 자본가가 돼라. 그렇지 않으면 너는 평생 스스로에게도 아이들에게도 부끄러운 ‘가난한 아빠’가 될 수밖에 없다.”
한숨부터 나오는 이 주장은 사실 새로운 것은 아니다. 놀랍게도 1백50여년전 마르크스도 똑같은 주장을 했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임금노동자는 끊임없이 착취를 당하고 있기 때문에 이 사회를 노동자 세상으로 바꾸지 않고서는 희망은 없다고 얘기했다. 그가 이 세상을 노동자가 주인 되는 세상으로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면, 이 책은 임금노동자의 삶에서 벗어나 자본가가 되라고 우리를 선동(?)하고 있다.
우리는 이런 선동이 얼마나 치명적인 유혹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경쟁’이 최고의 덕목으로 찬양 받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자가 되는 것은 수많은 이웃들을 밟고 일어서야 가능하다. 혹시 내가 승리하여 부자가 된다 하더라도, 나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더 가난해질 것이다. 결국 많은 사람들은 지금보다 더 희망 없는 삶으로 내던져질 게 뻔하다.
[ 아이들에게조차 돈벌기를 강요하는 동화책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
“왜 아빠, 엄마는 부자가 못 됐어?”
유감스럽게도 이런 유혹의 손길이 우리 아이들에게도 뻗치고 있다.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 같은 책이 노동자들에게 큰 인기를 끌자, 지난 몇 년 새 돈을 좇는 출판사들은 경쟁적으로 그것의 동화 판본이라고 할 수 있는 책들을 내놓았다.
그 중 일부는 각종 추천 도서의 수위에 오르고,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다. 예를 들어 『펠릭스는 돈을 사랑해』(이하 『펠릭스』)나 『열두 살에 부자가 된 키라』(이하 『키라』) 등의 책들이다. 이 책들은 늘 돈 때문에 싸움을 하거나(『펠릭스』) 빚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키라』) 노동자 부모 밑에서 부자가 돼야겠다고 결심한 펠릭스와 키라의 얘기를 담은 책이다. 우리가 아이들 손에 쥐어주는 이런 책들은 단순히 경제 상식을 알려주는데 그치지 않고, 훨씬 큰 그리고 매우 위험한 효과를 낳는다. 『펠릭스』와 『카라』에 나오는 다음 두 대목을 보자.
펠릭스는 부자가 돼야겠다고 결심했다. 부자가 되면 힘있는 사람이 될 것이다. 그리고 자유로운 사람도 될 수 있었다. ‘네가 누구인가는 네가 무얼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아빠가 늘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었다.(『펠릭스』)
돈이 인생에서 제일 중요하다고는 생각지 않아. 하지만 돈이 없어 궁지에 몰리게 되면 믿을 수 없을 만큼 돈이 중요해지지. 네가 원한다면 돈이 네 인생에서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보여 줄까 해.(『키라』)
부자가 되면 힘 있는 사람, 자유로운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이런 내용을 읽은 아이들이 살아갈 삶은 어떤 모습일까? 지금과는 다른 세상에 대한 상상력을 박탈당한 채 돈만 좇는 사람들로 가득 찬 세상이 되리라는 끔직한 생각이 드는 것은 나의 기우일까. 물론 그런 아이들이 일하는 노동자 부모를 자랑스러워할 리 없다.
“왜 아빠, 엄마는 부자가 못 됐어?”를 끊임없이 묻는 아이들, 상상도 하기 싫다.
이런 동화가 자본가와 노동자의 관계를 어떻게 묘사하는지를 살펴보면 이 책들의 위험성이 더 명확하게 드러난다.
『키라』를 다시 한번 살펴보자. 키라와 친구 모니카는 고용-피고용 관계다. 키라는 모니카에게 일을 시키고 돈을 주면서 “처음에는 그것이 정당하지 않은 것 같았다. 갑자기 나는 할 일이 없어졌고 모니카가 거의 모든 일을 다 했는데 돈을 모니카와 내가 똑같이 나누었기 때문이다.”라고 생각한다. 사촌 마르셀은 키라의 생각을 바로(?) 잡아준다. “일 자체에 대한 돈은 많아야 총 지급 금액의 50%야. 나머지 반은 아이디어를 내고 그것을 실행에 옮긴 용기에 대해 주어지는 거고.” 더구나 모니카는 용기가 나지 않고 자기가 판로를 개척하지 않아도 많은 돈을 받게 되니 ‘불만이 없다’고 말한다.
