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복지운동의 거버넌스 유형연구

노동사회

지역복지운동의 거버넌스 유형연구

admin 0 6,533 2013.05.12 05:55
 

1.사회복지와 지역시민운동

사회복지는 루빈(Rubin)의 언급처럼 사회의 부(wealth)와 권력(power)을 보다 공정하게 분배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활동이다. 즉 사회복지는 권력에의 참여를 통해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고 보장함으로써 사회의 공공선을 이루어내는 이념이자 행동을 의미한다. 이러한 관점은 궁극적으로 사회복지 및 그 사회의 하나의 주요 행위자인 시민이 사회정책의 형성과 집행에 참여해야 함을 알려준다. 왜냐하면 첫째, 사회복지는 권력관계가 균형을 이룰 때 가장 잘 실현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고 둘째, 사회정책에 대한 시민참여가 민주주의의 원리를 실현하는 가장 근본적인 실천이기 때문이며 셋째, 사회정책 분야야말로 그 사회의 가치분배 및 시민들의 삶과 밀접한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민들의 사회정책에 대한 참여는 항상 가능한 것이 아니라 시민들이 사회정책에 참여할 힘과 조직을 가지고 있을 때 가능하다. 즉 사회복지의 발전은 시민이 사회정책에 참여할 권력을 가지고 실질적으로 사회의 부의 분배에 참여할 때 가능한 것이다.

이상의 관점에서 볼 때 한국의 사회복지는 90년대 이전까지는 시민들의 참여 없이 정부주도로 결정되어 왔다. 권위주의적 군사정부 시대에는 부의 양적 확장에 치중함으로써 누가 부를 분배할 것인지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분배할 것인지의 문제는 간과되었다. 그러나 1987년 민주화 투쟁 이후 90년대를 거치면서 시민운동은 사회복지 정책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특히 90년대 중반 이후에는 사회복지제도와 그 논의과정 및 정책결정 과정에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새로운 정치형태가 뚜렷하게 나타났다. 국민건강보험법의 제정과정, 의약분업 문제, 유아교육 일원화 논쟁, 아동복지법, 사회복지사업법의 개정, 기초생활법 제정 운동 등은 그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한국의 사회복지정책은 90년대 중반을 거치면서 시민운동의 영향력이 반영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거버넌스(governance)'는 시민참여를 통해 사회복지가 결정되는 일종의 정책결정모형이다. 따라서 본 연구는 한국의 현 시점에서 거버넌스에 대한 연구가 어느 때 보다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거버넌스에 대한 연구는 민주화와 지방자치제 이후 한국의 사회복지의 영역과 실천방법을 확장하고 시민운동의 새로운 방향과 방식을 논의하는데 기여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본 연구가 인천이라는 특정한 지역사회를 분석대상으로 삼은 이유는 무엇인가? 우선 지역사회에 초점을 둔 이유는 중앙이 아니라 지역차원에서 제기되는 사회복지적 요구를 고려할 필요성이 점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사회복지에 대한 대부분의 연구들은 중앙차원에만 초점을 두고 이루어진 경향이 있다. 하지만 지방자치 이후 지역사회의 중요성이 커졌고 특히 지역주민의 요구가 점증하고 구체화됨으로써 사회복지도 이에 대응해야 할 필요성이 증가하고 있다. 그리고 특히 본 연구가 다른 지역이 아니라 인천지역을 선택한 이유는 인천지역이 갖고 있는 복합적 성격 때문이다. 인천지역은 수도권이고 대도시이면서 동시에 시민운동과 노동운동이 발전된 지역이다. 반면 인천지역은 이동인구가 많고 사회복지 수준이 다른 대도시에 비해 매우 낮다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지역주민의 불만과 욕구가 높고 지역사회복지가 무엇보다도 필요한 도시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인천의 복잡성은 한국의 사회복지 연구에 많은 통찰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이런 관점에서 본 논문은 인천지역의 판공비 공개운동, 인천의제21, 수돗물 불소화운동 등 세 가지 거버넌스 사례를 분석대상으로 삼았다. 세 가지 사례는 상이한 거버넌스 유형과 시민운동의 실천전략을 가장 잘 보여 줄 것으로 기대되었기 때문이다.

