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문제는 현실의 문제,

노동사회

역사의 문제는 현실의 문제, <자전거>

admin 0 4,547 2013.05.12 05:33

chaplin_01_0.jpg지난 2월13일 극단 목화의 <자전거>가 막이 올랐다. 극단 목화의 연극을 처음 접한 것은 1998년 <천년의 수인(囚人)>이라는 작품에서였다. <천년의 수인>은 80년 광주를 소재를 다루고 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극단 목화(연출 오태석)의 주된 연극 모티브는 우리 역사였다. 연출가 오태석은 우리 역사라는 커다란 테두리 속에서 전쟁과 이념의 문제를 전면에 부각시키고 있었다. 

민족의 질곡이 깊이 베어 있는 생활풍경

그런데 왜 연극 제목은 <자전거>일까? 연극에서 면사무소 직원 윤 서기가 타고 다니는 ‘자전거’가 등장한다. 경상도의 한 면사무소에서 근무하는 윤 서기(이명호)는 42일전 밤 우연히 겪게 된 사건으로 몸져 누었다가 회복하여 자신의 결근계를 작성하게된다. 결근계 작성을 위하여 동료 구 서기(이도현)와 그날밤의 여정을 되밟으며 낱낱이 회상하는 과정에서 현재의 윤 서기와 42일전의 그의 행적이 시종 중복되면서 작품이 진행된다. 

이런 윤 서기의 주된 체험내용 중 하나는 6·25때 부역으로 인해 반동분자로 몰린 아버지와 그 과정에서 살아난 당숙의 이야기이고, 다른 하나는 산골짜기에서 외롭게 살아온 문둥이 부부와 이들이 입양시킨 아이들의 이야기다. 이밖에도 자전거를 타고 밤늦게 읍내에서 돌아오다가 웅덩이에 빠져 죽은 할아버지의 이야기, 인민군이 물러가고 수복할 때 자전거에 태극기 꽂고 달려온 이야기, 밤중에 황소가 우리를 뛰쳐나와 달리는 바람에 혼비백산한 이야기 등이 전개되고 때로는 죽은 사람의 모습이 환영처럼 나타난다.

이처럼 <자전거>는 연출자의 주된 관심사가 집약되어있는 부분과 묘사가 돋보이는 부분, 그리고 의미와 구성상의 완결성이 돋보이는 부분을 뽑아 오태석의 연극 세계를 한눈에 알아 볼 수 있도록 구성했다. 특히, 오태석 특유의 연극이 갖고 있는 비주얼(visual)한 요소는 이런 문제를 한꺼번에 해소하기 충분하다. <자전거>의 처음과 끝 부분에 나오는 ‘등기소 화재 장면’은 그 하나만으로도 오태석 연극의 예술적인 측면으로까지 평가받을 수 있을지 모른다.

chaplin_02_0.jpg역사의 문제는 현실의 문제

연출가 오태석의 관심사를 보여주고 있듯이, <자전거>는 우리말의 아름다움(경상도 방언)과 관습,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생명력을 잃지 않는 민중들, 일제시대부터 해방전후의 이데올로기 갈등, 현대사의 아픔을 온몸으로 끌어안고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무대 위로 끌어 올렸다. 실제로 오태석의 연극 <자전거>는 지금까지 분단을 소재로 한 작품 가운데 단연 연극사의 한 획을 긋는 작품일 지도 모른다. 

이 연극의 이야기를 풀어 가는 주요한 소재는 ‘자전거'였다. 순박한 면사무소 직원 윤 서기가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마을 사람들을 만나고 돌아다니는 모습은 흡사 전원일기를 연상케 한다. 전원일기에 등장하는 김 회장의 자전거는 누구나 한번쯤 동경해 보았던 우리들의 어릴적 시골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다른 한편으로 이것은 현대인들의 무미건조한 삶에 대한 도전이다. 하지만 전원일기의 자전거도 윤 서기의 자전거도 지금의 현대 사회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윤 서기의 자전거는 어디로 갔을까? 극단 목화의 다음 작품은 <백마강 달밤에>다. 오태석은 또 어떤 신선함을 보여줄까?

  • 제작년도 :
  • 통권 : 제 8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