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에 대해 위헌 판결을 내린 후, 온 나라가 또다시 ‘공황 상태’로 치닫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과 정부는 헌재 판결에 관계없이 행정 수도 이전을 추진할 뜻을 밝혔고, 일부 노무현 대통령 지지자들은 이번 판결을 ‘제2의 탄핵’으로 규정하고 대응에 나서는 분위기다. 헌재가 스스로 판결을 번복해야 한다는 주장도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상당수 진보 언론들도 지난 탄핵 정국 때와 마찬가지로 적극적으로 ‘헌재 때리기’에 동참하고 있다.
사실 헌재 재판관들이 수구보수의 시각을 일정 부분 반영하고 있다는 것은 상식과 같은 일이다. 그들이 국가보안법에 대해서 합헌 판결을 내렸을 때 또 ‘양심적 병역 거부’에 대해서 현 제도의 손을 들어주었을 때 그것은 실감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국가보안법 폐지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헌재의 합헌 판결에 대해서 여당 의원들이나 그 지지자들은 일부 유감을 표명하긴 했지만 지금처럼 ‘헌재 탄핵’까지 들먹이며 격앙된 반응을 보이지는 않았다. 최근의 상황은 마치 노무현 대통령이 추진하고 하는 대표적인 ‘개혁 정책’이 수구보수 기득권층을 대표하는 헌재 판사들에 의해 좌초된 것 같다. 이런 분위기는 사실 매우 당혹스럽다.
[ '지방균형발전을 위한 신행정수도 건설 성공기원 범국민 물결대회' 장면 - 출처: 오마이뉴스 ]
50만명 살 행정수도, 수도권 과밀 해소 도움될까
이번 헌재 판결 이후 제일 눈에 띈 것은 환경운동연합, 녹색연합, 환경정의 등 대표적인 환경단체들이 일제히 그것에 유감을 표시했다는 것이다. 그 동안 정부는 행정수도 건설이 ‘수도권 과밀화 문제 해소’에 큰 도움이 되고, 더 나아가 ‘국가 균형 발전’의 시발점이 되는 사건이라고 홍보해왔다. 이런 내용은 그 동안 환경단체들이 강력하게 요구한 것인 만큼 그들이 이런 정부 주장에 솔깃한 것이 이해 못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모름지기 정책이란 목적에 맞는 내용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정부의 행정수도 건설·이전이 과연 이런 ‘목적에 맞는 내용’을 가지고 있을까?
우선 ‘수도권 과밀화 문제 해소'에 과연 도움이 될지 살펴보자. 정부 계획대로라면 2030년에는 새로 건설될 행정수도에 50만 명이 거주할 예정이다. 현재 수도권에는 2천3백만명이 북적거리면서 살고 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행정수도 건설만으로 수도권 과밀화 문제가 바로 해소된다는 것은 ‘오버'도 한참 ‘오버'다.
현실적으로 행정수도 건설이 추진되는 충청남도 공주시와 연기군의 위치를 살펴보면 더욱더 고개를 젓게 된다. 천안과 대전 사이에 위치한 공주시와 연기군은 대전에서 10㎞ 정도 떨어진 지역이다. 고속철도를 타면 서울에서 대전까지 1시간밖에 걸리지 않는다. 정부는 고속철도 개통 때, “사실상 대전·충남이 수도권에 편입됐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한 적이 있다. 행정수도 건설로 서울, 행정수도, 대전을 잇는 거대한 수도권축이 형성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정부의 50만명 거주 계획도 희망사항이 될지 모른다. 행정수도 이전을 반대하는 서울시정개발연구원은 발 빠르게 서울 중앙청사 및 과천청사에 근무하는 중앙부처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설문조사 결과는 ‘예상대로’다. 새로 건설될 행정수도로 “온 가족이 이주하겠다”고 답한 이들은 전체의 34.6%에 불과했다. 나머지 65.4%는 “혼자 또는 가족 중 일부와 함께 이주하겠다”고 답했다.
이런 정황을 빗대 천규석은 『쌀과 민주주의』(녹색평론사 펴냄)에서 “(이번 정부의 행정수도 이전은) 충청권의 수도권 편입만을 가속화해 에너지를 낭비하는 통근 거리와 통근 인구만 늘리고, 주5일 근무 확대로 결과적으로 행정수도를 독신 인구만 3~4일간 머무는 하숙과 자취촌으로 만들 것”이라고 냉소적으로 지적한 바 있다. 고개가 끄덕여지는 대목이다.