2. 지역복지운동과 거버넌스

본 연구의 목적은 지역복지운동을 분석함으로써 거버넌스 유형과 특징을 고찰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거버넌스란, 사회적 가치 분배 방식으로서 이해관계에 있는 관련 행위자들이 정책결정과정에서 상호 영향력을 행사하여 공공정책을 만들어내는 정치운영 방식을 의미한다. 이를 위해 본 연구는 거버넌스의 변수를 지역복지운동의 권력(power)과 정부와 지역복지운동 간의 이해관계(interest relations)로 상정하고 두 변수의 요인을 설명하였다. 권력개념은 자신의 의지와 목표를 관철하는 영향력으로 정의되며, 조직화 개념을 통해 분석지표를 도출하였다. 본 논문은 조직화를 조직구조(회원, 조직운영), 집합적 행동(아젠다, 운동방식), 전문성(정책생산능력, 시민사회교육) 등의 세 가지 요인으로 설정하고 이 범주에서 권력관계를 논하였다.

거버넌스를 정부와 시민운동간의 관계, 특히 시민운동의 권력과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논하려는 이유는 시민운동과 정부간의 권력관계와 이해관계가 거버넌스의 핵심요인이기 때문이다. 특히, 시민운동의 권력은 거버넌스의 성격과 유형을 규정하는데 결정적이다. 시민운동은 거버넌스의 참여자중에서 기존 질서를 바꿀 수 있는 가장 중요한 행위자이고 공동체의 형평성 있는 분배를 지향하며, 이들이 활동하는 영역은 주로 인간의 기본적인 삶과 관련되며, 그렇기에 억압적 또는 권위주의적 정치체제를 민주정치체제로 변화시키려는 활동을 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거버넌스에서 시민운동을 중심으로 권력관계를 규명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편, 이익개념은 한 집단이 가치를 특정 방향으로 움직이려는 요구로 정의되며, 본 논문은 이익의 공유가능성과 대립을 분석지표로 상정하였다. 여기에서 공유 가능한 이익의 해결은 비영합게임(non zero-sum)으로서 협력으로 귀결되고 대립되는 이익의 해결은 영합게임(zero-sum)으로서 갈등으로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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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두 요소의 함수관계에 따라 거버넌스는 갈등적 거버넌스, 협력적 거버넌스, 유사거버넌스로 유형화된다. 첫째 갈등적 거버넌스(Ⅰ)는 시민운동의 권력이 강하고 이해관계가 대립적인 상황에서 형성되는 것으로서 시민운동이 집합적 행동을 통해 정책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방식이다. 둘째, 협력적 거버넌스(Ⅱ)는 시민운동의 권력은 강하지만 갈등적 거버넌스와는 달리 상호 이해관계가 공유가능한 것으로서 대화와 타협을 통해 협력적으로 정책결정이 이루어지는 방식이다. 셋째, 유사 거버넌스(Ⅳ)는 협력적 거버넌스와 마찬가지로 이해관계는 일치하지만 시민운동의 권력이 취약하여 비록 정부의 정책결정에는 참여하지만 타협보다는 순종과 묵인을 통해 정책결정이 이루어지는 방식이다.

3. 사례분석과 지역복지운동의 거버넌스 전략

본 연구는 거버넌스 유형 중에서 갈등적 거버넌스와 협력적 거버넌스를 연구대상으로 선정했다. 그 이유는 시민운동의 권력이 강할 때 관련 행위자간의 상호 영향력 행사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두 유형의 대표적인 지역복지운동의 거버넌스 사례는 판공비공개운동과 인천의제21이다. 한편 수돗물 불소화운동은 갈등적 거버넌스가 협력적 거버넌스로 전환된 사례로서 거버넌스 특징뿐만 아니라 전환의 전략을 잘 드러냈다는 점에서 연구사례로 추가했다.