‘기업주는 아이디어를 낼 능력과 위험을 무릅쓸 용기가 있기에 많은 몫을 받고, 노동자는 위험을 무릅쓰지 않아도 안정된 일자리가 있으니 행복하다’는 가치관은 분명히 자본가의 사고방식이다. 아이디어와 회사 설립이 생산에 직접 참여하는 노동자들의 기여도와 맞먹는 가치를 가지는지에 대한 문제의식은 찾아볼 수 없다.
심지어 이런 가치관 속에서는 노동자들의 파업도 그 정당성이 훼손된다. “불만이 있으면 자기가 새 회사를 세우면 되지, 파업은 왜 해?” 이런 세계에서 경제를 배운 아이들은 노동자가 현실의 어려움과 고통을 호소해도, 그것은 아이디어와 용기가 없는 무능력자의 엄살에 불과하다.
희망을 찾는 동화, 동화 읽는 노동자를 기대하며
이제 아이들에게 동화 한 편도 가려 읽혀야 한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한 가지 제안을 하자. 일주일에 한 권이라도 아이들과 함께 동화책을 읽자. 아직은 위험한 동화들보다는 희망을 찾는 동화들이 훨씬 많다. 아이들과 함께 동화책을 읽으면 자연스럽게 위험한 동화들을 가릴 수 있는 데다 다른 이점들도 많다.
사회학자 김종엽은 가족이 함께 동화책을 읽을 때 세 가지 이점이 있다고 말한다. 우선 경제적으로 이점이 크다. 한 권의 책으로 온 가족이 돌려볼 수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무협지에, 어머니는 로맨스에, 아이들은 만화영화나 게임에 정신을 팔면 서로 소원해지는 것은 물론 비용도 만만치 않다. 둘째, 가족이 함께 동화를 읽으면 부모와 자녀 사이에 대화의 다리를 놓을 수 있다. 노동자 아버지, 어머니가 아이들과 얼굴을 마주보면서 일상 대화를 나누는 것은 쉬운 일도 아닌데다 쑥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애써 만든 대화는 금세 잔소리로 변하곤 한다. 자연스레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계기를 만드는 것이 필요한데 함께 읽는 동화책은 그 역할을 톡톡히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동화를 읽으면서 아이들뿐만 아니라 우리들도 어린 시절의 희망을 다시금 일깨울 수 있다. 동화책에는 갖가지 삶의 희망이 가득 담겨 있다. 우리에게는 지금 무엇보다도 희망이 필요하다. 이제 동화가 그 희망을 찾는 길잡이 역할을 할 것이다.
‘위험한 동화’가 많은데 어떤 동화를 함께 읽어야 할까? 막막하다. 다행히 이런 어려움을 해결해 줄 사려 깊은 선생님들의 모임도 있고, 동화책을 아이들과 함께 읽는 한 가지 방법을 보여준 책도 있다. 지금 당장 자신 있게 추천하고 싶은 희망을 찾는 좋은 동화책들은 너무나 많고.
가볼 만한 사이트: 책으로 따뜻한 세상 만드는 교사들(www.reearead.co.kr)
동화책 함께 읽는 방법을 보여주는 책: 차병직, 『사람답게 아름답게』, 바다출판사, 2003.
꼭 아이들과 함께 읽어 볼 만한 동화책들
채인선, 『전봇대 아저씨』, 창비, 1997.
황선미, 『마당을 나온 암탉』, 사계절, 2002.
크리스티네 뇌스트링거, 『오이대왕』, 사계절, 2002.
『하얀 코끼리 이야기』, 샘터, 1997
『세 친구 요켈과 율라와 에리코』 비룡소, 2001
『머릿속의 난쟁이』, 사계절, 2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