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와 ‘실업사회’ 공동 모색이 필요

노동사회

‘노동사회’와 ‘실업사회’ 공동 모색이 필요

admin 0 3,546 2013.05.12 06:35

 


book%20%283%29.jpg지난 2월의 청년 실업률이 9.1%로 3년만의 최악이란다. 실업수치 발표가 있을 때마다 언론은 호들갑을 떨며 구직줄에 늘어선 젊은이, ‘이태백’ ‘사오정’의 풍경들을 그려내지만 이 관심이란 게 참 피상적이다. 통계청이 실업을 만들어내고 또 취업대책도 만들어낸다는 듯이. 또 그 관심은 금방 식어버린다. 실업이 너무도 친근한 세상이 되어서이기도 하겠다. 김만수의 책 『실업사회』는 이렇듯 일상화된 ‘실업 사회’에 대해서 진지하고 깊은 돋보기와 내시경을 들이댄다.

실업은 자본주의 체제 문제?

저자는 정부의 실업통계에 의문을 제기하며 시작한다. 지난해 말 통계청의 공식실업률 통계는 3.6%로, 개념상 완전고용이라고 할만한 수치였다. 그러나 우리 주변을 돌아보면 왠지 앞뒤가 맞지 않는 구석이 느껴진다. 친구와 지인들 사이에 구직자도 많고, 소위 실망실업자라 불리는 취업포기자들이 많기 때문이다. 민주노총이 99년 발표한 실업률은 16.6%에서 26.1%까지로 나타났고, 교육부가 발표한 대졸 실업률은 46%나 된다는데 이 불일치는 왜 생겨나는 것일까?

정부의 통계가 거짓은 아니다. 국제노동기구(ILO)의 실업개념과 기준을 제대로 적용하고 있다. 하지만 실업통계의 기준은 다분히 관습적이고 관행적이라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대표적으로 일주일에 1시간 이상만 일을 해도 취업자로 분류되고, 구직활동을 매우 적극적으로 하고 있지 않는 경우 아예 비경제활동인구로 실업 통계에서 배제된다. 이처럼 기준이 실제로는 애매하기 때문에 새로운 범주와 기준을 개발해야 하지만 그러한 노력은 거의 없다. 비정규직이 대폭 확대된 지금 그 간극은 더 커졌을 것이다. 

저자는 취업난의 ‘현상’이 아닌 ‘원인’을 찾고자 하며, 그 근본 원인을 임금과 고용 부분에 투여되는 자본의 상대적 감소에서 찾고자 한다. 즉 정부의 의지나 정책 따위로 어쩔 수 없는 실업의 근본 원인이 자본주의 체제 자체에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저자가 활용하는 도구가 맑스의 ‘자본의 유기적 구성’이라는 개념이다. 총자본에서 가변자본(노동력)에 대한 불변자본(설비투자 등 생산수단)의 비율이 높아질수록 자본의 유기적 구성, 혹은 자본 구성이 고도화된다고 말한다. 

국내 대기업들의 지난 20여년간 각종 회계자료를 세밀히 들여다본 저자는 실제로 각 업종에서 자본의 유기적 구성의 고도화 경향이 발견되며, 그것이 임금으로 지불되는 가변자본의 상대적 비율을 줄임으로써 실업이 증가할 수밖에 없었다고 결론짓는다. 이에 대한 저자의 대안은 노동시간 단축과 최저임금제 도입 같은 법제도적 방안과 함께 개인 혹은 집단이 희망의 사회적 연대를 만들어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노동’과 ‘실업’ 둘 아닌 하나

저자의 분석은 높이 살 만하지만 핵심적 내용에서 의문스러운 점들이 있다. 먼저 맑스가 ‘자본의 유기적 구성 고도화’를 이야기할 때 그 용도가 무엇이었냐는 것이다. 맑스가 이 개념을 쓴 것은 자본축적과 경쟁이 진행되면서 자본가들이 생산 확대를 하지 않을 수 없고 이것이 ‘이윤율의 경향적 하락’을 가져온다는 것을 도출하기 위함이었다. 이는 과잉축적의 심화와 이윤 실현 사이에 모순이 생기면서 공황 같은 자본주의의 내재적 불안정성이 잠재된다는 보다 큰 결론으로 이어진다. 

그렇다면 자본구성 고도화를 통해 실업률의 경향적 증가를 끌어내는 저자의 주장은 실은 ‘별 것 아닌’ 이야기일 수 있다. 즉 실업 증가는 자본구성 고도화에 잠재되어 있는 매우 다양한 결과 중 겨우 한가지 측면일 뿐이다. 아니면 가변자본 비율의 상대적 감소와 취업인구(노동비용)의 상대적 감소, 즉 실업률 증가는 애초에 일종의 동어반복이다.

다음으로, 저자의 주장이 보다 설득력을 가지려면 첫째로 해당 기간 중 자본구성과 실업률 사이의 현상적(통계적) 상관관계, 둘째로 자본구성과 실업률 사이의 내재적(인과적) 상관관계를 보여주었어야 하나 둘 다 부족한 듯 하다. 우선 저자가 제시하는 분석 자료는 자본구성 고도화 경향이 일관되지 않으며, 차라리 1980년대 말 호황과 1990년대 이후의 불황 국면이라는 경기변동 경향에 더 관련이 있어 보인다. 

다음으로 인과적 상관관계에 해당하는 설명은, 현재 취업하고 있는 노동자들의 취업상태를 계속 유지하고 또 추가로 흡수하기 위해서는 총 자본투여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해야 하는데 실제로 이러한 사회는 불가능하다는 부분(173~4쪽)인데, 이는 ‘20대80 사회’라는 비유적 표현보다 그다지 더 엄밀하거나 풍부할 게 없다. 비정규직 확대로 표현되는 고용 및 노동형태의 다변화, 동시에 일어나는 실업형태의 다양화에 대해서는 앞의 문제설정과 결합되어 전개되지 못한채 현상 기술에 머무르고 만 것도 아쉽다.

하지만 이 책은 맑스의 개념을 구체적 회계자료를 통해 실증 분석을 시도한 쉽지 않은 사례라는 점, 그리고 실업 통계와 범주에 대한 논의의 계기를 제공하고 문제의식을 확대했다는 점에서 충분한 의의를 갖는다. 또 책의 체계가 다소 난삽하지만 경제학적 논의 못지 않게 실업이 끊임없이 문제가 되고 삶이 팍팍해지는 이유에 대한 사회학적 보고를 담아내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겠다. 

이에 못지 않은 기여는 책의 제목이 환기시키고 있는 점인데, 바로 현대는 ‘노동사회’ 못지 않게 ‘실업사회’라는 말이다. 이젠 양자를 둘이 아닌 하나의 문제로 고민하며 대안을 만들어갈 때라는 뜻일게다. 김만수 짓고, 갈무리 펴냄. 13,000원

 

  • 제작년도 :
  • 통권 : 제 86호