판공비 공개운동은 예산감시운동으로서 판공비를 전용하고자 하는 시정부 또는 구청과 시민들의 재산권과 예산감시라는 차원에서 접근한 지역복지운동 간에 이해관계가 대립한 아젠다였다. 한편, 조직화 역량이 높은 인천연대가 이 운동을 주도함으로써 지역복지운동의 조직구조와 집합적 행동이 매우 높은 수준에 있었으므로 강한 권력을 갖고 있었다. 따라서 판공비 공개운동은 갈등적 거버넌스의 전형을 보여주었으며, 결국 물리적 수단을 통한 지역복지운동의 요구가 관철됨으로써 종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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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제21은 정부, 시민단체 그리고 기업이 참여한 지역사회개발운동으로서 환경과 일상생활 문제를 아젠다로 삼았다는 점에서 이해관계가 어느 정도 타협가능한 것들이었다. 한편 지역복지운동이 그동안 축적된 조직화에 기반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약한 권력을 가지고 있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의제21에 참여한 지역복지운동 진영이 강한 권력을 가졌다고 할 수도 없는데, 그것은 시민사회 진영의 주요인사가 조직적이 아닌 개별적인 자격으로 참여했다는 점과 참여한 시민단체가 집합적 행동 능력이 높지 않다는 점에 있다. 하지만 의제21은 법적으로 제도화되고 시정부가 참여하여 정규적인 모임과 정책을 만들어 냈다는 점 그리고 지역복지운동의 영향력이 관철되었다는 점에서 유사거버넌스와는 차별적이다. 결국 의제21은 지역복지운동의 다소 강한 권력관계와 이해관계가 공유된 상태에서 형성된 협력적 거버넌스의 유형이라고 할 수 있다.

수돗물 불소화운동은 갈등적 거버넌스와 협력적 거버넌스가 복합적으로 존재하고 양자간의 전환이 나타났다는 점에서 독특한 거버넌스 유형이라고 할 수 있다. 우선, 수돗물 불소화운동은 그 자체로 복합적 이해관계가 내포된 아젠다였다. 정부 내 그리고 시민운동 간에도 이해관계가 일치하지 않을 정도로 명확한 가치판단이 불가능했다는 점과 수돗물 불소화운동이 동원능력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전국적인 수준의 네트워크를 형성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이에 따라 거버넌스는 갈등에서 협력적 거버넌스로 바뀌었으며 협력적 거버넌스일때 조차도 행위자들 간에 갈등적 긴장상태가 지속되었다. 본 논문은 이상의 세 가지 사례분석을 통해 거버넌스 유형의 요인과 특징, 그리고 이를 통한 연구의 함의를 끌어내고자 했다.