국가 균형 발전? 말만 앞서고 내용이 없다
환경단체 관계자들도 이런 내용을 모르지 않는다. 행정수도 이전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주장을 제시해온 한 환경단체의 경우는 정부가 충청권에 행정수도를 건설하는 것을 반대하면서, 전남권에 행정수도를 건설해야 한다는 주장을 계속 해왔다. 하지만 이들도 일단 “행정수도를 옮기는 것 자체가 큰 의미가 있다”고 결과적으로 정부 입장에 동조한다. 행정수도 이전이 국가 균형 발전에 대한 정부의 의지를 보여주는 ‘상징성’이 있고, 그에 따라 인구·경제의 상당한 분산 효과를 낳을 것이라는 예측이다.
정부도 그 동안 행정수도를 이전할 경우 새로운 수도에 대한 각 지역의 ‘접근도’가 향상돼 비수도권 지역의 지역 발전 효과가 클 것으로 주장해왔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새로운 수도에 대한 “각 지역의 접근도가 향상돼 다른 지역이 발전한다”는 얘기는 결국 현재의 ‘수도권-비수도권 종속 구조’에 더해 ‘행정수도-비수도권 종속 구조’가 추가된다는 것을 말한다. 온 나라의 돈과 인구를 서울 한 곳에서 빨아들이던 것에서 이제 서울과 행정수도 두 곳에서 빨아들일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렇게 되면 서울에 미처 진입하지 못한 지방의 돈과 인구는 새로운 수도로 유입돼 농촌 공동화에 이어 지방 도시 공동화를 가져올 가능성도 있다. 사실상 새로운 수도가 기존 수도권에 언제든지 편입될 수 있는 현 계획대로라면 수도권을 더욱더 키우는 ‘최악의 결과’로 귀결될 우려가 있다.
정부가 그간 보여주고 또 계획하고 있는 일련의 수도권 정책도 이런 의심에 더욱더 확신을 준다. 정부는 “행정수도 건설 등 국가 균형 발전의 추진과 병행해서, 수도권 관련 규제를 완화하겠다”고 공언해왔다. 대기업들이 수도권에 첨단업종 공장을 짓는 것을 허용하고, 그 동안 수도권 과밀화를 막는 역할을 했던 ‘수도권정비계획법’을 아예 폐지한다는 것이 큰 골자다. 이런 정부 계획이 현실화된다면 대기업들은 2007~8년이면 수도권에 공장을 지을 수 있게 된다. 행정수도가 건설돼 그 이전의 효과가 나타나기도 전에 수도권만 더 북적거리게 되는 셈이다.
개발주의 망령에 사로잡힌 ‘노무현식 뉴딜정책’
이쯤 되면 행정수도 건설이 진정으로 노리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대강 짐작이 된다. 바로 부동산 투자를 통한 경기 부양이다. 이것이 바로 최근 입에 오르내리는 노무현식 ‘뉴딜 정책’의 핵심이고, 그 중심에 행정수도 건설이 놓여 있다. 행정수도 건설은 국가 균형 발전을 상징하기보다는 ‘개발주의’ 망령에 사로잡힌 현 정부의 경제 정책을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노동자들이 눈여겨봐야 할 것은 행정수도 건설이 바로 ‘기업도시’ 추진과 긴밀하게 맞물려 있다는 점이다. 행정수도가 정부 차원의 부동산 투자라면, 기업도시는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 기업을 대규모 부동산 투자로 유도하기 위한 방안이다. 특히 기업에게 ‘토지 강제 수용권’을 주고, 도시 전체를 기업이 운영하도록 하는 식의 기업도시는 사실상 국토의 일부분을 기업에 떼 주는 것과 다름없는, 세계에서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방안이다. 일본, 스웨덴, 프랑스 등에 기업도시의 원형이라고 할 만한 도시들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대개 수십 년에 걸쳐 자생적으로 건설된 것이다. 기업은 기술 혁신을 주도하고, 지방자치단체는 이를 공공 서비스로 뒷받침하면서 자연스럽게 지역의 일자리 창출과 혁신을 주도하는 공간으로 탄생한 것이다.
