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제도의 결함과 참여민주주의 결핍이 낳은 '탄핵'

노동사회

법.제도의 결함과 참여민주주의 결핍이 낳은 '탄핵'

admin 0 5,362 2013.05.12 06:14

탄핵이 가결되기 이전까지 한국에서 민주화로의 이행과 공고화에 대한 학계의 평가는 상대적으로 낙관론이 지배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최초의 직선 민간 정권인 김영삼 정부에서 김대중 정부로의 여에서 야로의 평화적 정권교체도, 김대중 정부에서 노무현 정부로의 정당 재집권도 순탄하게 이루어졌다. 한국 민주화 경로의 전망과 관련하여 낙관주의를 확산시키는데 커다란 기여를 한 것은 소위 시민사회 패러다임의 부상이었다고 판단된다. 붉은 악마, 노사모, 촛불시위, 대선에서 보수 야당의 패배, 반전시위 등 최근의 경험들은 한국의 시민사회가 전례 없이 역동적 건강함을 유지하고 있는 유력한 근거로 예시되었다.

그렇지만 3·12 대통령 탄핵가결은 한국에서의 민주화 논의와 관련된 기존의 낙관주의적 해석에 근본적 문제제기를 던져주었다. 헌정과 관련하여 중대한 문제들을 제기한 이번 탄핵 사태의 원인은 정치학적으로는 정치제도적 결함이라는 차원에서 규명할 수 있으며, 그것이 민주주의에 미치는 영향은 지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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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 20일 광화문에 15만명이 모여 탄핵반대 촛불을 밝히고 있다.   - 출처: 노동과세계 ]

대통령과 거대야당의 극단적 대립

주지하다시피 대통령제는 대통령과 의회라는 두 제도에 동등하게 국민주권을 위임하는 것에 기초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대통령제하의 권력게임의 룰은 항상 대통령과 다수당의 당적이 다른 분점정부(divided government) 또는 이중의 정통성(double legitimacy)을 낳을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11988년 13대 총선 이후 집권 여당은 한 번도 과반수 이상의 의석을 확보하지 못하였고, 그 후 여소야대 국회는 이변이나 예외적 현상이 아니라 고정된 선거패턴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민주화 이후 대통령제하의 분점정부 현상은 비단 우리만의 일이 아니었다. 미국의 경우에도 1980년부터 98년까지 열 번의 선거 중 아홉 번의 선거가 분점정부를 초래할 정도로 분점정부는 일상화된 상황이 되었다. 일반적으로 분점정부 상황은 정치적 '대치와 교착'을 초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왜냐하면, 분점정부하에서의 각 정당은 다음 선거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 의회와 행정부 중 자신들이 장악한 영역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여 다른 편의 정책 주도를 저지하는 경향이 강하며, 특히 이러한 상황에서 점차 강화된 당파성은 결국 정부의 좌초를 촉발하기 때문이다. 

물론 분점정부 상황이 자동적으로 대통령 탄핵으로 이어진 것은 아니다. 한국에서의 문제는 분점정부 상황에서 촉발되기 마련인 교착과 파국을 해결할 어떤 제도나 장치도 작동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3당통합이나 의원 빼오기 등 과거의 낡은 방식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음은 분명하였으나 여야 정당간의 협력적 거버넌스(Governance)와 같은 새로운 국정운영 모델은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검찰수사로 촉발된 여야 사이의 정치갈등은 첨예하였고, 대통령의 의회 설득전략은 명백히 한계를 드러냈다. 어쩌면 탄핵은 여야 정당간 수의 균형이 깨진 파국적 교착상태에서 선거를 앞두고 거대 야당연합이 구사할 수 있었던 합리적 선택이었을 수도 있다. 

왜곡된 여론에 기반한 '제왕적 의회'

탄핵을 감행하였던 야3당의 행동은 정치적 여파를 고려하지 않은 집단적 광기나 일시적 흥분으로 설명할 수 없으며, 오히려 비용과 편익을 충분한 고려한 정치적 계산에 근거한 합리적 행동으로 이해하여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왜냐하면, 16대 국회에 있어서 여론, 나아가 시민사회의 이해와 요구의 반영은 정책결정의 중요한 고려 요소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16대 국회에 있어서 탄핵사태는 여론과 동떨어진 최초의 결정이 아니라 '왜곡된 결정의 누적된 합이자 임계점'으로서 이해해야 한다. 

