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가지 색깔의 ‘교양’

노동사회

일곱 가지 색깔의 ‘교양’

admin 0 3,507 2013.05.12 05:23

몇 해 전 만해도 결혼식에 가서 점심을 먹게 되면 으레 갈비탕정도였지만, 최근 들어서는 뷔페식사가 인기를 얻고 있는 것 같다. 커다란 양은대접과 공깃밥, 서너 가지 반찬이 곁들여진 식탁에 익숙한 우리네에게 테이블마다 으리으리하게 차려진 뷔페식단은 보는 것만으로도 포만감을 느끼게 해준다.

서점에서 『7인 7색 21세기를 바꾸는 교양』을 집어 들었을 때 느낌은 마치 잘 차려진 뷔페식단을 마주한 느낌이었다. “‘교양’이란 무엇인가? 나와 세계의 관계를 올바르게 설정하고 나를 둘러싼 세계를 바꿔나가는 힘의 지적 토대야말로 교양의 21세기적 정의다”라는 광고문구는 식욕을 더욱 자극했다. 그렇다면 박노자, 한홍구, 홍세화, 하종강, 정문태, 오지혜, 다우드 쿠탑이 들려주는 21세기를 바꾸는 교양이란 무엇일까?

21세기의 ‘교양’을 배우다.

『한겨레 21』이 창간 열 돌을 기념해 마련한 연속강좌의 내용을 정리해서 출간한 이 책은 강연회의 형식을 그대로 옮겨와 대화체 형식으로 구성되어 읽기에 부담이 없다. 다양한 메뉴에 입에 쫙쫙 달라붙는 맛이라고나 할까. 강좌의 사회를 맡은 김갑수(방송인)씨의 재치 있는 진행과 방청객들의 질문까지 곁들여 있어 마치 강연장에 직접 있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귀화한 한국인, 한국인보다 대한민국에 대해 더 잘 아는 박노자 교수는 「복제된 오리엔탈리즘과 한국의 근대」라는 주제로 오리엔탈리즘에 얽힌 이면과 우리가 쉽게 사용하고 있는 ‘전근대적’이라는 용어에 대한 명쾌한 정의를 내려준다.

한홍구 교수는 「좌절의 역사, 희망의 역사」를 통해 근대사를 통해 한국의 이면을 재조명한다. “묻지 마 다쳐”로 대변되어온 근현대사에서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할 것을 우리에게 주문한다. 새만금 개발이 있기 몇 년 전 시화호 문제가 있었음에도 집단 기억상실증에 걸리기라도 한양 망각해버리는 세태를 꼬집어 주기도 한다.

홍세화 『한겨레』 기획위원은 「한국사회에서 진보적으로 산다는 것」에서 진보와 보수의 개념은 일반인들이 이해하는 것과 다른 방향을 가지고 있고, 한국사회라는 구체적 현실 속에서 진보냐, 자유주의 보수 세력의 개혁이냐 하는 문제는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느냐, 수용하느냐로 판단할 수 있다고 명쾌하게 정의 내려준다.

하종강 소장은 「너희가 노동문제를 아느냐」를 통해 이른바 비인기종목인 노동문제에 대해 우리가 지금까지 노동조합, 노동운동, 노동문제에 대해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는 권리를 봉쇄당한 채 살아왔음을 지적한다. 최근 쟁점이 되고 있는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서도 “아프냐, 나도 아프다”라는 드라마 대사를 인용해 해법을 제시한다. 대기업 노동자들이 영세 하청업체 비정규직 노동자의 고통에 대해 “아프냐? 나는 전혀 안 아프다”는 태도를 유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정문태 국제분쟁 전문기자는 「전선취재 17년의 비망록」 강의를 통해 통제된 언론이 방송하는 폭력의 미화, 그것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 수밖에 없는 사람들, 그래도 진실을 위해 뛰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영화배우 오지혜씨는 「시대의 무당, 딴따라를 말한다」에서 대중에 대한 파급력이 막강해진 딴따라들의 시대적 사명을 요구하고, 대중들 역시 ‘생각이 없다’는 편견을 버려줄 것을 요구한다. 덧붙여 문화의 상업성만을 탓하지 말고, 수용자 운동도 필요함을 역설한다.

7인 가운데 유일한 외국인인 다우드 쿠탑 팔레스타인 알쿠드스 교육방송국장은 「‘살람’ 평화로 가는 길」 강좌에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중 어느 곳이 테러집단으로 보이는 지를 묻는다. 아랍계열 팔레스타인? 언제나 이스라엘을 공격하는 팔레스타인? 미국의 지원을 등에 업은 시온 기독교 이스라엘? 다우드 쿠탑의 이야기를 들으면, 모든 게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된다.

책을 덮으며 ‘교양’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물어본다. ‘교양’이란 ‘교양없음’을 비웃는 지식이다. 7인이 지식인이 들려주는 거침없는 이야기를 통해 ‘교양없음’을 격파하는 유쾌한 시간이 되길 바란다. 홍세화, 박노자 외 짓고, 한겨레신문사 냄. 1만원
 

  • 제작년도 :
  • 통권 : 제 9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