실제로 헌재의 위헌 판결 이후 정부는 기업도시에 대한 미련을 숨기지 않고 있다. 헌재의 위헌 판결이 내리기 전날 노무현 대통령은 “충청권에 기업도시를 건설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기존 입장을 번복하고 “충청권에도 기업도시를 허용할 수 있다”는 언급을 해 관심을 모았다. 노무현 대통령이 헌재의 위헌 판결을 미리 알고 이런 얘기를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것은 공교롭게도 위헌 판결 직후 한나라당이 “행정수도 이전 대신 충청권 기업도시 유치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겠다”고 충청권 달래기에 나선 것과 일맥상통한다. 행정수도 이전이나 기업도시나 그 본질에 있어서는 같다는 것을 양쪽 다 나서서 증명한 것이다.
행정수도나 기업도시나 노동자들에게는 큰 고통을 부과한다. 행정수도에 들어갈 막대한 재원이나 기업도시에 참가할 대기업들에게 유·무형으로 지원될 특혜는 결국 노동자들의 세금으로 조성된 국가 재정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더욱이 기업도시에서는 반노동자적인 각종 경제·노동정책이 실험되고 교육·의료와 같은 공공 서비스에 대한 기업의 개입이 노골화될 것이다. 결국 그것은 기업도시 밖으로 확대될 것이다. 물론 정부나 기업들이 약속한 지역의 일자리 창출이나 국가 균형 발전이 이루어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 애초 기업들은 부동산 개발 이익을 염두에 두고, 온갖 특혜가 주어지는 기업도시 개발에 뛰어들었다. 당연히 그들 기업들은 개발 이익이 소멸하면 언제든지 빠져나갈 게 뻔하다.
노무현 정부, 초석부터 다져라
사실 진정한 국가 균형 발전은 행정수도나 기업도시와 같은 대도시를 지역에 개발하는 방식으로 가능하지 않다. 그것은 ‘지방 분권’으로 각 지역이 동등한 자치와 주권을 행사할 때 비로소 가능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결코 수도를 이전하고 몇 개의 중앙 정부기관과 그 산하단체를 지방에 분산시키는 것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꾸준한 정치·경제·사회·문화적인 여건이 조성될 때에야 비로소 가능한 일이다. 1995년 지방자치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이래 10년 가까이 됐지만, 여전히 우리나라의 지방 분권 수준이 미약한 현실은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역설적으로 말해준다.
헌재의 위헌 판결의 핵심은 “행정수도 이전은 아주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국민들의 동의를 구하는 절차를 꼭 거쳐야 한다”는 충고 이상은 아니다. 그것을 주장하는 과정에서 논란의 여지가 있는 생소한 법 이론이 등장하기는 했으나, 현행 헌법 체계를 인정하는 한 그 헌재의 한계 역시 우리가 안고 가야 할 짐일 뿐이다. 더구나 결코 정부에 등을 돌리고 있다고 볼 수 없는 방송사들조차도 국민 과반수의 여론이 “헌재의 판단에 수긍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지 않은가.
나는 이번 기회에 노무현 대통령과 그 지지자들이 좀더 냉철하게 상황 파악을 했으면 한다. 이미 노무현 대통령은 2년을 허비했고, 이제 뭔가 새로운 것을 벌이기보다는 수습을 해야 할 때이다. 자신을 대통령으로 세운 우리 국민들의 개혁에 대한 의지가 다음 정권에서도 계속 실현될 수 있도록, 그 조건을 만드는 데 자신의 역할을 한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가 균형 발전 역시 그 중 하나이다. 지방 분권이 가능하기 위한 정치·경제·사회·문화적 여건을 차근차근 조성하는 것이 눈에 띄지는 않을지라도 행정수도 이전과 같은 ‘이벤트’보다 훨씬 더 필요한 일이다. 더구나 그것은 더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물론 노무현 대통령과 그 지지자들이 이런 사실을 인정하는 데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럴 때일수록 우리 노동자들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정부와 정치인, 지식인들의 감언이설에 수도권에 살고 있는 노동자들과 비수도권에 살고 있는 노동자들이 감정적으로 서로 쌍심지를 켜는 사이에, 그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에게 돌아올 게 뻔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