노무현 정부의 출범 이래로 여론을 무시한 채 야3당 공조가 주도하였던 독단적 의정운영은 일상적인 것이 되었다. 따라서, 그들의 집단 행동은 계산되지 않은 비이성적 감정의 분출이 아니라 조중동으로 상징되는 압도적 언론자원을 동원하여 충분히 반발여론을 잠재울 수 있다는 과거 경험에 근거한 정략적 사고의 산물이었다. 그런 점에서 "보수적 언론이 형성해놓은 공론영역의 왜곡으로 인해 '왜곡된 여론'이 '실제의 여론'처럼 받아들여져 보수정치 세력이 탄핵정국에서 오판하게 됐다"는 지적은 타당한 것으로 보인다. 

탄핵 사태를 이해함에 있어 시민사회와 정치사회의 분리와 대립이라는 갈등적 현상을 주목하는 것도 대단히 중요하다. 다음의 표가 보여주는 것처럼 노무현 정부의 출범 이후 야당이 제기한 정치 이슈들은 시민사회의 여론시장에서는 항상 소수였지만 의회에서는 압도적 다수로 통과되었다.

이러한 분열과 긴장은 두 가지의 구조에서 비롯되었다. 하나는 보수와 극우만을 대표하는 정치적 대표체계의 구축이다. 직접적으로 그것은 서민과 노동계급의 이익 및 요구가 정치적으로 대표되지 못하는 '노동없는 민주주의'를 지속시킨다. 가까운 예로 이러한 보수독점의 정치적 대표체계 때문에 한칠레 자유무역협정, 비정규직 문제 등은 시민사회에서 분명한 사회적 균열로 존재하나 정치사회에서 주요한 아젠다로 취급받지 못하여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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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점에서 보다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다른 하나는 정치사회와 시민사회의 분리가 대중적 기반이 없는 엘리트 과두체제의 특성을 반영한 것이라는 점이다. 무릇 정당은 사회적 균열에 기초를 둔 아래로부터의 대중동원과 참여를 통해 정치 엘리트들의 보수적 안주를 막고, 사회의 변화와 요구에 상응하도록 대표의 범위를 확장하는 기제로 작동한다. 이 과정에서 정당이든 정치 엘리트든 자신의 정치행위의 이론적ㆍ이념적ㆍ정책적 근거를 확고히 하도록 자극을 받고 행위의 규범적 정당성에 대한 자극도 강해지도록 압박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이번 탄핵사태는 시민사회의 압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정치사회 역시 특정 조건하에서는 대통령제에서와 마찬가지로 과도한 권한을 행사하는 제왕적 의회로 전락할 수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아울러 책임성(accountability)의 부재, 즉 선출된 대표가 제대로 공직을 수행하는지 감시ㆍ감독하고 그에 제재를 가할 수 있는 다양한 실천적, 제도적 방법들이 결여되었으며, 여기에 관여할 시민들의 권리가 심각하게 제약되어 있다는 사실을 웅변적으로 보여주었다. 대통령 탄핵이라는 사안의 중대성에도 불구하고 탄핵의 발의와 가결, 헌법재판소의 심의와 판결의 전 과정에서 시민이 참여할 수 있는 어떤 법적, 제도적 수단도 주어지지 않았다. 헌재 판결 때까지 침묵하고 있으라는 보수언론의 주장에 맞서 시민이 행사할 수 있었던 유일한 권리는 촛불집회뿐이었다. 그렇지만 촛불시위와 같은 초보적인 시민권 행사마저 현행법에서는 불법행위로 금지하였다. 그런 점에서 오늘날의 탄핵사태는 단순히 야당의 무모한 선택에 기인하는 것만이 아니라 한국민주주의가 안고 있는 제도의 근본적 결함과도 관련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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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탄핵 찬반이 총선 쟁점으로 부각되어 다시 한번 정책 선거 실현이 무산되고 있다.  - 출처:민주노동당 ]

참여민주주의 못 따라가는 법제도

선거법 위반 시비로 촉발된 이번 탄핵사태의 직접적 원인은 제도적 모호함에 있을 수 있다. 탄핵의 명분으로 작용하였던 대통령의 선거운동 논란은 모호한 법적 규정과 실제 현실과의 괴리에 근거하고 있다.

