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문제나 사회이슈로 뜨겁게 달궈지던 인터넷에 오랜만에 ‘연성논쟁’이 불붙고 있다. 방영초기 화려한 캐스팅으로 화제가 됐지만 그동안 기대만큼 큰 관심을 끌지 못하던 KBS 2TV의 주말연속극 <애정의 조건>이 극중 여주인공의 ‘과거’로 인해 인기가 치솟은 것이다.
유복한 중산층 가정의 딸로 자란 ‘은파(한가인)’는 철없던 시절에 남자와 동거하고 임신까지 한 과거를 숨기고 상류층 가정에 시집을 가 행복하게 살다, 우연히 과거가 드러나 남편과 시댁으로부터 모진 수모를 받기 시작한다.
이 상황에 대해 네티즌은 여자의 과거라는 문제로 다양하게 논쟁을 벌이고 있고 드라마의 시청률은 한가인이 맨발로 뛰며 남편을 부르는 눈물겨운 연기까지 더해져 1위를 달리고 있다. 유교적 전통이 ‘잔존’하고 있는 정도가 아니라 ‘지배’를 하고 있는 것이 현재의 한반도라는 점에서 이런 반향은 그리 놀라운 것은 아니다.
은파가 맨 발로 뛴 사연
사실 우리 사회가 80~90년대에 장기수나 양심수 혹은 망명자들에게 보낸 시선 중에 일정 부분은 선악이나 시대적 가치를 넘어서 자신의 신념을 배신하지 않은 남자의 ‘충절’에 대한 동경이 없었다고는 못할 것이다. 이를 여성에게 대입하면 아주 간단히 한마디로 정리가 된다.
‘일부종사’. 단어 그대로 여자는 첫 남자와 함께 끝까지 같이 살아야 하고 여의치 않을 때는 그대로 인고의 세월을 기다리며 정절을 지키라는 것이다. 여자의 과거를 남자들이 문제로 삼는 것에 대해 자신의 재산을 자신의 ‘친자’에게 물려주고 싶은 욕망이라는 주장도 있고, 남자들의 성적 열등감 때문에 다른 남자와 비교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말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남자들이 느끼는 가장 솔직하고 직선적인 표현은 ‘과거가 있는 여자는 불결해서 싫다’는 것이다(물론 남자들은 스스로가 저지른 성적 비행에 대해서는 함구한다).
하지만 이런 논쟁을 몰고 온 이 드라마가 남녀간에 관계에 대한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거나 전향적인 선택을 시청자에게 보여주긴 힘들 것으로 보인다.
원래 이 드라마의 구도는 ‘은파’를 고난 속에 몰고 간 후 그녀를 끝까지 해바라기하며 지켜주던 남자친구(지성)가 돌아와 버림받고 지친 그녀를 감싸주며, 여자의 ‘순결’에 대한 우리사회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난 새로운 남성상을 보여주는 것으로 구상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런 멋진 역을 맡은 배우 지성의 스케줄 문제로 극중에서 미국유학을 가는 것으로 처리가 됐다. 얼떨결에 드라마는 아내의 과거에 치를 떨던 남편이 아내를 이해하는 착한 사람으로 변신하고, 앞으로 전개방향도 시아버지를 필두로 시댁 식구들이 하나 둘 용서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으로 해결을 볼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9월19일에 본 편 방영 후 나간 예고편에서는 은파의 가출로 잠시 긴장이 조성될 것 같아, 이래저래 은파의 팔자만 더욱 사납게 될 것 같다.
문제는 남편 역을 맡은 배우도 현재 한 프로덕션이 준비중인 대형사극에 비중 있는 역으로 캐스팅이 확정된 상태라 어쩌면 은파는 곧 남편도 잃고 미망인이 될 가능성도 있다. 드라마의 삐걱거리는 전개과정 속에서 무너지는 은파의 삶(?)과 작가의 본래의도를 찾기는 점점 더 어려워져 가고 있다.
왠지 처음부터 설정된 인물이 아니라 느슨한 전개를 막기 위해 투입된 것으로 보이는 둘째 딸 ‘진파’가 나이 들어서도 남자를 몰랐기 때문에 언니나 동생보다 행복하게 살 것 같은 분위기까지 풍기면서 드라마의 전체적인 테마가 ‘여자는 행실이 바르고 정숙해야 한다’는 20세기적인 주장으로 돌아가 버리는 듯해 아쉬움을 준다.
************************************************************************************* 벌써9년! 부산국제영화제
올해도 영화의 바다에 우리를 빠뜨릴 부산국제영화제가 10월 7일부터 15일까지 우리 곁으로 다가온다. 개막작인 왕자웨이(왕가위) 감독의 최신작 <2046>은 4분54초만에 3800장의 표가 매진이 되는 신기록을 세웠고, 영화제 규모는 63개국에서 온 264편의 영화가 상영되는 역대 최대규모가 될 것으로 보인다. 부산영화제는 시작 할 때부터 ‘서울’이 아닌 지역에서 국제적인 행사를 한다는 점에서 말 그대로 우려와 기대가 반반씩 섞인 반응을 얻었고, 초기에는 검열문제로 인해 관계당국과 갈등을 빚는 어려움도 있었다. 하지만 부산영화제는 9회가 흐르는 동안 부산을 ‘영화의 도시’로 탈바꿈 시켰고, “봄에는 칸 가을에는 동경”이라는 원대한 목표로 시작한 동경국제영화제를 누르고 세계10대 영화제 중 하나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다. 물론 아직도 영화제의 뚜렷한 성격이 불분명한 ‘종합선물세트’같다는 비판을 듣기도 하고, 매년 운영상의 작은 실수들이 나타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부산국제영화제는 세계에 존재하는 그 어느 영화제보다도 관객의 ‘사랑’과 ‘기쁨’ 속에 성장한 영화제라는 가치를 지니고 있다.
영화가 좋아서 여름휴가를 포기하고 ‘가을휴가’를 내 부산을 찾고 상영시간에 맞춰 극장에 들어가기 위해 충무김밥을 입에 물고 광복동을 뛰어가는 시네필들은 부산국제영화제를 살아 숨쉬게 하는 동력이다.
☆ 부산국제영화제는 매년 ‘추석’이라는 흥행변수(?)를 피해 기간이 정해졌다. 교통난이 문제가 되긴 하겠지만 10주년이되는 2005년에는 정면승부를 해보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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