연구의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정부와 지역복지운동의 권력관계와 이해관계가 거버넌스의 결정요인이며 이들 관계의 변화에 따라 거버넌스 유형이 결정됨을 알 수 있다. 세 가지 분석사례를 통해 볼 때 지역복지운동의 권력과 지역복지운동과 정부간의 이해관계는 거버넌스 유형을 결정하며 특히 지역복지운동의 권력은 거버넌스 유형을 결정하는 가장 핵심적 요인임이 드러났다. 동원능력을 가진 인천연대가 주도하는 판공비 공개운동은 정부와 대립적 이해관계에도 불구하고 지역복지운동의 목적을 대부분 관철한 반면, 정부가 적극적으로 참여한 의제21은 동원능력이 취약한 지역복지운동진영이 제한된 수준의 의제에서 자신의 목적을 획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해관계의 공유가능성은 공공정책 결정을 토론과 협의를 통해 만들 가능성을 높인다는 점에서 거버넌스 유형의 성격을 결정하는데 중요한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후기의 수돗물 불소화운동과 의제21은 토론과 협상을 통해 아젠다를 공론화하고 가능한 방법을 모색했기 때문이다. 한편 수돗물 불소화운동은 거버넌스가 복합적으로 나타났는데 이것을 통해 로컬 거버넌스의 유형은 현실 정치과정에서 단순히 갈등적 또는 협력적 거버넌스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두 가지 거버넌스가 혼재된 즉 복합적 유형으로 나타날 수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것은 권력관계와 이해관계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변화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론적으로 거버넌스의 두 요소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지역복지운동의 힘이며, 따라서 권력관계와 이해관계의 변형과 이를 통한 지역사회복지 발전은 지역복지운동의 권력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둘째, 본 연구는 거버넌스 형성과 성격에서 지역복지운동의 권력변수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지역복지운동의 권력 증대 요인은 조직구조, 전문성, 집합적 행동인데, 이중에서도 집합적 행동이 권력의 수준을 규정하는 핵심요인임이 밝혀졌다. 즉 수돗물 불소화운동의 네트워크 형성과 효과적인 동원전술, 그리고 판공비 공개운동의 지속적이고 강력한 집합적 행동은 지역복지운동의 목표를 달성하고 더 나아가 타협가능한 이해관계로 변형시켰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이 조직구조와 전문성의 효과를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집합적 행동은 조직구조, 즉 헌신성과 적극적으로 참여한 회원과 정부의 영향력을 벗어난 자원과 재원에서 기인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인천연대와 전국 불소모임의 조직구조가 원형적으로 보여주었다. 반면 의제21에 참여한 지역복지운동 진영은 개별적인 참여와 조직구조에 기반하지 않은 속성 그리고 의제21의 운영에 정부로부터 특정한 재원을 받고 있다는 점이 집합적 행동을 제약하였다. 한편 전문성은 지역운동이 정당성과 운동의 방향을 결정하는데 중요한 요소이다. 판공비 공개운동이 가능했던 것은 판공비의 내역과 이것의 부당성을 홍보했기 때문이고 수돗물 불소화운동의 경우 의료단체가 불소농도조정사업의 당위성을 전문적으로 뒷받침했기 때문이다.

셋째, 정부와 지역복지운동의 이해관계는 거버넌스 유형을 변화시키는 주요한 변수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해관계는 이익의 공유가능성과 이익의 대립으로 범주화되고 전자의 경우 비영합게임이, 후자의 경우 영합게임이 진행된다. 사례분석에서 볼 때 이익의 공유가능성과 토론과 타협을 통한 논의 방식은 의제21에서 나타났고 이익의 대립과 물리력을 통한 문제해결은 판공비 공개운동에서 나타났다. 하지만 수돗물 불소화운동은 이해관계가 바뀜으로써 이해관계는 고정된 것이 아님을 보여 주었다.

결론적으로 사례분석을 통해볼 때 이해관계는 항상 고정된 것이 아니라 권력관계 또는 상황과 정치과정에서 바뀔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결국 이해관계는 행위자들 간에 어느 정도 타협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대립과 일치는 정도의 문제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해관계의 일치여부는 정책결정과정의 방식을 결정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요인임이 지적되어야 한다. 즉 수돗물 불소화운동과 의제21은 판공비 공개운동과는 달리 공론화와 정책토론이 가능했다. 한편 판공비 공개운동은 결과 측면에서는 지역복지운동의 목표를 달성했지만, 사회적 비용과 정치행위자들 간의 불신의 골을 깊게 했다.

마지막으로, 이익을 관철할 수 있는 조건이 동일하다면, 협력적 거버넌스가 지역복지운동에게 있어 보다 유리한 정책결정모형이라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협력적 거버넌스는 사회운동의 인식과 전략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갈등적 거버넌스가 정치세계를 권력정치 즉 게임으로 이해하면서, 힘으로 밀어붙이려는 경향이 있는 반면에 협력적 거버넌스는 정치운영을 협력을 통한 공공성의 증진으로 이해할 개연성이 크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자는 사회적 불신과 비용이 후자에 비해 많이 들 수 있다. 또한 협력적 거버넌스는 공론장을 통한 토론, 협상을 함으로써 민주주의를 학습할 개연성이 크다. 더 나아가 협력적 거버넌스는 정보를 공유하고 아젠다를 제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정보를 통제하고 정부의 아젠다에 반대하는 갈등적 거버넌스보다 시민의 이익을 증대할 가능성이 많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 9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