「정당법」 6조(발기인 및 당원의 자격), 「국가공무원법」 65조(공무원의 선거활동 금지),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방지법」 58조(정의)에서는 대통령의 정당 가입 및 통상적인 정치활동을 허용하고 있다. 그러나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방지법」 60조(선거운동을 할 수 없는 자)와 85조(금지된 선거운동의 행위)에서는 정당활동이 허용된 공무원이라 하더라도 직접적인 선거운동만이 아니라 선거에 관여하는 간접적 행위마저 포괄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요약하자면, 「정당법」은 정당의 지도자로서 대통령의 정당가입 및 정치활동을 보장하고 있으나 「선거법」은 모든 형태의 관여나 개입을 금지하고 있다. 정리하자면, 정치활동과 선거활동을 엄격히 분리하고 있는 모순된 법적 규정이 탄핵논란을 촉발하였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이번 총선에서 제기된 대통령을 비롯한 공직자의 정치활동 혹은 선거중립의 내용과 범주에 대한 논쟁은 탄핵의 대상이 아니라 학계와 정치권이 중장기 정치개혁의 아젠다로서 진지하게 토론해야 할 주제였다. 현행 선거법과 정당법의 규정은 상충될 뿐만 아니라 민주화 이후 변화된 사회현실을 반영하고 있지 못하였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의 경우, 보다 정확하게는 앞선 모든 대통령들은 아무런 제약없이 정당활동과 정치활동을 수행하였고 암암리에 다양한 방식으로 선거활동을 지원하였다. 국세청이나 안기부 등 국가기구를 동원한 정치자금의 조달과 사정당국을 앞세운 인위적 정계개편의 정점에는 항상 대통령이 있었고, 검찰의 독립이 선행되지 않은 상황에서 선거법은 무용지물이었다. 그렇지만 몇 차례의 정권교체, 지방자치제도의 정착, 시민의식의 성장 등 제반 여건의 변화로 이러한 법과 현실의 괴리는 더 이상 가능하지 않게 되었다. 요약하자면, 탄핵 사태의 이면에는 관권선거로 상징되는 규제일변도의 법적 제약의 한계와 이러한 정치제도 전반을 정당정치와 참여정치에 조응하는 방향으로 전환하여야 한다는 시대사적 요구 사이의 충돌이 잠재하고 있었다. 

한국민주주의 성과와 한계 동시에 나타나

탄핵사태 이후의 한국정치사의 흐름은 한국민주주의의 성과와 한계를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탄핵이 발의되고 가결되기까지의 72시간 동안에 국민들에게는 이 과정에 관여할 법적 수단이나 제도적 통로가 아무것도 주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헌법재판소의 최종 판결이 있기까지 최장 6개월 동안 시민의 권한은 유보되었다. 탄핵은 탄핵 이후 한국민주주의의 이중 과제를 암시하여 주고 있다. 

하나는 정당정치의 복원을 통한 대의민주주의의 내실화이다. 이번 탄핵사태는 시민사회의 이해와 요구에 조응하는 민주적이고 합리적인 정당체계의 구축이 얼마나 중요한 과제인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아울러, 대통령과 의회 사이의 정책경쟁, 타협의 정치문화, 민주적인 의사소통 수단의 확대가 시급하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었다. 

보다 중요한 두 번째 교훈은 참여민주주의의 확대이다. 능동적 시민은 민주주의의 가장 눈에 띄는 요소이다. 모든 정권들은 지배자와 공적영역을 갖고 있지만, 민주적인 정권만이 지도자를 선출하고 선출된 지도자들에게 책임을 묻는 시민들을 갖고 있다. 탄핵의 최종적 결정이 헌법재판소가 아니라 국민에게 부여됐더라면, 국민투표ㆍ국민소환ㆍ국민소송의 폭넓은 권한이 시민들에게 위임되었더라면, 헌정사에 비극적 후유증을 남긴 이번 탄핵사태는 아예 발생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공무원을 비롯하여 시민들의 정치적 의사표현이 보다 온존하게 표현될 수 있는 정치환경이었다면 선거법 시비나 촛불집회의 성격을 둘러싼 소모적 논쟁은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탄핵의 법률적 책임과는 별도로 노무현 정부의 정치적 과제 나아가 한국민주주의의 역사적 과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참여정부라는 슬로건에 걸맞게 시민참여의 원리와 철학을 발전시키고, 정책과 모델을 개발해야 한다. 그것만이 비극적 사건을 슬기롭게 마무리하는 방도일 것이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 8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